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언어는 만들어지는가

2020-01-31     필립 데캉 외

룩셈부르크는 유럽연합기구와 금융기관으로 유명한 나라이자, 한 시민이 3~4개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바벨탑이기도 하다. 최근 외국인의 증가가 역설적으로 프랑스어와 독일어 외에 룩셈부르크어(Lëtzebuergesch)의 인기에 불을 붙이는 원인이 됐다.

 

솅겐 비자 신청자 중, ‘솅겐(Schengen)’이라는 명칭이 룩셈부르크의 작은 마을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솅겐은 프랑스, 독일과 인접한 포도밭 한가운데 펼쳐진 룩셈부르크의 작은 마을이다. 유럽 내 인간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한 최초의 협정인 솅겐 협정은, 1985년 모젤 강(솅겐을 끼고 흐르는 강-역주)에 떠 있던 선박 프린세스 마리 아스트리드호 선상에서 체결됐다. 강 좌안 베를린 장벽 잔해 너머로 유럽의 국경선을 허물어낸 이 솅겐 협정을 기념하는 유럽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공식 언어로 각기 편찬된 총 24종의 안내 책자는 또 다른 이동의 자유, 즉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덕택에 룩셈부르크가 얻은 막대한 경제적 이익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오로지 솅겐 조약의 찬란한 역사만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안내 책자에서는 룩셈부르크의 언어는 찾아볼 수 없다. 최근 룩셈부르크어가 룩셈부르크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인기 언어로 부상했음에도 말이다. 사실 룩셈부르크어가 최근에 와서야 관심을 받게 된 배경은 룩셈부르크 대공국의 기이한 역사적 행로를 여실히 보여준다.

어느 가을 아침, 취재진은 솅겐에서 북쪽으로 30m 떨어진 룩셈부르크의 수도를 찾았다. 수십 명의 인파가 차가운 이슬비를 맞으며 국립어학원(INL)을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몇 분 뒤 이번 학기 첫 룩셈부르크어 수업이 시작될 예정이다. “저는 이미 5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요. 룩셈부르크어까지 배우면 경력에 플러스가 될 거예요.” 한 스웨덴 출신의 여성이 말했다. 한 폴란드와 러시아 남성은 그녀만큼 확신에 찬 말투는 아니었지만, “현지인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룩셈부르크어를 배운다고 말했다. “여하튼 우리는 지금 룩셈부르크에 살고 있으니까요!” 

한 모로코 여성은 “이곳을 벗어나면 쓸모없는” 언어를 배우는 데 한 해 400유로를 써야 하는 현실에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프랑스어와 룩셈부르크어는 전체 어학원 강의의 무려 3/4을 차지한다. “올해 처음으로 룩셈부르크어 수강자가 프랑스어를 앞질렀습니다. 대기자가 줄을 잇고, 교사를 구하지 못해 난리죠.” 어학원 부원장이 말했다. 직장에서 룩셈부르크어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고, 국립어학원은 룩셈부르크 국적 취득에도 필수적인 언어능력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다. 2000년 이후 룩셈부르크 거주자의 10%가 넘는 약 6만 7,000명이 귀화 자격을 획득했다.

 

여러 언어들의 공존지대,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 시내에 자리한 아름므 광장의 한 카페에서 만난 룩셈부르크 통번역협회의 회원, 리타 슈미트와 크리스틴 슈미트(1)도 최근 뜨거워진 룩셈부르크어에의 관심을 재확인시켰다. “아동도서가 대표적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룩셈부르크어로 된 아동도서는 찾아볼 수 없었어요.” 상업 분야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사용설명서를 요구하는 외국인 고객이 점점 늘고 있어요. 때로는 ‘룩셈부르크 독어’나 ‘룩셈부르크 프랑스어’로 내용을 해석해달라는 사람들도 있어요. 룩셈부르크어가 무슨 퀘벡어처럼 지역어나 변형언어라도 되는 듯 말이지요.”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던 리타와 크리스틴 슈미트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두 여성은 룩셈부르크 도심에 위치한 빌오트를 거닐 때 프랑스 출신 방문객들이 느끼는 놀라움을 이해할 수 있을까? 거리의 간판들은 프랑스어로 도배되다시피 했지만, 정작 거리에서는 독일어, 영어, 포르투갈어, 혹은 이탈리아어가 들려온다(특히 룩셈부르크 명물인 노트르담성당의 미사는 이 모든 언어로 진행된다). 사람들은 대화 상대자에 따라 때로는 심지어 한 문장 안에서도 이 언어, 저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연구조사도 같은 현상을 확인해준다. 가령 룩셈부르크에서는 3개 언어 사용가능자가 5명 중 4명 이상이고, 4개 언어 사용가능자도 5명 중 3명 이상이나 된다!(2) 

다중언어 생활은 문화생활 속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가령 극장 무대에는 프랑스어가 가장 많이 오르고, 문학작품에는 룩셈부르크어가 많이 쓰인다. 언론매체의 경우, 두 대형 일간지 <룩셈부르크 보르트>와 <타게블라트>가 대부분의 기사를 독일어로 발행하고, 일부 지면만 프랑스어에 할애한다. 반면 룩셈부르크에서 최다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매체는 프랑스어로 발행되는 무료 신문 <레상시엘>이다. TV나 라디오 방송에는 유서 깊은 민영방송사 RTL이 룩셈부르크어 프로그램을 방송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특히 RTL 온라인 사이트는 룩셈부르크 최고의 문자 매체로 각광받고 있다.(3)

프랑스의 ‘론(Rhône)’ 지역과 규모가 비슷한 나라, 룩셈부르크의 특이한 다중언어 환경은 무엇보다 성가신 두 이웃 나라, 프랑스와 독일과의 관계에서 비롯됐다.(32면 박스기사 참조) 하지만 동시에 한때 룩셈부르크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한 철강산업에 종지부를 찍은 경제개혁 과정에서, 정부가 1970년대 대대적인 감세 정책을 추진하며 경제를 활성화하고, 대공국의 매력도를 높인 것 역시 강한 영향을 미쳤다. 

현재 룩셈부르크 주민 61만 3,000명 중 약 절반은 외국인이며, 수도 인구의 70%가 외국인이다. 이는 매일 국경을 넘어 입국하는 약 20만 명의 노동자는 제외한 수치다. 이들 중 절반은 프랑스, 1/4은 벨기에, 그리고 나머지 1/4은 독일에서 온다.(4) 즉, 룩셈부르크의 부(富)를 생산하는 주체는 3/4 이상이 외국인인 셈이다.

“룩셈부르크에 다중언어 사용환경이 조화롭게 형성됐던 것은, 언어별로 역할이 사이좋게 배분돼있기 때문입니다. 룩셈부르크 사회의 완전한 일원이 되고 싶다면, 상황별로 다른 언어가 사용되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고, 자신도 상황에 맞게 각 언어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하죠.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정말 3개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건 소설에 불과합니다. 그럭저럭 구사하는 정도죠.” 사회언어학자 페르낭 펠렌이 취재진에게 설명했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가정과 직장에서의 언어 사용은 사뭇 대조적이다. 

물론 사람들이 ‘가장 잘 구사하는’ 언어는 여전히 룩셈부르크어가 1위다. 그러나 룩셈부르크어 구사자는 룩셈부르크 거주자의 단 42%에 불과하다. 그 뒤를 프랑스어(20%)와 포르투갈어(14%)가 잇는다(룩셈부르크 거주자 5명 중 1명 이상이 포르투갈어를 구사하거나, 포르투갈 출신자로 나타났다). 반면 직장에서는 프랑스어가 단연코 1위다. 룩셈부르크 거주자 5명 중 무려 4명이 사용할 줄 아는 프랑스어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한다. 단, 예외가 있다. 가령 행정 부분에서는 룩셈부르크어가 최근 프랑스어를 앞질렀고, 금융 및 보험 분야에서는 영어가 가장 대접받는다.(5)

 

‘Plateau’를 ‘Platto’로 표기해도 괜찮을까?

룩셈부르크어 사용자는 특히 50대 이상과 30대 이하 연령층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동안 룩셈부르크어는 주로 대화를 할 때만 사용됐지만, 최근 SNS의 출현과 각종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증가로 뜻하지 않게 문자 언어로도 널리 각광받고 있다. 

“룩셈부르크어에 대한 높은 관심은, 소셜미디어에서 언어 사용의 오류를 널리 용인하는 데서 비롯됐습니다. 덕분에 다들 룩셈부르크어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거죠. 반면 독일어의 경우는 절대 오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프랑스어는 독일어보다 더 엄격하고요.” 에디트프레스 그룹(<타게블라트>, <르코티디앵>, <레상시엘>)의 대표 장루 시벡이 힘주어 말했다. 말하자면 어느새 우리는 어법의 정확성보다는 표현의 자유를 더 중시하는 ‘2.0 언어’의 출현을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룩셈부르크 수도 동부에 위치한 슈트라센을 찾았을 때, 사전 편찬자인 알렉상드르 에케르트는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다. 그는 상냥하고 차분하게, 자신이 세상에 내놓은 온라인 사전의 작동방식에 관해 설명했다. “출발어는 룩셈부르크어고, 도착어는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포르투갈어 총 4개 언어입니다. 단어마다 룩셈부르크어로 정확한 정의를 따로 달지는 않았지만, 도착어로 대충 의미를 설명해 의미를 해독할 수 있어요.” 

한편 그의 곁에는 최근 설립된 룩셈부르크 언어센터 초대 소장인 뤽 마르틀링도 함께 했다. 그는 총 2만 7,000개의 표제어를 갖춘 ‘러처부어여 온라인 사전(LOD)’의 방대한 언어 코퍼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두 남자는 올 11월 룩셈부르크어의 ‘완벽한’ 철자체계를 완성해 사전으로 편찬하기 위해 일일이 단어를 하나씩 확인하는 작업반을 지휘하고 있다. 마르틀링이 작업방식을 설명했다. 

“일례로, ‘Plateau(쟁반이란 뜻의 프랑스어, ‘플라토’로 발음된다-역주)’라는 프랑스어 단어를 들어보지요. 프랑스어로는 ‘t’ 하나에 ‘e, a, u’가 붙지요. 하지만 룩셈부르크어의 경우, 이 단어의 첫음절은 프랑스어보다 더 짧게 발음됩니다. 이렇게 짧은 발음을 표시하기 위해, 룩셈부르크어에서는 자음 두 개, 즉 ‘t’ 두 개를 붙여줄 필요가 있어요. 또 ‘o’ 발음도 굳이 ‘e, a, u’라고 길게 쓸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룩셈부르크식 철자법을 따르면, ‘Plateau’는 ‘Platto’로 표기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결정해도 문제가 없을까요?”

지난 15년간 수없이 사전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룩셈부르크 언어가 지닌 특수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새로운 철자법 도입이 혹 룩셈부르크어를 독일어 어원에 너무 가깝거나, 프랑스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언어 형태로 변질시키는 것은 아닐까? 사실 각 언어의 경계를 분명히 구분 짓기는 매우 어렵다. 예를 들어 ‘Courage’ 대신 ‘Kuraasch’라는 룩셈부르크식 철자법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프랑스식 표기에 익숙한 세대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마르틀링과 에케르트는 때로는 돌팔이 선무당 취급을 받을 각오까지 한다. “저희는 유연한 태도를 추구합니다. 저희의 임무는 정확한 어법을 정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저희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죠. 하지만 ‘러처부어여 온라인 사전’에 없다고 해서 무조건 세상에 없는 단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어요.” 마르틀링이 말했다.

1975년 최초로 장관령에 따라 룩셈부르크어 표준 철자법이 제정됐지만 실제로 정확하게 표준 철자법을 구사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라인 철자교정 프로그램, ‘Spellchecker.lu’가 등장했고, 널리 사용되고 있다. 2013년 신생 인터넷 사이트 개발 업체를 설립한 IT 전문가이자, 앞서 말한 철자교정 프로그램 개발자이기도 한 미셸 위메스키슈는 자신이 룩셈부르크어 철자법 표준화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사실이 자못 놀랍다는 눈치였다. “사실 ‘Spellchecker.lu’는 저 자신을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었어요. 2008년 대학에 다닐 때 일종의 도전과제로서 개발하기 시작했죠. 단순한 취미생활이었는데, 이제는 저 자신을 알리는 명함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됐네요.” IT 도구 덕에 그는 프랑스학술원이 수십 년에 걸쳐 한 일을 불과 수년 만에 해치웠다. 

“당시 개발한 사이트가 제 최초의 언어 자료(코퍼스)가 된 셈이에요. 알고리즘을 짜서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한 덕분에 더욱 빠르게 일을 진행할 수가 있었죠.” ‘Spellchecker.lu’는 기본형 단어 8만 개 이상을 총망라하는 동시에, 프랑스어식·독일어식 표현과 기타 변형 철자들도 두루 다루고 있다. 이 사전은 ‘러처부어여 온라인 사전’의 무려 3배에 해당한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엄청난 축복이지만, 동시에 향후 많은 갈등의 소지가 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협력이 대세다. 위메스키슈는 업데이트된 철자를 반영하도록 프로그램을 개량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국가’ 언어를 장려하는 이유 

디지털 시대가 등장하기 전에는, 1929년부터 룩셈부르크의 언어생활을 선도하는 역할을 한 것이 바로 ‘RTL 라디오 러처부어시(룩셈부르크)’와 같은 라디오방송국이었다. 사실 마르틸링도 지난 7월까지 이 라디오방송국에서 일했다. 하루 2시간 TV 프로그램도 함께 내보내는 이 룩셈부르크 최대 방송사는 키르히베르크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도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는 금융기관과 유럽연합기구, 그리고 여러 대기업 본사가 줄줄이 들어서 미래 지향적인 풍경을 형성하고 있다. 

‘RTL 라디오 러처부어시’는 라디오 프랑스와 같은 그룹에 속한 회사로, ENEX(유럽뉴스익스체인지) 통신사를 통해 RTL 프랑스와 영상을 공유한다. 하지만 동시에 룩셈부르크 대공국 안에서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는 특수한 지위도 함께 누린다. 이 방송사의 온라인 사이트를 책임지고 있는 올리비에 트라이넨은 상당히 섬세한 시선으로 상황을 분석했다. “룩셈부르크어는 아직 매우 젊은 언어에요. 영화, 만화, 동영상 등을 통해 이제 막 정체성이 형성되고 있죠. 반면 룩셈부르크인은 점차 소수화되는 추세예요. 그로 인해 언어문제를 놓고 정치적 긴장감이 팽팽해졌죠.”

룩셈부르크어 사용자가 지금처럼 많았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정작 상점을 방문해보면 언어를 둘러싼 팽팽한 갈등이 여실히 느껴진다. 가령 이 도심의 빵집만 해도 룩셈부르크어를 할 줄 모르는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노인들이 의사소통에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특히 병원이나 양로원 직원처럼 건강과 관련된 내밀한 문제를 놓고 소통을 해야 할 때는 더욱 큰 불편을 호소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에게는 ‘국가’ 언어를 장려하는 것이 여론의 관심을 돌리고, 표심을 만회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장루 시벡은 분석했다. 

2015년 6월 10년 이상 자국에 거주한 외국인에게 전국 단위 선거에 투표권을 부여하는 방안(이미 시의회 선거에 대해서는 투표권을 허용)을 놓고 국민투표가 시행됐을 때, 룩셈부르크에서는 정체성 문제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일었다. “처음 이 아이디어를 낸 것은 주로 재계 쪽이었어요. 사실 룩셈부르크인들 중 민간부문 종사자는 드물어요.(6) 대부분의 유권자가 강력한 노동조합를 갖춘 공무원직에 종사하고 있죠. 그렇다 보니 기업 경영자들은 제도적으로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받는 데 점점 더 큰 어려움을 느낍니다. 경영자들은 더 이상 이런 상황을 감내하기 힘들다고 생각하죠. 그들의 포부는 정치 역학을 변화시키려는 것임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재계의 야심 찬 포부는 룩셈부르크 엘리트층 전체에 큰 모욕감을 줬고, 그 결과 무려 78%가 외국인 투표권 부여에 ‘반대표’를 던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2018년 10월 선거에서 모든 정당이 룩셈부르크어 수호에 팔을 걷어붙였다. 2013년, 철옹성으로 통하던 기독사회인민당을 무너뜨렸던(7)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생태주의 연립여당은 향후 20년 안에 “룩셈부르크어 장려 전략”을 수립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또다시 재집권에 성공했다. 

“룩셈부르크어가 모국어인 사람들, 가정에서 룩셈부르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감소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는 한층 다채로운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룩셈부르크어를 다양한 시민들을 결집하는 매개자로 만들기 위해, 야심 찬 계획을 품고 있습니다. 이주민이 증가하고, 점차 시장이 세계화됨에 따라, 정부 입장이나 시민의 생각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이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룩셈부르크어를 장려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확신합니다.”(8) 언어문제를 담당하는 클로드 메이쉬 룩셈부르크 교육부 장관이 설명했다.

하원 심의를 거친 2018년 7월 20일 자 법률에 따라, 룩셈부르크에는 룩셈부르크어 담당 전문위원직과 여러 전문가로 구성된 룩셈부르크어 상임위원회, 그리고 특히 ‘러처부어여 온라인 사전’과 협업 하에 언어표준화 작업을 담당하게 될 룩셈부르크어 센터가 설치됐다. 또한, 앞서 말한 룩셈부르크어 장려 ‘전략’의 일환으로 두 가지 주요한 제도적 노력도 이뤄졌다. 그것이 바로 룩셈부르크어를 다중언어 체제에서 공식 국가 언어로 헌법화하는 한편, 유럽연합 공식 언어로도 인정받는 것이다. 

하지만 메이쉬 장관은 후자에 대해 선을 그었다. “현재 프랑스어가 법률 언어로 쓰이고 있어요. 굳이 유럽연합의 법문을 모조리 룩셈부르크어로 옮길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공식 언어문제가 상징적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각국의 언어정책을 유럽연합의 수준과 맞추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행정기관을 상대할 때는 프랑스어나 독일어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는 사용자가 규정하는 것”

룩셈부르크 시 한복판에 펼쳐진 헌법 광장에는 전몰자 위령탑인 ‘황금의 여신상(Gëlle Fra)’이 우뚝 솟아 있다. 비석 위에는 분홍색 바탕에 노란색 글씨로 작게, 1945년 독일의 점령을 벗어난 룩셈부르크의 군주 샤를로트 대공의 발언이 새겨져 있다. “당파, 계급, 신앙의 차이를 초월해,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현실과 이상이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룩셈부르크란 조국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3/4세기가 지난 지금, 이제는 테레사 대공비(쿠바 출신)가 SNS에 남긴 짧은 메시지가 비난의 표적이 되는 시대다. “어느 날 나는 프랑스어로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비로소 이 언어가 나를 받아줬구나 싶었다. 이후로 프랑스어는 내 마음의 언어로 깊이 자리 잡았다.” 

샤를리 골(9)의 나라는 정체성의 망령에 사로잡힌 것일까? 교육부 장관 고문과 룩셈부르크어 상임위원회 의장을 두루 역임한 마르크 바르텔레미 룩셈부르크어 담당 전문위원은 “국민 정서는 법으로 선포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방언은 언제 일국의 언어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 말을 구사하는 사람이 그 말을 방언이 아니라 자국의 고유한 언어라고 의식할 때입니다. 중국의 경우, 자국 내 지역어들이 프랑스어와 이탈리아만큼 큰 차이를 지니지만 각각의 지역어를 모두 ‘방언’이라고 수용합니다. 반면 덴마크어와 스웨덴어처럼, 매우 흡사해 보이는 언어들도 각기 다른 언어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어떤 말을 ‘언어’라고 규정하는 것은 결국에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 자신이니까요.”

그는 룩셈부르크 사회에서는 룩셈부르크어가 ‘공용어’로 더 훌륭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같은 다중언어 사회라도 각자의 언어로 살아가는 벨기에나 스위스와 달리, 룩셈부르크는 상황에 따라 3개 언어를 모두 사용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두 사회언어학자, 페테르 질과 크리스토프 푸어쉬케도 지역별로 각기 다른 언어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 아닌 룩셈부르크의 특이한 현실을 확인시켰다. 룩셈부르크어의 경우 여전히 여러 다양한 방언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지만, 동시에 가장 중심이 되는 언어를 축으로 이제 막 언어가 표준화되는 추세다. 물론 룩셈부르크어는 여전히 체계가 다 갖춰지지 않은 언어이고, 아직 ‘문화언어(Kultursprache)’로서 필요한 모든 자원을 갖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2003년에 설립된 룩셈부르크 대학은 최근 논문 작성을 포함해 모든 과정을 룩셈부르크어로 진행하는 코스를 개설했다. 이 대학 벨발 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두 사회언어학자는 “눈앞에서 룩셈부르크어의 성장을 지켜보게 되다니 너무나도 멋진 일”이라며 탄성을 질렀다. 그들이 몸담는 대학은 사실상 100년 전 세계 최고를 구가하던 철강공장 자리에 세워졌다. 대학 캠퍼스가 위치한 에슈쉬르알제트 지역은 현재 첨단지식경제를 형성 중인 수많은 초현대식 건물들 한복판에, 상징적인 차원에서 과거의 용광로 두 개를 그대로 보존해놓고 있다.

 

노동자가 갖춰야 할 언어 실력은?

오늘날 곳곳에 철강산업의 잔재가 남아 있는 인근 소도시 시플랑주도 역시 브릴숲 자연보호구역을 설치하는 등 아름다운 풍경으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언덕을 넘어서면, 곧바로 룩셈부르크의 새로운 모태가 시작된다. 그곳에는 시멘트공장과 주유소들이 줄줄이 들어선 대규모 산업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보통 현지인들로 구성된 서민사회에서는 룩셈부르크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그 밖에 건설업이나 공공사업 등의 분야에서 일하는 서민들은 룩셈부르크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레미콘 차량과 토목 기계들이 분주하게 들고 나는 지점에 소피노르의 본사가 서 있다. 소피노르 사는 한 포르투갈어 발행 잡지가 ‘미스터 전차’라는 별명을 붙여준 인물이 설립한 종업원 500명 규모의 기업이다. 최근 건설 분야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올랑도 핀토 사장은 건설노동자 사회의 특징이 성공의 열쇠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 공사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포르투갈인은 95%에 달할 겁니다. 우리 회사에는 몬테네그로인도 1명, 이탈리아인 2명, 프랑스인 3~4명이 있어요. 사무실에도 벨기에인 5명, 프랑스인 3명이 일하고 있고요. 이들 외에는 전부 포르투갈인입니다. 엔지니어와 경영진까지 전부 포르투갈인이랍니다.” 룩셈부르크 건설업에 종사하는 포르투갈인은 프랑스에 정착한 그들의 사촌과는 달리, 직장이나 가정에서 모국어를 널리 사용하며 살아간다. 이런 현상은 교육현장에는 커다란 도전과제가 아닐 수 없다.(32면 박스 기사 참조)

이런 상황에서 룩셈부르크어 장려는 사회통합으로 향하는 통행증이자, 사회복지에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 1996년 유럽연합사법재판소가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침해한다는 판결을 내린 이후, 룩셈부르크는 그동안 내국인에게만 허용하던 공공부문 일자리를 경찰, 사법 등 일부 특수분야로 제한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외 많은 분야는 여전히 프랑스어 쓰기, 독일어 쓰기, 룩셈부르크어 말하기 능력을 요구한다. 한편 민간부문 경영자들은 점차 노동자에게 모국어 지식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법원은 부당해고를 주장한, 공공기관에서 일하던 여성의 항소를 기각했다.(10) 고용주는 그녀가 1년이 넘도록 룩셈부르크어를 제대로 할 줄 모른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주당 40시간씩 일하느라 어학 수업을 따라갈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룩셈부르크 건설노동조합 OGBL에서 보건·복지 부문을 담당하는 피트 바흐는 이런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분야에서는 거의 모든 노동계약서에 언어 관련 조항이 담겨 있어요. 판사는 노동자가 언어 실력을 갖춰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해고의 사유가 될 수 없어요. 직장에서 할 일에 충실하느라, 언어를 배울 틈이 없었던 거니까요.” 과거 직업적 강점으로 통했던 언어능력은, 해고를 정당화하는 핑계로 전락하고 말았다. 언어사회학자 펠렌은 이렇게 상황을 정리했다. “룩셈부르크 경제는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어요. 3개 언어를 구사하는 인재가 부족하죠. 룩셈부르크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어요. 드문 만큼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죠. 최근 룩셈부르크어 열기도 그런 이유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글·필립 데캉 Philippe Descamps
    자비에 몽테아르 Xavier Monthéar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두 사람은 성만 같을 뿐, 가족관계는 아니다.
(2) <Europeans and their languages>, 유로바로미터, 유럽연합집행위원회, 브뤼셀, 2012년 6월.
(3)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경우, 해당 통계 수치는 룩셈부르크 국립통계연구소(STATEC)에서 인용, 2019년 1월.
(4) ‘Ensemble des actifs professionnels au Luxembourg résidant en France, en Allemagne ou en Belgique 프랑스, 독일, 벨기에에 거주하는 룩셈부르크 총 활동 인구’, 사회복지총국, 룩셈부르크 대공국, 2019년.
(5) <Regard>, 제9호, STATEC, 2019년 5월.
(6) 2019년 3월 말 사회복지총국의 발표에 의하면, 전체 행정 부문에 종사하는 룩셈부르크인은 87%에 달했다. 반면, 상업 부문 및 건설 부문에 종사하는 룩셈부르크인은 각각 19%와 9.4%에 불과했다.
(7) 이 당의 대표적 인물이 1995년 1월~2013년 12월 룩셈부르크 총리, 2014년 11월~2019년 11월 유럽연합집행위원장을 지낸 장클로드 융커다.
(8) 인터뷰 내용 전문은, 본지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9) Charly Gaul, 1999년 룩셈부르크 최고의 스포츠인에 선정됐으며, ‘날개를 단 천사 등산가’라는 별명으로 불린 유명 등산가다. 1958년 자전거 경주 투르 드 프랑스에서도 우승했다.
(10) <Infos juridiques>에 실린 2019년 4월 25일 항소법원 판결문, n°5/2019, 노동회의소, 룩셈부르크.

 

프랑스어권인가? 독일어권인가?

 

룩셈부르크(왈롱어 방언을 사용하는 서부 프랑스어권역과 모젤프랑크어 방언을 사용하는 동부 독일어권역을 모두 포함)는 중세시대 이후로 프랑스어를 행정어로 선택했다. 이어 17세기와 프랑스 혁명기인 1795년(일시적으로 프랑스의 ‘포레’도로 지정된 시기), 프랑스가 룩셈부르크 영토를 점령하며 프랑스어 사용을 일반인에게 널리 강제했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에서 패배하고 1815년 빈 회의에서 룩셈부르크는 대공국으로 지위가 격상됐다. 개별적으로는 네덜란드 국왕이 룩셈부르크 대공을 겸했지만, 넓게는 독일어권 주권 국가들과 왕국, 공국들로 이뤄진 느슨한 국가 연합이었던 독일연방에 소속됐다.

벨기에 혁명 이후 런던조약(1839) 체결로 독립국의 지위를 얻은 룩셈부르크 대공국은 독일어권 지역으로 자국 영토를 축소했다. 대부분 프랑스어권에 속하던 룩셈부르크의 서부지역은, 이 나라와 이름이 같은 벨기에의 ‘룩셈부르크’주로 바뀌었다. 대공국은 독일 관세동맹(Zollverein)에 가입했지만, 유력인사들은 여전히 행정·사법·정치 분야에서 프랑스어 사용을 고집했다. 1843년 독일어에 이어 프랑스어가 교육과정에 편입되기에 이르렀고, 초등교육부터 프랑스어 교육이 시행됐다. 반면 모젤 프랑크어의 변형어이자 지역어인 룩셈부르크어의 경우, 1912년이 돼서야 주당 1시간 회화 수업이 시작됐다.

1940년 5월, 대공국은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아 병합됐으며, 프랑스어 사용도 금지됐다. 1년 뒤 점령국 독일은 세금 징수를 위한 인구조사를 시행하려다 계획을 포기했다. 거주민들이 인종, 모국어, 국적에 대한 질문에 모두 ‘룩셈부르크’라는 대답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 소극적인 저항에 관한 일화는 젊은이들의 독일군 강제징집에 맞서 벌인 1942년 대파업 사태와 함께 룩셈부르크의 대표적인 민족 전설로 길이 남았다.

종전 후, 다시 프랑스어 쓰기 능력과 룩셈부르크어 말하기 능력이 룩셈부르크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지가 됐다. 학교 교육에서 가장 보편화된 언어는 독일어였지만, 대중은 일상생활에서 독일어 사용을 거부했다. 많은 라틴국가 출신의 이주민들이 널리 사용하면서, 몰리에르의 언어(프랑스어)가 더욱 보편화됐다. 

외국인 수가 급증하고, ‘악티운 러처부어여시(aktioun lëtzebuergesch)’ 협회를 비롯해 민족 정체성 보호에 팔을 걷어붙인 단체들이 언어문제에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1984년 2월 24일 자 법률에 따라 룩셈부르크어는 ‘국가 언어’로 지정됐다. 또한, 행정기관에서는 3개 언어 중 신청자가 선택한 언어로 대답하는 것이 의무화됐다. 2008년 10월, 국적 취득을 위해 룩셈부르크어 능력 시험 성적을 요구하는 새로운 법률이 제정됐다. 2018년 7월 법률에 의해 특수기구가 설치돼 룩셈부르크어 장려정책이 더욱 힘을 받았다.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다중언어, 룩셈부르크 교육의 골칫거리

 

“여기 장난감 카탈로그를 보고 남녀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이 나타난 부분을 모두 찾아보세요!” 교사가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음성이 U자형으로 배열된 책상을 따라 울려 퍼졌다. 학생들이 순서대로 돌아가며 태블릿 PC에 답을 표시한 뒤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는 대형화면으로 전송했다. 의사나 정비사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남자아이, 다림질이나 요리를 하며 즐거워하는, 분홍색 옷차림의 여자아이가 나온다. 총 10여 개 국적의 13세 학생들이 수강할 수 있는 ‘EU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 ‘제2섹션’ 코스에는 새로운 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모든 수업을 프랑스어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2018년 신학기에 처음 문을 연 룩셈부르크 북부 클레르보 에드워드 스타이켄 고등학교. 반들반들한 시멘트 바닥에, 큼지막한 통창 너머로 푸른 숲이 보인다. 교실마다 최첨단 기기를 갖춘 이 학교는 최근 앞서 언급한 신규 교육과정을 시범 운영하기로 한 4개 공립학교에 속한다. 프랑스나 독일의 시스템과 비슷한 ‘EU 바칼로레아’ 과정은 룩셈부르크만의 독창적인 언어교육과는 차별화된다. 

19세기 중엽 이후, 룩셈부르크는 6세 때부터 독일어 읽기와 쓰기 교육을 시작했다. 프랑스어 교육은 말하기부터 시작해, 차차 8세 이후로는 쓰기까지 점진적으로 진행했다. 이어 15세 이후 ‘전통’ 교육과정과 ‘일반’ 교육과정이 이어졌다. 대학 진학의 왕도로 통하는 일명 ‘전통’ 교육과정의 경우, 모든 과목을 프랑스어로 수업한다. 그리고 기술교육과 직업교육을 아우르는 ‘일반’ 교육과정은 (프랑스어 비중이 높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독일어 수업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룩셈부르크에서는 프랑스어와 독일어 외에 영어와 룩셈부르크어(정규수업 외 활동에서 일상적으로 사용) 교육이 추가된다. 클레르보 고등학교 교장 장 빌라는 이것이 “학생들에게는 큰 도전과제”라고 지적했다. 사실 ‘도전과제’는 완곡한 표현에 불과하다. 각종 국내외 연구조사에 의하면, 이는 수많은 학생이 학업 실패에 이르는 요인이었다. 룩셈부르크의 경우 초등교육과정을 듣는 학생의 2/3 이상이 외국인이거나, 다른 나라 출신의 내국민이다. 

하지만 이들은 독일어나 룩셈부르크어가 모국어인 다른 학생에 비해 학업성공률이 현저히 저조하다.(1) “현재와 같은 교육 환경에서는 포르투갈이나 구유고슬라비아, 카보베르데 출신의 학생이 독일어를 습득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 나라가 아무리 부유하고, 학교를 지원할 역량이 충분하다 해도,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상 언어가 학업 실패의 주요 원인이지요.” 

사회언어학자 크리스토프 푸어쉬케가 설명했다. 현 교육시스템은 온갖 함정이 도사린 험난한 교육과정을 마련해놓고, 3~4개 언어를 구사하는 엘리트층을 재생산하려 하고 있다. 또한, 일부 독일문화권의 학생들은 프랑스어가 중시되는 바칼로레아 전통 교육과정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학업 의욕을 잃도록 만든다. 

언어로 인한 학업 실패 문제를 해결하고자, 현 정부는 먼저 탁아소와 아직 문자교육을 시작하지 않은 어린이집 아이들을 대상으로 프랑스어와 룩셈부르크어를 함께 교육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어린 나이부터 아이들이 다양한 언어에 정신과 귀와 머리를 활짝 열 수 있도록 다중언어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클로드 메이쉬 교육부 장관이 주장했다. 특히 공립학교는 2018년 신학기부터 클레르보 고등학교를 포함해 모두 4개 고등학교에서 ‘EU 바칼로레아’나 ‘국제 바칼로레아’ 준비를 위한 새로운 교육과정을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 

이 신규 교육과정에 따르면, 학생들은 주요 매개언어를 하나만 선택할 수 있고, 자신이 배우고 싶은 다른 언어의 레벨도 선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정부는 언어문제 외에도, 어린 고등학생들이 인접 국가의 학교나 사립학교로 빠져나가는 현상을 줄이려 하고 있다.

현재 룩셈부르크 정치판의 오른쪽에서는 대안민주개혁당(ADR)이, 그리고 왼쪽에서는 좌파당이 적극적인 모국어 문자교육을 열렬히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가 그와 같은 정책에 선뜻 나서기 힘든 이유는 위와 같은 학생들의 공교육 이탈을 우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룩셈부르크어 교육을 주당 2시간 말하기 수업으로 제한하는 것을 두고 공론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저는 룩셈부르크어를 장려하는 것과 교육과정을 다각화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모순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룩셈부르크라는 나라를 경영하는 데 있어서 다중언어를 사용하는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룩셈부르크라는 나라 안에서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유럽국으로서 정체성을 갖추려면, 또한 룩셈부르크어를 할 줄 아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둘 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메이쉬 장관이 반박했다.

새로운 공교육과정을 밟는 학생 수는 매해 단계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첫 시범 수업 결과, 이미 뜻하지 않은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주요 언어를 하나만 선택하게 한 제도가 프랑스어에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2019년 신학기 과정의 경우, 무려 절반가량의 학생이 영어, 독일어, 포르투갈어를 제치고 프랑스어를 선택했다.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Rapport national sur l'éducation au Luxembourg 룩셈부르크 교육에 관한 국가보고서>, 연구 조율 및 교육·기술 혁신 부서, 룩셈부르크,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