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헬 공중보건의 핵심, 10대 여성의 자율성
사헬 지역의 공중보건 분야 최우선 과제는, 10대 여성들의 자율성이다. 불평등과 빈곤이 만연한 이 지역 여성들에게 출산결정권이란, 지위 향상과 특정 사회문화적 규범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2015년에 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지속가능발전목표)로 새롭게 명명한 MDGs(Millennium Development Goals: 새천년개발목표)를 2000년 처음 채택한 이후 각국 정부는 자국의 보건·사회 정책을 평가하는 각종 지표를 도입해왔다. 그동안 사헬지역 사회 정책 결과는 매우 미흡했다. 성 불평등은 여전하고, 극빈층이 인구의 30~40%를 차지하며, 국가별 합계출산율은 4.1~7.6명을 맴돈다.(1)
이에 따라, 사헬 지역 여러 정부와 그 상대국은 인구구조 변화의 조건과 출산율 감소 방안을 검토하게 됐다. 오늘날 이들은 가족계획 사업을 통해 10대 여성들의 보건에 주력하고 있다. 이 실천방안은 각종 개발계획에 널리 반영돼온 원칙인 ‘10대 여성의 자율성 강화’라는 주제를 아우른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다양한 주체의 참여와 공동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사헬 지역의 각국 정부는 다양한 국제기구(유엔아동기금, 유엔인구기금, 세계보건기구)와 협력단체(프랑스 개발청, 스위스 개발협력청, 벨기에 개발청), 세계의사회(Médecins du monde)나 패스파인더(Pathfinder)와 같은 비정부기구의 지원과 협력으로 이 문제를 풀고자 노력 중이다.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에 따른 고통
여성의 자율성 강화 운동은 영어에서 파생된 ‘임파워먼트(Empowerment: 역량 강화)’라는 개념에 힘입어 촉진되고 있다. 2019년 3월 뉴욕에서 열린 CSW(Commission on the Status of Women: 유엔 여성 지위위원회) 제63차 회의와, 같은 해 6월 밴쿠버에서 열린 IAW(International Alliance of Women: 국제 여성 동맹)에서도 이 주제를 중점과제로 다뤘다. 자율성 강화 운동은 10대 소녀들이 대상이 아닌 주체라는 기본 원칙을 제시한다. 소녀들에게 필요한 맞춤형 사업을 제공하고 성·생식 보건환경을 개선해 서비스를 제고하는 일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당면한 복합적인 의미의 도전과제다. 페미니즘 운동, 인권운동에 영향을 받은 이 접근 논리가 서구사회의 맥락에서는 자명한 이치로 통할지 모른다. 하지만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중심의 사회적 관습과 종교가 지배하고 서구와는 전혀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논리가 당위성을 상실한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살라프파(이슬람 수니파 극단주 종교운동)의 원리주의 색채가 짙은 종교 규범 및 가부장적 논리가 가족과 남녀관계를 정의한다.(2) 이런 사회적 관념은 근본적인 성 불평등을 정당화하여 일부다처제, 조혼, 성관계 의무, 이혼, 불평등한 상속권 등의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불평등한 성 관념은 출산을 중요하게 만든다. 자녀를 많이 낳을수록 여성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진다고 보는 인식 때문이다. 게다가 사회보장망이 불안정하거나 부재해 인구 대다수가 출산을 곧 ‘노령보험 가입’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부모의 노후를 자녀가 책임지는 일이 많다. 자녀 출산은 재산, 상속, 사회적 위신이나 일부다처 제도권 내 아내들 간의 알력다툼, 가난 때문에 일을 해야만 하는 아이들 등, 각종 사회문화 및 경제 문제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이런 사회 인식은 기독교가 주를 이루는 국가의 가장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특히 복음주의나 오순절 교회에서 장려하는) 가족, 성, 출산 관행과도 맞닿아 있다.
서구권에서 강력히 주창하는 피임정책은 사헬 지역의 사회·종교·경제 규범과는 다소 어긋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17년 7월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회의에서 통제 없이 인구가 증가할 경우, 국가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견해를 노골적으로 지지한 바 있다. 높은 출산율을 부와 발전의 동인으로 여기는 타국가들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었다. 특히 이슬람 시민사회 관점에서는 정부와 국제사회가 주장하는 출산율 통제의 정당성을 받아들이기 어렵다.(3)
사헬 지역에서 여성의 피임은 가정과 종교 영역에서 남성이 모든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사헬 지역 여성들은 의사 결정권이 없는 경우가 많아 산아를 제한하는 현대 의료체계에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때문에 필요시에는 암암리에 공동체 내 시술자(치유자, 행상인, 도사 등)를 찾는 등 관습이나 민간요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부 당국의 양면성
사실상 가임기의 여성이 사회로부터 출산 가능성에서 배제되는 시기는 생애에 걸쳐 1)결혼 전, 2)모유 수유 중(대부분 2년), 3)짧은 기간 다산한 경우, 4)남편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 5)재혼 전, 보통 이렇게 5가지다. 따라서 성관계나 출산은 여성의 자유의지를 제약한다. 순응하지 않는 이에게 오명과 낙인을 덧씌우는 사회문화 규범의 틀 안에 여성을 가두는 셈이다.
이 지역의 사회문화와 종교적 규범은 의료보건 종사자들의 인식에도 깊이 내재되어있다. 대표적인 피임법은 피임약, 살정제, 자궁 내 피임장치이며, 15~49세 여성의 피임률은 15.2%로 매우 낮다.(4) 상당수의 간호사와 조산사는 10대 소녀들의 피임 시술에 반대해 이들에게 피임약을 처방하지 않으려 한다. 캠페인에 참여한 니제르의 어느 의료계 종사자는 “우리는 낙태를 도울 의무가 없고, 그런 일을 하겠다고 서약한 바도 없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신 앞에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종교윤리와 직업윤리 간의 근본적인 갈등을 보여주는 이들의 주장은 오늘날 사헬지역의 높은 출산율과 연관 지어 연구해볼 만한 흥미로운 주제다.
제도적 행위자(정부 부처, 보건 당국, 선출직 공무원 등)들의 태도는 양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들은 가족계획, 여아 취학, 영유아 사망 퇴치 운동을 통해 인구증가율을 통제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며 서구사회의 권고를 따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니제르에서 실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제도적 행위자들은 개인적으로 완전히 상반된 의견을 견지하기도 한다.(5) 때문에 인구 프로그램은 종종 계획했던 방향과 반대로 흘러간다. 종국에는 사람들이 목적의 당위성에 의문을 품기 때문이다. “주로 출산 간격, 특히 가장 바람직한 관계 빈도에 관심의 초점을 맞춥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가족계획 총괄 부처를 만드는 데 반기를 든 대통령도 있었죠.” 이는 익명을 요구한 전직 나이지리아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서구의 음모, ‘신맬서스주의’인가?
힘의 균형이 기울어진 국제 협상 테이블에서 사헬 지역의 각국 정부는 인구통제 정책에 대한 자신들의 불신을 좀체 드러내지 않는다. 한쪽에는 아프리카의 빈곤국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풍부한 재원과 강력한 정책 결정권을 가진 국제기구와 교역국이 있다. 인도주의적 원조 인식에 관한 연구 인터뷰에 응한 니제르 시민단체에 종사자는 “원조받는 처지에서 반기를 들 수는 없지요”라고 이 상황을 설명했다.(6)
인구정책은 (사회, 문화, 경제 등) 다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특히 아프리카 지역 10대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은 더욱 그렇다. 아프리카 지역 특성상 소녀들이 처한 사회문화(가족 구조, 남녀관계, 상속제도, 일부다처제 등 혼인제도 및 관습), 종교(이슬람의 무게와 이슬람 극단주의 종파인 와하브파와 기독교 근본주의의 빠른 확산) 여건이 일반적인 서구의 생각과는 매우 상이하기 때문이다. 사헬 지역, 특히 시골에 거주하는 10대 소녀들 대다수가 물질적·윤리적 자율성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간다. 물론 난항이 있다고 해서 전략의 결과를 예단할 필요는 없다.
아프리카의 높은 출산율은 서민층에 집중되고 있으며 이는 종교와 지역사회 규범의 영향이다. 인구변화는 도시 거주 중산층과 부유층에 국한돼 나타나는 현상이며, 가장 큰 자율성을 보이는 부류도 역시 해당 계층에 속한 여성들이다. 반대로 조혼과 부부 강간, 일방적 이혼의 피해자들은 피임약을 구하지 못하는 10대 소녀들과 빈곤층 여성들이다. 무엇보다 조혼이 학업중단의 주된 원인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7)
10대 소녀와 여성의 자율성 강화 논리는 여러 개발프로그램과 피임 캠페인으로 홍보되고 있지만 지역 사회와 종교의 규범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서민계층에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해당 논리가 서구의 신맬서스주의(Neo-Malthusianism)에서 비롯된 음모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다산이 유일한 부의 원천이므로, 이들의 저항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
글·아이사 디아라 Aïssa Diarra
의사 겸 인류학자, 니제르 니아메 사회 역학 및 지역발전 연구소(Lasdel)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합계출산율은 가임기 여성 1명의 평생 출산할 것으로 기대되는 자녀의 수를 의미함.
(2) Abdoulaye Sounaye, ‘Instrumentalizing the Qur’an in Niger’s public life 니제르의 공공생활에서 쿠란을 제도화하기’, 제27-1호, 케이프타운, 2007년.
(3) Aissa Diarra; Abdoulaye Sounaye; Issa Younoussi, ‘Genre et population. Étude socio-anthropologique sur les déterminants des politiques de population au Niger 성별과 인구. 니제르의 인구정책 결정요인에 관한 사회-인문학적 연구’, Études & Travaux, <Lasdel>, 제123호, 니아미, 2017.
(4) ‘Niger. Performance monitoring and accountability 2020 니제르. 2020년 성과 모니터링 및 개발원조의 책무성’, PMA2020, 니아메, www.stat-niger.org
(5) Aissa Diarra; Abdoulaye Sounaye; Issa Younoussi, op. cit.
(6) Philippe Lavigne Delville; Aghali Abdelkader, ‘À cheval donné, on ne regarde pas les dents 남이 준 말에 대해 왈가불가해선 안된다’. 니제르 실무자들이 본 원조 메커니즘과 영향’, Études & Travaux, <Lasdel>, 제83호, 니아미, 2010년 2월.
(7) Aissa Diarra, ‘Mariages d’enfants au Mali et au Niger, comment les comprendre? 말리와 니제르의 조혼 관습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The Conversation>, 2018년 11월 27일, www.theconversat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