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대망상과 공포, 미국의 벅찬 중무장

2011-03-10     윌리엄 패프

‘미국이 전세계에 1천 개가 넘는 군사기지를 구축한 것은 심각한 실수가 아닐까’라는 자문을 해봐야 할 시기가 됐다. 자국의 안보를 위해 문어발식으로 구축한 이 인프라가 갈등을 조장하고 불안을 키운 것이다.

전세계에 군사기지를 분산 설치하겠다는 미국의 원칙이 정치적·관행적 반대에 봉착했다. 이런 시스템은 미국에 대해 많은 이들의 적대감을 증폭시키고, 아프가니스탄전과 이라크전처럼 승산 없는 불필요한 전쟁을 야기했다. 뿐만 아니라 가까운 장래에는 파키스탄, 예멘, 아프리카 대륙, 그리고 마그레브 지역에서 또다시 도망쳐야 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오사마 빈라덴이 ‘신성한’ 사우디아라비아 영토에 주둔한 미군 기지가 일부 무슬림에게 ‘신성모독’으로 비친다며 9·11 테러를 정당화하지 않았던가! 분명 이 기지들은 불안을 누그러뜨리기보다는 가중하고 있다.

현재 미군의 병력 배치가 무의식의 결과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면밀히 검토해서 세운 전략 같지도 않다. 무엇보다 미군 해외 배치 권한이 잘 통제되지 않는 관료에게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미국 국민은 해외 주둔군의 신속한 복귀와 전시에나 필요한 군사시설을 신속히 해체하라고 요구했지만, 냉전체제 시작과 함께 중단됐다.

10여 년이 지난 뒤, 미국은 베트남전에 개입하며 동남아시아에 군사기지를 확장했지만, 미국의 베트남 개입은 실패로 돌아갔다. 베트남전 때 생긴 새로운 전쟁 패러다임이 ‘블리츠크리그’(Blitzkrieg·기동전)다. 압도적인 군사 수단, 명확한 목표, 신속한 철수를 기반으로 한 블리츠크리그가 베트남에서 실패한 것이다. 미군은 보스니아와 코소보 내전 때, 그곳에서 자행되는 극악무도한 짓을 막지 못한 유럽이 자신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옛 유고슬라비아 군사 개입의 선봉장으로 추대할 때까지 그 지역에서의 군사작전을 거부했다.

다나 프리스트가 저서 <미션>에서 지적한 것처럼,(1) 미국은 당시 언론과 대중에게 알리지 않고 해외에 군사기지를 확산했다. 이 책은 막대한 예산을 확보한 군이 상대적으로 예산이 적고 국제 위기에 대처할 아이디어도 없었던 외무부와 중앙정보국(CIA)을 제치고 백악관을 상대로 영향력을 키우는 모습을 그렸다. 군인은 단순하고 신속한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장점이 있어, 이들의 해결책을 실행하는 데 긴 밀담도 필요 없다. 이들은 특히 자신의 리더십을 견지하는 강력한 미국의 이미지를 대내외적으로 유용하게 전파시킨다.

세계 전역에 분산된 미군의 현지 사령부는 사령관의 지휘력과 현지 자율관리 조직, 합리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외교정책에 대한 군의 영향력 확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막강한 파워를 지닌 이 지역들의 사령관은 자신이 지휘관으로 근무하는 국가의 정치 및 군 당국과 직접 상대하며 금세 자국의 현지 대사보다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조지 부시가 집권하자, 신임 국방장관 도널드 럼즈펠드는 ‘군인들의 문민 통제’를 복원해 굼뜨고 비효율적인 펜타곤의 관료적 방식을 뜯어고쳤다. 그는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기회를 틈타 미래의 전쟁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 즉 최첨단으로 중무장한 특수부대 파견, 공습, 현지에서 지원군 모색 등을 구체화했다. 그 결과 현지에서 그가 발굴한 지원군 사령관 아메드 샤 마수드는 아프가니스탄의 반탈레반 세력인 북부동맹을 진두지휘하며 사망할 때까지 그를 도왔다.

미군은 국방장관의 지휘 아래 다시 한번 세력을 확장한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전에서 군사작전 ‘충격과 공포’를 감행해 이라크 군대를 무너뜨리고 행정부를 장악했다. 예상치 못한 이 작전으로 이라크 행정부는 대혼란에 빠졌다. 미군의 이라크 통치는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장군이 지난해 3월 반란군 진압작전을 펼칠 때까지 지속됐다. 그는 이 작전을 대부분 정통 이슬람주의자로 구성된 수니파 동맹군에 자금을 지원해 감행했고, 이후 이라크 총선에까지 여파를 미친다. 그렇다고 이라크인이 안정을 되찾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 사령관으로 부임한 퍼트레이어스 장군이 그곳에서 이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미국의 해외기지 확산은 세계 속 미국의 이익을 지키고, 향후 자신의 군사 개입을 수월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정책은 우드로 윌슨 대통령(1913~21) 이후, 미국의 해외정책을 지배한 ‘민주주의의 진흥’ 이념을 반영했다. 결국 이 시스템은 미군을 국경 너머 전장으로 내몬 강력한 부양책으로 판명됐다.

1993년 새뮤얼 헌팅턴은 <포린 어페어스>에서 “다음 세계의 대전은 국가 간 충돌 형태가 아닌 문명의 충돌 형태가 될 것”(2)이라고 단언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서방과 이슬람 국가 간의 세계 패권 전쟁 시나리오를 제시하며(혹 이들 간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유교 문화권’인 중국은 아랍 무슬림 동맹 편을 들 것이라 했다.

그의 예언은 2001년 부시 대통령이 ‘서양의 자유에 대한 무슬림의 증오심 때문에 이슬람주의가 생겨난다’는 이론만큼이나 부정확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기승은 이슬람 내부의 위기 탓이다. 이슬람주의 지지자들의 목표는 서구 침공이 아니라, 무슬림을 종교적 계율에 맞게 정화시키고 서양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것이다.

헌팅턴의 엉터리 예언

알카에다의 출현에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예를 들어 강력한 이슬람 근본주의 회귀, 제1차 세계대전에 따른 오스만 제국의 붕괴, 프랑스와 대영제국의 중동 식민지화, 오스만 제국을 대체할 만한 ‘아랍 통합 국가’ 창립 실패,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분할과 이스라엘 창건 등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및 이란과 동맹정책을 펼쳤다. 워싱턴 정계에서 ‘이슬람은 한물간 종교라 점차 서구의 현대화에 자리를 내주고 사라질 것’이라 여기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모든 문화는 필연적으로 똑같은 운명을 향해 진화하기에, 미국과 그 동맹국은 이슬람 국가가 안락한 진화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잘못된 가설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문화·정치 시스템, 이 모든 것이 이런 찬란한 경로(잘못된 가설)를 거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런 시각은 아테네가 이집트·메소포타미아·페르시아 문명에 추월당했으며, 로마가 아테네를 통치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성경은 역사의 개념을 이전의 모든 것을 속죄하는 최후의 속죄 과정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이론을 토대로 계몽주의 시대의 ‘지복천년설’이 번성했고, 이런 설이 현대적·전체주의적·마르크스-레닌주의적·국가사회주의적으로 해석되며 번성했다. 미국의 해외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유토피아 역시 동일한 소재를 이용하고 있다. 특히 우드로 윌슨 대통령 이후 유토피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신세계 영토처럼 표시된 매사추세츠 베이 식민지를 순례한 성직자들의 세속적 시각을 대변했다. 이런 시각이 여전히 미국 정책에 뿌리박혀 있다.

역사학자 앤드루 바세빅은 미국의 신군국주의는, 예컨대 워싱턴의 선량한 의도와 민주주의 이념은 반드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라는 정치적 지복천년설에서 유래한 형태라고 했다. 그는 베트남전쟁 초기, “미국인은 자신의 안전과 안녕을 무력으로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3) “미국인은 자신이 전례 없이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노력을 배가해야 했다”는 주장이다. 그로 인해 세계 여러 지역에서의 군사력 확장 시나리오는 그 어떤 납득할 만한 대안도 배제한 채, 그것이 곧 정상적인 표준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은 군이 지배하는 사회의 특징을 지닌 탓에 국내외의 보안 요구가 다른 현안보다 우선시된다. 따라서 미국의 정치적 상상력은 가상의 위협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미국은 몰상식한 낙관론으로, 이라크가 민주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고 장담한다. 또 오바마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할 것처럼 말한다. 그럼에도 미 국방부는 아프가니스탄에 그 지역 전체를 지휘할 수 있는 전략사령부로 쓸 ‘항구적인’ 복합 군사시설을 짓고 있다. 그러나 탈레반은 동맹군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지 않으면 어떤 협상도 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따라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그가 만약 지난해 12월에 발간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략에 대한 보고서’에 실린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지지한다면, 야당인 공화당과 철군을 치욕적인 패배로 느낄 국방부로부터 분명 철퇴를 맞을 위험이 있다. 군사기지 시스템은 실제로 아프간 지역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근본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은 모든 경쟁국과 동맹국의 화력을 합한 것보다 더 강력한 화력을 지녔지만, 이 나라가 항상 강력한 군사력을 숭상한 것은 아니다. 1787년 수정헌법(권리장전)의 두 번째 개정안에는 “잘 조직된 민병대가 자유 국가의 보안에 필요하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연방군의 존재에 대한 언급은 헌법 8조 1항에만 나와 있고, 이 조항은 연방군의 지휘권을 의회에 부여하고 있다. 의회가 “군의 창립과 관리를 책임지지만 이런 권한을 2년 이상 행사할 수 없다”는 단서가 달렸다. 헌법 2항은 “미 대통령이 육군과 미군에 대해, 그리고 다양한 민병대가 미 현역 군부대에 동원됐을 때 이들의 통수권을 갖는다”는 행정부의 권한을 짤막하게 명시했다. 이는 그 무렵 영국군의 식민지 주둔에 대한 미 국민의 반대 여론을 반영한 반군국주의적 문서인 셈이다.

대안 없는 군사력 확장 시나리오

20세기 중반까지 미국 여론은 군에 적대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미군 병력은 17만5천 명에 불과했다. 1945년 시작한 급작스러운 군 동원해제 바람은 냉전 때문에 중단됐고, 징병제도 베트남전 개입 이후에야 폐기됐다. 따라서 1970년대까지 미군은 ‘시민군’(미국에선 징병된 군인을 시민군으로 불렀음)으로 불렸지만, 군에는 예비역과 징병 출신 장교가 많이 있었다. 직업군인이 (징병제 폐지로 인해) 시민군을 대체하며, 정치권력은 대중이 더 이상 범접할 수 없는 권력의 도구를 차지했다. 이와 때를 같이해 군산복합 세력의 영향력은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다. 오늘날 방위와 안보산업은 미국 제조산업의 가장 중요한 부문이 됐다. 국회와 정부는 이 부문에 걸린 막대한 이권 때문에 압력을 받고 있다. 2세기 반 전에, 프랑스 정치가 미라보는 “프로이센은 군대가 없는 국가지만 한 나라를 정복했다”며 프로이센을 유럽의 최고 열강으로 꼽았다. 이런 판단은 오늘날 미국에 잘 어울린다.

냉전 초기와 현 아프가니스탄 전쟁 사이에 낀 미국은 그간의 전쟁, 즉 한국전, 베트남전 및 캄보디아 침공과 레바논, 그레나다, 파나마, 도미니카공화국, 엘살바도르(간접적으로), 소말리아(처음에는 유엔의 위임 아래, 두 번째는 에티오피아의 중재로) 등에서 펼친 군사작전, 그리고 두 번의 이라크 침공과 한 번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에 대해 고찰할 기회를 가졌다. 첫 번째 걸프전을 제외하곤 단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다.

수정헌법의 반군국주의는 어디에…

미군은 자국 내에서조차 국회의원들의 의례적인 어떤 공격에도 불사신이다. 우리는 전세계에 배치된 미군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확실한 것은 미국이 지난 50년간의 개입주의를 접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군을 남김없이 철수시킨다면, 다른 국가의 내정에 공격적인 간섭을 중단한다면 나라의 안보가 훨씬 튼튼해질 것이다. 이런 변화는 분명 대내외적으로 정치적 비용이 많이 든다. 이제 미국의 지도자들은 미국이 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정할 때가 됐다. 이들은 과연 이를 실현할 정치적·이념적 의지와 능력을 지녔을까?                

*이 글은 2010년 <포린 어페어스> 11~12월호에 게재된 윌리엄 패프의 기사 ‘불안 조장, 군국주의는 어떻게 미국을 위험에 빠트릴까’를 발췌해 수정한 것이다.

글•윌리엄 패프 William Pfaff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칼럼니스트. 미국 잡지 <뉴욕 리뷰 오브 북스>의 공동 편찬자. 저서로 <명백한 운명의 아이러니>, <미국 외교정책의 비극>(Walker Books·뉴욕·2010) 등이 있다.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각주>
(1) <미션>, Norton, New York, 2004.
(2) ‘문명의 충돌?’, 잡지 <Foreign affairs>, Tampa, 1993년 여름호.
(3) <The New American Militarism>, Oxford, New York,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