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법부가 정한 서로 다른 목숨의 무게

피해자 보상 기준을 둘러싼 논란

2020-01-31     샤를로트 르코키용 l 기자

누군가 피해를 입었을 때, 법원은 그가 받을 보상금을 결정한다. 미국의 경우, 피해자의 임금이나 기대수명 등을 고려해 보상금을 산정한다. 사회적 불평등은 여기에서도 예외가 없다. 공증인이 간호사보다, 백인이 흑인보다, 남자가 여자보다 많은 보상금을 받는다.

 

2011년 5월, 남편과 함께 뉴욕 브루클린의 새로 리모델링한 아파트로 이사 온 니키 허낸데즈애덤스는 임신 중이었다. 15개월 후, 그녀는 정기검진 중에 아이의 혈중 납 농도가 높아 치료할 수 없는 수준으로 건강이 악화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허낸데즈애덤스는 집주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손해배상금(징벌적 손해배상)(1)을 받기로 했다.

3년에 걸친 지난한 법정 투쟁 끝에 허낸데즈애덤스가 승소했다.(2) 법원은 원고(피해자)에게 지급할 보상금 액수를 결정해야 했다. 이때 판사와 배심원은 예상 치료비와 장례비, 물질적 손해와 부상, 장애, 사망에 따른 소득손실 등을 산정하기 위해 원고와 피고가 각각 고용한 전문가들의 증언을 참고한다. 전문가들은 보상금 산정의 근거로 소위 ‘객관적인 기준’, 즉 피해자(아동일 경우 가족)의 임금, 피해자의 경제활동 가능 연수와 기대수명 등을 참고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이 보상금에 반영된다. 예컨대, 자동차에 치여 3개월간 일을 할 수 없게 된 가정주부는 같은 상황에 처한 부동산 중개업자에 비해 적은 보상금을 받게 된다. 

허낸데즈애덤스의 아들 사건에서, 원고 측 변호사는 피해자가 납 중독으로 장애를 입지 않았을 경우 평생 벌 수 있을 소득 총액으로 250만~400만 달러(220만~360만 유로)를 산정해 보상금으로 청구했다. 집주인 측 변호사의 산정결과는 달랐다. 그들은 아이가 히스패닉계이기 때문에 청구한 보상금을 벌 수 있을 정도의 학력과 경력을 쌓을 기회가 적을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150만~250만 달러를 제시했다. 

원고 측 변호사는 “히스패닉계 아이들이 부모 세대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확률이 높다”라고 반격했다. 잭 B. 와인스타인 판사가 (미국 법원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인종적 기준은 철저히 배제할 것을 결정한 이후였음에도, 배심원단은 보상금액을 190만 달러로 최종결정했다. 와인스타인 판사는 “히스패닉이라는 분류는 대단히 모호하다. (…) 그 안에는 교수도 정원사도 있을 수 있다. (…) 따라서 히스패닉계의 평균으로 아이를 재단할 수 없다. 하지만 어머니의 학업 수준, 거주지, 가족 등 특정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배심원단에게 지침을 제시했다.

그러나 미국 법원은 통상적으로 손해보상금 산정 시 피해자의 성별과 인종, 나아가 사회적 지위까지도 고려하도록 승인해왔다. 즉 사회적 지위가 비슷한 상황에서 동일한 피해를 입었을 때, 여성과 소수민족이 남성과 백인보다 보상금을 적게 받는다. 법학자 로넌 아브라함과 킴벌리 유랙코는 “미국에서 흑인과 여성이 노동시장 접근 시 경험하는 불이익은 그들이 수령하는 손해배상 금액에 고스란히 반영된다”라고 지적했다.(3) 2019년 미국에서 여성의 중간소득은 남성의 82.3%에 해당하며, 흑인 남성은 백인 남성의 74.9%, 동양계 남성은 백인 남성의 132.7%를 번다고 한다.(4) 행정기관이 수집한 이 모든 데이터는 도표로 가공돼 전문가들의 보상금 산정의 기초자료로 활용되고, 피해자의 연령이 낮고, 경력이 전무할 경우 특히 요긴하게 쓰인다. 

 

죽어서도 계속되는 인종차별

대부분의 원고와 피고 간 합의는 비공개로 진행되므로, 이런 도표가 피해보상 금액 산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 어렵다. 법정에서 성별과 인종을 고려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9‧11 테러 희생자 보상금은 국회의원과 여러 단체의 압박으로 모든 희생자에게 (피해자에게 유리한) 백인 남성 기준을 적용했다. 마사 샤맬러스 오하이오대학교 법학 교수는 1994년부터 관련 분야 연구를 발표하면서 “(성별과 인종으로 차별하는) 관행은 흔하지만, 반드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2009년 국립법의학회(National Academy of Forensic Engineers, NAFE)가 설문 조사한 전문가 중 92%가 피해자의 성별을, 44.1%가 인종을 감안했다고 털어놨다.(5)

변호사 리 메릿은 “사법제도 내에서 인종차별이 흔하냐고요? 네, 어디에나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흑인 민권운동(‘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에 참여하고 있는 그는 최근 사례 두 건을 비교했다. “2017년 7월 미니애폴리스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백인 요가강사인 저스틴 데이몬드가 흑인 경찰에게 살해됐습니다. 경찰을 고용한 미니애폴리스시는 2019년 5월 희생자 가족에게 2,000만 달러를 보상했습니다.” 같은 시기 메릿은 2017년 4월 댈러스에서 백인 경찰에게 살해된 조던 에드워즈라는 흑인 청소년의 가족도 변호했다. 경찰의 혐의가 인정돼 15년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시는 어떤 형태의 보상도 거부하고 있다.

보상금 산정 시 사회적 배경, 인종, 성별이라는 기준을 고려하는 것은,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하는 행위다. 가령 소수민족은 대체로 가난하며, 가난한 사람은 납에 노출될 확률이 부유한 사람보다 높다. 가난한 사람들은 거주지 선택 시 제약사항이 많고, 오염물을 배출하는 산업활동은 거주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취약한 지역에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독성물질에 중독되더라도 보상금이 낮다. 

아브라함과 유랙코는 손해배상금 산정 시 인구통계도표를 고려한다는 점이, 기업으로 하여금 가난한 사람들, 비백인들이 사는 지역에 위험사업을 집중하도록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이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가상의) 배송업체 ‘페덱스(FedEx)’의 사례를 들었다. 이 업체는 배송기사에게 백인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금전적 비용이 높으므로) 트럭 주행속도를 줄이라고 권고하고, 배송경로를 단축할 때는 흑인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을 지나도록 하여 해당 지역에서 소음 발생률과 사고 위험도를 가중시킨다.

암암리에 빈번하게 이뤄졌던 차별적 관행이 최근 점차 수면 위로 떠 오르고 있다. 2016년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인 코리 부커와 키어스틴 질리브랜드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피해보상금 산정 시 인종과 성별을 고려하지 못하도록 하는 ‘공정한 산정법(Fair Calculation Act)’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다행히, 흑인 민권운동과 미투운동을 통해 손해배상금 산정 시 불평등의 근거가 되는 사회적 배경, 인종, 성별 등의 기준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고, 저항이 확산됐다.

2019년 4월에는 16개의 시민권 보호 단체에서 정신적·물리적 피해에 대한 보상금 산정 시 인종과 성별 관련 데이터 반영을 공식적으로 금지할 것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NAFE에 보냈으나 단칼에 거절당했다. 법제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캘리포니아는 2019년 7월 노스캐롤라이나와 뉴저지에 이어 이런 관행을 금지한 세 번째 주가 됐다. 연방정부 차원의 새로운 법안이 하원에서 9월부터 검토되는 중이다. 

이 법안이 하원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전혀 없더라도, 공적 논의의 장이 열렸다는 점에서 일 보 전진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손해배상금 산정 시 소득이 차지하는 결정적인 비중을 재고하자는 목소리는 미미하다.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른 금액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여전히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샤를로트 르코키용 Charlotte Recoquillon
기자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번역위원


(1) 손해배상금은 중범죄자와 경범죄자에게 부과되는 벌금과 다르다.
(2) GMM vs. Kimpson, n° 13-CV-5059, 2015년 7월 30일. Cf. Kim Soffen, ‘In one corner of the law, minorities and women are often valued less’, <The Washington Post>, 2016년 10월 25일. 
(3) Ronen Avraham & Kimberly A. Yuracko, ‘Torts and discrimination’, <Ohio State Law Journal>, vol. 78, n° 3, Columbus, 2017.
(4) ‘Median usual weekly earnings of full time wage and salary workers’, Bureau of Labor Statistics, United States Department of Labor, Washington, DC, 2019년 10월.
(5) Michael Brookshire, Michael R. Luthy, Frank Slesnick, ‘A 2009 survey of forensic economists: Their methods, estimates, and perspectives’, <Journal of Forensic Economics>, vol. 21, n° 1, Mount Union(Pennsylvanie), 2009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