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페스티부스, 식탁으로 가다
프랑스 정통 미식이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됐다. 지난해 11월 16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정부간위원회 제5차 회의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영예가 주어졌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정부간위원회는 ‘선조에게 물려받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문화적 전통과 소산을 보전하기 위해 2003년에 마련됐다. 파리에서 문화부 장관과 농업부 장관은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며, 음식과 요리법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자신들이 프랑스 식문화를 세계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고 자축했다. 필리프 뮈레가 이 소식을 들었다면 익살스러우면서도 신랄하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호모 페스티부스가 식탁으로 왔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리듬이 식사 시간도 점점 빼앗아가고, 길거리 음식이 유행하며, 기업 경영자들은 영양보조식품을 먹으면서 더 이상 식사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고 자랑하고, 30%의 아이들이 학교식당 급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한다.(1) 살충제와 각종 첨가제, 플라스틱으로 오염된 음식은 의혹의 대상이 되었으며, 영양실조에 걸린 300만 프랑스인이 식량원조로 살아가는 상황에서 프랑스 정통 미식을 문화유산으로 기리는 것은 뭔가 그로테스크하고 부당한 점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국가 정체성에 대한 모호한 토론과 관련된 모든 점을 망각하고 있다.
프랑스 정통 미식, 문화유산 등재
프랑스 정통 미식과 함께, 크로아티아 북부의 향신빵 제조 기술, 룩셈부르크 에히터나흐에서 열리는 성령 강림절 무도예배 행렬, 이란 파르스주의 카펫 직조 전통, 페루의 전통 가위춤, 베트남 푸동 사찰 등 상품화로 인해 위협받지만 보존 가치가 있는 풍습이 나이로비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제대로 하려면, 그러니까 이 우스꽝스러운 노력이 성과를 거두려면 프랑스 사절단은 프랑스 정통 미식이 ‘긴급보호무형유산목록’에 등재되도록 했어야 한다.
파리의 고급 건물에서 최상류층이 좀더 좋은 것보다 좀더 비싼 것을 추구하며 화려하고 요란한 요리를 맛본다고 해도,(2) 스타 셰프들이 텔레비전에 출현해도, 굴, 가자미, 바닷가재, 송로버섯, 푸아그라, 어린 비둘기 고기, 캐비아, 고급 포도주와 치즈 등 특별한 요리 재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정통 미식은 소멸 위기의 문화유산이다. 프랑스인이 애피타이저·메인디시·치즈·디저트의 네 단계로 구성된 긴 식사를 하기엔 점점 시간도 없고, 돈도 부족하다. 프랑스 정통 미식을 기리기 위해 노력하는 정부에서 상업과 산업 분야 노동자들이 주 1회, 일요일에 의무적으로 휴식을 취하도록 한 법을 폐지했다는 점도 놀랍다. 잘 생각해보면 이 법이 마련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해방기도 아니고 인민전선 시절도 아닌 20세기 초 황금시대다. 현재 프랑스에서 진행되는 사회조직의 와해가 심각하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정통 미식이 친밀한 분위기를 돋우며 사회적 관계를 돈독히 하는 힘이 있다는 달콤한 이야기에 속을 수는 없다. 우리는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병원에서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 1년 52주 중에 1주를 ‘미식의 주간’으로 정해 기름기 없는 쇠고기가 아닌 콩을 넣어 만든 햄버거 스테이크를 먹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단체급식을 공급하는 다국적기업은 인산염과 포화지방산이 가득한 음식을 제공한다. 빽빽한 스케줄과 순차적 식사 시간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일요일에 가족, 이웃, 친구나 친척과 함께하던 식사 시간에도 관광명소나 특별 소비품 판매장에 붙잡힌 불행한 한 명이 언제나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도 돈도 재료도 없는 현실
프랑스식 식사가 보호받고 찬양되고 회자되면서 이제 기념품처럼 여겨진다. ‘바베트의 만찬’(3)처럼 아름답지만 먹고 돌아서면 배고프다. 식사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더 많이 하지만, 실제 식탁으로 가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유네스코 문화유산 신청을 계기로 2008년 10월 16일 하원에서 열린 만찬을 위해 마크 베이라, 기 사보이, 조엘 로뷔숑이 준비한 음식(요구르트병에 담아 야생 셀러리를 곁들인 푸아그라, 초콜릿 감자 무스, 송아지발 젤리를 곁들인 차가운 굴, 스파게티로 둘러싼 노르웨이 바닷가재)과 평범한 프랑스 시민이 선호하는 음식 간 격차를 관찰하면 놀랄 것이다. 서민이 선호하는 음식은 순서대로 송아지 고기 스튜, 쿠스쿠스 그리고 감자튀김을 곁들인 홍합요리다.(4) 최고급 요리 경연대회에 선보이는 요리가 뛰어나다고 해서 프랑스의 대중적인 음식이 서서히 사라지는 안타까운 현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상품화가 맛의 기억까지 지웠다
“식품업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산란닭을 집중 사육하고, 맥도널드가 붐을 일으키기 20년 전부터 드러그스토어에서 햄버거가 성공적으로 판매된다. 대형마트가 문을 열면서 깨끗한 위생 상태를 보여주는 대신 맛을 포기한 가공식품이 등장하고, 1970년대 냉동식품이 도입돼 성공을 거둔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식사를 하는 일반적인 부엌보다 합리적으로 잘 꾸며놓고 보기에도 좋은 부엌을 선호한다. 식당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게 되고, 맛있는 것을 먹기보다는 일탈과 외모 가꾸기, 자유 시간을 선호하는 풍조가 성행하는 것을 볼 때 전통적인 가치가 전환되었다. ‘식품’이라는 용어는 사물을 대신해 쓰이는 기능으로 1960년대부터 완전히 대체됐다.” 드보르의 말을 빌리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은 무대에서 멀어졌다’고 할 수 있다.
정통 미식은 생태학적·사회적 문제
그래서 신문에 미식 관련 사설이 넘쳐나고, 텔레비전에 맛집 프로그램이 줄을 잇고, 서점에 요리책이 붐을 이루게 되었다. 프랑스 정통 미식이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정통 미식’이라는 단어가 아니다. 이것만으로는 전문적인 요리와 가정식을 구별하지 않는다. ‘라구’나 ‘포토푀’처럼 대중적인 요리지만 미식의 대열에 합류한 요리도 있고, 외식업체 소덱소의 음식처럼 전문적 요리라고 언제나 미식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무형’이라는 단어도 아니다. 프랑스 문화유산 및 문화사절단이 앞세운 것이 라이프스타일임을 물론 알고 있다. 조지 슈타이너는 “‘창작의 규칙’이 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식탁으로 가는지 알려주는 ‘미식의 규칙’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풍조는 식사 구성, 식사 시간, 제공된 음식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모든 것을 뒤섞어 ‘맛의 기억’까지 지워버렸다.
이렇게 제기된 문제는 겉보기만큼 절망스럽지는 않다. 이는 우리에게 정통 미식은 생태학적 문제이자 사회적 문제임을 일깨워주었다. 반대론자에게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부메랑 효과의 고통을 알려줘야 한다. 아니면 프랑스 정통 미식은 민중예술민간풍습박물관에 어울릴 것이다. 고급 채소를 먹으면서도 유기농법을 언급하면 코웃음을 치고, 포도주에 대해 어떤 지식도 없이 상표를 마시며, 격양된 목소리로 환경보호를 주장하지만 식량 위기를 빈정거리는 행복한 이들의 식탁을 보게 될 것이다.
글•세바스티앙 라파크 Sébastien Lapaque
기자 겸 문학평론가. <그는 떠나야만 한다>(스톡·파리·2008)의 저자.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필리프 뒤레쉬와 자크 페리사의 인터뷰를 다룬 <단체급식, 엉터리 음식의 시대?>(모르디퀴스·파리·2010).
(2) 여기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공화국의 식탁에서>(플라마리옹·파리·2010)의 파스칼 투르니에와 스테판 레노를 따라해볼 수 있다.
(3) 가브리엘 엑셀 감독의 덴마크 영화(1987).
(4) <공화국의 식탁에서>, op c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