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말라붙은 오아시스
2019년 10월 초, 유난히 좁고도 긴 국토 전역에 폭발한 민심이 일으킨 시위가 확산돼 칠레를 뒤흔들기 몇 주 전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던 중에도 20명이 사망했고, 수백 명의 팔다리가 절단되고, 수천 명이 부상당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수감됐다. 또한, 고문과 성폭력이 난무하며, 경찰과 군사력에 의해 수없이 많은 잔학행위가 자행된 그 아수라장이 벌어지기 바로 전이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중남미 지역이 겪는 혼란에 대해 언급하며, 주변국과 비교해 칠레는 폭풍우 가운데 조용하고 평화로운 ‘오아시스’라고 치켜세웠다.
칠레가 오아시스인 이유는, 물이 특히 달아서도 아니고 잎이 무성한 종려나무가 있어서도 아니다. 칠레를 둘러싼 십중팔구 넘을 수 없는 장벽 때문이다. 기묘한 혼합물, 바로 그 안에 칠레인들이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 시민권 부재, 억압이라는 가장 저열한 세 가지 금속이 섞여 만들어진 장벽 안에. 지난 몇 주간 칠레 거리가 군중에 의해 새까맣게 덮이기 전까지 ‘작은 정부가 더 큰 자유를 낳는다’는 문구를 주문처럼 입에 달고 다니던 경제학자와 정치 지도자들은 “칠레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 거의 저절로 일어난 기적! 이들은 경제성장 수치와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이 찬사를 보낸 경제통계에서 이 기적의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봤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이 ‘남미의 오아시스’는 국가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정당한 임금과 퇴직연금을 받을 권리, 양질의 공교육을 받을 권리, 명실상부한 건강 시스템을 누릴 권리처럼 언뜻 주관적으로 보이는 세부요소들은 완전히 무시됐다.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시민의 권리에는 별 관심 없었다. 정부가 꾸역꾸역 먹이는 거시경제 수치를 삼키는 것, 그게 시민의 역할이었다.
1973년 9월 11일, 쿠데타가 칠레 민주주의를 덮쳤다.(1) 갑작스럽게 산티아고를 점령한 독재정권은 16년 동안 이어졌다. 쿠데타의 목적은 위협받는 사회질서를 복구하기 위해서도, 공산주의 위협에서 조국을 구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밀턴 프리드먼과 시카고학파가 이끄는 신자유주의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새로운 유형의 경제모델을 세워 새로운 유형의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것이었다.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사회적 불안정이 기준이 되고 권리 부재가 규칙이 되는 사회, 총이 사회평화를 보장하는 그런 사회를 말이다.
민간·군부 독재정권은 목적을 달성했다. 그리고 달성한 목적을 헌법에 새겨 넣었다. 권력으로 창설한 경제모델을 국가규정으로 삼는 내용의 헌법을 만들었다. 라틴 아메리카 중 칠레만큼 많은 국민의 행복을 짓밟으면서 소수의 부 축적에 치우치는 나침반을 가진 국가는 없다.
1990년부터 ‘민주주의의 귀환’, 좀 더 멋지게 ‘칠레의 민주화 이행’이 시작됐으나 경기의 규칙은 변하지 않았다. 독재정권 시절의 헌법은 개정됐지만, 그 주요 내용은 수정되지 않았다. 중도좌파와 우파가 연이어 정권을 잡았지만, 이 신성불가침의 경제모델을 유지하려 애썼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그렇게 사회적 불안정은 점점 더 많은 사회영역을 부패시켰다.
식탁에 사람 2명과 빵 2개가 있다고 하자. 통계적 시각으로 보면 1인당 빵 1개다. 실제로는 둘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 몫을 남기지 않고 빵 2개를 다 먹어 치워도 통계는 동일하다. 바로 여기에 칠레의 경제모델을 성공적으로 보이게 했던 비법이 숨어있다. 그것은 독재도 민주주의도 아니다. 칠레가 생존할 수 있게 했던 것은, 억압과 공포였다.
세계적인 부자들 중 한 명인 훌리오 폰세 르루는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사위다. 그는 피노체트의 명령으로, 칠레 국민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아 설립한 경제제국의 상속자가 됐다. 그리고는 어떻게든 민영화를 유지하기 위해 대다수의 상원의원, 하원의원, 장관들에게 엄청난 돈을 뿌렸다. 국민이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정부는 두 단계에 걸쳐 답했다. 우선 이 사실을 비판하는 것은 ‘칠레의 기적’을 종결시키는 것이라고 암시했다. 그다음, 시위대 진압 계획을 세웠다.
칠레에서는 물도 기업 소유다. 모든 물을, 소수의 다국적 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강물, 호숫물, 빙하의 물까지 말이다. 사람들이 이에 항의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국가의 답변 방식은 단 하나, 시위자를 곤봉으로 후려치는 것이었다. 초국가 전기생산 기업 때문에 위협당하는 자연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이 집결했을 때도, 고등학생들이 시장독점으로부터 자유로운 양질의 공교육을 요구했을 때도, 대부분 국민이 철저하게 압제당하는 마푸체족을 옹호했을 때도 국가는 같은 방식으로 답변했다. 시위자들을 칠레의 경제 기적을 위협하는 자들이라 칭하며 억압했다.
남미의 오아시스, 칠레의 평화가 산산조각이 난 것은 단순히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상승 때문이 아니다. 거시경제 통계의 이름으로 자행된 부당행위가 그 평화를 좀먹은 것이다. 장관들의 오만한 태도가 그 평화를 갉아먹은 것이다. 이들은 대중교통 비용을 아끼고 싶으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고 충고한다.(2) 빵값 상승에 꽃을 사라고, 꽃은 적어도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고 대꾸한다. 첫 번째 소나기에 침수된 학교 지붕을 수리하는 데 필요한 기금을 모을 목적으로 빙고게임 파티를 연다.
오아시스 평화가 산산이 조각난 것은, 대학교육을 위해 최소한 15년, 때로는 20년까지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는 현실에 정의는 없기 때문이다.
오아시스 평화가 산산조각이 난 것은, 퇴직연금이 흡혈귀 같은 기업의 손아귀에 있기 때문이다. 이 기업들은 기금을 투기성 시장에 투자하고 자신들이 낸 적자를 퇴직자에게 떠넘긴다. 서민들은 보잘것없는 퇴직연금을 받는다. 그 수령액은 현실성 없는 기준으로 퇴직자들의 남은 생애를 측정해서 산정된 액수다.
오아시스 평화가 산산조각이 난 것은, 퇴직연금 자본금을 관리할 기업을 선정할 때, 노동자와 자영업자가 당국의 경고를 되새겨야 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퇴직연금 대부분은 당신이 얼마나 영리하게 금융시장에 투자하는지에 달렸다.”
오아시스 평화가 산산조각이 난 것은, 대다수 사람이 이 불안정한 현실에 ‘안 된다’라고 답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으려고 나섰기 때문이다.
시위자들은 국가 전체를 다양하게 대변하는 새로운 헌법을 요구한다. 시위자들은 물과 바다의 민영화를 철회하기를 원한다. 시위자들은 존재할 권리, 국가 발전을 위한 능동적인 주체로 여겨질 권리를 주장한다. 시위자들은 비인간적 요소로 궁지에 몰린 경제모델에서 쥐꼬리만 한 봉급을 받아 겨우 연명하는 일원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대우받기를 원한다.
칠레를 뒤흔든 저항만큼 정의롭고 민주적인 저항은 드물다. 아무리 냉혹하고 사악하게 억압한다 해도, 살기 위해 일어나려는 민중을 짓밟을 수는 없다.
글·루이스 세풀베다 Luis Sepúlveda
칠레 작가. 주요저서로 『Histoire d’une baleine blanche 흰고래의 역사』(Métailié, 파리, 2019) 등이 있다.
번역·이정민
번역위원
(1) Bruno Muel, ‘Il y a quarante ans, le coup d’État contre Salvador Allende’(한국어판 제목: 아직도 계속되는 9월의 산티아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3년 9월호.
(2) 러시아워 외 시간대에는 지하철 요금이 저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