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원인 진단, 워싱턴의 불가능한 합의

2011-03-10     제라르 뒤메닐·도미니크 레비

2009년 5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출범시킨 ‘금융위기조사위원회’에서 지난 1월 보고서를 제출했다. 위원회의 임무는 2008년 8월 발발한 금융위기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었다. 위기는 그해 9월과 10월 절정에 달하며 미국의 대형 금융기관 여러 곳을 파산으로 내몰았다. 이후 대대적인 경기침체까지 겹쳤지만 이에 대한 조사나 사태의 영향 평가, 향후 조처 권고 등은 위원회의 소관이 아니었다.

수백만 쪽의 자료를 검토하고 증인 700명과 면담하고 19일 동안 청문회를 열고 600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인터넷에 1100건의 자료를 올리면서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발족한 금융위기조사위원회의 위원 10명은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1) 이들이 합의를 도출할 가능성은 애당초 적었다. 위원회는 양대 정당 구도를 바탕으로 민주당과 공화당이 추천한 각각 6명, 4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공화당 4인방은 그들끼리도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결국 보고서는 세 부분으로 나뉘었다. 첫 번째는 민주당 위원들의 작업이며, 공화당 위원 3명이 두 번째 부분, 나머지 1명이 마지막 부분을 작성했다.

언론의 반응은 이들의 의견만큼이나 분분했다. 일각에서는 보고서의 ‘경이로운 정보’와 ‘풍부한 자료’를 높이 평가한 반면, <뉴욕타임스>의 어느 논평은 격렬한 갑론을박을 지적하며 ‘뒤죽박죽’, ‘중언부언’, ‘난장판’ 등의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2) 하지만 해당 글을 쓴 평론가가 냉소적으로 표현한 다양한 시각은 정파적 스펙트럼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민주당 쪽의 글은 ‘좌파 에세이 모음’이고, 3명의 공화당 위원들이 작성한 부분은 ‘우측으로 기울어진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이며, 마지막 공화당 위원은 ‘전형적인 극우파 잡지’를 선보였다. 즉, 각자 자신의 좌표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6 대 3 대 1’의 조사 보고서

핵심부를 차지하는 집권 민주당 위원들의 보고서를 먼저 살펴보자. 이들에 따르면 과도한 차입, 무모한 투자, 투명성 결여, 은행의 일부 계정 은폐, 파생시장의 곡예 등 고삐 풀린 금융화를 배경으로 비극이 벌어졌다. 이는 그다지 참신한 의견은 아니지만 철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냉철하게 내린 진단이다. 주요 논지는 가히 파격적이었다. 금융위기는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는 것이다. “경고신호들이 보였지만 이를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한 것이 화근이었다.”(3) 또한 위기는 피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감독관들이 금융 시스템 보호에 필요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 이들은 많은 분야에서 상당한 권한을 가졌으나 이를 활용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보고서는 정부도 혼란에 맞설 준비가 부족했고, 대응 방식에 일관성이 없었다고 질책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대출공여 기준 마련 등의 조처를 통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비롯한 이른바 ‘독성’(Toxic) 대출의 증가를 늦추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도 직접적으로 거명했다. 일부 대형 금융기관 고위 책임자들의 위기관리 미흡 등 경영상 실책에도 비난이 가해졌다. 신용평가기관도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으며, 각종 불법적 관행이 난무했다는 점도 밝혀졌다.

금융부문이 정책결정자들에게 압력을 가한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금융산업은 금융기관, 시장, 상품 대상의 규제 축소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금융처럼 많은 부와 권력을 지닌 산업이 정책 결정자 및 규제감독관에게 압력을 행사하리라는 것은 본 위원회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울러 보고서는 수십억 달러가 각종 로비와 선거지원 자금으로 쓰였다는 점도 짚었다. 규제 미비가 주요 공격 포인트 중 하나였다.  

민주 “무능과 방조가 낳은 인재”

이런 공세에 공화당 위원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규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는 이들의 귀에 무척 거슬리는 주장이었다. 하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인 공화당 의원은 한 신문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은행을 규제해야 한다는 견해가 워싱턴에서는 우세하지만, 워싱턴과 규제감독관은 은행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4) 일설에 따르면 4명의 공화당 위원은 (‘월스트리트’ 등과 더불어) ‘규제 완화’라는 표현을 보고서에서 배제하자는 의견을 두고 찬반투표를 했다.(5) 그러나 합의에 실패해 보고서도 두 부분을 따로 작성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공화당파는 주요 선진국들도 부동산 폭등과 금융위기를 겪었다는 점에 비춰볼 때 혼란의 책임이 미국에만 있지 않다는 주장으로 맞섰다. 그러면서 부실채권 부문에서 미국이 보여준 탁월한 ‘실적’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들은 익히 알려진 연막작전을 써가며 논증을 펼쳤다. 중국과 석유수출국 등 다른 국가들의 잘못이라는 것이 요지였다. 막대한 무역 흑자를 누리는 이 국가들이 너무 많이 저축을 한 것, 즉 미국의 달러를 충분히 쓰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는 소리다. 그 결과 금융투자처를 찾는 유동성이 대거 수면 위로 떠올랐고, 이 자금이 금리 인하를 유발하면서 미국 가계의 무분별한 대출을 부추겼다는 주장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과 기타 주요 개발도상국, 산유국은 자신들이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적게 소비하고 투자했다. 값싼 자본이 미국에 대량 방출되면서 대출이 저렴해졌다.”(6) 하지만 미국의 독성 채권을 구입한 것은 여기 지목된 국가들이 아니라는 점이나, 금리 결정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굳이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이런 주장은 위원회 민주당파의 지적을 통해 쉽게 반박할 수 있다. 즉, 위험성이 명백한 대출을 은행에 금지하는 기준을 정하는 것이야말로 FRB의 소관이라는 것이다.

공화 “중국의 막대한 무역 흑자 탓”

보고서의 마지막 부분은 우파가 애용하는 무기인 ‘독화살’을 쏘고 있다. 금융위기의 원인 제공자는 분명 미국이었으며, 특히 오래전부터 서민 가계의 주택 보유 확대 조처를 도입하는 등 역대 행정부가 실시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문제였다는 것이 요지다. “1997∼2007년에 발생한 부동산 가격 폭등 현상은 과거의 급등 사태들보다 규모가 크고 오래 지속됐다. 그 이유는 정부가 과거 기준을 유지하고 서브프라임의 확산을 조장하지 않았더라면 시중에 유통됐을 금액보다 많은 자금을, 역대 행정부가 부동산 시장으로 유인하면서 주택 수요를 인위적으로 증대시키는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7)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적’ 기준에 따라 금융기관이 공여한 대출을 저렴하게 매입한 프레디맥·패니메이 등 거대 모기지 기관(8)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달리 말하면 빈민 지원을 중단해야 했다. 하지만 보고서 전반부에서 민주당 위원들은 사회복지법의 일환으로 이뤄진 대출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런 논증을 반박하고 있다.

우파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원흉”

광기 어린 금융과 규제 미비에 관한 민주당 위원들의 공세를 어떻게 봐야 할까? 금융위기에 대한 이들의 설명과 암시적 권고 사항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패배하기 이전, 즉 ‘최초의’라는 수식어와 더불어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의 오바마 대통령이 ‘제2의 루스벨트’라는 바람직한 이미지에 자신을 투영할 여유가 있었더라면 더 획기적인 개혁 조처를 취했을지 모른다(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이런 희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위원회 민주당파의 의견에 진정한 동의를 표하기도 쉽지 않다. 물론 개인 및 기관의 책임이 직접 연루돼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금융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는가? 금융 측면에만 국한된 모든 해설이 그렇듯이 이번 분석도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두 가지 허점이 눈에 띈다. 기술적 차원에서 우선 미국 경제 상황의 근본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진단을 내렸으며, 위기 발발 기저에 깔린 사회 변화의 역사적 역동성을 간과했다.

첫 번째와 관련해서는 거시경제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유무역 및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기반으로 하는 세상에서 미국은 대내외적 불균형을 누적시키는 궤적을 따라왔으며, 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제적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미국은 세계 다른 지역의 생산자들에게 갈수록 많은 양의 내수를 소화하도록 했다.(9) 국내에 자리잡은 기업들 몫의 수요를 부양할 필요성에 직면하자 미국은 적극적인 가계대출 정책을 펼쳤다. 이를 통해 늘어난 수요도 세계 다른 지역에서 감당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는 잘 알려진 현상이다. 하지만 기존 사례와 차이점이 있다. 1983년 프랑스 또는 여타 국가에서 경기회복 조처를 중단한 것과 달리, 미국은 국력과 달러 강세 덕분에 앞서 말한 정책을 30년이나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무역 적자가 늘어났다. 이로 인해 세계 다른 지역으로 유입된 달러는 금융투자 형태로 다시 미국에 돌아왔다. 이는 대외 부채, 즉 미국이 외국에 지는 채무를 유발했다. 미국 가계 및 정부가 국내 금융기관에 진 빚이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대외 부채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10) 대출에 의한 경기부양이 금융기관들의 무모함과 결합되면서 탄생한 재앙적 상황이 위기를 야기한 것이다.

더 뿌리 깊은 역사적 역동성에 관해 조사위원회의 민주당 위원들은 1980년대 초 새로 자리잡은 신자유주의 사회질서를 지적하고, 그나마 좀더 나아가 30년간의 규제 완화 정책을 언급한 것이 전부이다. 신자유주의의 본질이라는 핵심적 문제, 그리고 이것이 위기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다루지 않았다.

미국 경제 불균형 문제엔 무관심

신자유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신자유주의는 일련의 사회·경제·정치적 관행, 즉 하나의 사회질서다. 부자들은 획기적으로 부를 축적했고, 이는 신자유주의의 목표이기도 했다. 책임은 개인보다 계급에 있다. 한편으로는 자본가 계급과 그 동맹자, 즉 민간·공공 부문의 고위 관리(특히 최고위직 및 금융관리), 우파 및 과거 좌파 정당의 간부가 있다. 관리자 혹은 조직자 간의 결탁과 더불어 케인스주의 혹은 전후 사회민주주의를 따른 대안들이 종말을 맞았다. 이 계급들의 맞은편에는 물론 빈민층이 있지만, 더 포괄적으로는 노동자·피고용자로 구성된 서민층이 있다. 결국 소득과 권력에 대한 갈망에 방해되는 모든 장애물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려 드는 새로운 사회질서의 모순이 금융위기를 계기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금융화는 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아울러 미국에서 위기가 발발한 이유는 우선 미국이 이런 선상에서 가장 앞선 국가였으며, 세계적 헤게모니 덕분에 30년 동안이나 불균형의 궤적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언급은 아예 없어

역사적 역동성을 강조함으로써 위원회 내부의 간극과 주장의 다양성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위원들의 다양한 주장은 비단 양당의 견해차를 보여주는 것만은 아니다. 이는 아울러 신자본주의에서 자본가 계급과 고위 관리 간 동맹 방식의 근간이 되는 정치적 목적을 드러낸다. 3명의 공화당 위원은 기존의 신자유주의가 지속되기를 바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주장은 최고의 동맹을 이끄는 확고한 지도자로서 자본가들이 누리는 이익을 강력히 옹호한다. 극우파에 속하는 한 공화당 위원은 위기 상황을 이용해 서민계급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려는 의지를 뻔뻔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전후 사회적 합의의 잔재를 뿌리째 뽑아버리려는 시도가 자행되는 셈이다. 중앙은행을 아예 해체하자고 제안한 것도 이 집단들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없었다면 지난해는 1933년과 같은 상황에 처했을지 모른다.(11) 서민에 대한 경멸은 관료조직에 대한 증오를 수반하는 법이다.

민주당파의 경우, 세계화를 돌이킬 수 없는 흐름으로 간주한다. 프랑스 사회주의자처럼 이들도 정직하고 절제된 금융 부문을 갖춘 ‘선한 자본주의’를 희망한다. 하지만 정부 관료들이 규제와 감독을 통해 경제 관행을 중재하는 가운데, 생산자와 실질적 성장을 중심으로 재정비된 비금융회사(제조업체)에 이롭도록 동맹의 방향을 이동시키자는 것이 민주당파의 제안이다. 이들의 담론은 뉴딜정책을 떠올리는 구석이 있다. 불황의 책임이 금융에 있다고 보았고, 루스벨트 대통령이 서민층과 동맹을 꾀하며 대형 비즈니스에 일격을 시도했으며, 행정부 관리들이 상황을 정면돌파하려 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지만 이처럼 동맹이 전복되는 구도를 오늘날 민주당파가 얼마나 염원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글•제라르 뒤메닐 Gérard Duménil & 도미니크 레비 Dominique Lévy
경제학자. 공저로 <신자유주의의 위기>(The Crisis of Neoliberalism·Havard University Press·2011)가 있다.

번역•최서연 qqndebien@ilemonde.com

<각주>
(1) <The Financial Crisis Inquiry Report>, www.fcic.gov/report, 2011. 
(2) Frank Partnoy, ‘A confusing and contradictory mess, part rehash, part mishmash’, <뉴욕타임스>, 2011년 1월 29일.
(3) <The Financial Crisis…>, op. cit. 다른 인용문도 이 보고서에서 발췌했다.
(4) <버밍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스펜서 바쿠스가 한 발언을 폴 크루그먼이 인용, <월스트리트 화이트워시>, <뉴욕타임스>, 2010년 12월 17일.
(5) 폴 크루그먼의 인용, op. cit.
(6) <The Financial Crisis…>, op. cit.
(7) <The Financial Crisis…>, op. cit.
(8) ‘기관’ 또는 엄밀히 말하면 ‘정부후원기업’(Government Sponsored Enterprises).
(9) 중국이 지목됐으나 적자 중 3분의 2는 다른 국가에서 비롯됐다.
(10) Cf. <The Crisis of Neoliberalism>, Harvard University Press, 2011.
(11) 생산은 1929년 말에서 1933년 사이 25% 폭락했으며, 1932년에는 금융 시스템이 붕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