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 범죄 조직’이 된 과테말라 정부

2019-11-29     클레망 데트리 l 기자, 멕시코

과테말라의 부정부패 척결운동은 상당 부분 성공을 거뒀으나, 제임스 에르네스토 모랄레스 현 대통령의 의혹에 관해서는 난항을 겪고 있다. 모랄레스는 반부패 운동에 큰 공을 세운 UN 산하의 국제위원회 CICIG를 과테말라에서 몰아내려 하고 있다. 지미 모랄레스 과테말라 대통령의 아들과 친형이 사기 혐의로 기소된 재판에서 최근 무죄판결을 받았다. 과테말라 법원은 지난 8월, 모랄레스 대통령의 장남인 호세 마누엘 모랄레스와 형이자 보좌관인 사무엘 모랄레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9월 치러진 대선 결선투표에서 중도우파 후보인 알레한드로 히아마테이가 승리함에 따라, 모랄레스 대통령은 내년 1월에 물러난다. 앞으로 4년간 과테말라를 이끌게 될 신임대통령 앞에는 이민, 범죄, 빈곤 등 당면한 국정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2007년 2월 17일 밤, 중미의회(Parlacen) 소속의 엘살바도르 출신 의원 3명이 럭셔리 사륜구동차에 2개의 커다란 가방을 비밀스럽게 싣고서 과테말라 시티로 향하고 있었다. 국경을 넘자마자 에두아르도 오뷔송, 윌리엄 피샹트, 호세 라몽 곤잘레스와 그들의 운전사는 엘 조코틸로 마을에서 경찰들에게 체포됐다. 다음 날 아침, 해당 차량은 완전히 전소된 상태로 이 4명의 시신과 함께 발견됐으며 부검 결과, 그들 4명은 여러 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추후 조사에서는 이 3명의 의원이 코카인 20kg과 현금 500만 달러를 운반 중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을 죽게 만든 4명의 경찰은 3일 뒤 체포됐으나, 유치장으로 이동하던 중에 암살됐다. 이 암살을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았던 내무부의 고위 관료 빅토르 리베라 역시 몇 달 후 사망했다.

사실 9명의 전임 대통령들이 구속됐거나 이미 징역형을 살고 있을 만큼, 폭력과 부정부패가 만연한 과테말라에서 이 정도의 사건은 지나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2007년 과테말라 정부와 UN 간의 협정을 통해 CICIG(Comisión Internacional contra la Impunidad en Guatemala: 과테말라 반면책 국제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이 위원회의 목표는 CIACS(Cuerpos Ilegales y Aparatos Clandestinos de Seguridad: 불법 안보단체 및 기관들)의 위법행위를 조사하는 정부 기관들을 지원하고 강화하는 것”이다.(1) 과테말라에서는 정부 기관의 무능과 36년(1960~1996)이나 지속된 내전으로, 과거의 비리와 현재의 범죄에 대한 면책이 당연시되고 있다.

중미의회 의원 사건의 경우 CICIG는 과테말라 법원이 초법적 사형(Extrajudicial killing) 9건의 주동자들 고발에 필요한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8년 동안 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CICIG가 지난 11년 동안 추적한 80개 사건 중 최초로 공개된 몇 가지 사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 BBC와의 대담에서 CICIG의 위원장이자 콜롬비아 출신의 법률가 겸 외교관 이반 벨라스케스 고메스는 CIACS에 가담해 유죄판결을 받은 고위급 정치인과 사업가의 수가 3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2)

그러나 과테말라에서 활동해온 UN 반부패 감시위원회가 지난 9월 3일 활동을 종료했다. 조르단 로다스 인권담당 검사는 “장기간 불법행위와 비리에 젖어 살면서도 처벌을 받은 적이 없었던 비리 관료들에게는 CICIG가 악몽과도 같은 존재일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015년에 집권한 제임스 에르네스토 모랄레스 카브레라 대통령 정부는 CICIG 측에 활동기한이 종료되는 9월 이전에 과테말라를 떠날 것을 명했다. 위원회는 2015년 모랄레스가 관련된 대선자금 조달 관련 조사를 계속할 예정이지만, 최고선거법원(TSE)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으면 어려워질 수 있다.

“과테말라 내전 직후 CIACS는 대부분 군인 출신들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쟁범죄 처벌을 위한 법적 제도가 마련될 조짐이 보이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세간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던 이들이었습니다.”

정치학자이자 전 외무부 장관(2002~2004)인 에드가 구티에레스가 설명했다. 민주주의로의 이행은 곧 그들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한 단죄를 의미하므로, CIACS는 “민주주의로 회귀하더라도 전쟁범죄는 잊지 말자”라고 국민들을 일깨우던 시민단체 수장들을 제거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역사적 기억의 회복을 위한 범종교적 프로젝트를 이끌던 후안 호세 제라르디 코네데라 주교가 1998년 암살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야 시위를 촉발한 ‘라 리네아’ 스캔들

“그러나 과도 정부(1996~2000)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알바로 아르수와 그 측근 공무원들은 인권수호운동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훨씬 더 원대한 야망, 즉 국가와 경제의 통제까지 원했습니다. 군부 독재 시절 정보부 공무원들의 대부분은 이 시기에 정부, 또는 정부 측근이 계획한 범죄에 가담했습니다.”

CICIG는 중미의회 의원 사건에 관해 내놓은 결론에서 해당 범죄가 “공권력과 교도소에 깊숙이 뿌리내린 불법조직”에 의해 계획되고 감행됐다고 강조했다. 이 조직의 핵심 인물 중에는 현재 감옥에 있거나 도주 중인 안보 관련 고위 책임자도 여럿 포함돼 있다. 전 사법경찰청장 빅토르 위고 소토 디에게스, 전 내무부 장관 카를로스 비엘만, 전 시민국가경찰 대표 에드윈 스페리슨, 전 후티아파 주 의원 마누엘 드 헤수스 카스틸로가 이에 해당한다.

정치학자이자 국제 컨설턴트인 루이 호르헤 가라이 살라만카는 콜롬비아에 관한 연구에서 ‘정부의 단기적 포획’이라는 개념을 내놓았다.(3) 과테말라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원 이안 H. 티스달은  CIACS를 ‘마피아화’ 현상의 일종으로 보았다. “정치인들의 처단에서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경쟁조직들의 처단으로 조직의 기능은 바뀌었지만, 그 방식은 여전합니다.”(4)
1990년대에 부정부패가 과테말라 정부 내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지자, 미 국무부는 마약 거래 증가와 함께 “불안한 민주주의”를 우려하기 시작했다.(5) 2002년에는 당시 국무차관이었던 오토 J. 라이히가 “마약밀매 책임자와 과테말라 정부 최고위 관료들 간의 결탁”을 규탄하기도 했다.(6) 그러나 상황이 이보다 더 악화하리라고 예상했던 비관주의자들은 거의 없었다. 2015년 ‘라 리네아’ 스캔들이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스캔들로 과테말라 국민들은 전례 없는 규모의 대통령 하야 시위를 벌였고 결국 오토 페레즈 몰리나 대통령(2012~2015)은 구속됐다.

이를 계기로, 페레스 몰리나가 대통령이 되기 한참 전부터 소속 정당인 애국당이 관세 탈세 조치를 만들어 2007년과 2011년 대선자금을 조달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과테말라 국민들의 세금을 일주일에 28만 유로씩 날려버린 ‘라 리네아’ 스캔들은 마약밀매에 관여한 군-마피아 조직이 얼마나 손쉽게 정치적 세력으로 변모해 정부의 고위직에까지 손을 뻗쳤는지를 보여줬다. 민주주의 과도기 시절의 과테말라 정치권은, 당시 장군이었던 페레스 몰리나가 젊은 시절 축적한 자산을 불릴 최적의 투자처였다.

몰리나는 반란진압 부대 ‘La Cofradia’와 ‘El Sindicato’를 지휘하고 있었다. 이 두 부대는 1970년대에 거의 모든 세관을 관리하고 있었다. 또한, 몰리나는 엘살바도르 국적의 군인 출신이자 마약밀매상인 알프레도 모레노 몰리나의 이름을 딴 ‘모레노 네트워크’의 준회원이기도 했다. 그는 1990년대에 세관의 회계문서를 대거 위조한 사건으로 악명 높은 인물이다.

후에 집권당이 된 애국당은 불법 네트워크를 통해 450개의 공공시장을 독점했으며, 알레한드로 시니말디(2012~2014)의 몇몇 주요 행정조직들에 특권을 줬다. 그리고 공금을 배분하기 위해, 자신과 연관 있는 기업들에 각종 계획과 프로젝트를 남발하고 어음을 발행했다. 페레스 몰리나 대통령, 록사나 발데티 부통령과 그 측근들에게 돌아가는 리베이트를 확대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이었다.

2016년, 판사 출신이자 이번 대선의 후보이기도 한 텔마 알다나와 벨라스케스 고메스의 주도 아래 몰리나 전 대통령에 관한 조사가 다시 시작됐다. “부정부패를 저지른 당사자는 단순히 정부와 그 측근이 아니라, 오토 페레스 몰리나와 록사나 발데티를 당선시켜 정부 권력을 장악한 마피아 범죄조직이라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CICIG의 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이다.

 

선거자금, 경제대국 멕시코의 2.6배

그러나 CICIG는 선거에서 군-마피아 집단의 개입을 영구적으로 차단하기엔 법적 역량이 부족하다. 사상적 근거도 부족하고 자금의 출처가 불분명한 신생 정당들의 난립으로 말이 많은 선거이니 말이다. 2015년 발표된 보고서에 의하면, 2011년과 2015년 대선 운동 중 사용된 자금의 절반이 전통적인 독과점 기업들(시멘트, 설탕, 프라이드치킨 등)과 범죄조직들의 불법 후원으로 조달됐다.(7) 2015년 대선의 경우 TSE와 CICIG는 공동조사를 통해 모랄레스가 이끄는 국민통합전선(FCN)의 선거자금 중 약 90만 달러가 신고되지 않았음을 밝혀냈다. NGO인 ‘Accion Ciudadana(시민운동)’의 2012년 보고서에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 중 과테말라의 선거운동 비용이 최대치를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8)

Accion Ciudadana는 국가별로 정당들이 소비한 선거자금을 합산한 후, 총유권자 수로 나눠 유권자 1인당 사용된 선거자금을 산출했다. 그 결과, 과테말라의 유권자 1인당 선거자금은 10달러에 달했다. 라틴 아메리카 지역 제2의 경제대국 멕시코가 3.9달러인 걸 감안하면 상당한 금액이다. 멕시코 또한 일간지 <El País>에서 “폴리치넬라 인형(꼭두각시)의 비밀”이라며 비판했듯, 돈으로 표를 사는 일이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국가인 점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수준이다.(9)

그렇다면 CICIG의 적극적인 법적 행보에 대한 반발로 CICIG가 지목한 대상들이 ‘부정부패 연대’를 결성해 CICIG를 과테말라에서 몰아내려 하는 것일까? 물론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이유도 있다. 사실 페레스 몰리나의 권력이 후임자인 모랄레스보다 약하지는 않았다. 만약 UN 위원회의 주요 정치적 조력자이자 재정적 후원자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갱신을 요청하지 않았다면 CICIG의 임기는 진작 종료됐을 것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는 과테말라와의 지정학적 연대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CICIG를 희생시킬 준비가 돼 있다. 최근에 모랄레스 정부가 이스라엘의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긴 것도, 중국의 따가운 눈총에도 대만과의 외교적 상업적 협력을 재확인한 것도 모두 이와 무관하지 않다.

2018년 10월, 정보 제공 사이트인 노마다는 모랄레스 대통령과 가까운 정·재계 인사들이 워싱턴에 기반을 둔 로비 회사에 돈을 준 사실을 폭로했다.(10) 로비의 첫 번째 목적은 CICIG를 무력화하기 위해 만든 조치들을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 목적은 벨라스케스 CICIG 위원장의 입국을 금지해 지난 9월부터 뉴욕에서 원격으로 CICIG를 운영하게 한 것에 대해 선처를 요구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안토니오 구테헤스 UN 사무총장은 CICIG의 과테말라 내 활동기한은 2019년 9월 1일이므로 입국 금지 조치는 부당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11) 과테말라 헌법재판소 역시 벨라스케스 위원장을 상대로 취한 입국 불허 조치가 위헌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모랄레스 정부는 이에 불복했다.

 

 

글·클레망 데트리 Clément Detry
기자, 멕시코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번역위원


(1) ‘Acuerdo entre la Organización de Naciones unidas y el gobierno de Guatemala relativo al establecimiento de una comisión internacional contra la impunidad en Guatemala(CICIG)’, www.CICIG.org
(2) Gerardo Lissardy, ‘Iván Velásquez, comisionado de la CICIG: en Guatemala hay una ruptura del Estado de derecho’, BBC News Mundo, New York, 2019년 1월 23일.
(3) Luis Jorge Garay Salamanca, Eduardo Salcedo-Albarán, Isaac de León-Beltrán & Bernardo Guerrero, ‘La captura y reconfiguración cooptada del Estado en Colombia’, Fundación Método, Fundación Avina y Transparencia por Colombia, Bogotá, 2008년 9월.
(4) Ian Hadley Tisdale, ‘The three headed beast: a look into the evolution of the Guatemalan captura de estado, and the anticorruption efforts of the CICIG’, 애리조나 대학교, 2018년 11월, www.academia.edu
(5),(6) Otto J. Reich, ‘Threats to democratic stability in the Dominican Republic and Guatemala’, 미 의회 국제관계 위원회 청문회, Washington, DC, 2002년 10월 10일, https://2001-2009. state.gov
(7) ‘El financiamiento de la política en Guatemala’, CICIG, Guatemala Ciudad, 2015년 7월 16일.
(8) ‘¿Cuánto costó la campaña electoral? Analisis del gasto y la rendición de cuentas de los partidos políticos en el proceso electoral del 2011 en Guatemala’, Acción Ciudadana, Guatemala Ciudad, 2012년 2월.
(9) Sindy Nanclares, ‘La compra de votos, un secreto a voces en México’, <El País>, Madrid, 2018년 7월 1일.
(10) Jody García, ‘Jimmy, Baldizón y estos mega-empresarios organizaron el lobby contra Todd y la CICIG (parte 1)’, Nómada, 2018년 10월 11일, https://nomada.gt
(11) ‘Iván Velásquez decidirá nueva organización de CICIG, según la ONU’, EFE, Mexico, 2019년 1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