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봉 휘두르는 자, 역사의 망각 강요'

서구 프로퍼간다에 매몰… 9·11테러 조작 의혹 '왜 실종됐나?'

2008-12-01     편집자

노엄 촘스키 인터뷰집 <권력에 취한 사람들>

10여년 전부터, 노엄 촘스키의 글들이 다양한 제목으로 재편집돼 연이어 출간되면서 독자들에게 덫에 걸리고 제자리를 맴도는 듯한 기분을 안겨준다. 미디어의 분석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1988년에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그의 <여론 조작>을 눈여겨 봤을 것이다. 촘스키가 미디어를 다룬 가장 중요한 저서인 이 책이 다른 국가들에서는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제대로 출간됐다.1)
 <권력에 취한 사람들>은 2006년 2월부터 2007년 3월까지의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2)  <여론 조작> 만큼 야심찬 책도 아니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번역될 만한 책은 아닌 듯하다. 질문이 신랄하지도 않고, 애매하게 넘어간 질문도 많다. 예컨대 개혁이 혁명을 준비하고 혁명을 앞선다는 말이나, 촘스키가 '무척 자유롭다'고 평가한 미국 사회와, 그의 표현대로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진부하기도 한' 팔레스타인 등에 대한 관점은 모순되기도 한다. 그래도 중동과 라틴 아메리카(유럽은 빠졌다), 또 생각조차 하기 힘든 작은 나라에 대한 촘스키의 분석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다.
 미국 언어학자, 촘스키의 글은 결코 어렵지 않다. 그는 신랄한 비판 덕분에 '워싱턴을 경멸하는 비판가', 심지어 '음모론의 대가'라는 별명까지 얻었다.3) 인터뷰 책 <권력에 취한 사람들>에서,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의 테러를 네오콘이 꾸민 음모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근본주의자'에 비교되고, 그들의 이론은 '일종의 종교적 광신'에 비교된다. 촘스키는 "학문하는 사람들은 온갖 방법을 실험하기 때문에 창 밖으로 보이는 것을 영화로 만드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그 사건에 어떤 조작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그 조작을 밝혀내야 한다"며 "왜 그것과 관련된 논의가 폭넓게 묵인될까? 나는 그런 논의를 호의적인 눈으로 보는 권력층이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촘스키는 테러가 있고 7년이 지난 후에 의심이 광범위하게 확산된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노동조합이 거의 사라지고 진정한 정당도 없는 원자화된 미국 사회와, 권력층을 향한 대중의 환멸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대중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좋아하지 않고, 힘든 시기를 살았으며, 누구도 믿지 않고, 어떤 대응 수단도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뭔가에 매달리려 한다."
 그런데 인터넷이 그들에게 "1시간 만에 토목공학 기술자가 되고, 부시가 쌍둥이 빌딩을 날려버린 장본인이라고 입증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역효과를 낳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촘스키는 워싱턴이 표적을 삼은 사람들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따라서 촘스키는 우익의 기회주의자로 변신한 니카라과의 대통령 다니엘 오르테가를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고 솔직히 말한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관련해서도 촘스키는 "미국이 민족주의를 억누르면서 무슬림의 극단적 근본주의를 태동시키는데 일조했다"고 비난한다. 이스라엘도 '외교적 협상을 원하던 민간조직,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와해시키면서 똑같은 실수를 저질러 하마스에게 이익을 안겨주었다. 올리버 아잠과 다니엘 메르메의 영화가 고발했듯이, 미디어와 지식인이 서구의 프로파간다에 협조하기 때문에 많은 사건이 종종 잊혀진다.4) 촘스키의 말대로 "곤봉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역사의 망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번역|강주헌

 


 

1) 노엄 촘스키와 에드워드 허먼, <여론 조작 : 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학>, 아곤 출판사, 마르세유, 2008, 655쪽, 28 유로. 인용된 인명 찾아보기가 없어 아쉽다.
2) 노엄 촘스키, <권력에 취한 사람들 : 데이비드 바사미언과의 인터뷰>, 파야르, 2008, 244쪽, 19 유로.
3) <음모 : 언론인이 미디어 비평 분석을 왜곡할 때>, 카이에 드 레른, 파리, 2007.
 
www.homme-moderne.org/societe/philo/comsly/conspiration.html에서 원문 구입할 수 있음.
4) <촘스키 주식회사>(Chomsky et Cie), 11월 26일부터 프랑스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추천 '읽을 만한 책들'

 소설 -
완전한 자유에 대한 강렬한 향수
<돌아온 자의 독무대> |코시 에퓌

  아프리카에서 오랫동안 분단이 된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북쪽 글로리아의 주민들이 남쪽 글로리아로 대거 몰려간다. 중립적인 국제 기구의 보호를 받으며 점차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평화와 축하', '재건 활동을 하러 돌아 온 사람들을 환영한다'는 슬로건에 따라 행렬은 계속된다. 독자는 지옥처럼 변한 실제 마을의 모습을 이 소설을 통해 오랫동안 느끼게 된다. 슬로건은 갑자기 바뀌고 정체성을 잃은 사람들이 타깃이 된다.
 말이란 말은 전부 슬로건처럼 변하면서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아 질식할 것 같고, 그만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폭도 줄어든다. 사람들은 슬로건에 맹목적으로 빠져들며 상황이 점차 끔찍해진다. 마치 역사박물관에서 '손대지 마시오'가 아래에 적힌 유리 장식장 속에 보관되어 있는 흰색 유골과 잿빛 화석처럼 마을은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모든 것은 추상적인 이미지로 변해가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미 검열을 거친 이미지로.
 현대에 만들어진 이미지, 슬로건, 축배 속에 고통이 느껴진다. "고통이 지나가니까 조심해. 고통을 조심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고통은 구경거리일 뿐이다. 그 고통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스산한 아프리카든 아니든 이 소설은 남쪽 글로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프리카가 아닌 그 어느 곳에서나 일어난다. 그 어디서나 인간은 일상적으로 박탈과 상실감을 경험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분단된 마을, 분쟁 지역에서는 이름 모를 인간 군상들이 상실감을 맛보기도 하고 성취감을 맛보기도 한다.
 저자는 언어를 통해 이들을 이들 인간 군상들의 삶을 묘사하며 우회적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여준다. 말 속에 묻혀 지내다 보면 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 미디어는 "TV에서 방송할 이번 전쟁은 지역간 충돌"이란 말을 지겹도록 반복하지만 피상적인 몇 가지 예만 제시할 뿐이다.
 1998년과 2001년에 각각 출간된 <폴카>, <의식 제조기>에서 저자 코시 에퓌는 인간들이 방황하는 공허한 세상을 계속 그려 나갔다. 이번 소설 <돌아온 자의 독무대>는 귀환과 우정을 다루고 있지만 말, 즉 언어와 민족에 대해서도 고찰하는 작품이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은 정치적인 성격을 띠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소설에서 언어를 통해 세상을 다시 한 번 살만한 곳으로 만들려는 마음을 품고 있는 듯하다. 아찔한 느낌을 전해 주는 소설이다. 완전한 자유에 대한 강렬한 향수를 느낄 수 있다.  글 - 나탈리 캬레

 

 비소설 -   아프리카 편
<아프리카와 주변의 유럽 및 아시아> |장 졸리

 기자이자 유명 리포터인 저자 장 졸리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역사를 방대한 지도로 설명한다. 50 개의 지도마다 상세한 설명이 달려 있어서 이제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아프리카에 미친 외부(로마, 아랍, 영국, 프랑스 등)의 영향, 아프리카 문명의 자체적인 변화(왕조와 제국, 내부 이동, 문화 사조 등)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 마디로 아프리카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 보려는 시도다. 또한 이 책은 식민 지배를 당한 아프리카의 어두운 역사 이야기를 전개한 후 아프리카가 지닌 경제 및 인력의 장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다만 아쉬운 점은 개발문제 등 몇 가지 문제에 대해 다소 저자가 소극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점만 뺀다면 저자의 열정과 정성이 가득한 책이다. 저자 장 졸리는 이미 <아프리카 대륙의 역사>로 르네-카이에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사회 편
<창조론 - 프랑스 사회에 위협인가?>|시릴 보두엥, 올리비에 브로소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교육을 문제 삼는 세태를 비판하는 에세이다. 150년 동안 창조론자들은 다윈의 진화론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비난해왔고, 다윈의 진화론을 이데올로기로 치부해 왔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같은 경향은 지금도 뉴질랜드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한국에 이르기까지 많은 국가와 종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다. 독일, 이탈리아, 세르비아, 네덜란드의 교육부 장관들도 최근 다윈의 진화론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종교계 사이의 긴밀한 협력, 대기업 및 재산가들의 지지도 반 진화론에 힘을 싣는다. 미디어에서도 창조론 지지자들의 발언을 자주 들을 수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종교의 역할에 대해 발언한 바 있다. 정교분리 원칙의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면 이 같은 분위기는 사뭇 걱정스럽기도 하다.
   요약 및 발췌 번역 | 이주영 ombre2@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