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게이트, 탄핵 위기에 몰린 트럼프

2020-01-31     아롱 마테 l 언론인

민주당의 2020년 대선 공천후보 털시 게비드 하원의원이 러시아와 연계돼 있다는 힐러리 클린턴의 주장이 제기되는 가운데, 미 의회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나눈 통화내용이 결정적 단서였다.

 

‘러시아 게이트’ 종료 후 1일 만에 탄핵정국에 다시금 불이 붙었다. 7월 24일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국회 청문회 후 ‘러시아 게이트’는 일단락됐으나, 그로부터 24시간 후 트럼프는 민주당에게 또 한 번 탄핵의 빌미를 제공했다. 7월 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나눈 통화내용이 문제가 된 것이다. 통화 당시 트럼프는 - ‘러시아 게이트’의 시초가 우크라이나에 있었다고 믿었던 만큼 - ‘러시아 게이트’의 원인 규명을 위한 윌리엄 바 미 법무부 장관의 조사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의 협조를 부탁했다. 

그리고 조 바이든 전 부통령(2009~2017) 건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볼 것을 제안했다. 조 바이든은 민주당의 유력한 2020년 대선후보로,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대항마로 떠오른 인물이다. 그런데 이 바이든이 2014년 가스회사 부리스마를 수사했던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의 해임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부리스마는 조 바이든의 아들 헌터 바이든이 월 5만 달러라는 거액을 받고 재직 중인 기업이다. 

문제는 통화가 이뤄진 시점이다. 두 사람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를 보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통화를 나눴다. 통화내용도 트럼프 개인 변호사 루돌프 줄리아니의 우크라이나 내 여러 행보와 맞물린다. 이런 정황들로 미뤄볼 때 백악관과 정보국 내 고위 관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원조를 빌미로 정치적 ‘대가’를 얻으려 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런 우려의 목소리를 들은 (CIA 소속) 내부 고발자는 대통령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했고, 이로써 탄핵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워싱턴 정계에 태풍이 휘몰아친다. 

이 ‘우크라이나 게이트’는 여러 측면에서 ‘러시아 게이트’와 닮았다. 이번 ‘우크라이나 게이트’ 역시 국가 정보기관에서 대통령을 저격했고, 사건의 무대는 여전히 권력의 핵심부다. 트럼프의 외교 행보를 문제 삼는 민주당 지도부와 주요 언론사, 국가 안보 관계자, 공화당 네오콘 인사 등이 트럼프를 위시한 공화당 쪽 세력과 대립하는 구조가 또 한 번 반복된 셈이다. 그리고 두 스캔들 모두 냉전 논리가 깔려 있다. 2016년에는 러시아의 음모로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2019년에는 트럼프가 재선을 위해 정치공작을 벌이면서 동맹인 우크라이나를 버리고 적국인 러시아 편을 든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민주당으로서는 다시금 위험한 도박에 뛰어든 셈이다. 3년 전의 ‘러시아 게이트’도 결과적으로는 버니 샌더스에 반대하는 민주당 전국위원회의 기만을 드러낸 민주당 의원 이메일 유출 사건으로 모든 관심이 집중되며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 캠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역시 내부 주류 인사들 사이의 다툼이 정치권과 언론계를 물들였다. 그 결과, 정작 중요한 민주당 공천에 관한 관심은 뒤로 밀려나고 있다.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는 있다. ‘러시아 게이트’는 가상의 음모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지만, 우크라이나 건에서는 미 대통령의 비윤리적인 처사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설령 바이든 일가가 우크라이나에서 석연찮은 일에 개입돼 있었다 해도, 미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관련 조사를 부탁할 수는 없다. 따라서 내부 고발자가 밝힌 대로 트럼프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해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려 했다”라는 혐의는 조사를 받아야 마땅하다. 

 

여러 의미로 해석 가능한 통화내용

그러나 이것만으로 탄핵 발의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트럼프가 군사원조를 늦추면서 우크라이나를 압박해 바이든에 대한 수사를 종용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전화 통화가 이뤄지던 시점에서 트럼프는 이미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를 보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젤렌스키와의 통화에서는 이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군사원조 보류 결정에 대해 알게 된 것도 그로부터 한 달 이상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9월에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난 크리스토퍼 머피 민주당 상원의원 역시 CNN 방송을 통해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줄리아니 변호사의 요청과 군사원조 중단을 전혀 연관 짓지 않았다”라고 인정했다(2019년 9월 26일). 협박을 받았다는 당사자가 협박의 내용과 조건을 모르는데 어떻게 협박이 있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백악관의 통화녹취록도 트럼프가 젤렌스키에게 요구한 내용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주지 못한다. 트럼프의 모호한 발언은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바이든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는 젤렌스키에게 “법무부 장관(윌리엄 바)에게 최대한 협조를 해주면 좋겠다”라고 말한 뒤, 이어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윌리엄 바 장관은 바이든에 대한 수사의 가능성이나 우크라이나와의 접촉 가능성에 대해 대통령과 전혀 이야기한 바가 없다고 말했다.(1) 또 젤렌스키 역시 바이든 건에 대한 수사 압박을 받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관심을 가져 달라”는 표현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게다가 트럼프가 요구한 정치적 ‘대가’라는 것도 바이든 일가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러시아 게이트 관련 조사의 원인 규명을 위한, 바 장관의 조사에 협력해달라는 것이었다. 두서없는 내용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협조 요청이 무리는 아니었다. 2016년 대선 때 우크라이나 쪽 인사들이 트럼프 선거대책본부장 폴 매너포트에 관한 부정적인 정보를 폭로해 대선정국에 악영향을 미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를 협박하려 했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2016년 대선 당시 우크라이나의 개입에 대한 조사를 원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바이든에 대한 조사를 원했을 수도 있고, 혹은 둘 다 원했을 수도 있다. 바이든에 관한 조사는 물론 비윤리적인 행위임이 분명하나 (2016년 대선과 관련해) 우크라이나의 역할과 관련한 요청은 그 정당성이 인정될 수도 있다. 만약 트럼프가 - 군사원조를 지급하라는 의회의 재촉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 군사원조를 압박수단으로 삼고자 한 것이라면, 권력 남용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백악관에서 한번 만나자는 뜻을 슬쩍 내비친 것이라면, 트럼프의 발언을 크게 문제 삼을 수 없다. 

신기한 것은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무기를 가지고 탄핵이라는 초강수를 뒀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비윤리적이고 거침없는 언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거늘, 애덤 쉬프 민주당 하원의원은 어찌하여 이 통화상의 요구사항에 대해 “(대통령이) 저지른 가장 심각한 잘못”이라 말한 것일까?(2) 

이유는 간단하다. 미 정치권 수뇌부가 국민들에게 피해를 줬을 때 받는 타격은 적지만, 같은 정계 고위인사를 저격했을 때는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워싱턴 정계의 룰이 여실히 드러난 건 바로 워터게이트(1972~1974) 사건이었다.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지에서 자행된 대량살상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탄핵받은 게 아니었다. 닉슨은 상대편 후보 진영을 공격한 뒤 이를 은폐하려 했고, 탄핵절차도 그 때문에 시작됐다. 만일 민주당과 공화당이 이라크전에서 자행된 반인륜범죄를 좌시하지 않았다면,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엄연한 탄핵감이었다.

트럼프 정권하에서 민주당 지도부와 기자들은 국가안보라는 절대적인 사안을 무기 삼아 그에게 맞서고 있다. ‘러시아 게이트’ 역시 그렇게 시작됐다. 트럼프가 러시아에 대해 지나치게 호의적이라고 판단한 미 정보국이 트럼프를 크렘린궁의 조력자로 몰고 가면서 ‘러시아 게이트’가 촉발됐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게이트’ 역시 그 시작은 미국의 국가안보 기관이었다. 내부 고발자도 CIA 소속 요원이고, 정보가 유출된 곳도 백악관을 비롯한 고위 행정 당국이었다. 

게다가 이번 게이트의 핵심 인물로 손꼽히는 존 볼턴은 네오콘 세력으로서 2019년 트럼프에 의해 9월 NSC 보좌관직에서 경질됐다. <워싱턴포스트>지는 볼턴이 우크라이나와 이야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줄리아니 변호사가 끼어든 사실을 알고 난 뒤 “격분”했다고 보도했다.(3) 따라서 그가 한 측근 인사에게 백악관 변호인단에 대한 자신의 우려를 전했을 수도 있다.

 

민주당이 트럼프를 낙마시키고 싶다면

반(反)트럼프 세력이 비단 대통령의 부패만을 우려하는 것은 아니다. 낸시 펠로시 연방 하원의장은 “이 모든 일에 러시아가 어느 정도 연계됐을” 가능성을 경고했다.(4)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를 중단함으로써 우크라이나를 위험에 빠뜨리고, 따라서 이로써 러시아에 힘을 실어줄 계산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를 보류한 것은 트럼프가 처음은 아니었다. 끔찍한 전쟁에 간접적으로 가담하는 것을 우려한 오바마 전 대통령 역시 대 우크라이나 군사원조를 촉구하는 고위 관계자들의 압박에 저항한 바 있다. 트럼프도 오바마 때와 같은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의심받고 있다. 러시아에 대해 호의적인 수준을 넘어서서 공모 중인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렇듯 냉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군사 ‘스캔들’로 대통령을 공격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와의 관계는 물론 2020년 대선 승리에 대한 희망까지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앞서 촉발된 ‘러시아 게이트’의 결말은 모두가 똑똑히 지켜봤다. 3년 동안 루머와 거짓 특종만 난무하다가 결국 러시아와의 공모 가능성을 모조리 일축하는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았던가.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낙마시키고 싶다면 ‘러시아 게이트’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의혹과 관련한 언론 공세로 이미 사람들의 관심은 국내외에서 드러난 트럼프 정권의 실책이 아닌 엉뚱한 데로 쏠리고 있다. 게다가 탄핵이 좌초되면 트럼프는 처음부터 자기 말이 맞지 않았냐며 만방에 떠들어대지 않겠는가?

 

바이든 스캔들까지, 민생은 뒷전으로

어쩌면 ‘우크라이나 게이트’를 이용해 트럼프를 저지할 수도 있다. 트럼프와 줄리아니에 대한 모든 의혹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헌터 바이든 건과 관련해 드러난 사실들도 이미 충격적이다. 헌터 바이든은 우크라이나와 관련한 경력이 전무한 상태에서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기업 이사직을 맡았다. 그것도 전직 부통령이었던 부친이 키예프 정부를 무너뜨리는 쿠데타를 지지한 후 몇 달 만에 이사로 부임 됐다. 민주당 쪽에서 대통령의 사적인 직권 남용을 지적할 때, 대통령 역시 민주당의 직권 남용 의혹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게다가 언론에 등장한 헌터 바이든의 모습도 상황을 진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충격을 선사했다. 

그는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한편, 아버지 덕택에 유리한 직위에 오를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후회가 되는 부분은 부친의 정치 행보에 미칠 위험성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향후 바이든 부자를 조사하고 민주당의 위선을 규탄할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탄핵 기각 쪽으로 표를 던질 공산이 크다. 탄핵이 기각되면 트럼프는 이를 다시 자신의 무고함에 대한 새로운 증거로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ate Again)’라는 자신의 구호에 대항하기 위한 민주당 ‘그림자 정부(Deep state)’ 공작의 또 다른 증거로 이를 몰아갈 것이다. 

‘러시아 게이트’가 진행된 3년 동안 국가안보 당국자들의 이해관계는 2016년 트럼프 대통령에게 밀린 민주당 신자유주의 세력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었다. ‘서민층을 옹호한다’라는 백만장자에게 힐러리 클린턴이 패배한 후, 민주당 내부에서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트럼프에 대한 음모론이 제기되면서 민주당 중진들은 이런 당적쇄신의 요구를 피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게이트’도 ‘러시아 게이트’와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동시에 민주당 경선의 물을 흐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미국에서는 전 국민 공영 의료보험 제도에 대한 논의나 교육문제, 기후변화 문제, 혹은 군국주의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논의보다도 여야 간의 대치국면에만 휩싸이며 국민과 민생 사안이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다.  

 

 

글·아롱 마테 Aaron Maté
언론인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번역위원


(1) ‘House launches Trump impeachment inquiry’, Cable News Network (CNN), 2019년 9월 26일. www.cnn.com 
(2) CNN, 2019년 9월 25일.
(3) Greg Jaffe & Greg Miller, ‘At least four national security officials raised alarms about Ukraine policy before and after Trump call with Ukrainian president’, <The Washington Post>, 2019년 10월 11일. 
(4) MSNBC, 2019년 9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