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라는 이름의 지위

2020-01-31     니콜라 카스텔 외

연금 개혁은 어디로

 

역대 정권들이 연금개혁을 추진한답시고, 오히려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것은 모순이다. 100세대를 맞이해 인간의 수명, 노동시간, 그리고 남은 삶의 질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연금체제를 전면적으로 재정립해야 할 때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이번 ‘연금개혁’ 도시에는 공무원 및 교원군인 연금 수급액이 용돈에 불과한 국민연금에 비해 6~8배 수준이고, 그나마 그 적자폭을 국민 혈세로 채워주는 우리 현실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일깨워준다. (편집자주)

 

30년 동안 숱한 반론이 있었지만, 프랑스 내에서 연금은 여전히 급여의 연장선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인식은 계속해서 지켜지고, 전파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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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이 오랫동안 대립해왔다. 첫 번째 관점은 1853년 공무원연금 체계에서 태어난 것으로, 퇴직연금을 급여의 연장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퇴직자들은 고용시장에서 해방된 노동자들인 것이다. 두 번째 관점은 1850년 노령연금공단(CRV)의 설립과 더불어 등장한 것으로, 퇴직연금을 분담금에 대한 대가로 여기는 것이다. 

현재는 첫 번째 관점이 주류를 이룬다. 1946년 노동자들이 관리하는 통합 일반사회보장제도가 수립되면서(1) 공무원 퇴직연금 체계가 사기업으로까지 확장됐다. 일정 연령이 되면 최저수당이 지급되는 동시에, 퇴직연금이 기준급여를 대체한다. 이때 받는 최저 퇴직연금은, 수급 대상자가 납부한 분담금의 액수와는 무관하다.

일반사회보장제도 내 퇴직자들은 프랑스 사회보장이 지정한 상한 소득의 절반을 한도로 하고, 해당 한도 내에서 연금을 수급할 수 있다. 2019년 해당 금액은 1,688.5유로다. 공무원과 법정직 종사자의 경우, 해당 금액은 총 노동기간 중 세전 급여 최고액의 75%다. 이렇게 전체 퇴직연금 중 75%(연 3,200억 유로 중 2,400억 유로)가 연금수령액이 된다.

 

퇴직자, ‘고용시장에서 해방된 노동자’

그러나 1961년 임금 노동자 보충연금협회(Arrco)를 통해 일반화된 사기업 노동자 보충연금의 작동방식은 다르다. 이 협회는 누적된 ‘점수’를 기반으로 가입자들에게 보충연금을 지급하던 당시 제도에 따라, 1947년 경영자들이 설립한 관리직 보충연금협회(Agirc)를 바탕으로 설립됐다. 기본적으로 퇴직자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관점에 따른 것이다. 퇴직자는 자신이 일했던 기간에 납부해 둔 분담금을 후불로 지급받는, ‘비경제활동인구’라는 관점이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연금 제도는 1990년대 ‘개혁’이 시작될 때까지 계속 급여권으로 작동했다. 정년퇴직한 사기업 노동자의 최종 실수령 급여를 최초 실수령 연금액으로 환산하는 방식은 1930년에 창안된 것이다. 그 환산 비율은 평균 84%에 달했다. 최종 실수령 급여액이 최저임금액과 같을 경우 100%, 3,000유로를 초과할 경우 60%로 지정한 범위 내 평균이다.(2) 이렇듯 퇴직자 급여 수급권은 (충분한 수급액을 보장했다는 점에서) 확실한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우파 보수주의자들은 물론, 좌파 보수주의자들도 맹렬히 반대했다.

1991년 미셸 로카르 당시 총리는 근속연수 40년 이상, 최고소득 기준 연도를 기존 10년에서 25년으로 수정해 연금을 계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3) 1993년, 후임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는 이 방안을 서둘러 강행했으며, 이후 행정부들도 이 조치를 강화한 결과, 연금액 평균 환산율은 과거 대비 10%p 하락했다. 30년의 개혁 끝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퇴직자들의 급여 수급권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연금 지급액을 축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속급여로서의 연금을 분담금 후불 지급으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일반사회보장제도와 공무원·정규직 연금 제도를 이와 정반대인 Agirc·Arrco의 형태에 따라 설계하겠다는 말이다. 

지난 30년의 실패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크게 보면 연금이 연속급여로서 자리 잡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노동자들은 두 가지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 연금액은 더 이상 늘릴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기준임금 환산액을 노동 기간에 따라 산출하는 방식은, (출산 등으로 평균 노동 기간이 짧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매우 불리하다는 것이다. 현 연금체계 하에서 25%p에 달하는 성별 임금 격차는, 노동 기간에 따라 산출할 경우 40%p로 심화된다. 개혁이 시행되지 않아도 성별 연금격차는 이미 30%p에 이르고 있다. 이는 구조적 변화의 필요성을 시사한다.(4) 게다가 퇴직연금을 노동 기간에 맞춰 조정한다는 발상은 퇴직자를 ‘고용시장에서 해방된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퇴직자들이 현재의 가치 생산에 기여한 만큼 퇴직연금을 받기 때문에, 과거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셈이다.(5)

 

50세, 노동에서 해방돼야 마땅한 나이

우선, 급여권 수급 연령이 앞당겨져야 한다. 예를 들면 수급가능 연령을 50세로 앞당기는 것이다. 선원, 광부 또는 국영철도청(SNCF)과 파리대중교통공사(RATP) 공무원 일부(6)가 획득한 하한 퇴직 연령 50세는, 노동자가 해고의 위험과 재취업의 어려움을 강하게 겪는 시기다. 직업상 휴식이 필요한 시기일 수 있고, 고된 업무와 교대근무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시기이며, 비교적 좋은 직장에서 일하는 이들도 경영진의 과도한 요구에 시달리는 시기다. 직책에 매인 노동자에게는 버티는 것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따라서, 50세는 노동소득자들이 고용시장에서 해방되기에 적합한 연령으로 보인다. 

이렇게 된다면 50세가 된 이들은 남은 삶이 다할 때까지, 매월 최소한 평균 임금(현재 실수령액 기준 2,300유로)에 해당하는 금액에서, 최대한 5,000유로까지 받아 생활할 수 있다. 이들은 평생 자격검정 시험을 거쳐 더 높은 급여를 받게 될 수도 있다. 연금수급액을 근속연수, 분담금 납부 분기수 등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퇴직은 경제활동의 끝이 아니라, 자유로운 경제활동의 시작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이 경제활동에 대한 급여는 더 이상 고용주나 기업이 아닌 사회보장 금고에서 지급될 것이다. 

이 구체적인 유토피아는, 권리와 책임의 측면에서 자본주의와는 상반된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생산적 노동이 노동자와 무관하다. 노동자가 생산자로 인정되지 않고 노동력 판매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자본가가 조직하는 생산적 노동에 대해 그 어떤 책임도 행사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특권을 쟁취하려면, 이에 앞서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쟁취해야 한다. 50세부터 급여권을 부여하는 통합체제는, 노동자와 생산목적·생산도구 사이에 놓인 장벽을 부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노동의 인류학적 가치는 단지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효용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재화와 서비스가 창출한 경제적 가치에서도 생겨난다. 퇴직 시 생산적 노동에 종말을 고하며 노동의 인류학적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여성 노동자에게 주로 가해졌던 폭력적 차별을 이제 노령자에게도 가하는 것이다. 퇴직자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퇴직 이후의 삶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1970년대 이후 출생한 대다수 노동자들이 겪었던 참담한 사회의 관문인, 취업 이전 성인기를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보편화해야 할 체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밑그림이 그려졌다. 모든 국민은 18세가 되면 선거권을 부여받으며, 그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생산도구 및 급여에 대한 권리를 부여받아 가치 생산자로 인정받게 된다. 시민이 된다는 것은, 국가에 세금만 바치며 포식자적 자본 논리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생산을 통해 공동의 책임을 수행하게 된다는 의미다.

퇴직자들은 이런 쟁취의 전위대가 될 수 있다. 50세부터 연금을 수령하면, 은퇴를 결정할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은퇴를 선택한 이들은, 수공예, 농업, 서비스 분야의 대안 기업에서 활동할 수도 있다. 젊은 퇴직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활용해 대안 기업의 경제적 지속성에 기여할 것이다. 이들의 급여는 대안 기업이 지급하지 않고 사회보장 분담금으로 대체될 것이다. 오늘날 수백만의 퇴직자가 비생산적인 존재로 취급받으며 자원봉사를 제안받는 것과는 다르다. 대안 기업은 노동자들이 왜, 무엇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공동생산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은퇴를 미루기로 결정한 이들은, 해고 위험으로부터 보호받는 노동조합 대표들과 비슷한 상황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 업무를 기획하는 자리를 맡게 될 것이다. 대안 기업 외에도, 자본주의적 경영방식에 따라 운영되는 대규모 조직에서도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자리를 쟁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험이 많고, 종신급여의 보호를 받으며, 해고의 위험에서 자유로운 노동자들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은 주주들의 이익을 위하는 임원진과 인간성이 결여된 경영에 대항해, 정면 대결을 펼칠 행동가들을 50대 퇴직자들 중에서 찾아낼 것이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퇴직연금을 둘러싼 갈등이, 이토록 큰 희망과 욕망의 싹을 틔우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글·니콜라 카스텔 Nicolas Castel
    베르나르 프리오 Bernard Friot

두 사람 모두 사회학자로, 니콜라 카스텔의 저서로는 『노동조합의 퇴직연금』(La Dispute, 파리, 2009), 베르나르 프리오의 저서로는 『노동, 급여의 쟁점』(La Dispute, 파리, 2019)이 있다.

번역·문수혜 souhait.moon@gmail.com
번역위원


(1) Bernard Friot, Christine Jakse, ‘Une autre histoire de la Sécurité sociale 사회보장의 또 다른 역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5년 12월호
(2) Conseil d’orientation des retraites, 『Retraites: renouveler le contrat social entre les générations 퇴직연금: 세대 간 사회 계약 갱신하기』, La Documentation française, 파리, 2002년.
(3) Commissariat général du Plan, 『Livre blanc sur les retraites. Garantir dans l’équité les retraites de demain 연금 백서: 미래의 퇴직연금을 동일하게 보장하라』, La Documentation française, 1991년. 
(4) 이 수치는 다음 기사를 참고한 것으로, 최신 수치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Carole Bonnet, Sophie Buffeteau, Pascal Godefroy, ‘Les effets des réformes des retraites sur les inégalités de genre en France 연금 개혁이 프랑스 내 성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 <Population>, vol. 61, n°1, 파리, 2006년.
(5) Bernard Friot, ‘Retraites, un trésor impensé ‘연금’은 ‘고용’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을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0년 9월호.
(6) 군인, 파리 국립오페라 소속 무용수, 3자녀 공무원은 특정 조건에 한해 앞당겨 연금액을 확정 지을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