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거래를 둘러싼 글로벌 전쟁

2019-12-31     세드릭 르테르므 l 트리콘티넨탈센터(Cetri) 책임연구원

 

2019년 1월 25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서, 전자상거래에 관한 공동선언에 서명한 76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차원의 협상 개시 의사를 확인했다. 이 중 70여 개국은 지난 2017년 12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제11차 WTO 각료회의에서도 전자상거래에 관한 WTO 협상을 개시하기로 선언한 바 있다. 서명국 중에는 주요 강대국(미국, 일본, 유럽연합, 러시아, 중국)이 포진해 있지만, 인도와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을 비롯한 일부 국가는 이 공동선언에 불참했다. 전자상거래에 관한 합의도출이 요원하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오클랜드 대학의 제인 켈시 교수는 “전자상거래, 즉 디지털 상거래는 21세기 국제통상 협상 무대에서 쟁점으로 새롭게 부상한 가장 광범위한 주제”라며 이렇게 덧붙인다. “디지털 거버넌스에 국제 통상규범을 제정하기 위한 전자상거래 규범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이는 전통적인 통상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현대 국가와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면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다.”(1)

‘전자상거래’라는 용어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1998년부터 WTO는 전자상거래를 ‘전자적 수단에 의한 상품 및 서비스의 생산, 마케팅, 판매, 유통’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당초 인터넷을 통한 상품 및 서비스의 거래에 적용했던 이 모호한 정의를, 21세기 산업에서 석유에 비견되며, 통상 협상에서 관건이 될 만큼 중요해진 국경 간 데이터 이동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소재한 노동계 연구소(Instituto del Mundo del Trabajo)의 알베르토 로블레스 씨는 “전자상거래라는 트로이 목마 뒤에는 데이터 소유권이라는 난제가 숨어 있는데, 실상 전자상거래와는 전혀 무관한 문제”라고 설명하며 덧붙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전자상거래를 운운하며, 현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전자상거래가 모든 국가에서 후생을 증진할 것이라고 말하죠. 관건은 데이터를 통제할 자가 누구냐입니다. 지금까지 데이터를 통제해온 것은, 다름 아닌 대기업들입니다.”(2)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거대 디지털 기업들은 국경 간 데이터 이동에 관한 국제 통상규범이 공백으로 남아 있는 현 상황을 이용해 시장을 과점적으로 지배하게 됐다. 과점체제를 공고히 하고자 이들 기업은, 2010년대 초반부터 미국 내 경제 및 무역 정책 입안자들을 대상으로 치열한 로비활동을 벌였다. 이들 기업의 목표는 데이터의 국경 간 자유로운 이동과 데이터 지역화 조치(가령 서비스를 공급받는 당사국이 유럽이라면, 해당 서버를 유럽 내에 위치시켜야 함) 금지와 같은 원칙을 유지하고 기업활동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제한하는 것이다. 

‘우리 세상은 상품이 아니다 네트워크(OWINFS: Our World Is Not For Sale)’에서 활동하는 탈(脫)세계통합주의자(Altermondialiste) 데보라 제임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그들이 바라는 바는 서로 연결된 서비스 이용자들이 매일 같이 생성해내는 수십억 개의 데이터를 마음대로 수집하고, 그들이 원하는 데이터를 (주로 미국에 있는) 서버로 전송하고 저장하는 것이다.”(3) 제인 켈시 교수는 “현재까지 거둔 주요 성과는 포괄적인 차세대 지역협정과 투자 협력이다”라고 주장했다.(4) 2010년대 초반부터 미국은 지역 간 협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WTO 체제에서 지속되는 병목 현상을 우회하는 한편 ‘새로운 경제체제’의 맥락에서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맞아떨어지면서도 WTO에 상응하는 국제통상 규범의 틀을 구축하려는 의도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16년 2월 체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은 디지털 업계가 이룬 첫 번째 결정적인 승리로 평가된다. TPP의 전자상거래 협정문은 인터넷협회(Internet Association)나 컴퓨터통신산업협회(Computer and Communications Industry Association) 같은 로비 단체들이 제기한 주요 요구사항을 사실상 거의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게다가, 과거 디지털 로비 단체인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연합(Business Software Alliance) 대표를 지낸 로버트 홀리먼이 이끄는 미무역대표부(USTR)는 ‘디지털 2 더즌(Digital 2 Dozen)’이라는 제목의 문서에 TPP의 내용을 요약해 향후 협상을 위한 참고 자료로 제공하고 있다. 총 24가지 원칙으로 이뤄진 이 문서는 초국적 데이터 유통(제4원칙), 데이터 지역화와 관련한 보호주의적 무역장벽의 방지(제5원칙), 기술 강제 이전 금지(제6원칙), 소스코드 보호(제7원칙)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다.

2017년 TPP가 발효되기도 전에 미국이 협정을 탈퇴하자 디지털 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나 2018년 초에 이르자 다른 국가들도 전자상거래에 관한 TPP의 모든 조항을 포괄하는 새로운 협약을 속속히 체결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소스코드와 알고리즘의 보호에 관한 내용을 고스란히 담아낸 미국, 멕시코, 캐나다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 협상 합의문은 이런 추세를 더욱 공고히 했다.

그러나 전자상거래와 데이터 이동 조항을 담은 지역협정의 확산 전략은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진행된 범대서양 무역 투자 동반자 협정(TTIP: Trans-atlantic Trade and Investment Partnership), 서비스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S: General Agreement on Trade on Services) 등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폐기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무역 정책의 변화 양상 역시 걸림돌이 되고 있다. WTO를 통한 협상이 새삼 시선을 끌게 된 이유다.

미국, 일본과 유럽연합은 2016년 중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제11차 WTO 각료회의(MC11)에서 이 문제를 이미 상정한 바 있다. 변화를 위한 정보기술(IT for Change, 인도)의 파민더 지트 싱 씨는 “WTO의 통상적인 관례대로 선진국과 개도국 간 입장 차, 즉 남북문제가 대두됐지만, 개도국 간의 견해차(남남문제)로 3개 진영이 형성된 점이 눈길을 끈다”라고 평가했다.(5) 첫 번째 진영은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처럼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규제가 사실상 완전히 철폐된 디지털 경제를 주장하는 국가들이다. 

두 번째 진영은 인도와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가 포함돼 있는데, 이들 국가는 WTO에서 전자상거래를 논의하기 전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재해 있다고 주장한다(그 예로 도하개발 라운드 실패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기부터 미국이 무력화시켜온 WTO 상소 기구의 사례가 있음).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대사이자 최빈개도국(LDC) 코디네이터인 레오폴드 이스마엘 삼바 씨의 설명대로 이 국가들은 “국가 차원에서 규제하기 어려운 분야에 관한 국제 다자규범을 수립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6) 세 번째 진영에 있는 말레이시아, 태국,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 등의 개발도상국은 전자상거래에 관심은 있지만, 선진국이 주장하는 규제 완화 계획에는 반대하고 있다.

다자무역체제에서 전자상거래 논의를 주도하는 이들은 전자상거래 규제 변화에 따른 개발전망 중에서도 개발도상국의 중소기업이 누리는 기회를 강조하는 방법으로 회의론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파민더 지트 싱 씨는 “그런 주장은 한낱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다자간 토론과 협상, 협약이 이들 국가의 신생 디지털 산업을 키워주지는 않는다. 실상 기회보다는 변화가 가져올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크다”라고 보고 있다.(7)

싱 씨는 다자간 협상을 고려하기 전에 이들 국가가 자체 산업을 육성하도록 하는 디지털 주권 형태의 변화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예와 같이 남반구에 특정한 포럼 창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WTO와 같은 통상 거버넌스 기구를 통해서는 협상이 타결되기 어렵다. 개발도상국들은 WTO에서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디지털 무역에 대한 이해, 지역경제, 그리고 다양한 거버넌스 구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준비를 거쳐야 한다.”(8)

그사이 다른 한편에서는 저항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4월 1일, Owinfs 네트워크 주도로, 90여 개국 315개의 단체가 ‘세계무역기구의 전자상거래에 관한 규칙에 반대’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했다.(9) 이들 단체는 WTO 차원의 전자상거래 규범이 세계의 발전, 인권, 노동, 공동 번영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WTO 회원국들이 전자상거래 협상 로비를 중단하고 하루빨리 국제무역의 규범을 바꾸는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다자간 협상 이면에는 중국과 미국의 무역분쟁이 도사리고 있다.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미국의 정보기술 업계와 국제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러 거대기업을 보유한 유일한 국가인 중국은 5G 통신의 원천기술을 포함한 여러 핵심분야에서 미국을 능가하고 있다. 중국의 괄목할 만한 성과의 바탕에는 서방의 디지털 산업이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터넷(즉 자유무역)’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뉴욕 타임스>는 중국이 “지난 20년 동안 유튜브, 페이스북, 구글, 뉴욕 타임스 등의 사이트에서 7억 명이 넘는 중국 인터넷 사용자들의 접근을 막는 디지털 만리장성을 구축하고 강화했다”고 비판하면서, “이런 장벽에 힘입어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 같은 중국기업들이 다방면에서 서구의 경쟁사를 능가하는 선진적인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라고 개탄했다.(10)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기업은 중국 내에 데이터를 저장해야 하고 중국기업과 제휴할 의무가 있다. 중국은 엄격한 데이터 통제와 감독이 국가안보와 직결된 문제라고 설명하지만, 이런 규범은 곧 중국이 데이터 집약적인 산업을 장악하도록 돕는 수단이 되고 있다고 보는 분석이 지배적이다.(11) 따라서 중국이 이런 장벽을 쉽게 거둬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중국 관료가 지적했듯이 중국은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의 양자 협상에서도 국가 간 데이터 이전, 모기업이 위치한 국가로의 서버 이동금지 조치 해제나, 클라우드 컴퓨팅과 같은 분야에 관해서는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12)

반면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은 중국의 방침과 달리 WTO 협상 의제를 옹호하는 서로 대동소이한 내용의 제안서를 각각 발표했다. 따라서 2020년 6월 아스타나에서 열리는 차기 WTO 각료회의까지 남아 있는 향후 몇 개월이 관건이 되리라 예상된다.

 

 

글·세드릭 르테르므 Cédric Leterme
정치사회과학 박사, 트리콘티넨탈센터(Cetri)(www.cetri.be) 책임연구원, 
저서로『남반구의 시각으로 본 노동의 미래. 4차산업혁명 비판』(Syllepse, 
Sens dessus-dessous 총서, 파리, 2019)이 있다.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Jane Kelsey, ‘A sleeping giant: The scope and implications of New Zealand’s obligations on electronic commerce and digital services 잠자는 거인: 뉴질랜드 전자상거래 및 디지털 서비스 의무의 범위와 의미’, <JusTrade>, 2019년 3월, https://justrade.org.nz/altdigital
(2) Alberto Robles, ‘Cuarta revolución industrial y los trabajadores’ 발표문, Escuela nacional sindica, 2018년 4월. 
(3) Deborah Jame, ‘Le commerce électronique au cœur des discussions de la 11e ministérielle de l’OMC 세계무역기구의 11차 장관 토론 핵심 주제 전자상거래’, 퀘벡미대륙통합네트워크(RQIC), 2017년 11월 25일 https://rqic.quebec
(4) Jane Kelsey, ‘E-commerce: The development implications of future proofing global trade rules for GAFA 전자상거래: GAFA에 관한 국제통상 규범의 수립의 시사점’, OWINFS, 2017년 12월 13일, www.ourworldisnotforsale.net
(5) Parminder Jeet Singh, ‘MC11 e-commerce battle lines drawn across three camps(MC11 전자상거래 전선은 3개의 진영으로 나뉜다)’, <Third World Network>, 651~652호, 페낭, 2017년 10월~11월.
(6) Parfait Siki, ‘Échanges. L’Afrique hésite sur le commerce électronique 무역. 전자상거래를 두고 주저하는 아프리카’, <Afrique Expansion Magazine>, 퀘벡, 2018년 1월 30일.
(7), (8) Parminder Jeet Singh, ‘MC11 e-commerce battle lines drawn across three camps: MC11 전자상거래 전선은 3개의 진영으로 나뉜다’, art. cit. 
(9) ‘Lettre de la société civile contre les règles sur le commerce électronique à l’Organisation mondiale du commerce(OMC) 전자상거래에 반대하는 시민사회가 세계무역기구 앞으로 보낸 서한’, OWINFS, 2019년 4월 1일, www.ourworldisnotforsale.net
(10) Ana Swanson, ‘As trade talks continue, China is unlikely to yield on control of data 무역 협상에 나선 중국, 데이터 통제 포기 만무’, <뉴욕 타임스>, 2019년 4월 30일.
(11) Ravi Kanth, ‘China to push back on e-com demands by US and allies in pluri-talks 미국 및 다자 대화 참가국이 제시하는 전자상거래에 반대하는 중국’ <Third World Network>, 제8896호, 2019년 4월 29일, www.twn.my
(12) Ravi Kanth, ‘Digital trade war underway in e-com pluri-talks at WT(WTO 전자상거래 다자 회담에서 전개되는 무역전쟁’, <SUNS>, 제8897호, 2019년 4월 30일 www.twn.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