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도 미룰 수 없는 은퇴날짜

2020-01-31     다니엘 리나르 l 노동사회학자

점점 높아지는 노동 강도는 노동자들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우리는 왜 이토록 많은 노동자들이 은퇴일 연장에 반대하는지 알 수 있다.

 

지난 12월에 일어난 프랑스 파업 사태를 보면, 그 엄청난 규모와 참가자들의 다양성에 놀랄 만하다. 청년층과 노년층, 변호사, 아티스트, 교사, 항만노동자, 철도종사자, 기업 간부, 종업원, 의사, 간호사, 소방관, 음악가, 우체부, 대학생, 고등학생, 세관원 등이 파업에 동참했다. ‘노란 조끼’ 시위 발생 1년, 잠잠해질 무렵 이번 파업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1) 

마크롱 정부는 ‘노란 조끼’ 운동 참가자를 비롯한 노조원들을 소외시킴으로써 어느 정도 승리했고, 재정 조치 및 시민과의 협의를 통해 대중들의 분노를 잠재웠다고 생각했다. 마크롱 정부는 추가 노동 수당 배제, 최저임금 인상 억제, 일부 은퇴자들을 위한 사회복지기여금(CSG) 인상철회 등을 통해 103억 유로를 사실상 양보하지 않았다. 

이토록 국민들과 싸우는 프랑스 대통령도 드물 것이다. 사실 그동안 뉴스 채널에서 노골적으로 부각한 마크롱 대통령의 이미지는 전혀 달랐다. 항상 연대하고, 셔츠 차림으로 서서 빽빽한 군중들 앞에서 경청하고, 기록하고,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하고, 설명하는 이미지였다. 따라서 프랑스 국민의 의견은 ‘대 토론장’을 통해 잘 수용되는 듯했다. 이 토론장은 온라인플랫폼을 통해 모인 시민들의 후원금과 코뮌에서 마련해준 회의장, 청원서를 통해서 열렸다. 

그렇다면 왜 연금개혁안에 관한 ‘합의’가 이뤄진 지 2년이 지난 이 시점에, 노동자들은 이토록 맹렬하게 대규모 파업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왜 이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일까? 사실, 많은 프랑스인은 마크롱의 ‘우파도 좌파도 아닌’ 성향이 완전한 관료주의로 변했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그의 관료주의 사상 속에서, 많은 정책 기조가 시장원리에 맡겨졌고, ‘변화’가 발전을 대신했다.

일각에서는 노동조합들, 특히 ‘개혁파’로 분류되지 않는 사람들을 시대착오적인 부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철저한 경쟁으로 점철된 사회 속에서, 정부가 놓은 ‘노동자들끼리의 대립’이라는 덫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정부는 그동안 노동자들에게 공무원들의 ‘특권’과 특별제도 수혜자들을 고발하느라 바빴지만, 이제 대다수의 프랑스 국민들은 공공기관의 유용성과 열악한 노동환경, 낮은 임금수준에 대해서 알게 됐다. 

또한, 이들은 소위 ‘할아버지’ 조항에 격분하고 있다(프랑스 정부는 운동의 분열을 노리고 1975년 이후 출생자에게만 바뀐 연금제도를 적용하겠다고 말을 바꿨다-역주). 노동조합들은 자신들의 요구사항과 “좌시하지 않겠다”라는 의지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결집력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으며, 노동조합의 행위가 적법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230만 노동자,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려

‘노란 조끼’ 시위 참가자들은 사회적 관계의 가치와 연대의 기쁨, 희망을 공유하는 방법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퇴직연금 개편에 맞선 파업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때때로 발끈하면서도 단호하고 냉철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연대하고 배려할 것을, 그리고 용기를 잃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사실 ‘블랙 블록스(프랑스 정부에 대한 시위를 주도하는 급진세력-역주)’의 등장, 무력진압의 위험을 무릅쓴 시위, 최루가스와 최루탄 속에서의 행진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마크롱 치하의 프랑스에서는 단지 노동자를 존중하라는 요구를 하는 것도, 허가받은 도로에서 사전신고한 시위에 참여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이다.

‘당신들은 주변 유럽국가 노동자들에 비해 운이 좋다’라고 말해도 이들은 이제 설득되지 않는다. 많은 프랑스인이 근무일 연장과 연금 삭감에 반대한다. 그리고 일은 더 길게 하고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더 적게 받으며 팍팍한 삶을 견디고 있는 타국 노동자들의 삶을 주시한다. 그들의 삶은, 프랑스 노동자들이 거부하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노동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은퇴하기를 원하며, 은퇴 연령 연장에 반대하고 있다.

사실 프랑스 국민들은 일할 때 노력을 결코 적게 하지 않는다. 이것은 정부와 경영인들이 요구이기도 하다. 유럽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은 다른 유럽국가 노동자들보다 노력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2) 이를 통해 자신의 능력치를 높이고 사회적 효용성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다. 따라서 노동에 희망을 잃은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노동의 비중을 낮게 매긴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스 필리퐁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프랑스에서 노동의 가치가 떨어지는 일은 없겠지만, 노동자들의 불만은 계속될 것이다. (…) 이제 노동자들은 노동에 희망을 걸지 않는다. 하루빨리 은퇴하기만을 원한다. 그들의 요구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3) 과도한 노동에 따른 증상으로는 기력이 소진되는 번아웃(Burn-out) 증후군, 일에 지루함을 느끼는 보어아웃(Bore-out) 증후군, 향정신성 의약품 복용, 자살 등이 있다.”

사실, 국가에서 진행한 통계조사 수치를 사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증상의 개념 자체에 논란이 있으며, 직업병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촉탁의나 중독치료 전문의, 위생안전노동조건위원회(CHSCT) 조합운동가, 일반의, 정신과 전문의 등 현장에서 종사하는 주역들은 노동자들이 느끼는 증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역시 마리 프제(Marie Pezé)가 고안해낸 ‘고통과 노동’ 상담대상에 속한다. 2014년 테크놀로지아 직업위험 평가 전문기관이 발표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약 320만 명의 노동자들이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제활동인구의 12%에 해당하는 수치다.

 

프랑스 국민의 54%, 파업 지지

1968년, 프랑스 국민은 전 세계에서 테일러식 노동조직과 규범에 가장 강력하게 대항하는 사람들이었다(공장을 점거하고 3주간 파업한 바 있다). 이들은 “삶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삶을 더 이상 허비할 수 없다”라고 외쳤다. 또한, 자신들이 기여한 노동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의미한 노동’을 원했다. 그래서 ‘전철-노동-수면, 이젠 지겹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고용주들은 ‘노동의 개별화’라는 전략을 내놓았다. 노동자들과의 알력 다툼에서 흐름을 뒤집고, 이들을 종속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전략대로 이제는 절차, 모범사례, 방법론 등 프로토콜과 감시라는 명목하에 직업 활동을 규정 및 결정하고 있다.(4) 또한 ‘경영’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의 종속이 은밀하게 이뤄졌다. 노동시장의 현실과 동떨어진 ‘전문가’가 내놓은 규범에 따라, 노동자들은 적합하고 기능적인 판단력을 제공해야 한다. 게다가 상여금, 임금, 경력을 위해 모든 이들과, 심지어는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면, 최고가 돼야 한다. 그리고 한계를 극복하며 안주하지 않아야 한다.

이처럼 높아지는 목표치와 쏟아지는 혁신정책에 따라, 노동자들은 불안을 느낀다. 그 누구도 자신의 경험과 축적된 지식을 믿을 수 없게 됐다. 따라서 각자의 일을 계속해서 재정비해야 한다. 2019년 5월에서 7월까지 오랑주 사(프랑스 텔레콤)를 상대로 열린 재판을 보면, 끊임없이 변화를 도모하는 정책이 어떤 참극을 가져왔는지 알 수 있다. 오랑주 사는 2만 2,000명의 ‘희망’ 퇴직자를 받아내기 위해 직원들을 자살에 이르게 할 만큼 괴롭혔다.(5)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과 공포, 노동의 가치를 위한 투쟁, 자신감 결여, 직장동료와 늘 경쟁해야 하는 현실은, 노동자들을 영원한 견습생으로 만든다. 이는 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며, 공무원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불안정한 삶으로 내몰리고 있다(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경제적 불안정에 노출되어 있기에 더욱 힘들다.). 노동시간이나 물리적인 요소 등을 종합해 볼 때, 노동자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노동자들이 은퇴일 연장을 용납하기란 쉽지 않다. 12월 초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프랑스 국민의 54%가 직접 동참하지 않아도, 파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6) 한편, 노동을 하되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기를, 노동을 하되 사회적 효용성이 유지되기를 원했던 사람들이 지쳐가고 있으며, 모욕감을 느끼고 있다. 이들을 이렇게 만든 노사 간 종속관계는, 언젠가 비난받게 될 것이다.  

 

 

글·다니엘 리나르 Danièle Linhart
노동사회학자.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명예연구부장. 저서로 La comédie humaine du travail 노동의 인간희극,(Erès, Paris, 2015)이 있다.

번역·장혜진 hyejin871216@gmail.com
번역위원


(1) ‘Le peuple des ronds-points 로터리에 놓인 군중’, <마니에르 드 부아>, n°168, 2019년 12월-2020년 1월호.
(2),(3) Lucie Davoine, Dominique Méda, ‘Quelle place le travail occupe-t-il dans la vie de Français par rapport aux Européens? 유럽인들 중에서도, 프랑스인의 일생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Informations sociales>, n° 153, Paris, 2009년.
(3) Thomas Philippon, 『Le Capitalisme d’héritiers. La crise française du travail 후계자들의 자본주의. 프랑스의 노동 위기』, Seuil, coll. <La République des idées 사유 공화국>, Paris, 2007년 
(4) Alain Deneault, ‘Quand le management martyrise les salariés경영이 살인행위가 될 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8년 11월호.
(5) Danièle Linhart, “Appelez-moi maître… 나를 주인이라고 불러 주세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9월호.
(6) ‘Après les annonces d’Édouard Philippe, les Français soutiennent toujours les grévistes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의 발표 이후에도 프랑스 국민들은 여전히 파업 노동자 지지해’, <Le Journal du dimanche>, 프랑스여론연구소(IFOP) 조사결과, Paris, 2019년 12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