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록, 프랑스 은퇴자들의 자산운용사?

2020-01-31     실뱅 르데 l 사회경제과학 교수

공적연금보다 개인연금 비중이 낮은 프랑스의 현 퇴직연금 체제에 실망하던 거대 자산운용사들은, 마크롱-필리프의 연금개혁을 통해 자신들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마크롱 정부는 현재 42개에 달하는 민간·공공 퇴직연금들을 2025년까지 국가가 관리하는 단일 체제로 바꿀 예정인데, 자산운용사들은 이 단일 연금 운용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 역주)

 

뉴욕의 한 고급빌딩 1층. 디자인 부티크와 바에서 상류층 고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피아니스트의 즉흥연주가 흘러나온다. 자산운용사 블랙록 소유의 건물이다. 블랙록은 뱅가르, 스테이트 스트리트와 함께 자산운용사 ‘Big3’를 이룬다. ‘Big3’는 중국의 GDP와 맞먹는 15조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며, 미국 제1의 주가지수 S&P500 기업들의 주식 90%를 관리한다. 그러나 나머지 두 자산운용사는 거인 ‘블랙록’에 비하면 꼬마에 불과하다. 래리 핑크가 경영하는 블랙록은 총매출액이 120억 달러가 넘고, 6조 달러가 넘는 자산을 운용 중이며, 이는 프랑스 GDP의 2.5배가 넘는 수치다. 

블랙록은 대표상품인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통해 고객들로부터 위탁받은 막대한 자산을 전 세계 기업에 투자한다. 최소 600유로만 위탁하면 누구나 래리 핑크가 제안하는 2,378개의 다양한 투자상품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소규모 투자의 경우에는 전통적인 투자수수료의 10%만 내면 된다. 블랙록은 세계에서 가장 탄탄한 노르웨이 국부펀드 같은 대어도 놓치지 않는다. 

블랙록은 자산운용 시장에서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다. 블랙록의 독보적인 통찰력의 원천은 ‘알라딘’이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을 가진 슈퍼컴퓨터다. 동화 속 소년 알라딘은 램프에 갇힌 ‘지니’라는 요정을 만나면서 무한한 부를 얻게 된다. 래리 핑크의 ‘알라딘(Aladdin)’은 자산, 부채, 채권, 파생상품 투자 네트워크(Asset, Liability, Debt, Derivative Investment Network)의 약자다. 6,000개의 고성능 서버로 구성된 슈퍼컴퓨터인 알라딘은 매일 20조 달러를 관리한다. 2019년 3월 래리 핑크는 수백 명의 애널리스트들을 해고하고 알라딘에게 컨설팅을 일임할 것을 고려 중이라고 발표했다. 그만큼 알라딘은 유능하다. 

이처럼 알라딘이 막강해진 것은, 무엇보다 여러 정치지도자들이 알라딘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여러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재정시스템의 견고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알라딘에 관심을 쏟았다. 실례로, 2016년 유럽중앙은행을 위한 블랙록의 평가 비용은 8백만 유로에 달했다. 블랙록에는 팁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자 돈 퀴존스는 “블랙록이 네덜란드 중앙은행, 스페인 중앙은행, 아일랜드 중앙은행, 그리스 중앙은행에 해준 컨설팅은 돈과 정보보다 많은 것을 선사했다”라고 말했다.(1) 알라딘의 알고리즘은 금융시장에서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며,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부상했다. 

알라딘의 컨설팅에 따라 블랙록은 5개 대륙에 투자했다. 블랙록은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들의 지분을 40% 보유 중이다. 블랙록은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설립자보다 더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1만 7,000개의 이사회에 참석한다. 블랙록은 프랑스의 BNP, 악사, 르노, 부이그, 토탈, 비방디, 소시에테 제네랄의 지분을 5% 보유 중이다.

이런 문어발식 확장으로 블랙록은 일명 ‘공동소유(Common ownership)’라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공동소유의 목적은 동종업계에서 경쟁 중인 기업들의 자산에서 높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실례로, 블랙록 펀드는 화학기업인 바이엘, 바스프, 뒤퐁, 몬산토, 린데 및 프랑스기업 아케마, 에어 리퀴드의 주식을 적지 않게 소유하고 있다. 한 기업의 주주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다른 기업을 비롯한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블랙록에는 아주 쉽다. 여기서는 합병이 잘되게, 저기서는 배당금이 인상되게 만들 수 있다. 

 

세상을 ‘알리바바의 동굴’로, 래리 핑크의 ‘알라딘’

2016년 미시간 대학의 경제연구원 3명은 공동소유(Common ownership)에 관한 기사를 썼다.(2) 3명의 연구원은 상업 항공분야에서 블랙록이 주주로 있는 5개의 메이저 미국 항공사들에 의해 항공권 가격이 인상됐다고 밝혔다. 래리 핑크의 알라딘은 세상을 알리바바의 동굴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이 동굴 중앙에는 육각형(프랑스의 국토 모양-역주)의 보물이 숨어있을 것이다.

2017년 12월, 브루노 르메르 경제부 장관 주도로 개혁 프로그램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래리 핑크를 비롯한 금융계의 대표들을 여럿 만났다. 알랭 쥐페의 친구이자, 프랑스 가스공사의 전 대표로서 민영화를 주도했던 블랙록 프랑스 지사의 장 프랑수아 시렐리 대표는 2017년 공공서비스개혁위원회2022(CAP2022)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았다. 마크롱이 만든 CAP2022는 정부가 달성해야 하는 ‘지속적이며 의미 있는 경제 구조개혁’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3)

2019년 6월에 발간된 자료 ‘Pacte 법안(기업의 성장과 변화를 위한 정책): 은퇴연금 계획’(4)에서 시렐리는 정치적 논쟁에 끼어들었다. 그는 이렇게 기술했다. “개혁 성공이 중요하기 때문에, 개혁을 성공시킬 정책에 관한 조언을 드린다. 프랑스 정부, 고용주와 사원 대표에게 드리는 우리의 조언은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매력적으로’ 높이고, ETF 비중을 키우는 것이다. 정부의 목표는 임기 말까지 은퇴연금이 3천억 유로에 달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 정부에 유럽위원회 투자계획(Juncker plan)과 블랙록의 범유럽개인연금상품(PEPP)에 가입하도록 추천했다. 범유럽개인연금상품은 라트비아의 국회의원 발리디스 돔브로프스키가 밀고 있는 프로젝트로, 그는 프로젝트 전담 자산운용사로 블랙록을 선택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정부의 개혁안은 크게 3개의 축으로 재편됐다. 첫 번째는, 행정명령과 시행령을 통해 퇴직연금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세금우대책을 유지한다. 두 번째는, 금융교육의 일환으로 예금자가 미래소득을 계산할 수 있도록 애그리게이터-모의실험장치 유형의 디지털 대시보드를 만든다. 프랑스 노동자들의 직업역량 발전을 위해 투입되는 교육예산처럼 금융교육 예산도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퇴직연금의 자동 가입화다. 이는 정부가 바뀌더라도 연금 계획 실행에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지속성을 보장함은 물론, 기간 내 소요되는 비용 및 효율성을 평가할 독립적 기구를 설치함으로써, 연금개혁을 장기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다. 

2017년 고객들에게 보낸 연례서신에서, 래리 핑크는 블랙록이 그리는 미래를 이렇게 묘사했다. “국가는 더 이상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없으며, 보편적이고 장기적인 이익을 보장할 능력도 비전도 방법도 없다. 그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기업이다. 적어도 그 답은 기업 가까운 곳에 있다.”  

 

 

글·실뱅 르데 Sylvain Leder
사회경제과학 교수, 2016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쓴 『비판경제교과서』집필에 참여함.

번역·김영란
번역위원


(1) 돈 퀴존스, ‘Why's the world's biggest asset manager advising the ECB on the health of EU banks?’, <Wolf Street>, 2018년 10월 15일, www.wolfstreet.com
(2) 조세 에이자, 마틴 슈말츠, 이사벨 테쿠, ‘Anticompetitive effects of common ownership’, <The Journal of Finance>, vol. 73, n˚4, 버클리, 2018년 8월.
(3) 에두아르 필리프, <공공서비스개혁위원회 Action publique 2022 프로그램>, 국무총리실, 파리, 2017년 9월 26일.
(4) <Pacte 법안: 은퇴연금 계획>, 블랙록 프랑스 지사, 파리, 2019년 6월, www.BlackRoc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