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가 되어버린 ‘문화적 예외’

2011-02-14     세르주 르구르

1930년대 후반 프랑스 인민전선과 1940년대 레지스탕스평의회(CNR)는 문화에 특수한 지위를 부여하는 정책을 추구했다. 현재 사르코지 정부가 주도하는 개혁은 예전에 프랑스의 ‘문화적 예외’의 승리가 보장해왔던 상대적 ‘성역’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문화적 쟁점을 정치적 문제와 분리해 생각하는 것은 과연 시의적절한 일인가?

세계무역기구(WTO)가 주도해온 시장 자유화에서 문화 창작품은 제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문화적 예외’는 흔히 프랑스적 예외와 동일시돼왔다. 프랑스가 국제 전문기구들을 통해 그것을 인식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온 까닭이다. 문화적 예외는 문화와 그 특수한 문제들을 국제적 차원에서 옹호해온 게 사실이지만, 이제는 프랑스 안에서 문화적 예외에 대한 문제들이 재검토되고 있다. <<원문 보기>>

경영 논리 표방한 예술 지원 정책

이런 모순은 프랑스 문화부가 공공정책전면검토(RGPP)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공식 문서상으로 보면 전면적 검토의 목표는 ‘문화적 결과에 따라 책임을 지고, 공공회계의 균형을 재정립하며, 단 한 푼의 유로화라도 적재적소에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 주요 부처 중에서도 문화부가 실적·경쟁·최소경비라는 목표에 부합하도록 종용받았다는 사실은, 문화부가 정책 수행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문화부의 적은 예산과 부족한 직원 수를 감안하면 이 작업이 과연 예산 문제에서 출발한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1) 그러나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된 예술창작위원회(2) 신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런 변화는 2007년 8월 크리스틴 알바넬 당시 문화부 장관에게 발송된 ‘임무서신’에 이미 공포되어 있었다. “예술 창작에 대한 공적 지원이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는 공급을 창출해낼 수 있도록” 권장하고, “지원과 보조금의 자동 갱신”을 금하는 동시에 평가받도록 하는 등, 이 변화는 RGPP의 근간을 이루는 양적 기준과 경영 논리를 과감하게 표방했다.

그러나 더 큰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은 지방자치단체 개혁안이다. 개혁안의 중심 문안은 지난해 11월에 채택되어 헌법위원회의 승인을 받았다. 개혁안에서 크게 우려된 사항은 예전에 지자체에 부여되던 ‘권한에 관한 일반 조항’의 삭제였다. 이 조항은 각 데파르트망(département·프랑스 행정구역의 하나로 한국의 군 정도에 해당하며, 현재 100개의 데파르트망으로 구분돼 있다)과 레지옹(région·프랑스 행정구역의 하나로 데파르트망의 상위 행정구역으로, 현재 22개의 레지옹이 있다)이 ‘지역의 공공이익’과 관련한 사항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중복 개입과 교차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비판의 대상이 돼왔다. 즉 중복 고용, 공공자금 낭비, ‘누가 무엇을 하는지’ 확인하기 힘든 어려움 등을 안고 있었다. 좌파가 시행한 지방분권 개혁의 골자를 이루는 1983년의 권한 이전 법들은 그런 난점을 척결하려 했지만, 완전한 해결에 이르지 못했다.

지자체들은 최근 몇십 년간 문화 영역에 상당히 개입해왔다. 문화 관련 사업비의 3분의 2에 달하는 70억 유로가 지자체에서 조달되는 자금이고, 그중 반 이상이 인건비로 지출된다. 이런 자금 조달 방식이 선호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식의 개입은 인기 전술적 측면이 있는데다 인접성 논리에 따라 이루어지고, 흔히 ‘문화 민주화’라는 원래의 원칙에서 벗어나게 된다. 각 지자체는 ‘구겐하임 효과’(빌바오에 구겐하임 현대미술관이 설치되면서 도시 전체가 재탄생된 효과)를 창출하리라는 희망 속에서 관광을 도구화하고, 홍보를 지원하며, ‘유럽 문화 수도들’로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상표’를 모색하고, 관할구역의 경제적 가치의 평가절상을 시도한다. 문화적 선택은 ‘경제적 결과’와 직결되어 있다.

상황이 어떻든, 국가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각 코뮌(Commune·프랑스 최소단위 행정구역)에 여러 종류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대부분의 문화 단체들과 이벤트 기획자들이 이 보조금에 의거해 예산을 책정한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권한 조항의 삭제는 이런 기능을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 여지가 있었다. 문화계와 지역 의원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이후 배타적 권한 원칙이 채택됐지만 관광과 스포츠, 문화는 이 원칙에서 제외됐다.

관광 상품화, 홍보, 상표화…

결과적으로 투쟁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화계 관계자들의 관심이 권한 조항에 대해서만 집중되는 현상은 안타까운 일이다. 관심을 가져야 할 다른 사항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데파르트망과 레지옹을 통합한 단일 ‘고문위원’들을 배치한 것 자체가 이미 데파르트망과 레지옹, 서로 다른 두 지자체에 속하는 재정 문제와 문화정책을 상당 수준 단일화하거나 통합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런 위험은 이미 확인되었으며, 문화 부문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 여지를 축소시켰고, 앞으로도 축소시킬 것이다. 

게다가 국가보조금 이전 방식 변경과 직업세 폐지에 따라 레지옹의 지방세 수입은 2015년에 6% 정도 감소할 전망이다.(3) 입법자들은 수입 감소가 지출 감소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고실업 시기에 해당 관할구역 내의 사회복지 분야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데파르트망들은 이미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 이런 데파르트망들은 문화 관련 보조금을 삭감함에 따라 여러 문화 관련 기관들이 문을 닫고 있다.

문화계 관계자들이 우려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이유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문제의식이 단기적으로 자금 조달 논리를 넘어서서 관련 정책들의 ‘결정 인자’들을 파악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는지 확실치 않다.  

첫 번째 징후들 가운데 하나로, 예전에 문화적 예외의 중요 쟁점이던 시청각 영상물과 영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공연, 그리고 문화재로 구분되는 문화산업들 사이의 단절성을 들 수 있다. RGPP가 진행한 인원 감축에 반대해 2009년에 일어난 미술관 및 박물관 직원들의 파업은 타 분야와 고립돼 독자적으로 조직됐고, 시청각 영상산업 공공서비스의 미래를 뒤흔든 <프랑스 텔레비지옹>의 개혁에 대해 공연계는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또한 영화계 종사자들은 그저 레지옹에서 지급하는 영화진흥보조금에 대해서만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4) 각 분야에서 일부 대변인들이 ‘모든 분열선’(5)을 넘어서겠다고 표명하는 것과는 반대로,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랄 수 있는 이런 문제는 현대의 ‘분열’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문 닫는 문화 관련 기관 속출

‘문화 대가족’이라는 듣기 좋은 후렴구는 집단 기만일 뿐이다. 영화와 방송은 프랑스 사회가 처한 어려움을 확대해 보여주는 프리즘과 같다. 보호되지 않은 다른 분야보다 영화와 방송 안에서 불평등은 훨씬 더 심하고 잔인하다. 몇몇 ‘상한가’ 인물들이 상상하기조차 힘든 막대한 이익을 올리는 반면 대부분 사람들은 점점 더 빈곤해지고 있다. 이른바 ‘돈벌이가 되는’ 스타들의 이름으로 영화가 제작되는 것은 문화적 예외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런 모순은 무형경제개혁(6)에 관한 레비 주예 보고서에 분석된 공권력의 모순을 그대로 반영한다. 예를 들면 이 보고서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무한한 시장 잠재력을 보유한 하나의 브랜드로 간주할 것을 촉구하는데, 이는 미술관(박물관)을 공적 공간이 융합되는 장소로 보는 개념과는 완전히 반대된다. 루브르- 1793년 개관 당시 프랑스공화국 박물관으로 그 기능이 정의됐다- 는 아부다비에 수출되어 해변과 이웃하며 구겐하임 미술관의 한 분점과 경쟁하게 된다. 시장 자유화의 개화(開花)로 여겨지는 문화적 예외라니, 참으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루브르마저 시장으로 간 마당에…

직접적으로 문화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지역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법안 단계에서부터 이 분야의 수많은 관계자들이 문화적·정치적·경제적 상호의존 문제를 파악하고 그와 더불어 법적 조처의 범위를 고려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여러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권리를 순전히 상징적 측면에서 이해했다. ‘문화적 다양성’에 관한 유네스코 협약이 실질적 규범 기준이 없는데도 이를 무조건 지지한 것이 그 예다. 유럽 체제가 본질적으로 자유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한다는 것을 때때로 잊고 있는 듯한, 유럽 체제를 바라보는 그들 인식의 상대적 순진함을 만천하에 과시한 것도 그렇다. 그러나 자유경쟁의 기본 원칙은 원칙을 벗어난 가설의 범주 안에서만, 일시적으로만 문화의 공적자금 조달을 허용할 뿐이다. 지자체 개혁이 더 나은 교육적 미덕을 갖추게 되길 기대해본다.

글•세르주 르구르 Serge Legourd
툴루즈1대학 교수, 문화 통신법 연구소(IDETCOM) 소장. 논문으로 ‘문화정책: 문화적 다양성의 쟁점’, ‘문화 정책과 시행’(파리·2010)이 있다.

번역•김계영 canari62@ilemonde.com

<각주>
(1) RGPP는 외무부의 문화 관련 예산에도 적용된다. 해당 부처들의 자체 자금 조달 비율을 보면, 예를 들어 알리앙스 프랑세즈의 경우 75%에 달한다.
(2) 에블린 피에예, ‘국가권력이 조장하는 ‘문화의 정치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11월호 참조.
(3) CNRS 연구원 알랭 강강에 따르면, 직업세 개혁으로 직접세의 기업체 분담금은 54%에서 20%로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지자체 개혁 심포지엄, 툴루즈대학, 2010년 1월 21~22일, 출간 예정).
(4) 문화산업 지원, 문화재, 예술 창작의 세 분야를 주축으로 하는 문화부 구조조정은 이런 사회·정치적 구분을 반영한다.
(5) 클로드 르루슈, 라두 미하일레아누, ‘지역의 영화 지원, 예정된 종말의 연대기’, <리베라시옹>, 파리, 2010년 2월 26일.
(6) ‘무형경제, 미래의 성장’, Documentation française, 파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