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로 온 팝아트, 프랑스 예술의 우향우
예술은 보수적인가, 진보적인가? 예술에서 보수와 진보의 게임은 르네상스 이후 계속 엎치락뒤치락하며 이어졌다. 성경이 지배한 중세 예술 사조는 르네상스를 통해 보수화됐고, 이어 등장한 바로크주의는 다양한 표현 형식을 발전시켰지만 특권층에 한정된 예술이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고전주의가 대두하면서 17세기 특유의 보수적 경향이 유럽의 예술 사조를 지배했으며, 심미적 표현 방식을 기준으로 창작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시대는 낭만주의를 거쳐 변주곡적 다양성을 창출하며 모더니즘까지 이어졌다. 아도르노가 ‘삭제의 역사’라고 했던 모더니즘의 역사는 탈장르와 탈미학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며, 방대한 현대 예술의 해석 범위는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는 시점이다.
포스트모더니즘 그 이후
21세기 서구 예술 비평에서는 ‘컨템퍼러리 아트’, 즉 동시대 미술 개념의 강세로 인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의 사용마저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 동시대 미술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미묘한 콘셉트의 차이가 있다. 이는 정치·사회적 시의성과 긴밀하게 연결된 미술시장의 강력한 파워 아래 예술가들의 개성과 재능이 공공성과 연관해 어떻게 논의될 수 있는가, 라는 문제의식을 제시하는 사조로 발전한다. 동시대 미술은 명작의 절대적 기준보다 예술을 어디서(장소), 누가(주체) 공유할 수 있는지, 작품과 관객 그리고 정치-사회와의 관계를 주시한다. 작품으로 존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이런 ‘관계’의 맥락에서 해석되고 창조된다.
‘관계’가 중요시될 경우, 표현의 자유에 관한 제한적 환경이 형성될 수도 있다. 혁신과 파괴를 거친 재구성의 개념(자크 데리다)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범위가 넓게 허용된 포스트모더니즘은 예술 작품의 사회·정치적 위치를 감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관계적 미학’, 즉 ‘세상과 예술의 관계에 따른 미학’으로서 시대정신이 중요해진 컨템퍼러리 아트는 사회·정치적 교차점에서 형성되는 동시에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미술시장의 과대한 확장과 규모에 영합해야 하므로 표현의 자유가 다소 억압된다는 가설이다. 결론적으로 ‘관계적 미학’이 거쳐야 하는 정치-사회-경제적 통과의례는 작품에 대한 동시대적 책임의식을 부과하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보수주의적 사관에 더 노출될 수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홍보 포스터에 어느 대학강사가 쥐 낙서를 한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예술인이 아닌 일반인이 그린 이 낙서는, 영국 출신의 대표적인 컨템퍼러리 아티스트 뱅크시(Banksy)가 주로 도안하는 쥐 그림을 연상시켰다. 추측건대 낙서를 한 사람도 뱅크시의 풍자미학을 떠올리고 모방한 대중적 퍼포먼스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의 자유’가 국제 행사를 알리는 국가 홍보물을 훼손해 단순한 풍자가 아닌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행위라고 판단해 이내 관련자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비록 문제의 낙서를 예술 산물이라고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표현 의식이 사회·정치적 경계 노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표현 산물에 대한 다층적 해석을 배제하는 보수적 관점이 공권력을 지배하는 한국의 동시대적 사회 단면을 드러낸 셈이다. 원로작가 이반의 도라산 벽화를 철거한 것은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보수에 노출된 컨템퍼러리 아트
고전주의-팝아트 만남의 의미는?
베르사유궁은 프랑스 왕조의 전성기를 연 루이 13세가 1623년 축조하기 시작했고, 태양왕 루이 14세가 프랑스 왕권의 집중과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 당대 유명 건축가와 예술가 등을 초빙해 대궁전으로 증축하고 호화로운 장식으로 꾸몄다. 루이 14세는 베르사유궁에서 극작가 몰리에르의 연극과 시낭송, 콘서트 등 각종 문화행사를 열었다. 예술가들의 최신 작품들을 선보이며 당대의 특권층을 위한 축제 현장으로 삼았다.
이런 역사를 지닌 베르사유궁이 신자유주의형 파워 예술가들을 초대한 의도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17세기 고전주의를 풍미한 특권층의 풍속과 럭셔리한 소비의식을 21세기 특권층의 그것과 접목시키려는 포스트모던한 의도다. 둘째, 현대 미술시장의 스타급 예술가들을 주로 초대해 베르사유궁의 국제적 입지를 다지려는 의도다. 셋째, 프랑스의 부흥과 영광의 시대인 17세기 고전주의, 그리고 절대왕권의 상징이던 베르사유궁을 떠올리며 강국 프랑스의 이미지를 전세계에 홍보하는 의미다.
키치스런 만화 조형물을 궁전 안팎 곳곳에 설치해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듯한, 포스트모던한 전시 콘셉트에 대해 모욕적인 발상이라며 전시 반대 서명을 한 사람이 프랑스에만 약 10만 명에 달했다. 그중 3분의 1이 프랑스 극우당(국민전선·Front National)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런 반응은 단지 극우적 경향의 프랑스인에게서만 나온 건 아니었다. 일간지 <파리지앵>은 베르사유 방문객들에게 여론조사를 한 결과, “우리는 베르사유를 보러 왔지 무라카미를 보러 온 것이 아니다”라는 부정적 반응이 많았다고 보도했다.
신자유주의와 제도권력 결탁 의심
고가의 팝아트 작품(무라카미의 조각 작품은 개당 최고 약 42만 유로, 약 6억3천만 원에 육박한다)으로 장식되어 절대왕조시대 프랑스에 대한 은밀한 향수에서 벗어나기 힘든 전시 기획 의도를 베르사유궁 전시 총감독 장자크 아이아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베르사유는 당대의 축제와 행복, 풍요에 대한 열망으로 생성되었다. 따라서 무라카미의 작품 세계는 베르사유의 정신에 합당하다.”
그 와중에 전시를 반대하는 프랑스 극우파들의 반응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경화 색채를 미묘하게 품은 전시임에도 그 뉘앙스마저 거부하는 그들은, 과거와 현재를 접목시키는 20세기의 이단아 포스트모더니즘조차 인정하지 않는 보수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예술이 동시대를 지배하는 정치·사회 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이 강하게 돌출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우경화된 프랑스 사회를 의식한 사건이 파리 시립미술관에서도 발생했는데, 지난해 10월 8일 시작한 미국 사진작가 래리 클라크의 회고전 <키스 더 패스트 헬로>(Kiss The Past Hello)가 18살 이하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것이다. 프랑스는 법의 결정에 따라 전시 관람가 등급을 매긴 전례가 없었다. 시장 베르트랑 들라노에는 “20년 전에 가능했던 것들이지만 지금은 문제시되고 있다”고 변명했고, 파리시는 이 초유의 결정을 “법에 충실해 내린 것”이라고 공표했다. 문화·사회적으로 개방과 진보를 대표하는 프랑스는 19세기 말 영국 법정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동성애적 경향을 범죄시했을 때 영국의 위선적 모럴 의식을 비웃으며 기꺼이 오스카 와일드를 품었고, 20세기 초 전세계가 거부한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출간을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허락한 나라였다. 한데 21세기 초 파리에서는 미국 청소년들의 일탈과 방황, 그리고 독특한 성생활을 포착한 사진이 공개된 래리 클라크의 전시 등급을 ‘12금’도 아닌 ‘18금’으로 판정 내렸다.
작가주의 작품 전시회에 ‘18금’이라니
인터넷을 통해 오염된 이미지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청소년들의 ‘동시대적 현실’ 속에서 작가 특유의 서정적 정서가 담긴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이미지가 적나라하다는 이유로 ‘18금’ 포르노성 이미지로 판정한 것은 그의 사진을 해석하는 데 보수적 관점이 개입됐음을 의미한다. 또한 예술과 포르노성 이미지의 간극을 좁혔던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치가 효력을 잃었음을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 이후 예술가들은 새로운 사조와 재현 방식을 추구했고, 그 표현 산물은 반사회성·파격성을 띠며 관객과의 거리감을 형성했다. 특히 현대 시각미술에서 어린이나 청소년 또한 예술가들의 작품 소재로 자유롭게 다루어졌고, 탈미학적 형식을 해석하는 기준은 복잡성과 난해함으로 전이됐다. 여기서 초래된 표현 산물과 사회 간의 거리감과 이질성을 언어적 상호작용으로 좁혀나가기보다 도덕적 기준이나 공권력의 시선으로 해석할 때, 예술가들은 물론 일반 대중의 표현의 자유까지 제한하는 논리가 형성되는 것은 자명하다.
‘탈선의 미학’에서 ‘관계의 미학’으로
프랑스 사회·정치의 현주소는 사르코지 정부의 영향 아래 고전주의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68혁명 이전의 보수적 관점이 21세기 신자유주의가 유발한 사회 양극화 문제와 뒤범벅된 것이다. 여기에 반문화적·전위적 정신으로 도도하게 군림하던 프랑스 예술도 보수주의의 여파로 ‘탈선의 미학’을 떠나 정치-사회-경제와의 ‘관계 미학’으로 전이되는 과정에 놓인 것으로 관찰된다.
예술계를 향한 보수주의자들의 엄격한 시선은 관계적 미학의 틈새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지만, 그 또한 다시 사그라질 확률이 높다. 예술의 역사에서 보수는 당대의 진보를 뒤엎으며 항상 재등장했고, 진보는 그런 보수성을 뛰어넘기 위해 재구성과 탈선의 형식을 되풀이해왔기 때문이다. 사회-정치의 ‘관계’ 역시 그러한 논리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글•김량
저서로 <파리가 영화를 말하다>와 프랑스에서 출간한 <노엘의 그늘 아래>(Dans l’ombre de Noël)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