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 일렉트릭의 함정

2019-12-31     프레드릭 피에루치 l 알스톰(Alstom)의 이전 중역

2013년 4월 4일, 미국은 뉴욕에서 해외부패방지법(FCPA: Foreign Corrupt Practices Act)을 적용해 필리핀 알스톰(Alstom)의 중역을 지낸 프레드릭 피에루치를 체포했다. 이 법은 미국 밖에서 벌어진 사건이나 피의자의 국적이 미국이 아닌 경우에도 구속력을 발휘한다. 25개월 동안 수감됐던 피에루치는 이 글을 통해,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이 어떻게 이 법을 악용해 경쟁사들을 무력화하고 무너뜨렸는지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 하이네만 최고 법률 책임자(CLO)는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변호사로 불렸다. GE 사내 법무조직을 운영한 하이네만의 주도로 GE는 ‘백기사(적대적 인수합병을 당하는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 우호적인 제3의 매수자)’라는 평판을 공고히 했으며, 미국 법무부(DOJ)의 부패방지 소관 부서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퇴직 후 GE로 이직해 사내 법무조직에서 활동하는 검사들이 적지 않다. 2014년에 GE로 이직한 전직 검사 수가 15명을 족히 넘겼을 정도다. 

2000년대에 들어 GE는 부패사건에 연루돼 궁지에 몰린 기업 경영진이야말로 최적의 먹잇감이라는 점을 간파했다. 이에 따라, GE는 미국 법무부와의 협상이 매끄럽게 진행되게끔 방어해주겠다는 사탕발림으로 해당 기업 인수를 제안하곤 했다. 이런 방식으로 GE는 지난 10년간 4개 기업을 인수했다. 그 명단에 5번째로 오른 알스톰은 단연 최대의 사냥감이었다.

그밖에, GE와 경쟁 관계에 놓인 전력생산 분야 국제기업들은 빠짐없이 해외부패방지법 위반으로 기소돼 무거운 벌금을 물었다. 나는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2010년 스위스-스웨덴 다국적 기업 ABB(5,800만 달러), 2008년에는 독일 지멘스(8억 달러 제재금 부과 및 임원을 포함한 8명 기소)와 일본의 히타치(1,900만 달러)가 처벌 대상이 됐다. 

그리고 다음 표적이 바로 알스톰이었다. 반면, GE에 장비 등을 공급하는 주요 미국기업들은 미국 국무부의 표적에서 제외돼 있다. 벡텔(Bechtel: 미국 재외공관 건설사), 블랙 앤 비치(Black & Veatch), 플로어(Fluor), 스톤 앤 웹스터(Stone and Webster), 서전트 앤 런디(Sargent and Lundy), 그리고 두 보일러 제조업체 에이멕 포스터 휠러(Amec Foster Wheeler: 석유산업과도 직결됨)와 밥콕 앤 윌콕스(Babcock & Wilcox)이 그렇게 표적에서 제외된 기업들이다.

하지만 가스, 석탄, 핵, 풍력 등의 전력생산 분야는 전 세계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각축장이다. 이들 미국 회사가 이른바 ‘자문기업’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이 치열한 시장에서 과연 버텨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해당 기업들은 미국 외교의 측면 지원을 받고 있다. 예컨대, 2010년 GE는 규범에서 완전히 벗어난 방식(즉, 실질적인 입찰 없이)으로 이라크 정부로부터 30억 달러 상당의 가스터빈 공급권을 따냈다. 그러나, 당시 이라크 정부는 발전소를 지을 여력이 없어서 수십 개의 가스터빈을 어떻게 지을지 난감해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무도 이런 정황을 문제 삼지 않았다. 다른 업체와 다를 바 없는 단순 수탁업체로 이 사업에 참여한 GE는, 턴키(Turn-key: 일괄수주) 방식으로 건설사에 가스터빈을 공급하기로 했다. 대금 지불은 건설사의 몫이다. 중동 전력생산 시장 속의 작은 판도 위에서, GE가 선호하는 협력업체는 한국이나 일본의 대형 종합상사처럼 미국 법무부의 관심 밖에 있는 기업이다.

바야흐로 2014년 봄, GE는 수완을 십분 발휘했다. GE가 제시한 인수조건은 균형이 전혀 맞지 않았지만, 파트릭 크롱(당시 알스톰 회장)의 적극적인 지지에 힘입어 GE의 최고 경영자는 해당 인수조건이 ‘알스톰을 위한 최선책’이라고 발표했다. (…) 수많은 알스톰 직원들처럼, 나는 오래전 벨포르에서의 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GE는 가스터빈에 대한 라이선스를 알스톰에 판매한 후 거래조건을 강화했고, 더 규모가 크고 효율적인 신규 모델은 이전하지 않은 채 자체 라이선스를 폐기해버렸다. 

따라서 알스톰은 1999년에 자사의 가스터빈 사업(여전히 쟁점이 되는 벨포르 공장과 그곳의 종업원들을 포함)을 GE에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간 프랑스에서 활동을 펼쳐온 GE는 프랑스의 경제구조, 프랑스의 35시간 제도, 프랑스의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프랑스의 정치관계망을 모조리 꿰뚫고 있다. 

게다가, GE 경영진은 그야말로 로비의 달인들이다.

 

 

글·프레드릭 피에루치 Frederic Pierucci
알스톰(Alstom)의 이전 중역. 이 글은 그와 마튜 아롱(Matthieu Aron)의 공저서 『Piège américain. L’otage de la plus grande entreprise de déstabilisation économique témoigne 미국의 함정. 극심한 경제 불안을 초래하는 기업의 인질』(JC Lattès, 파리, 2019년)에서 발췌한 것이다.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