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푼 거품 아득해진 주거 안정

[Corée 특집] MB노믹스, 빈곤에서 살아남기

2011-03-11     변창흠/세종대 교수·행정학

전셋값이 2년째 지속적으로 상승해 100만이 넘는 ‘전세유민’이 직장과 자녀의 학교 근처를 떠나 도시 외곽으로 옮기거나, 비싼 전·월세의 고통을 받고 있다. 최근의 전셋값 상승은 전국의 모든 주택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버블 세븐’ 지역을 중심으로 매매가격이 폭등했던 참여정부 시절이나, 서울 노원·도봉·강북구의 다가구주택과 연립주택의 전셋값이 올랐던 2008년 초와는 사뭇 양상이 다르다.

그런데도 정부의 인식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여전히 주택 가격이 안정돼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전환되지 못하면서 생기는 문제라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2011년 2월 11일 대책). 따라서 정부가 발표한 대책의 핵심은 주택 공급 확대와 민간 임대사업자 육성이다. 국토해양부는 앞으로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하고, 주택 수요 촉진을 위해 총부채상한비율(DTI) 완화 조처를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공급과 수요를 모두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번 전세 대책뿐 아니라 미분양주택 해소와 건설사업 구조조정, 부동산 규제 및 세부담 완화, 주택 공급 확대, 주택재정비사업 촉진, 부동산 금융 규제 완화 등 부동산 정책 전반에서 유사한 태도를 보여왔다. 이 정책들은 ‘공급만능주의’와 ‘부동산시장팽창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공급만능주의란 토지나 주택 문제는를공급 확대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우리나라의 높은 토지 가격과 주택 가격, 급격한 부동산 가격의 상승과 변화, 부동산 투기 등의 원인이 모두 공급 부족에 있다고 본다. 공급이 부족한 이유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투기 억제 명분으로 각종 규제를 가해 토지와 주택을 필요한 지역에 제때 공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규제를 완화하고 수요 촉진을 유도함으로써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는 2008년 6월 이후 부동산시장팽창주의로 바뀐다. 불황 극복과 부동산시장 활성화라는 명분을 들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부동산 및 건설산업과 관련한 규제를 전면 철폐하는 한편, 주택금융공사 등을 활용해 건설산업을 지원하게 된다.

전세값 폭등, 집 사면 해결된다?

전셋값 폭등과 전세난민의 고통,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올인했던 저축은행의 영업 정지, 가계대출의 급속한 확대와 가계 파산 위기 등은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공급만능주의와 부동산시장팽창주의 정책이 초래한 문제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주택 공급 확대와 민간 사업자 중심의 부동산 시장 팽창 정책을 더욱 강화할 것인지, 아니면 부동산 정책 기조를 전면 재검토해 도시의 지속 가능성과 서민의 주거 안정을 우선시하는 새로운 부동산 정책을 지향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기로에 서 있다. 최근 전세 대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발표한 민간 임대사업자에 대한 규제 완화와 분양가 상한제 폐지, DTI 규제 완화 연장 등은 기존 부동산 정책 기조를 더욱 강화하는 대책들이다. 반면 많은 전문가와 야당이 요구하는 전·월세 임대료 상한제나 계약갱신청구권 제도 도입, 소형 주택 건설 의무화와 임대주택 건설 의무제 복원, 공공임대주택 확대와 재정비사업 속도 조절 등은 세입자의 주거 안정과 주거 복지에 정책의 주안점을 두라는 요구다. 앞으로 정부가 어떤 방향을 설정하는지에 따라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방향과 주거 안정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수십 차례 부동산 정책을 발표하고도 부동산 가격 폭등과 부동산 양극화를 막지 못한 참여정부의 정책 실패 경험을 자산으로 안고 출범했다. 한편으로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지닌 투기 수요 억제와 주거 복지에 초점을 맞춘 부동산 정책을 부정하고 폐기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부동산 가격 폭등이라는 쓰라린 경험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상충되는 조건 위에 서게 되었다. ‘보수주의 정부’를 표방하며 출범했기 때문에 규제 완화와 작은 정부, 민간 부문의 적극적인 활용 등을 정책 기조로 내걸었다. 토지 이용과 부동산 분야는 우선적인 규제 완화 대상으로 설정했다. 이런 정책 기조는 대통령 선거 공약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각 부처의 대통령 업무 보고를 통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공급을 늘려 수요를 늘린다니…

그러나 사소한 정책의 변화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동산 시장의 특성 때문에 규제 완화 정책을 쉽게 추진하지 못하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확대되고 국내에서도 전국적인 미분양 문제가 심각해진 2008년 6월 이후 부동산 정책의 본질을 전면에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나 미국의 금융위기 모두 주택 가격 폭락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 폭락을 막기 위한 정책이 집중적으로 발표됐다. 각종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규제 완화 정책과 건설산업 지원 정책의 대외적인 명분은 미분양 해소, 건설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주택 공급 확대, 주택 가격 급락 방지 등이었다.

그동안 발표된 부동산 정책은 크게 주택 공급 확대, 주택 수요 확대, 부동산 관련 세제 개편, 건설산업 지원 정책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은 전국적으로 미분양주택이 16만 채가 넘는데도 강력하게 추진됐다. 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의 핵심적인 내용은 공급 확대에 장애가 되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었다. 이 정책은 신도시뿐 아니라 도시 외곽, 기존 시가지 등 모든 지역에서 진행됐다. 이를 위해 개발제한구역을 풀어 임기 내 수도권에서만 주택 32만 호를 공급하는 보금자리주택이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주택 공급 정책으로 채택됐다. 재건축과 재개발사업을 촉진하기 위해 임대주택 의무화와 소형 주택 의무화 비율 같은 규제를 크게 완화했다.

미분양주택이 누적되고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부동산 세제 감면 및 다주택자와 투기적 거래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주택 수요의 인위적 창출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양도소득세와 취득·등록세 감면,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 세제 개편은 세 부담을 줄여 주택 수요를 확대하기 위한 조처였다. 전매제한 완화나 다주택자에 대한 과세중과 한시적 유예, DTI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 완화 등도 과거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였으나, 주택 수요의 팽창을 위해 대부분 폐지되거나 완화됐다.

주택 공급 확대 및 주택 수요 유발을 위한 각종 규제 완화와 주택시장 활성화 정책은 그 자체가 건설산업 지원 정책이다. 직접적으로 건설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채택된 제도는 환매조건부 미분양주택 매입, 건설사 유동성 지원, 주택건설 사업자의 부채 상환용 토지 매입 등이다. 주택 수요 부족과 공급 과잉으로 건설산업의 구조조정이 먼저 필요했지만, 건설업체 지원을 통해 건설산업을 확대시킨 것이다.

경제위기 초기에는 미분양주택 해소를 위한 건설산업 지원과 수요 확대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졌으나, 이후에는 그동안 투기 억제와 개발이익의 환수, 과도한 개발 억제, 가계와 금융기관의 안정성 확보 등을 위해 도입한 대부분의 제도가 폐지되거나 완화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출범 초기에 내걸었던 보수주의 부동산 정책, 공급만능주의 주택 정책을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

거품 해소, 절호의 기회 날려

세계경제 위기로 인한 부동산 가격의 하락은 부동산 시장을 붕괴시킬 수 있는 위기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부동산 시장에 낀 거품을 해소할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 가격 거품을 해소하기보다는 부동산 가격의 폭락을 막고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정책 초점을 맞췄다.

외국 사례를 볼 때, 부동산 가격 폭락이 금융권 붕괴로 이어져 사회·경제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은 가격 폭락을 경험한 국가들과 비교할 때 경제위기 이전까지 가격 상승폭이 크지 않았고, 가계 부채 수준도 높지 않았으며, LTV와 DTI 상한 제도가 있어 과도한 주택담보대출로 인한 가계 파산 가능성도 높지 않았다. 장기에 걸쳐 주택구입 대금을 지급하는 선분양제도나 전세제도 등도 부실 대출의 가능성을 낮게 한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나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채택한 긴급 대책은 분명 과도한 것이었다. 부동산 가격 거품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고, 부동산 시장을 더욱 팽창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주요 선진국들의 주택 가격이 경제위기 이후 20% 이상 하락한 반면,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이미 대부분의 지역에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넘어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 팽창 정책과 건설산업 활성화 정책은 오히려 건설 관련 산업의 위기를 초래하고 개발사업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전국에 걸쳐 지정된 각종 개발특구나 개발지구는 전 국토 면적의 1.2배에 이른다. 2009년 말을 기준으로 전국에서 지정된 정비사업은 주택재개발사업 1045개, 주택재건축사업 638개, 주거환경개선사업 792개, 도시환경정비사업 654개 등 총 3129개 지구이며, 면적으로는 1억6207만3천㎡에 이른다. 이 사업들은 이미 수요와 개발 용량을 초과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추진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정상적으로 추진되더라도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사업이 중단되거나 지연되면서 건설업체뿐 아니라 저축은행 같은 금융기관도 위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서민 가계나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고유 기능을 무시하고 헛된 꿈을 좇아 부동산 PF 사업에 대출을 집중했던 상호저축은행 8곳이 영업 정지됐다. 다른 제2금융기관들도 여전히 위험을 안고 있다.

저소득층 주거 복지로 정책 선회해야

최근의 전세 대란은 주거 복지 정책이라기보다는 경제위기 해소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정책이 돼버린 이명박 정부 주택 정책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주택 정책은 당연히 시장에서 주택이나 주거 서비스를 구입할 능력이 없는 세입자들의 주거 안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세입자의 주거 안정은 주택 공급량만 늘린다고 보장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거 복지 정책으로서 특별한 투자와 세심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용산 참사나 대부분의 재개발·뉴타운 지역에서 보듯이 노후한 주택을 철거하고 고급 주택을 건설해도 원주민이나 세입자들의 주거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이들의 주거권이나 영업권을 빼앗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향후 부동산 정책은 주거 복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주택 정책의 목표와 지표를 총량적인 공급 목표에서 주거 안정 여부와 향상 정도를 측정할 수 있도록 새로 설정해야 한다. 소득 대비 주택 가격 수준, 전체 가구 중 안정적인 거주가 보장된 가구의 비율, 가계 지출 중 거주비 비율, 강제이주가구 비율 등은 주거 안정을 측정하는 좋은 지표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여전히 자가 주택 점유율이 낮고 공공주택의 재고가 부족한 상황이다. 세입자 대부분이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해야 한다. 임대계약갱신청구권을 부여해 안정적인 거주가 가능하게 하고, 소득이 낮은 계층을 위해서는 주거급여제도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

글•변창흠 
환경정의토지정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