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개혁은 개혁 아니다

2011-03-10     장크리스토프 르 뒤구

국가 재정 적자가 심각한 상황에서 각국 정부는 세금 인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고 부유층의 세금을 감면해주겠다고 나섰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부유세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사회당 계열의 경제학자들은 좀더 많은 정의를 주장하지만, 전체 맥락으로 보면 현재 경향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좀더 근본적 개혁이 절실한 때다.

조세개혁 바람이 불고 있다. 어떤 이들은 ‘조세혁명’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다행이다. 그러나 진정한 조세개혁을 이룰 수 있을지, 아니면 단지 위기에 처한 ‘복지국가’ 모델을 수정하는 데 그칠지가 관건이다. 지난 30년간 프랑스는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자국의 공공재정 시스템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환상을 품어왔다.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공공서비스가 나름 버텨온 것은 사실이다. 국가 예산은 그럭저럭 실업률 상승을 감당했다. 한편 지방분권 정책으로 공공지출의 상당 부분을 지자체가 부담하게 된 대신, 중앙정부는 엄청난 채무를 떠안으며 금융시장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국가와 금융시장이 서로 분리될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역시 경제정책과 관련한 토론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흘러왔다. 세법 전문가들 역시 참신한 세제개혁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재산세와 소득세 인하가 그나마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겼다.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부자들에게 조세회피 가능성을 열어주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 결과 프랑스 세제시스템은 구멍이 숭숭 뚫린 치즈처럼 돼버렸다. 겉으로는 세율이 인상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세표준(1)이 낮아진 것이다. 특히 비근로소득이 이 경우에 해당했다. 특정 계층을 위한 세금 면제는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2003~2008년 5년 동안 총면제액이 500억 유로에서 730억 유로로 47% 증가했다.(2)

프랑스 세제는 구멍 숭숭 뚫린 치즈

불가피한 시점을 늦춰보려는 온갖 노력에도 세금을 더 많이 징수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세금은 국가의 물질적 기초”라고 말한 카를 마르크스와 조지프 알로이스 슘페터의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부 우파는 사회보장분담금 일부를 소득세 인상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한다. 좌파 이론가들은 소득세(IR)와 일반사회보장분담금(CSG)의 통합 과세야말로 진보적 세제개혁의 시금석이라고 본다. 양쪽 모두 소득재분배 시스템의 개혁은 세금 징수와 사회분담금 갹출 사이의 경계를 재설정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관점에 서 있다. 그러나 어느 쪽도 만족스러운 대안이 되지 못한다.

이 상황에서 중도 성향의 상원의원 장 아리튀와 장프랑수아 코페 대중운동연합(UMP) 사무총장은 ‘숨겨진 보물’을 발견했다. 일명 ‘사회소비세’라는 것으로 사회분담금 일부를 간접세 인상으로 충당하자는 제안이다. 그러나 우파뿐 아니라 프랑스 관리직총연맹(CFE-CGC) 같은 노조도 지지하는 이 제안은 고집스러운 환상에 기초한다. 일단 그 내용을 살펴보자. 국산이든 수입품이든 관계없이 소비세가 1%포인트 인상되면 프랑스 무역수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0.45% 개선된다.  90억 유로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사회소비세 명분으로 소비세가 2%포인트 인상되면 180억 유로에 달하는 무역수지 개선 효과와 함께 2만~4만 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피가로>의 시릴 라셰브르는 “소비세 인상 덕분에 프랑스인들의 의료비 일부를 애플이나 중국 노동자들이 부담하게 될 것”(3)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소비세를 2%포인트 인상하면 가계 소비자들의 부담이 총200억 유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물가는 오르고 소비자 구매력은 감소할 것이다. 전체 고용률에도 영향을 미쳐 생산 유발 효과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수입품에 대한 과세 방식은 수입품을 구입하는 프랑스 소비자에게 더 많은 부담을 안겨줄 뿐이다. 이는 기업의 사회보장분담금을 인하해주기 위해 가계 소비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조처나 다름없다.

소비세 인상은 환상에 기초할 뿐 아니라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간접 과세가 역진세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저축보다 소비가 많은 일반 노동자 가정이 지불하는 간접세가 소득의 15%라면 부유층 가정은 소득의 7% 정도만 지불하는 셈이라서 공평한 세금 징수라 할 수 없다.(4) 결론은 간단하다. 국내 사회보장분담금을 외국 제품에 부과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간접세만 탐하는 우파와 중도파

토마 피케티, 카미유 랑데, 에마뉘엘 사에즈가 공저 <세제혁명을 위하여>(5)에서 제안하는 소득세와 CSG 통합 과세는 매력적인 면이 있다. 또한 이 제안이 담은 현 세제에 대한 비판적 내용에 상당 부분 공감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이들은 “공평하고 진보적이며 민주적”이라는 표어를 내세우고 있지 않은가? 2005년 사회당은 이 개혁안 원칙에 동의했다. 피케티와 그 동료들은 이 제안의 실행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들은 “현 소득세를 폐지하고 CSG를 확장한 개념으로 새로운 직접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금을 회피하는 다양한 구멍으로부터 과세표준을 보호할 수 있으므로 세금 징수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과세표준을 확대하면 상속 재산도 그 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 방식은 일종의 원천징수로서 “납세자의 세금 납부를 간편화하는 동시에 납세 관리도 손쉬워지는 이점이 있다”는 게 피케티 등의 주장이다. 이들은 누진세 개념의 CSG에 매우 간단한 과세 산정 기준을 도입해 공평성을 높이려 한다. 통합 과세 개념은 각 가계의 직접세 할당액을 대대적으로 재조정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게 될까? 피케티 등은 새 시스템이 도입될 경우 각자 얼마만큼 개혁 효과를 보게 될지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는 간편한 도구를 제공하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소득세는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순간 결정적인 약점이 드러난다. 이를테면 CSG의 새로운 세금 징수 방식은 결국 새로운 누진 소득세가 돼버린다. 마치 CSG는 좋은 세금 징수 방식이고 소득세 세수가 감소하는 건 그 개념 자체에 이미 예비돼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논리의 비약이 아닐 수 없다.

현재 투자수익, 이자, 배당금 등은 엄청난 세제 특혜를 누리고 있다. 프랑스 국민경제 회계 자료에 따르면, 전체의 80% 정도가 다양한 방식으로 누진세 징수를 피해가고 있다. 또한 피케티가 제시한 통계에 따르면 60% 정도가 CSG 지불을 회피한다. 이런 상황에서 과세표준을 투자소득을 포함해 20% 높인다고 해서 이 새로운 과세 방식을 ‘프랑스 세제 현대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시도’라고 치켜세울 수 있을까?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CSG 세수의 90%가 근로소득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세제개혁이 재산소득 과세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것이 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보장분담금 건드리면 안 돼

소득세 면제 대상 노동자의 경우를 예로 들 수도 있다. 피케티 등은 갑자기 이들을 새로운 세금의 부과 대상에 포함시키자고 주장한다. 그럴 경우 현재 소득세를 면제받는 1700만 명이 새롭게 납세자 명단에 추가될 것이다. 피케티 등은 이를 통해 “구호 대상자들을 납세자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새로운 과세가 임금 상승에 따른 것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저임금노동자들의 세후 소득 증가분은 근로소득장려금(PPE) 수령 여부와 CSG 납부액 감소분에 따라 결정된다. 저임금노동자들은 CSG 납부액이 8%에서 2%로 줄어 세금을 적게 낸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그럴 경우 근로소득장려금을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금 면제 혜택을 보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는 걸 소득세 과세 기준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오도해서는 안 된다. 진짜 이유는 저소득층의 확대, 임시직과 계약직, 실업 증가에 있다. 요컨대 노동자들이 가난해지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이런 상황에서 피케티 등이 주장하는 세제개혁이 소득세를 좀더 공평하게 걷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임금 구성은 개선하지 않으면서 단지 1700만 명 전부 혹은 일부를 납세 대상자로 편입시키기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원초적 불평등 줄이는 게 진짜 개혁

이들의 제안에서 발견되는 더 심각한 문제는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사회보장제도 성격을 바꾸려 한다는 데 있다. 사회보장 소득에 대한 과세는 사회보장제도의 국영화로 귀결된다. 피케티 등이 주장하듯 형식적으로 공동 운영 원칙을 견지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공공지출 예산이 부족한 시점이 왔을 때 사회보장기금이 국가 예산의 일부로 편입돼버릴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국가 예산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국가가 사회보장 지출을 보장하리라 기대할 수도 없다. 또한 CSG 통합 과세가 기업의 세금 납부액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업이 국민 연대에 기초한 사회보장 기여를 회피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파스칼 보는 2006년 치밀한 분석(6)을 통해 현재 경향이 “기업에 책임을 면제해줄 위험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특권 계층과 더 이상 직접적으로 사회적 혜택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납세자 사이에 격차가 벌어질 위험이 있다. 세금을 통한 사회보장이라는 본래 논리가 약화되는 것이다. 부유층은 이제 연대적 사회보장 범위를 줄여나가면서 ‘사회보장 참여’라는 시민적 의무를 민간보험을 통해 비켜가려고 할 것이다.

좀더 폭넓은 고찰을 위해 조세제도의 세 가지 기능을 환기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공익을 위한 비용 마련, 둘째는 불평등 교정, 셋째는 경제발전이다. 공공예산 적자를 해결하고 임금노동자의 구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임금노동자를 고려한 부의 재분배라는 문제를 비켜갈 수 없다. 재분배 시스템은 최근 최고 부유층을 위한 수많은 개혁 조치에 의해 약화되었지만 지난 경제위기의 여파를 최소화하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부유층을 위한 대표적 개혁 조치로 2007년 도입한 ‘일·고용·구매력 촉진법’(TEPA 혹은 Paquet Fiscal)과 ‘세금상한제’(Bouclier Fiscal)가 있다. 이 조치들은 매년 730억 유로 세수 감소를 초래하는 현 조세 시스템 전체가 가진 문제에 비하면 일부에 불과하다. 유일한 해결책은 각 납세자의 납부 능력을 고려한 누진세 제도를 재확립하는 것이다. 소득세 개혁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이런 개혁은 충분한 부의 창출이 전제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소득을 재분배하는 건 좋다. 그러나 세금을 부과하기 전에 원초적 소득, 임금, 이윤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 더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 이 ‘원초적 분배’는 갈수록 불평등해지고 있다. 불평등은 세금 인상만으로 시정할 수 없다.

자본소득 과세 강화가 해법

민간 기업의 부가가치 전체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감소하고 이윤이 차지하는 비율은 증가한다. 배당금만 보더라도 엄청난 액수 앞에서 경제 활성화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은 의미를 잃는다. 프랑스에서 지급된 배당금 총액은 1982년 GDP 대비 3.2%에서 경제위기 직전인 2007년 8.5%까지 증가했다. 액수로는 800억~1천억 유로에 달한다.(7) 현실적으로 이 중 GDP 5% 정도 금액은 임금과 사회보장을 위해 회수돼야 한다. 고용 촉진 정책, 근로소득 우대 정책, 임금 인상 등이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세금은 경제적으로 중립적일 수 없다. 세금은 무엇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 각자가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지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환경보호를 장려하거나 오염을 억제하기 위한 조세정책이 실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경제적·사회적 차원에서 같은 식의 조세정책은 펼 수 없을까? 지금까지 제출된 여러 가지 제안 중에서 반드시 필요한 몇 가지를 꼽아보자. 노동 불가능 인구를 지원하기 위한 재산소득과 동산소득에 대한 과세, 기업의 이익 배정 방식에 따른 법인세 조정, 계약직 고용을 남용하는 기업에 실업수당 분담금 부과, 금융자산을 소유한 기업에 사회보장기금 부과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금융시장 확대 억제, 생산 부문에 대한 은행 투자 확대, 조세천국 단속, 초과 이득 과세, 고용 창출과 임금 인상에 기여한 기업 우대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 이 중에는 전 유럽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정책도 포함된다. 이 정책들은 어떻게 하면 가용자본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공평하게 소득을 재분배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요컨대 소득세 개혁과 함께 법인세(IS) 개혁도 동시에 진행해야 하며, 더 넓게는 기업의 사회보장분담금과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글•장크리스토프 르 뒤구 Jean-Christophe Le Duigou
<세금의 재발명>(Syros-La Découverte·파리·1995), <연금을 방어하기 원하는 이들을 위한 소책자>(L‘Atelier·파리·2010) 등의 저서가 있다.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프란츠의 레퀴엠> 등이 있다.

<각주>
(1) 세금이나 공제액 계산을 위한 기준 소득(혹은 재산).
(2) 당시 국회 금융위원회 위원장 디디에 미고가 발표한 자료, le Monde.fr, 2008년 6월 5일.
(3) ‘사회소비세에 대한 비방을 멈춰라’, <Le Figaro>, 2011년 2월 2일.
(4) Ruiz N., Trannoy A.(2007) ‘간접세의 재분배 효과’, <Synthèse et perspectives>, 마르세유, Institut     d’économie publique.
(5) Thomas Piketty, Camille Landais, Emmanuel Saez, <세제혁명을 위하여: 21세기의 새로운 소득세>, Seuil, 파리, 2011.
(6) Beau P., <Espace social européen>, n°756, 2006년 2~3월.
(7) 프랑스 국민경제 회계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