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식 중상주의의 뿌리는?

2019-12-31     알랭 비르 l 프랑슈콩테 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에 중점을 두기로 한 것은, 국가들이 무역 관계를 통해 권력을 강화하고자 했던 16세기와 17세기 상업주의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일까? 하지만 이 가설은 세계 시장 정복이라는 전략으로 단결된 중상주의와 자유무역 간의 관계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초창기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경제정책인 ‘중상주의’는 일반적으로 “귀금속이 국가의 주요 자본을 이룬다”는 경제학설로 소개됐다. 하지만 중상주의는 두 가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중상주의는 16~17세기 유럽의 각 국가가 경제·법률·외교·군사 분야에서 자국의 주권을 공고히 하고자 했던 절대주의의 특징을 지닌다. 따라서 중상주의는 절대주의의 정치경제학이자 경제정책이다. 두 번째로, 중상주의는 국가 안에서 자본의 지배력 증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상업자본의 지배력인 동시에, 산업 자본의 지배력이기도 하다.

사실, 중상주의는 이 두 가지에 모두 해당된다. 중상주의는 군주의 힘을 강화하고 자본주의 기업가들의 이익을 충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업의 발전(특히 해외무역)을 통해 군주가 재력의 대부분을 얻고, 기업가들도 농업의 번영과 더불어 산업의 역동적인 성장에서 이득을 얻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중상주의는 근대국가의 본질적 특징인 절대자의 권력과 자본가의 영향력을 담고 있다. 

동시에, 중상주의는 유럽 밖으로의 무역 및 식민지 확장을 기반으로, 그리고 그 안에서 유럽 강대국들 사이에 지속적인 (경제적, 정치적, 상업적 그리고 군사적) 경쟁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이익이, 이들 국가가 대리하고 옹호하는 토지 귀족들의 이익과 상충할 때, 군주와 자본가들 사이에 이해관계의 대립 및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중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모든 경제정책의 첫 번째 목표는 국고를 채우고 상업 부르주아 계급(군주 자본의 주 공급원)의 주머니를 채우며, 나아가 상업에 필요한 수량과 품질을 갖춘 유통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금과 은을 손에 넣는 데에 있다. 그러나 근대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몇몇 독일 공국들의 경우처럼 화폐 금속(금과 은)을 생산하는 광산을 보유하지 않는 한(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아메리카 식민지들을 통해), 상업은 활성화할 수 없다. 이는 상반되지만 서로 보완되는 두 가지 방법, 즉 중상주의자들이 권장하는 ‘약탈’과 ‘해외무역’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하다.

우선 약탈은, 식민지 안에서 강제무역과 강제노동을 통해 비유럽 국민들(아메리카인, 아프리카인, 아시아인)을 희생시키며 강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국가 간 대립이 반복됐던 시기에 흔히 나타났듯, 여기에는 유럽 경쟁자들이 서로 적으로 변하는 순간 나타나는 서로 간의 약탈도 포함된다.

대표적인 중상주의 국가인 영국과 프랑스 역시 사략선(교전국의 정부로부터 적선을 공격하고 나포할 권리를 인정받은, 무장한 사유 선박-역주) 항구(프랑스의 됭케르크, 생말로, 영국의 브리스틀, 플리머스, 건지)를 유지하며 경쟁이라는 방법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 선박들은 이 항구들을 통해 유럽 내 해상무역(북해, 망슈, 대서양 근해, 지중해)을 공격하거나, 앤틸리스 제도와 아메리카 국가들 쪽으로 더 멀리 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루이 14세의 프랑스와 유럽 대동맹이 맞섰던 아우크스부르크 동맹 전쟁(1688~1697) 동안에만 생말로와 됭케르크의 사략선들이 네덜란드, 영국, 스페인을 상대로 각각 1,283건과 2,269건의 약탈을 기록했고, 영국에서는 사략선들이 프랑스를 상대로 630척의 배를 약탈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국가’의 부를 증대시키는 경쟁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1) 그리고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1701~1713) 동안 프랑스 사략선들은 4,543척을 약탈하며 적들을 무력화했다.(2)

 

중상주의자들은 왜 
해외무역에 의존하는가

한편, 중상주의자들은 해외무역에 의존한다. 자국에 화폐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방식으로써, 외국에서 사들이는 것보다 외국에 더 많이 팔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해외무역에서 흑자를 얻고자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이들의 최우선 과제였다. 보조금을 통해 수출을 장려하고 수출에 징수된 세금을 경감하며, 수입을 금지하거나(특히 명품처럼 비생산적인 수입일 경우) 아니면 필수품으로만 엄격히 제한하거나 무거운 세금을 매기면서(이 경우 조세 수익증대가 보장됨) 수입에 제동을 걸고, 식민지 무역과 해외무역 독점을 보장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생산품을 특화한다. 

그리고 외국에서 활동하는 ‘국내’ 상인들에게 수익 대부분을 주조된 화폐 형태로 본국에 보내도록 강제하고, 반대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 상인들에게는 이들의 수익을 ‘국내’ 물품과 교환하도록 강제해, 이로 얻는 수익의 본국송환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조치들을 읽다 보면 중상주의자들이 ‘자국’의 부를 최대한 증대시키기 위해 외국의 부를 빼앗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 수 있다. 루이 14세의 장관이었던 콜베르가 기록했듯 “무역은 모든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영원한 정쟁(政爭)이자 산업전쟁이다.”(3)

하지만 왕국에 화폐를 끌어오고 국고를 늘리기 위해 무역 수지 흑자를 만들어내겠다는 바람에 따라, 중상주의자들은 산업 자본의 발달을 위한 조치들을 취했다.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활성화하고자 ‘자국’ 농산물과 공산품의 경쟁력(최고의 품질과 최저가격, 즉 최저생산비)을 높였다. 그렇지만 보호무역주의는 적용 범위가 제한돼 있고, 역효과의 위험을 안고 있다. 

해외무역이 부를 늘릴 수 있는 주요 원천이라는 생각은, 일부 중상주의자들로 하여금 한 ‘국가’의 생산력이 결국 그 나라의 번영을 보장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그 무엇보다 생산력을 향상(인구증대, 새로운 토지 경작, 새로운 공장 및 제조소 설립, 노동 시간과 강도 증대, 구걸 및 부랑 행위 제지 등)하고, 집중(토양의 질 개선, 가용 노동재료 집중 사용, 농기계의 기술적 진보, 노동생산성 향상이 가능한 숙련공 교육)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무역 수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앞서 나열한 일련의 조치들을 총동원해 외국 경쟁자로부터 자국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일관성 있는 중상주의는 이렇듯 ‘생산제일주의’로 변모한다. 그리고 귀족의 것이든 대중의 것이든 모든 종류의 무위(無爲)를 비난하며 기업 정신을 고무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상주의자들은 ‘국가’의 생산성을 촉진하려면 모든 장애물을 없애 국내 무역 또한 활기를 띠게 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돈을 헛되게 보관(축재)하는 것보다는 돈을 유통하고 소비하고 내놓아야(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려면, 통신수단과 교통수단을 개선해야 함은 물론, 무역 및 금융 신용거래 발전을 장려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정적인 개념의 경제에서 역동적인 개념의 경제로 넘어가는데, 이는 화폐유통이 원동력이 되는, 더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상인과 화폐라는) 부의 흐름이다. “부는 화폐 축적으로 귀결된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중상주의는, 점차 이런 축적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수단으로 국내외 무역 발전을 장려하게 됐다. 그리고 결국, 무역에서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 생산조건들에 집중하게 됐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타난 몇몇 모순점이 후에 애덤 스미스의 뒤를 이은 자유주의자들의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요컨대, 경제학설로서 중상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 경제 (국가는 국가 경제의 참조단위다. 자유주의에서처럼 개인이 참조단위가 아니다)라는 점, 그리고 세계시장의 분할로 대두된 민족국가 간의 대립이라는 점이다. 경제정책으로서 중상주의의 분명한 목표는 ‘국제’ 경쟁에서 가능한 최선의 입장들을 쟁취하고 완성하거나 옹호하게 하는 조건들을 한데 모으고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글·알랭 비르 Alain Bihr
프랑슈콩테 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이 기사는 2019년 3월 출간된 『Le Premier Age du capitalisme(1415~1763) Tome 2: La marche de l'Europe occidentale vers le capitalisme(초기 자본주의(1415~1763) 2권: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서유럽)』(Page 2(Lausanne), Syllepse(Paris))에서 발췌했다. 

번역‧김자연 jayoni.k@gmail.com
번역위원


(1) Philippe Norel, 『L’Invention du marché. Une histoire économique de la mondialisation 시장의 발명. 세계화의 경제적 역사』, Seuil, Paris, 2004.
(2) Fernand Braudel, 『Civilisation matérielle, économie et capitalisme XVe-XVIIIe siècle 15세기~18세기 물질문명, 경제 그리고 자본주의』, 3권, Armand Colin, Paris, 1979.
(3) Edmund Silberner, 『La Guerre dans la pensée économique du XVIe au XVIIIe siècle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경제적 관점의 전쟁』, Librairie du Recueil Sirey, Paris, 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