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무너진 에콰도르

2019-11-29     라파엘 코레아 l 경제학자, 에콰도르 전임 대통령(2007~2017)

에콰도르에서는 유가 급등으로 민중봉기가 칠레보다 앞서 10월에 일어났다. 일부 국민들은 라파엘 코레아 전임 대통령의 ‘시민혁명’ 정신을 이어가겠다던 레닌 모레노 대통령이 신자유주의로 방침을 바꾼 것에 배신감을 느꼈다. 코레아 전 대통령은 이 글을 통해, 현재 에콰도르가 직면한 위기에 대한 분석을 제시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 에콰도르와 14개 항목에 대해 합의했다. 에콰도르는 향후 IMF로부터 42억 달러(약 36억 유로)뿐만 아니라 다른 금융기관들로부터 추가로 60억 달러(약 54억 유로)의 금융지원을 받는 대신, 경제개혁 등 여러 조건을 이행하기로 합의했다. 레닌 모레노 대통령은 IMF 차관 조건에 따라 지난 10월 2일 유류 보조금을 폐지하는 제883호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 조치가 발표되자, 에콰도르 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다. 모레노 대통령은 그다음 날인 10월 3일에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며, 무장군에게 시위대를 진압하도록 허용했다. 모레노 대통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10월 12일에는 수도인 키토에 통행금지령이 내려지기까지 했다. 1970년대 군부 독재 시절 이후 이런 조치가 내려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레노의 모순적 발언과 합리화

모레노 대통령은 비상사태를 선포한 후, 자신의 비호세력이 장악한 과야킬(Guayaquil)에 정부의 일부 기능을 이전하기로 했다. 모레노 대통령은 전 TV 채널에서 중계한 방송 연설에서 “코레아가 나를 끌어내리기 위해 이번 시위를 조직했다”고 비난했다. 모레노 대통령은 군 최고 당국자들에 둘러싸인 채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구헌법의 규정에 의거, 무장군을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지칭했다.(1) 그는 이런 연출로 드러난 정치적 취약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모레노 대통령은 가장 가난한 이들이 입을 피해를 막기 위해 석유 가격 인상조치는 계속 거부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약속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석유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10월이 되자 그는 말을 바꿨다. 그는 자신의 결정을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표현하면서 시위가 일어나도 자신의 결정을 돌이킬 수 없을 것이며, 유류보조금은 “나태함을 유발하는 조치”이므로 폐지되기를 바란다고 확실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후, 시위가 격렬해지자 모레노 대통령은 시위를 이끄는 에콰도르원주민민족연맹(CONAIE: Confederation of Indigenous Nationalities of Ecuador)과 협상을 시작했고, 10월 13일에 제883호 행정명령 폐지를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시위로 8명의 사망자와 1,34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1,192명이 체포된 것으로 공식 집계됐다.

현 정부는 IMF와의 합의를 정당화하고자, 에콰도르가 이전 정권에서부터 누적된 과도한 부채 때문에 위기에 처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수치는 조작됐다. 정권이 바뀌었을 당시 공공부채는 600억 달러(약 540억 유로)에 달했다고 했지만, 재무부의 공식문서에 의하면 2017년 6월을 기준으로 총 공공부채는 435억 4,000만 유로(GDP의 약 41.7%)였다.(2) 또한 2007년에서 2017년 5월까지 공공투자가 1,000억 달러로 사상 최대에 달했던 상황에서 대외부채는 GDP의 21.4%인 285억 5,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2016년 에콰도르의 성장률은 유가 하락, 달러 강세, 다국적 정유업체인 셰브론과의 소송에서 GDP의 1%에 달하는 배상금을 선고한 국제판결, 30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피해를 야기한 지진 등으로 1.2% 하락했다.(3) 이와 같은 심각한 외부 충격에도 불구하고, 에콰도르의 경기는 2016년 4분기부터 회복되기 시작해서 2017년에는 2.4%, 2018년에는 1.4%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모레노 정부는 이전 정권으로부터 이어진 재정적자 또한 위기 원인으로 꼽았다. 에콰도르의 재정적자는 2016년에는 GDP의 5.34%, 2017년에는 GDP의 5.39%를 기록했으며(석유 수입 감소가 주원인), 2018년에는 2.4%를 기록했다. 이는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따라 EU 국가에 요구되는 수치보다 낮다.

요약하면 과도한 부채도 없고, 재정적자가 크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모레노 대통령이 말한 위기는 도대체 무엇일까? 지금 상황은 이전 정부로부터 이어진 잘못된 상황보다는 국가의 현 경제정책 방향 때문이다. 모레노 대통령은 집권 이후 372개 유형의 제품에 적용되는 관세를 인하하거나 철폐했다. 이 조치로 4억 달러가량의 세입이 감소했고, 비필수 품목의 수입이 약 8억 달러 증가했다고 추정된다. 이 밖에 어리석게도 사회보장청(IESS)과 중앙은행 두 곳의 내부 자금원을 민영화한 것을 들 수 있다. 이 두 기관은 이제 잉여금과 준비금을 국외로 보내게 됐다.

에콰도르는 오랫동안 불안정했다.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어느 정권도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위기의 해결은 대부분 제도적 틀 밖에서 이뤄졌다. 정치적 긴장이 계속되자 이를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2008년 헌법 제130조와 제148조에는 “심각한 정치 위기와 사회적 긴장이 있는 경우” 국회 또는 대통령이 조기 총선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2007~2017년 만성적인 불안정이 사라졌다. 필자는 3선 연임에 성공했으며, 그중 2번은 1차 투표로 결정됐다. 에콰도르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시민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정치·경제·사법 개혁을 통해 우리는 모든 선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모레노 현 대통령이 필자의 뒤를 있겠다는 공약으로 출마했던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장군은 실전경험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정권을 잡은 후 태도를 바꿨다. 신자유주의적 의견을 늘어놓고 사익을 수호하는 쪽을 선택했다.(4) 사법기관을 포함해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신의 옛 동지들을 박해했고, 기관들의 권한을 약화시키기 시작했다. 모레노 대통령이 집권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부통령은 3명이나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콰도르 국민들은 모레노 대통령이 더 나은 국가로 이끌겠다는 약속을 지키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어려운 경제적·사회적 상황과 대규모 공공사업의 부재, 대통령 본인까지 연루된 수많은 부패 스캔들로 모레노 정권의 인기는 식어가고 있다. 제833조 행정명령은 몇 달 전부터 바싹 마른 평야를 태워버릴 불씨와 같다. 민간 버스 운전사들이 파업을 시작했고, 원주민들이 봉기하면서 많은 이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정부는 곧바로 시위를 불법으로 간주하려 했다. 과야킬의 신시아 비테리 시장은 과야킬 시로 진입할 수 있는 다리를 봉쇄해 원주민의 행진으로 야기될 수 있는 피해를 막으려고 했다. 제이미 네봇 전임 시장은 원주민들에게 “당신들의 산에 머물러 달라”고 하면서 인종차별주의적인 본심을 드러냈다. 정부와 친정부 성향의 민간 미디어들은 이번 시위를 쿠데타 시도로 묘사하는 등 본질을 왜곡하려 했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필자에게는, “비밀요원들에게 돈을 줘서 집회에 침투해 폭력을 조장하게 했을 수 있다”라고 모함했다. 경찰은 이런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고심하다가, 베네수엘라인 17명을 체포하고 외국 요원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우버 운전사였다.
공식 입장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정부는 부패를 근절하려고 하지만, “라파엘 코레아와 그의 지지자들이 이를 저지하고자 작전을 수행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레노는 “사법 기관이 대통령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어떤 미친 사람(필자를 의미)이 베네수엘라에서부터 이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근래 에콰도르의 역사상 전례 없는 수준의 억압이 자행됐고, 정부가 <피친차 유니버설(Pichincha Universal)>을 비롯해 에콰도르의 현실을 알리는 언론매체들을 폐간시켰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민간 언론은 정부를 비호하려 했다. 이에 분개한 시위대는 시위 행렬에서 언론인들을 내쫓았다. 시위대로부터 신체적 폭력을 당한 언론인들도 있었다. 시위 도중 모레노 대통령의 측근인 세자르 리타르도 국회의장은 국회 개회를 방해했고, 시위 탄압에 직접 책임이 있는 내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은 그대로 유임됐다. 오스왈도 자린 국방부 장관은 “범죄 행위나 테러 행위는 강제로 진압될 것이다. (…) 무장군이 실전 경험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망언을 했다.

에콰도르 정부는 필사적으로 수도 키토에서 UN 대표와 에콰도르 주교회의 중재를 수용했다. 에콰도르 정부는 모레노 대통령의 취임 당시부터 지지를 표명해왔던 에콰도르원주민민족연맹의 지도부를 유일한 교섭상대자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에콰도르원주민민족연맹의 움베르토 촐랑고 전 대표는 시위가 일어날 때까지 물 관리부 장관을 맡았다. 또한, 원주민 정당인 파차쿠티크(Pachakutik)당은 국회에서 다수 여당에 속하며, 모레노 대통령의 입김으로 많은 원주민 지도자가 요직을 차지했다.

 

미국의 교두보가 된 에콰도르

하지만 에콰도르원주민민족연맹의 지도부는 지지층을 상실했다. 그래서 모레노 정권은 거리 시위를 해산시키기 위해 지지자들과 대화를 시도했다(하지만 대화가 결실을 볼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정부가 유일하게 양보한 것은 제883호 행정명령 폐지뿐이었다. 하지만 시위대는 모레노 대통령의 퇴진뿐 아니라 IMF도 떠나기를 요구했다.

원주민 운동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필자의 정치적 이념을 옹호해온) ‘코레아주의(Correism)’ 지지자들에 대한 박해로 이어졌다. 10월 14일, 경찰은 피친차주(州)의 파올라 파본 주지사와 시민혁명당(2007년에 시작된 정치·경제·사법 개혁인 ‘시민혁명’에서 유래됨)의 비르질리오 에르난데스 사무국장뿐만 아니라 다른 국회의원 3명과 함께 멕시코 대사관에 보호를 요청했던 가브리엘라 리바데네이라 전 국회의장을 포함해서 다른 인사 5명의 집을 급습했다. 파본 주지사는 현재 수쿰비오스주(州) 출신 국회의원인 요프레 포마 의원과 두란 시의 알렉산드라 아르세 전 시장과 마찬가지로 감옥에 수감돼 있다.

우리는 평화롭고 민주적이며 헌법에 기초한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헌법 제130조와 제148조가 적용되기를 요청하는 유일한 정치세력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방식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쿠데타 선동자라는 딱지가 붙었다.

IMF는 드물게도 석유 가격 인상조치를 철회한다는 에콰도르 정부의 결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IMF가 정부와 체결한 협약보다 정부 자체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IMF에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모레노 대통령이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2017년 5월부터 에콰도르는 이 지역에서 미국의 교두보가 됐으며, 미국은 이 새로운 동맹국을 빼앗길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콰도르는 최근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 축출을 지지하는 ‘리마 그룹(베네수엘라의 경제·정치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미주 14개국의 외교 모임이다-역주)’과 협력했다. 에콰도르 정부는 영국 경찰에 줄리언 어산지를 인도했고, 남미국가연합(Unasur)을 탈퇴했으며, 갈라파고스섬에 미군 신기지 개설을 허용했고, ‘시민혁명’ 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전에 ‘시민혁명’을 배신했다.

현재 에콰도르는 표류 중이다. 합법적인 정부가 없는 가운데, 에콰도르의 경제·사회·정치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글·라파엘 코레아 Rafael Correa
경제학자, 에콰도르 전임 대통령(2007~2017)

번역‧이연주
번역위원


(1) 에콰도르는 1998년 헌법을 대체하는 신헌법을 2008년에 채택했다.
(2) 2000년 9월 9일, 에콰도르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정통적인 정책으로 자국 통화인 ‘수크레(Sucre)’를 포기하고 미국 달러를 사용하기로 했다.
(3) Hernando Calvo Ospina, ‘Chevron, pollueur mais pas payeur en Équateur 다국적 석유재벌 셰브론에 맞선 에콰도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3월호, 한국어판 2014년 5월호.
(4) Franklin Ramírez Gallegos, ‘En Équateur, le néolibéralisme par surprise 에콰도르 신자유주의의 기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12월호, 한국어판 2018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