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채굴에 사활을 건 사헬지역

정세불안이 극에 달한 지역의 금광 개발

2019-12-31     레미 카라욜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수단·차드·니제르에서 금맥이 발견된 후, 채굴꾼 수천 명이 싸구려 장비로 사하라 일대를 들쑤셔놓고 있다. 최근 줄을 잇기 시작한 골드러시 행렬은, 그동안 지하드 운동과 마약밀매 등으로 불안정이 가중된 사헬지역 여러 국가에 변화의 돌풍을 몰고 왔다. 소규모 수공업 채굴로 사람들은 단번에 큰돈을 벌 수도 있지만,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42세의 투아레그족 아흐메드 G는 우라늄 광맥으로 유명한 니제르 북부 도시 아를리트(Arlit) 출신이다. 이 지역 지리에 통달한 그의 주요한 자산은 튼튼한 일본산 사륜구동차다. 그는 예전에 아이레 산맥 관광안내자로 일하기도 했고(합법, 불법 가리지 않고) 물품 운송도 했으며, 오랜 기간 리비아로 밀입국하는 이주민들을 국경지대로 이송하며 살았다. 하지만 지난 2015년, 해외이주 알선업이 법으로 금지되면서, 그는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고 말았다.(1) 아내와 세 자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그는, 같은 처지의 지인들과 함께 아를리트에서 알제리 방향으로 몇 시간 거리의 치바라카텐 광산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금 채굴을 시작했다. 

이 새로운 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금은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준 선물입니다! 이곳 사람들 삶을 변화시켰으니까요.” G는 거듭 강조했다. 그는 금 채굴 작업에 착수하기에 앞서 광업허가증을 취득하고 장비를 사들였다. 고용한 채굴꾼들의 식사도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수입은 변변치 않다. 관광안내자로 일하던 때보다도 수입이 적어 생계를 근근이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무위도식하며 허송세월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그는 위안 삼아 말한다.

반면, 금값을 높게 매겨 삽시간에 부를 축적한 이들도 있다. 두바이 수입상은 니제르 판매상에게 금 1kg당 4만 5,000달러(약 4만 유로)라는 후한 값을 쳐주기 때문이다.(2) 최저임금이 3만 세파프랑(CFA, 45유로)을 밑도는 나라에서는 분명 거액의 수입이다. 2014년 7월, 금광 개척자들이 금속탐지기를 이용해 치바라카텐에서 금맥을 발견하자, 순식간에 금 채굴꾼들이 이 지역에 몰려들었다. 요행을 바라는 수천여 명이 이곳을 찾았던 것이다. G 같은 현지인, 니제르 타지방 사람들과 말리, 수단, 차드, 부르키나파소 등 타국에서 온 이들도 많았다. 불과 몇 주 만에 척박한 이 지역의 땅은 수백 개의 갱도로 뒤덮였다. 이윽고 상점들과 주택들이 세워지며 간신히 구색을 갖춘 도시도 형성됐다.

 

성운처럼 생겼다 사라지는 광구들

이렇게 금 채굴에 뛰어든 사람들 중에는 2011년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몰락한 이후 리비아를 떠나온 전직 투아레그 용병 니제르인들도 있었고, 2015년 프랑스 다국적 그룹 아레바(AREVA: 원자력 및 재생 에너지 전문 기업)가 이무라렌에 있는 광산을 폐쇄함으로써 실직자가 된 이들도 섞여 있었다. 그리고 G처럼 전직 이송업자들, 1995년과 2009년 체결된 평화협정 이후 실직자가 된 반군 투아레그족들 등이 있었다.(3) 니제르는 인간개발지수(HDI) 순위에서 전 세계 193개국 중 189위에 머물러 있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금 개발은 상당한 호재다. 고등평화유지국(HACP)의 마하마두 아부 타르카 장군은 말했다.

“금이 이 작은 세계를 좌지우지하고 있어요. 금광 개발 덕에 젊은이들이 지하드의 부름이나 무장세력 무리에서 멀어지게 됐고요.” 이처럼 금은 불안정하고 자칫 분쟁으로 치닫기 쉬운 이 지역에 안정을 가져왔다. 이후 5년이 지난 지금, 약 50km에 걸쳐진 지대에는 1만여 명의 채굴꾼과 600여 개의 갱도가 즐비하다. 한때 폐촌 위기에 놓였던 치마라카텐에는 이제 약 4만 5,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4)

사하라-사헬 지역에서 최초의 골드러시는 2011년 수단에서 일어났다. 학자들이 흔히 쓰는 표현을 빌리면, ‘개척자들의 출현’인 것이다.(5) 나일강 계곡 인근 북쪽 지역에서 시작된 금 채굴은 이후 서쪽으로 번져나갔고, 10년 이상 전쟁을 치른 다르푸르에까지 확산됐다. 어림잡아 2만여 개의 갱도가 생겨났고, 채굴꾼 수가 10만~15만 명에 달했다. 세계 금값의 폭등과 맞물려 저렴하고 사용이 편리한 신식 금속탐지기가 출시돼, 금 채굴업의 수익성을 높였던 것이다. 한편, 얼마 후 석유 매장량을 통제하던 남수단이 분리·독립을 했다. 다르푸르 사태 이후, ‘개척자들’은 국가 당국의 통제를 벗어나 동에서 서로 계속 이동했다. 모든 법체계를 벗어나 저렴한 비용으로 장비를 갖춘 영세 채굴꾼들(대다수가 수단인)은 2013년에는 차드, 2014년에는 리비아와 니제르 남부, 2016년에는 모리타니, 그리고 2018년에는 말리 북부에서 금을 채굴해왔다.

이 지역의 모든 주 정부가 채굴 활동을 규제하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서로 다른 전략을 채택했다고 지리학자 로랑 가놀이 설명했다. 알제리와 차드는 영세한 가내수공업자들의 금 채굴을 금지했고, 수단과 모리타니는 화학공정으로 금과 석재를 분리하는 암석가공센터를 설립해 산업을 통제하고 있다. 한편 니제르는 중간을 택했다. 니제르 정부는 아이르와 치바라카텐의 광산에서 채굴을 허용하고 있지만, 과거 3년 동안 폐쇄된 채 방치됐던 자도(Djado) 광구는 외국기업에 개발권을 넘겨줄 계획으로 보인다. 이처럼 수많은 광구가 생겨나 순식간에 개발되고, 때로는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취를 감춘다. 이런 상황은 각종 사고 위험에 노출된 사헬-사하라 지역 당국이 당면한 주요 과제다.(6)

서아프리카 지역 금 생산의 역사는 길다. 금은 가나(3~13세기)와 말리(13~16세기) 왕국의 명성을 드높이는 수단이었다. 1324년, 말리 제국의 왕 만사 무사(Mansa Moussa)가 막대한 양의 금을 실어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났던 역사 속 이야기는 북아프리카 지역에 특히 널리 알려져 있다. 만사 무사의 성지순례는 이후 수년에 걸쳐 금 가격 폭락을 불렀다. 그러나 말리에서 사막의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황금 채굴은 이제 시작에 접어들었을 뿐이며, 가뜩이나 불안정한 이 지역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금 채굴이라는 새로운 경제활동은 심각한 저개발 상태에 놓여있는 사막 주변 지역에서 국경 사이의 이동, 개인과 집단 사이의 자원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국가의 규제까지 더해졌다. 라파엘 셰브리옹-기베르, 로랑 가뇰, 제로 마그랭과 같은 학자들은 “골드러시가 사헬-사하라 지역과 주민들의 삶을 더 힘겹게 하는 요소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되묻는다. “어쩌면 그와 반대로, 많은 사람에게 소득창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정치적 안정을 선사하지 않을까?”(7)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금 채굴이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으로 보인다. 광부들 상당수가 타지에서 온 이들이며, 각 광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주로 경제적 혜택을 입는 지역사회가 직접 통제한다. 아이르 지역의 투아레그족, 치바라카텐과 말리의 키달 주민들, 자도와 미스키 지역의 투부족, 다르푸르 지역의 자그하와족과 아랍인들이 그 예다.(8) 가뇰 씨는 채굴 활동은 궁극적으로 이 지역 경제에 부인할 수 없는 파급효과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학자들의 주장으로는 사람들이 금의 유한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채굴로 번 돈을 건설업, 무역 또는 가축업 등에 재투자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위험에 노출된 광부들, 오염에 시달리는 환경

‘보스’로 불리는 전직 코카인 밀매업자 살레 이브라힘 씨도 소규모 수공업 금 채굴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현재 광부 수백 명을 진두지휘한다. 이 사업을 위해 심층 시추 장비를 사들이고, 의료시설을 마련했으며, 수입 일부를 아가데즈 북부 티미아에 투자해 오렌지 나무를 3천 그루 이상 심었다. 그는 불법행위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며, 이렇게 강조한다. “금은 신이 주신 선물이니, 밀매업보다는 채굴 사업이 낫지요.”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낙관론이 악몽으로 바뀌기도 한다. 2013년 다르푸르에서 광산 통제를 둘러싸고 분쟁이 발생해 수년간, 이 지역 주민들을 공포에 시달리게 했던 잔자위드 민병대와 아랍 부족이 충돌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그 결과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고 15만 명에 가까운 실향민이 생겨났다. 차드 북부, 미스키 지역에서는 금에 대한 갈증으로 자결단이 생겨났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 조직은 중앙정부에 대항하는 무장 반란군으로 변해갔다.

2013년 당시 불과 몇 주 만에 인구 2만 5,000여 명(주로 테다족)이 살고 있던 티베스티 주(州)에 채굴꾼 수만 명이 몰려들었다. 유선으로 인터뷰에 응한 이 지역 주민은 “결국 도저히 살 수 없는 척박한 땅이 됐다”라고 술회했다. “채굴꾼들이 이 일대에서 귀하디귀한 물을 함부로 끌어다 썼어요. 게다가 금을 추출한다며 화학물질인 사이안화칼륨과 수은을 마구 사용해 토양을 오염시켰죠. 가축들도 죽어 나갔습니다. 그들은 무단 벌목과 밀렵을 일삼기도 했어요.” 2014년을 기점으로 긴장감은 무력충돌로 비화했다. 테다족과 외국인인 채굴꾼들 사이에서 발생한 충돌은, 약탈을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은 테다족과 차드 보안군 사이의 긴장으로 이어졌다.

낙타를 팔아서 광산으로 떠났다가 수십만 세파프랑(CFA)을 거머쥔 부자가 돼 금의환향했다는 평범한 목축업자들의 성공담은 골드러시를 꿈꾸는 이들의 기대를 한껏 부풀려놓았다. 그러나 가지고 있던 재산마저 모조리 탕진한 이들도 있다. 가뇰과 그레구아르가 설명했다. “재산을 일부 팔거나 빚을 지면서까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있답니다. 하지만 금을 찾지 못하면, 야심차게 시작한 모험은 끔찍한 지옥으로 변해버리지요.”

큰돈을 벌어들인 이들은 대부분 설비 마련이나 광부인력 고용에 상당한 자본을 투자할 여력이 있는 이들(주로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업가)이거나, 국가에 세금을 신고하지 않고 해외로 금을 밀반출해 돈을 번 업자들이다. 지하경제의 규모를 온전히 가늠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익명을 요구하는 니제르 광산부 관계자는, 노동자들의 생활여건에 대해, “정말 최악이다. 현장은 비참한 광경들로 가득하다”라고 전했다.

고용주에게 전적으로 숙식을 의존하는 광부들은 최빈곤층 출신이다. 그들이 받는 급여는 금 시세에 비하면 형편없다. 광부들 중 운을 시험해 보겠다며 무턱대고 이곳을 찾은 이들도 있다. 형제들끼리 집을 나선 청소년들, 심지어 아동들도 가끔 보인다. 막노동에 해당하는 소규모 수공업 금 채굴 작업은 상당한 위험을 수반한다. 피해자 수에 관한 통계치는 없지만, 채굴꾼들은 예방책(마스크나 장갑)이라곤 없이 먼지와 화학물질에 그대로 노출돼 각종 질병에 걸리기에 십상이다. 심각한 사고도 종종 발생한다. G는 “거의 매주 사망사고가 발생한다”라고 토로했다. 지난 9월에는 차드 북부 쿠리 부구디 지역에서 갱도가 붕괴하면서 최소 5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현장에서 찍힌 영상에는 시신을 밧줄에 묶어 갱도 밖으로 가까스로 끌어내는 모습이 담겨있다.

환경파괴로 인해 주민들, 특히 가축 농가들이 속을 끓이고 있다. 오수 때문에 가축들이 시름시름 병들고 있기 때문이다. 채굴꾼들이 한차례 훑고 지나간 자리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땅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고, 아주 깊게 팬 광구도 흔히 보인다. 외부인들이 난방과 취사를 한다며 나무를 모조리 베어갔다. 이들은 희귀한 야생동물을 함부로 밀렵하기도 했다. 땅과 지하수는 수십 년에 걸쳐 화학물질에 노출돼 심하게 오염돼 있다.

사하라 지역의 금은 때때로 사금의 형태를 띠기도 하지만 대부분 암석으로 응집돼 있다. 따라서 이런 암석을 분쇄하고 잘게 부순 후 사이안화칼륨이나 수은을 써서 금을 추출해내야 한다. 주요 도시 인근에 버젓이 심각한 오염을 유발하는 처리시설이 들어서기도 했다. 사하라-사헬 지역은 고질적인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금을 추출하는 과정에는 상당량의 물이 쓰인다. 장기적으로 볼 때 금광 개발은 이미 척박하기 그지없는 이 지역을 완전히 불모의 땅으로 전락시킬지도 모른다.

 

 

글·레미 카라욜 Rémi Carayol 

기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Rémi Carayol, ‘Les migrants dans la nasse d’Agadez 니제르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난민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6월호, 한국어판 2018년 5월호.

(2) David Lewis, Ryan McNeill, Zandi Shabalala, ‘Gold worth billions smuggled out of Africa 아프리카에서 수십억 달러 수입을 보장하는 금 밀반출’, <Reuters Investigates>, 2019년 4월 24일.

(3) Philippe Leymarie, ‘Comment le Sahel est devenu une poudrière 사헬은 어떻게 화약고로 변했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2년 4월호.

(4) Emmanuel Grégoire, Laurent Gagnol, ‘Ruées vers l’or au Sahara: l’orpaillage dans le désert du Ténéré et le massif de l’Aïr (Niger) 사하라의 골드러시. 테네레 사막과 아이르 산악지대(니제르)에서의 금 채굴’, <EchoGéo>, 2017년. 

(5),(6),(7) Raphaëlle Chevrillon-Guibert, Laurent Gagnol, Géraud Magrin, ‘Les ruées vers l’or au Sahara et au nord du Sahel. Ferment de crise ou stabilisateur? 사하라와 사헬 북부의 골드러시. 위기의 불씨인가 안정책인가?’, <Hérodote>, 172호, 파리, 2019년.

(8) Jérôme Tubiana, Claudio Gramizzi, ‘Lost in trans-nation. Tubu and other armed groups and smugglers along Libya’s southern border 국가 간 소재 불명. 리비아 남부 국경지대에서 활동하는 투부족과 무장단체, 그리고 밀수 현황‘, <Small Arms Survey>, 제네바, 2018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