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인증받은 음악
볼리비아 칼라와야족의 안데스 세계관(전통의술), 피자이올로 나폴리 피자 요리기술, 보스니아-헤르체코비아 오즈렌 산에서의 허브 채집,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의 눈사태 위험 관리, 이 4가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의 무형문화유산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의 범주는 넓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이란 “공동체와 집단이 자기들의 환경, 자연과의 상호작용, 역사변천 과정에 발맞춰 끊임없이 재창조하면서 세대를 거듭해 전승한 것으로 그들에게 정체성과 지속성을 부여함으로써 문화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류의 창조성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1) 다시 말해 전통 기술, 구전 전통,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 등이다. 2008년 개설된 무형문화유산 제도는 성공을 거뒀고, 현재 122개국의 500개가 넘는 전통문화가 무형문화재로 등재됐다.
“정치인의 호의를 받아주지 마세요”
그런데 등재 여부는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그리고 목록에 등재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프랑스의 사례를 예로 들면, 대대로 이어져 온 오뷔송의 태피스트리와 알랑송의 자수 레이스 공예술은 보호받아야 마땅한 장인의 기술이라고 여겨졌고,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면 음악, 음악 관련 행위의 경우에는 좀 복잡하다. 그런데 목록에 등재된 무형문화 중 1/3 이상(176건)이 음악과 관련된 것이다. 어떤 음악을, “세대를 거듭해 전승되며, 정체성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간주해야 하는가?
유형문화유산(쇼베 동굴이나 건축가 오귀스트 페레의 르아브르 등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은 자문기구가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반면 무형유산의 경우 유네스코는 공동체 내부의 전문적 소견을 중시한다. 전통문화 전승자들은 주로 협회를 설립하고 공동체 다수가 해당 전통문화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목록 등재를 지지함을 입증하는 등 필요한 서류를 제출해 문화재청에 등재희망 신청을 한다. 문화부는 연고주의와 상업주의적 계산 등 정치적 잣대로 이 중에서 무엇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신청할지 결정한다.
2008~2001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분과장을 지낸 인류학자 세실 뒤벨은 무형문화유산 등재는 “결국 해당 정부에 정치적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협약의 목적에 반하는 일”이라며 개탄했다.(2) 밥 말리도 <레볼루션>(1974)에서 “정치인이 당신에게 호의를 베풀게 두지 마세요. 영원히 당신을 통제하려 할 거예요”라고 노래했다. 2018년 11월 자메이카 레게가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레게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자메이카 관광업에 더욱 크게 기여할 수 있게 됐다. “보크사이트(자메이카에서 많이 산출되는 알루미늄의 원료) 국영산업이 어려워지고, 레게가 수익성이 더 좋다는 점을 깨닫기 전까지 자메이카 정부는 몇 년 동안이나 이 음악을 금지하려고 했잖아요.” 도툰 아데바요 BBC 진행자는 2018년 12월 1일자 <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목록 등재’라는 타이틀은, 그 대상을 관광상품이자 민속적인 유산으로 인식시키는 요인이 됐다.
그렇지만 (예상 가능한) 관광상품화보다 중요한 것은, 이 음악과 신청집단에 문화유산 등재가 의미하는 바다. 1백여 개 단체가 모인 ‘전통 음악과 무용 실연자 협회(FAMDT)’는 유네스코의 목적에 충실하다. 하지만 프랑스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3가지 음악 실연자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2009년 등재된 레위니옹섬의 ‘말로야’와 코르시카섬의 ‘르 칸투 인 파지엘라’, 2014년 등재된 과들루프섬의 ‘그오카’, 이 세 음악이 속한 공동체는, 맥락과 수위는 다르지만, 한목소리로 프랑스 본토 중심 제도에 반감을 표시하고 있다.
‘노예들이 부르던 음악’이라 비난받기도 한 ‘말로야’는 한때 금지곡이었고, 레위니옹공산당(PCR)의 지지를 받던 1959년부터 1981년 사이에는 정부 당국의 강한 의혹을 사기도 했다. PCR의 설립자이자 1998~2010년 지방의회 의장을 역임한 폴 베르제스는 ‘레위니옹 다문화전당(MCUR)’ 설립 계획에 힘입어 말로야의 문화유산 등재를 지지했다. 말로야의 문화유산 등재 계획의 실질적 책임자였던 카르파냉 마리무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말로야 전승자들이 자부심을 느끼려면 제3자, 즉 유네스코가 필요했습니다. 그전에는 교육기관, 행정기구, 부르주아 등은 물론 프티부르주아가 된 자기 자식들에게도 멸시를 당했으니까요.”
▼ 레위니옹 섬의 말로야 영상, 출처: UNESCOFranch
“문화유산에 등재돼서 좋을 게 없다”
우파가 집권하면서 MCUR 설립 시도는 불발됐고, 말로야 문화유산 등재에 집중됐던 관심도 시들해졌다. 현재 말로야가 널리 연주되고 다양한 퓨전 음악으로 재탄생되고 있는 상황과 문화유산 등재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연구결과는 없다. 가장 유명한 말로야 연주자 다니엘 와로는, “문화유산 등재가 중앙정부의 통제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꾸준히 비난해왔다. “지원을 거부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관광객들에게 의존하고 싶지 않다는 말입니다. 공화국은 우리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말로야는 기본적으로 반항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문화유산 등재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계속 연주하고 노래하고 전수하고 투쟁해야 합니다.”
과들루프섬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오카는 정체성을 표현하는 음악입니다. 노예와 주인의 정체성을 동시에 담을 수는 없지요.” 현 과들루프 지방의회 의장(좌파 ‘디베르 고쉬’당)이자 그룹 솔레 느웨의 25대 보컬리스트인 장클로드 넬슨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문화유산에 등재돼서 좋을 게 없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격렬하게 비판했다. “긴급보호가 필요하지 않은 그오카가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오히려 박제화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다행히 젊은이들이 그오카에 관심을 두고 전승하면서 재창조하고 있지만, 문화유산 등재가 여기에 기여한 바는 전혀 없어요.”
▼ 과들루프 섬의 그오카 영상, 출처: UNESCOFranch
같은 맥락에서 뤽 샤를도미니크 민족음악학자는 “인류학자들이 모두 문화유산 등재가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데 공감한다. 이는 문화유산에 대한 해로운 논의를 낳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샤를도미니크에 의하면, 전통주의자들이 애지중지하는 ‘진정성’은 특정 영역에 (프랑스 와인에 붙이는 원산지 통제 명칭 AOC처럼) ‘문화인증’을 부여하면서 ‘성역’으로 만든다. 따라서 그 ‘진정성’이란 ‘퇴보, 두려움, 이질성 혐오’와 동의어이며, 전통 음악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교류, 활기, 상호문화성(이문화간 상호관계성)’에 반하는 것이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유산 등재가 자부심을 느끼는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3)
문화유산 등재는 정치적, 상업적 수단화이자 ‘예술적 화석화’다. 하지만 유네스코는 선의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으며, 문화유산 등재가 전통음악들이 공동체 내에서 재생산되는 데 이바지하길 바라고 있다. 세브린 카샤 프랑스무형문화유산센터(CFPCI) 원장은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는 계승자들을 규합하고 정치력을 동원하며, 새로운 관객층을 확보하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것도 절차를 제대로 거쳤을 때 기대할 수 있는 효과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수단은 어떤 것도, 특히 공공지원을 보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오카의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한 레프리즈단체를 설립한 펠릭스 코틀롱이 만든 생트안 그오카 페스티벌에서 여전히 지원금이 줄었다고 개탄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과들루프 지방의회는 얼마 전 그오카 보존계획 재개 의사가 있는 기업들을 상대로 사업참여에 대한 입찰을 진행했다.
문화적 특수성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코르시카섬에서도 여러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데, 자금 문제보다 심각한 것은 ‘전승’ 문제다. 3~4명이 부르는 합창인 ‘르 칸투 인 파지엘라’는 무형문화유산 긴급보호목록에 등재됐다. 등재 희망자가 많은 긴급보호목록에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60개 미만의 무형문화가 등록돼 있고 프랑스에서는 파지엘라가 유일하게 등재됐다. 여기에 등재되면 전문감정과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문화부는 2015년부터 ‘르 칸투 인 파지엘라’ 단체에 연간 4만 5,000유로를 지원해왔는데, 이 돈은 주로 학교에서 활동하는 6명의 ‘전승자’들에게 지급되는 급여로 쓰인다.
1970년대부터 그룹 ‘칸타 우 포풀루 코르수(노래하는 코르시카인들)’와 함께 코르시카어 민요부흥에 힘써온 페트루 구엘푸치는 ‘파지엘라’ 보존사업에도 초창기부터 매진해왔다. 그는 2018년부터 단체 내부분열로 재정지원 협약이 갱신되지 않아 무료봉사를 하고 있지만, 다양한 시도들로 10년 이내에 숙련된 전승자들을 300명에서 600명으로 늘릴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구엘푸치는 “파지엘라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면, 단순히 금전적인 문제는 아니다”라면서 설명했다. “코르트 인근에 있는 제 고향 세르마뉘에서는 저녁 모임 자리에서 어른들이 노래를 부르시면 그걸 듣고 배웠습니다. 이제 어른들 대부분이 돌아가셨고, 청년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삶과는 양립하기 어려운 도시적 생활양식을 선호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아직 믿음을 잃지 않았어요. 우리가 방문하는 학교 복도에서 학생들의 합창 소리가 들려오기도 합니다.”
이 상황을 계기로 작가이자 민속학자인 미셸 레리스가 1950년부터 강조했던 바를 환기해보자. “모든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 문화의 매개가 되는 인간집단이 재생산될 때마다 꾸준히 갱신된다. 그러므로, 한 사회의 문화적 특수성을 보존하려는 의지는 의미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문화의 생애 자체에 도전하는 셈이다.”(4)
유네스코는 초기에 수백 건의 등재신청을 처리한 이후에 한 국가가 2년에 한 번, 하나의 문화유산을 등재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을 변경했다. 그 후로 등재속도가 한층 완만해졌다. 그러나 국가별 신청 제한은 다국적 사업에는 적용되지 않는 까닭에 1950년대 바르셀로나에서 형식이 완성된 음악 장르인 카탈루냐 룸바가 신청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됐다. 옥시타니아 지방에서 ‘카탈루냐 룸바 프랑스-스페인 연합 사업’을 이끄는 에르베 파랑은 스페인 집시들에게 문화유산 등재가 가질 의미를 강조했다.
“별로 위험할 것도 없어요. 룸바라는 음악은 정형화될 수 없으니까요. 생활방식을 사회에 맞게 적응하는 집시들처럼, 룸바도 끊임없이 틀에서 빠져나올 거예요”라고 촌평했다. 하지만 룸바 역시 몇 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문화부에 신청 대기 상태인 서류가 10개 정도 있는데, 그중 전통 음악에 관한 것은 없다.
프랑스가 다음번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신청을 하려는 것은, 마르티니크섬의 전통 소형보트 ‘욜’과 바게트(빵)다.
글·에릭 델아예 Éric Delhaye
기자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 허보미
번역위원
(1)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은 2003년에 비준됐다.
(2)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인용구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가져왔다.
(3) Luc Charles-Dominique, ‘La patrimonialisation des formes musicales et artistiques. Anthropologie d’une notion problématique (전통 음악과 예술의 문화유산 등재, 논쟁적 개념의 인류학)’, <Ethnologies>, vol. 35, n° 1, 퀘벡, 2013.
(4) Michel Leiris, ‘L’ethnographe devant le colonialisme(식민주의를 바라보는 민족학자)’, <Les Temps modernes>, n°58, Paris, 1950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