광동, 중국의 ‘작은 아프리카’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환풍기 소리와 텔레비전 소음 사이로 수많은 중국 여직원들이 바삐 움직이는 술집은 일견 평범해 보인다. 테이블에는 맥주 얼룩과 기름 찌꺼기가 들러붙어 있다. 하얼빈과 칭다오 사이에 위치한 이 술집에서는 기네스 맥주뿐만 아니라 아체케 생선요리(아프리카 전통음식)와 비삽주스(아프리카 음료수)를 맛볼 수 있다. 샤오베이 구역의 광저우 북부에 위치한 무스타슈 카페에서, 나는 서아프리카인들을 만났다. 빽빽하게 들어선 수많은 건물로 둘러싸여, 남쪽의 우회도로들과 북쪽의 바이윈산으로 가로막힌 이 좁은 구역 덕분에 중국의 세 번째 도시인 광저우가 아프리카 무역업자들의 선적항이 돼왔다. 인구 1,500만 명의 대도시에 아시아에서 가장 큰 아프리카 공동체가 집결해 있다.(1)
“사업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직 사업이 이곳에서 자리 잡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곳을 드나드는 켈리안(2)의 말이다. 그에 의하면, 광저우에 체류하는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은 아프리카 기업들과 중국 기업들을 연결하는 소규모 사업을 위해 광저우에 온다. 1만 5,000명에서 2만 5,000명에 이르는 아프리카 공동체는 현지에서 생산된 제품들(보석, 가전제품, 모조품 등)을 저렴하게 구입한 후 되판다.(3)
이런 상황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6세기부터 마카오에서 탈출한 노예들은 광저우에 정착했고, 그들은 중국인들에 의한 착취가 없었으면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4) 이들은 식민지 시대에 떠났다가 1990년대 초 되돌아왔다. 이 무렵 중국의 성장은 ‘남쪽의 진주’, 광저우의 번창하는 상업에 이끌린 나이제리아, 콩고, 말리인들을 끌어들였다. 세계 각지로 흩어진 아프리카인들의 경제적 영향력을 잘 알고 있는 아프리카 각국은 거대 중국과의 관계에서 이들을 주요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우리 아프리카인들을 수용해준 멋진 도시 광저우에서 개최된 세계 아프리카의 날 행사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2019년 5월 24일, 말리 총영사인 알리 마 단파카 가쿠는 텐허의 고급 상업지구에 위치한 솔룩스 호텔에서 외교관, 학생, 사업가들을 향해 거리낌 없이 말했다. 광저우시의 승인 하에 진행된 행사에서, 거대한 화면 양쪽에 위치한 중국 국기와 아프리카 연합 국기가 엄숙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중국이 ‘일대일로 이니셔티브(Belt and Road Initiative, BRI)’를 개시한 이후, 광저우에 아프리카 영사관들이 증가했다. 2019년에는 가나와 탄자니아 영사관이 기존의 15개 영사관에 합류했다.
공식적으로 이런 행사는 광저우의 비즈니스 망 강화를 위해 열린다. 광저우의 한 무역업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수단 친구의 초대로 광저우에 왔습니다. 광저우에서 사업을 하는 아프리카인들의 대부분은 본국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이 바쁠 때면 광저우에서 2~3주 머무르는데, 그때 제가 그들을 안내합니다.” 이렇게, 샤오베이에서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중국인들과 아프리카인들은 이곳에 새로 오는 이들을 안내한다. 국가별로 선출되거나 혹은 자청해 대표가 된 ‘회장들’은 이주민들이 겪는 긴 행정절차를 돕기 위해 단기 체류 무역업자들과 행정기관의 연계를 담당한다.(5)
광저우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공동체는 상업 분야를 넘어서 정치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프리카에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중국 정부는 아프리카에 대한 소프트파워를 확장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중국은 특히 대학생들에게 기대를 건다. 중국과 아프리카 사이의 대학 간 교류는 이미 있어왔지만, 지난 몇 년 전부터 급격히 늘어났다. 2000년대 초 1만 5,000명이었던 아프리카 대학생 수가, 2015년에는 5만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6) 이들 중 상당수는 현지에서의 학업에 필요한 재정 능력을 갖췄지만, 중국 정부는 가장 유망한 인재들을 가려내기 위해 장학금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광저우 중산대학교 학생이며, 남아프리카 공산당(SACP) 당원인 트리보 들로부는 장학생으로 선정됐다. 그는 중국정치체제에 대한 지지를 기꺼이 표명하며, 마오쩌둥을 예로 들면서 설명했다. “그 당시의 중국 교육은 사회주의의 혜택을 보여줬습니다. 이를 통해 중국은 오늘날의 기반을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 기반에 의해 중국이 공산주의와 중국 전통에서 영향을 받은 고유한 경제모델을 구축할 수 있었다고 본다. 탄자니아 전 대통령인 줄리어스 니에레레와 그의 ‘아프리카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그는 중국 공산당(PCC), 교육받은 엘리트들, 부패에 대한 투쟁으로 형성된 중국 고유의 체제를 찬양했다. 1년에 걸친 그의 교육과정은 중국 당국에 의해 결정됐다.
정부 장학금을 받은 20여 명의 중산대학교 아프리카 대학생 중 한 명인 마리-리드미나는 마다가스카르 국회의 수석 연수생으로, 마다가스카르 외무부 직원이었다. 잠비아 정부의 경제부 분석가로 일했던 윌리엄 쉬푸닐레는 말했다. “잠비아 고위 공무원들이 정부 부처 사무실에 와서 여러 명의 파견 공무원들을 임명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파견됐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업무능력 향상을 위해 이 기회를 잡으라고 교육했습니다. 이 일은 순식간에 진행돼서, 제 아내는 제게 소식을 듣기도 전에 TV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마리-리드미나와 윌리엄 쉬푸닐레는 공산주의 활동가는 아니었다. 그들은 본국으로 귀국한 후, 고위 공무원으로 진급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자유의 축소, 이주민의 감소
광저우의 21개 대학은 우선적으로 아프리카 출신 대학생들을 수용했고, 나아가 BRI에 연계된 국가 출신의 대학생들도 받아들였다. 각자 자신의 국가에서 중국 교육체제의 비공식적인 중계자가 된 이들도 몇 가지 측면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중국공산당(PCC)은 마다가스카르의 수도인 안타나나리보에서 장학생으로 선발된 대학생들이 출발하기 전 일주일간의 세미나를 열었다.(7) 5일로 예정된 교육에 2일만 참석했던 마리-리드미나는 “교육은 지루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역사와 발전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어야만 했습니다.”
중국 체제에 대해 호의적인 들로부도 “표현의 자유가 필요하다. 정치적인 이유에서 중국을 선호하지만, 남아프리카에 가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 ‘자유’는 지난 몇 년 동안 점점 축소됐다. 서아프리카의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 이후, 샤오베이에서 경찰 수색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정기적으로 주민들은 건물에서 퇴거했고, 지역의 외국인 공동체(아프리카, 아랍, 터키, 파키스탄)들과 경찰 사이의 정면충돌이 계속됐다. 상당수의 이주민이 이미 광저우를 떠났고, 이주민 수는 2010년 이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8)
광저우 속 ‘작은 아프리카’의 점진적인 축소는 중국과 아프리카 간의 경제 및 정치적 관계와도 연관돼있다. 2015년 아프리카의 원재료 시세가 하락하자 ‘작은 아프리카’의 구매력도 타격을 입었다. 더불어 위안화에 대한 자국 통화의 가치하락과 몇몇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치적 불안, 그리고 중국 대도시의 임대료 상승 등이 그 이유였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단기간 체류하는 무역업자들은 광저우에 더 이상 거주하지 못하거나, 기존 정착민은 본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생겼다.
우오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015년 몇몇 사업가들이 중국에 왔을 때, 그들의 주문량은 이전에 비해 적었습니다. 시세 하락 때문에 소심해진 거지요.” 우오는 몇 달 전부터 수단을 뒤흔든 반정부 시위로, 수단 고객들과의 사업에도 큰 타격을 받았다. “고객 대부분이 제게 전화를 걸어 예정됐던 출장을 취소했습니다.”
많은 아프리카 이주민들이 중국을 떠났고, 지역 유통업자들에게 자리를 넘겨줘야 했다. 우오처럼 수십 명이 샤오베이로 와서 아프리카 중개인들로 거래처를 트면서, 기회가 왔을 때 사업을 시작했다. 우오는 “나는 아프리카인들과 함께 일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고, 사업과 일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라고 말했다.
이제 샤오베이 공동체는 사라질 것인가? 광저우와 아프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교류는 계속될지도 모른다. 중국 정부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BRI로 통합하려는 의지를 계속 드러냈다. 그러나 이런 교류들을 공식화하면서, 중국 정부는 신용이 보장되고 관리가 수월해 단기간만 머무르게 할 상인들을 위해서, 중국의 유일한 아프리카 공동체를 축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시진핑 중국 국가수석은 대략적인 계획을 공지했다. “중국은 중국-아프리카 경제무역박람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박람회를 통해 중국 기업들은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를 확장할 것이고, 아프리카에서 경제무역 분야의 협력을 구축하고 현대화할 것입니다.”(9) 2019년 6월 말, 첫 번째 박람회가 후난성 창사시에서 개최됐다. 이제 곧 사라질지도 모를 광저우의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다.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독자 팬클럽 협회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친구들(Les Amis du Monde diplomatique)’은 상금 1,000유로가 걸린 제8회 대학생 공모전을 개최했다.(1) 심사위원장인 드니즈 드코르누와(문학부분 책임자)와 심사위원인 미레이유 아주그(교수, 파리8대학교 유럽학 연구소 소장 역임), 필립 레마리(국제라디오프랑스 기자 역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인터넷 사이트 블로그 ‘Défense en ligne’ 운영자), 마티외 오닐(연구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외부 집필진)이 수십 건의 탐사보도와 심층취재 응모작들을 심사했다. 5편의 우수작들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국으로 회부됐고, 올해 수상작으로 본 기사가 선정됐다. 내년도 응모 마감 일자는 2020년 6월 15일이다.
(1) www.amis.monde-diplomatique.fr
글·루이 베르트랑 Louis Bertrand
프랑스 리옹 시앙스포(Sciences Po) 석사과정 2년 차
번역·권정아
번역위원
(1) Tristan Coloma, ‘L’improbable saga des Africains en Chine 중국에 사는 아프리카인들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0년 5월호.
(2) 익명을 요구한 취재원들은 성(姓)을 제외하고 이름만 표기했음.
(3) Jeremy Luedi, ‘Goodbye Chocolate City: the death of Asia’s largest African community’, <Asia by Africa>, 2018년 3월 11일, www.asiabyafrica.com
(4) Frank Dikotter, 『The Discourse of Race in Modern China』, Oxford University Press, 1992년.
(5) Gordon Mathews, ‘Africans in Guangzhou’, <Journal of Current Chinese Affairs>, n° 44, Hambourg, 2015년.
(6) Zhigang Li, Laurence J. C. Ma, Xue Desheng, ‘An African enclave in China: The making of a new transnational urban space’, <Eurasian Geography and Economics>, Abingdon-oh-Thames, 2009년.
(7) 대부분의 장학생 모집은 PCC가 아닌 외무부가 시행함.
(8) Jenni Marsh, ‘The African migrants giving up on the Chinese dream’, <CNN>, Canton, 2016년 9월 26일, www.cnn.com
(9) 2018년 9월 3일 개최된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의 시진핑 담화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