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 ‘과학’의 분단선

[서평]

2011-02-14     자비에 라페루

<하늘 깊은 곳> 로드리고 프레산 

<하늘 깊은 곳>을 읽다 보면 우주 속으로 들어간 듯 놀라울 정도로 혼란스러운 흐름에 이끌리게 된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우주는 해체돼 거칠게 움직이고 스스로 사라지며, 그 과정에 우리도 꺼질 듯 말 듯 겨우 버텨낸다. 여기서 세상을 세우는 새로운 방식, 인간이 우주에서 제자리를 찾는 새로운 방정식이 생겨난다. “나는 공상과학을 쓰는 것처럼 한줄 한줄 글을 써내려간다.” 첫 번째 내레이터의 해설이다. 저자는 독특한 방식으로 현실을 해석한다. 그 현실은 ‘시간이 언제나 동시다발적인 순간’이다. “현재·과거·미래는 동시에 방송되는 여러 텔레비전 방송처럼 동시다발 선상에 있다.” 그러므로 굳이 공상과학을 쓰지 않아도 얼마든지 미래를 보고 묘사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 우리 세상에 대해 언제나 이야기할 수 있다.

소설이 진행될수록 여러 내레이터가 순서대로 등장하지만, 모두 “나는 무한하다. 나는 내 안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중략) 나는 우주다”라며 한목소리로 주장하는 듯하다.

이처럼 소설은 내면과 우주가 합해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를 구현하는 사람이 등장인물 중 공상과학 저자로 나오는 이삭과 그의 분신 같은 에즈라이다. 잡지 <플라닛>을 창간한 이삭과 에즈라는 자신들을 ‘머나먼 곳에서 온 사람들’이라 부른다. 둘은 진실을 찾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면서 같은 여자를 사랑한다.   

저자는 독특한 이해방식으로 글을 써간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마치 햇빛이 통과하는 돋보기처럼 현실을 태워간다. 등장인물들은 잠시 떨어져 있지만 늘 함께 있다. 시간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은 기억으로 과거를 더듬듯, 상상력으로 미래를 탐험한다. 과거와 미래는 하나로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순조롭게 전개되다 ‘작은 사건’이 생기며 작은 틈새가 생겨난다. 이삭과 에즈라가 ‘작은 사건’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9·11 테러다. 이 사건으로 이삭은 공상과학 중 ‘공상’ 편에, 에즈라는 ‘과학’ 편에 서면서 둘 사이가 벌어진다. 소설과 세상은 같은 순간에 흔들리며 현실과 공상과학을 하나로 만든다. 두 가지 세상, 두 가지 행성. 소설 제1부는 ‘우리가 사는 세상’, 제2부는 ‘다른 행성’, 그러니까 9·11 테러 전에 열렸다가 이후 점차 벌어진 공간에 주목한다. 이 벌어진 공간에서 유일한 커뮤니케이션은 철로 된 무기와 포탄 가루라는 세계 언어다. 한쪽은 세상을 파괴하는 세력을 물리칠 임무가 있고, 또 다른 한쪽은 스스로 신이 되어 ‘신의 부재’와 대화를 계속한다.

글•자비에 라페루 Xavier Lapeyrou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