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의 귀환

2019-12-31     라파엘 켐프 l 변호사

프랑스에서 시위대에 가해지는 검찰과 경찰의 억압은 일이 생길 때면 급하게 예외법을 통과시키는 백 년 이상된 관행을 여실히 드러낸다.

 

 

1898년 9월 10일, 이전에는 집권 보수 체제를 지지했던 기자 프랑시스 드 프레상세는 생투앙에서 열린 드레퓌스파 모임에 참석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제가 아나키스트들과 혁명가들 편에 서서 선동한다고 비난했습니다. 투사들과 함께 정의와 진실을 향한 투쟁을 하게 돼 영광입니다.”(1) 

한때 프랑스의 외교정책을 열성적으로 두둔하는 칼럼을 썼으며, <르 탕> 기자로 활동했던 그가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를 지지하자, 여론에서는 매일 비난이 쏟아졌다. 프레상세가 아나키스트들의 편에서 이 투쟁을 이어갔다는 점 또한 그가 받은 비난의 원인 중 하나였다. 그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은, 드레퓌스 사건으로 조성된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다. 절대자유주의자들은, 아나키스트 테러로 인해 5년 전 제정된 법을 적용받아 투옥된 동료들을 석방시키기 위한 활동을 펼쳤다. 한편 에밀 푸제나 장 그라브처럼 반군국주의 신념을 가진 이들은 부르주아 대위이자 참모인 드레퓌스를 위한 투쟁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었다.(2)

그러나 푸제는 1898년 드레퓌스를 지지하는 프레상세와 당시 국참사원의 젊은 심의관이었던 레옹 블룸과 어울리며 행동지지자 제재 법안에 반대하는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의외의 조합을 이룬 이들은, 자신들이 반대하는 대테러법 때문에 투옥됐다가 석방된 아나키스트 댄디 펠릭스 페네옹이 운영하는 전위적인 문학예술잡지 <라 르뷔 블랑슈>를 통해 의견을 피력했다. 

 

21세기와 별 다를 바 없는 19세기 법

1899년 봄, 페네옹은 프레랑세, 푸제, (자신을 ‘법률가’로 소개한) 블룸의 글을 묶어 소책자를 발간했다. 이 소책자 <1893~1894년의 악법>은 6개월 전에 발표된 블룸의 글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2019년에 이 글들을 읽다 보면, 아나키스트 테러리즘에 대처하는 신생 제3공화국의 방식과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반동분자, 시위자, 신앙심이 유난히 강한 이슬람교도, 지나치게 급진적인 환경주의자, 혹은 헌병대 앞에서 말 한마디 실수한 구경꾼들 등을 차례로 겨냥해 제정된, 자유를 침해하는 법률이 놀랍게도 비슷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1893~1894년도 21세기와 다를 바 없었다. 테러 발생에 동요한 국회의원들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각오 따위는 망각한 채 일련의 예외법을 채택했다. 이 법규들은 차츰 당연한 조치로 받아들여졌고, 대상도 처음에는 아나키스트들에 국한됐다가 점차 좌파 정치활동가 전반으로 확대됐고, 이제는 잠재적으로 모든 개인에게 적용됐다. 블룸은 이에 대해, “아나키스트들을 저지하려던 법들이 결과적으로 모든 시민의 기본권적 자유를 위협하게 됐다”라고 요약했다. 게다가 이 법들은 물리적인 형태의 테러를 규제한다는 명목으로 표현과 사상과 견해를 제약했다. 블룸은 또한 두 번째 악법인 공동모의 관련 법이 “우리 사법제도의 보편원칙에 위배된다. (…) 새롭게 제정된 이 법에 의하면, 단순한 결심이나 합의도 범죄성을 지닌다”라고 기록했다.

오귀스트 바양이 테러를 저지른 날로부터 2일 후, 하원은 3가지 악법 중 첫 번째 법을 가결했다. 1893년 12월 9일 토요일, 혈기왕성한 아나키스트였던 바양은 못을 채운 수제폭탄을 의사당에 던졌는데, 사망자는 물론 크게 다친 사람도 거의 없었다. 소란이 가라앉자 샤를 뒤퓌 하원의장이 “여러분, 회의를 계속합시다”라고 의사 진행을 이어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구절은 지금까지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공화국 입법 정신을 상징한다.

내무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이 함께하는 장관회의 의장을 지낸 크리스티앙 비구루 국가 고문은 최근 끔찍한 테러 앞에서도 기본적 자유권을 수호하는 프랑스의 사법체제의 역량을 자랑스러워했다. 뛰어난 법률가인 그는 2017년에, 1893년 12월 9일 바양 하원 폭파 미수 사건을 “테러리즘에 대처하는 민주적인 방법의 전형”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는 “하원이 테러에도 불구하고 회의를 이어갔던 저항정신은 국가 현안을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휘둘리지 않게 하겠다는 정부의 결의를 테러리스트들에게 보여준 것”(3)이라고 논평했다. 그는 또한, 정부가 “계엄을 선포하면서도 기본권을 존중했다”면서 2015년 테러 대응 조치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이런 비교는 적절하지 않다. 사실 테러가 일어났던 1893년 12월 9일로부터 불과 2일 후인 12월 11일 월요일, 하원은 뒤퓌 하원의장의 지휘 하에 첫 번째 악법을 채택했던 것이다. 블룸은 하원이 어떻게 냉철함을 잃고 테러를 빌미로 삼은 정부의 압력에 밀려, 그런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는지 설명했다. 당시 하원의원들이 법안이 배포되기도 전에 투표에 임했다는 사실은, 평정심과 냉철함, 자제력을 잃었다는 명백한 증거다.

 

 

발언, 합의, 의도를 처벌하는 법

첫 번째 악법은 ‘중죄와 경범죄를 변호하는 발언’을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881년, 언론의 자유에 관한 기본법을 표결에 부칠 때 국회의원들은 법안 발의자 유젠 리즈본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와 “사상 검증이 일어날 수 있다”라며 프랑스 법제에 관련 항목 추가를 거부했다. 1893년, 그 우려는 사실로 드러났다. 경찰이 아나키즘에 호의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구금한 것이다. 게다가 이 법은 문제가 있는 발언을 한 당사자를 임의구금, 즉 판결 전에 구속할 수 있게 했다. 파브르게트 고등사법관은 “새로운 법 덕분에 공적인 자리에서도 범죄자를 체포할 수 있게 됐다”라며 빈정거렸다.(4)

이 법은 지금까지도 존재한다. 게다가 2014년 베르나르 카즈뇌브 내무부 장관의 발의로 한층 강화돼, 테러리즘 옹호 발언은 즉결심판을 받게 됐다.(5) 이 법으로 테러와 무관한 10여 명이 형법상 “테러리즘 옹호로 간주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라는 사유로 투옥됐다. 2015년 1월 테러 발발 이후,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와 프랑스 인권연맹은 새로운 법의 발효 후에 중형 선고가 증가했다는 점에 경악했다.(6)

공동모의와 관련된 두 번째 악법은 ‘합의와 합의 가담’이라는 개념을 법제에 도입해, 범죄행위를 시도하지 않았더라도 제재를 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프레상세는 이 법안으로 인해 “제재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개별 면담이나 통지문, 그리고 대화에 참여하거나 심지어는 발언을 들었다는 사실까지 합의나 합의 가담으로 간주될 것”을 우려했다.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되는 데는 2주도 걸리지 않았다. 1894년 1월 1일, 정보부가 아나키스트로 분류한 10여 명을 대상으로 가택수색이 진행됐다. 언론에 매일 경찰의 수색 활동에 대한 상세한 보도가 이어졌지만, 유죄판결이 난 사례는 없었다.

이 법들은 판사의 감독에서 더 나아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구속하는 조치를 양산했다. 1894년뿐만 아니라 2015년에도 계엄이 선포돼 무슬림 가정과 환경운동가들의 사생활을 침범하며 행정적 가택수색을 수천 건 진행했고 이중 상당 부분은 판사의 승인도 받지 않았다. 게다가 니콜 벨루베 법무 장관의 지시에 따라 검사들은 2018년 12월부터 프랑스 전역에서 시위에 참여한 ‘노란 조끼’ 활동가들을 예방적 차원에서 불심 검문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경찰은 예심판사의 감독 없이도 시민 수천 명의 자유를 몇 시간에서 며칠까지도 제한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악법이 남긴 가장 큰 폐해는, 형법은 물론 행정법을 얼룩지게 하는 의혹의 논리다. 크리스티앙 에스트로지 하원의원이 2010년 ‘집단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발의한 법으로 화제가 된 ‘폭력과 공공기물 파손을 목적으로 모인 집단에 가담한 범죄’는 1893년 공동모의의 약식 버전이다. 이 법에 따르면, 폭력이나 공공기물 파손 행위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의도가 있었다는 것만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노란 조끼’ 시위자들에게 대거 적용된 이 범죄는 이제 검찰이 평범한 시위자들을 잡아넣는 방편으로 쓰이고 있다. 

지난 2년의 계엄 기간(2015~2017)과 계엄 도입으로 정부는 행정 경찰들에게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요인들을 제거할 수 있다는 사고를 각인한 셈이다. 경찰이 넘긴 정보만 있으면 정보원을 명확히 하거나 확인 서명을 하지 않아도, 기차나 지하철 운전자가 지나치게 사회참여적이라는 이유로 해고할 수 있다.(7) 그리고 무슬림에게 가택연금을 명령할 수 있으며,(8) 정부는 경찰에 무한한 신뢰를 담아, 적으로 규정한 이들의 직업을 박탈하는 조치를 취할 권리를 부여했다.

블룸은 “모두들 이런 법들이 모름지기 문명화되고 정직한 국가, 적어도 우리나라의 법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법들은 폭정과 야만과 거짓을 부추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글·라파엘 켐프 Raphaël Kempf

변호사. 『Ennemis d’État. Les lois scélérates, des anarchistes aux 

terroristes 국가의 적. 악법, 아나키스트에서 테러리스트까지』

(La Fabrique, Paris, 2019)의 저자.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번역위원


(1) Rémi Fabre, 『Francis de Pressensé et la défense des Droits de l’Homme. Un intellectuel au combat 프랑시스 드 프레상세와 인권. 투쟁에 나선 지식인』(Presses universitaires de Rennes, 2004). 

(2) Jean-Jacques Gandini, ‘Les anarchistes et l’affaire Dreyfus 아나키스트들과 드레퓌스 사건’, <Réfractions>, n°42, Paris, 2019년 봄호.

(3) Christian Vigouroux, 『Du juste exercice de la force 권력의 정당한 행사에 대해』, Odile Jacob, Paris, 2017.

(4) M. P. Fabreguettes, 『De la complicité intellectuelle et des délits d’opinion. De la provocation et de l’apologie criminelles. De la propagande anarchiste. Étude philosophique et juridique 지식인의 공모와 사상범에 대해. 범죄 교사와 변론에 대해. 아나키스트 프로파간다에 대해. 법률철학적 고찰』, Chevalier Marescq et cie, Paris, 1894-1895.

(5) ‘테러 방지 조치 강화법’ n° 2014-1353(2014.11.13. 제정)

(6) ‘France. Test décisif” en matière de liberté d’expression, avec de très nombreuses arrestations dans le sillage des attentats 프랑스. 테러를 명목으로 터무니없이 많은 사람을 체포하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결정적 실험’,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2015년 1월 16일; ‘Déjà 50 poursuites engagées au pénal pour apologie du terrorisme 테러리즘 옹호 발언으로 이미 50건 이상의 소송이 진행 중’, 프랑스 인권연맹, Paris, 2015년 1월 14일.

(7) ‘대중교통 시설 내 무례한 행위나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 및 테러 예방에 관한 법’ n° 2016-339(2016.3.22. 제정)

(8) ‘치안 및 반테러리즘에 관한 법’ n° 2017-1510(2017.10.30. 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