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주의’로 분칠한 도시의 변신

2020-02-28     브누아 브레빌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2020년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주요 도시의 시장을 노리는 후보라면, 아무리 유리한 입지를 확보했더라도 반드시 따라야 하는 몇 가지 수칙이 있다. 그중 하나는 ‘나무 심기’ 공약이다. 파리 시장 후보들을 예로 들어보자. 안 이달고 현 파리 시장이 6년에 걸쳐 묘목 17만 그루를 심겠다고 공언했고, 경쟁 후보인 세드릭 빌라니는 2019년 7월 카르티에 재단 주최로 열린 ‘수목의 밤(Nuit des arbres)’ 포럼의 사회를 진행하면서, 대규모 산책로 녹화 계획을 발표했다. 마르세유 시장선거 출마를 선언한 공화당 소속 마르틴 바살 후보는 출산율이 증가하는 상황을 고려해(마르세유 출산율 또한 증가한다는 가정하에) 7만여 그루의 수목을 심겠다고 약속했다. 사회당 경쟁 후보 사미아 갈리 의원의 공약에 비하면 3배에 달한다. 릴에서도 시장 후보들이 ‘도심 녹지공간’과 ‘녹색 광장’ 공약경쟁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도시 녹지사업에 대한 애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친환경 건물을 짓고, 자전거와 공유 차량 사용을 장려하고, 학교급식 재료를 유기농 식품으로 바꿔야 하며, 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촉진해 매력적인 도시로 발전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걸어야 한다. 무엇보다 공약내용을 ‘혁신’, ‘투명성’, ‘참여 민주주의’ 같은 용어로 가득 채우고, 지속가능한 개발, 지속가능한 도시, 지속가능한 지역발전, 지속가능한 관광, 지속가능한 건물 등 ‘지속 가능’이라는 수식어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후보들의 공약에서 같은 말과 같은 공식, 같은 목표가 모범답안에서 발췌해놓은 듯 천편일률식으로 되풀이된다. 도시를 넘어 서로 다른 국가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요컨대 시애틀이나 몬트리올, 베를린 시장 후보의 공약내용이 대동소이하다. 상식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 구체적인 문제에 대응하는 도시정책이 규격화된 일련의 해법으로 축소된 듯한 모습이다.

 

“국가가 연설할 때, 도시는 행동한다”

마이클 블룸버그가 뉴욕 시장으로 재임하던 시절(2002~2013) 세계 94개 대도시들이 모여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협의체인 대도시 기후 리더십 그룹(Cities Climate Leadership Group, 이하 C40) 의장을 맡으며 남긴 말이 있다. “국가가 일장 연설을 할 때 도시는 행동한다.” 오늘날 이 말은 학설처럼 굳어져 널리 쓰이고 있다. 국가가 이념적이고 당파적인 갈등에 묶이면 효과적으로 행동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도시 차원에서 국가의 결함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 많은 도시정책 결정자들이 동의한다. 

도시계획 문헌에서도 기본명제로 다루는 이 개념은 ‘도시 외교’의 기초를 이룬다. ‘도시 외교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과거 적국이었던 프랑스와 독일 도시가 체결한 자매결연 프로그램을 모델로 하는 개념이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전 세계 도시를 하나로 묶는 무수한 연합, 포럼, 네트워크에 영감을 불어넣는다. 도시 간 협의체는 1985년에 그 수가 55개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200여 개가 넘을 만큼 지난 30년 동안 꾸준히 규모와 영향력을 키워왔다.(1) 

대표적인 예로 C40 외에도 유로시티(Eurocities), 글로벌 기후에너지 시장협약(GCoM), 자치단체 국제환경협의회(Iclei), 세계지방정부연합(UCLG),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UNESCO Creative Cities Network), 평화시장회의(Mayors for peace), WHO 건강도시연맹(Alliance for Healthy Cities, AFHC)을 꼽는다. 정치학자이자 버락 오바마 캠프의 외교정책 고문을 맡았던 이보 다알더는 “‘불평등, 이민, 보건, 안보, 거버넌스, 인권’ 등의 문제에 직면한 지방 정부들이 중앙정부를 우회해 자체적으로 해결책을 마련하며 조직화하고 있다”라며 만족을 표했다.(2) 같은 입장과 고충을 공유하는 도시 간 협의체는 세계은행, 유엔(UN), 그리고 여러 다국적 기업의 지원을 받는다. 지난 C40 세계시장대회를 후원한 것도 이케아,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벨룩스, 델과 같은 다국적 기업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지방 당국과 기업의 혁신성을 하나로 묶어 대도시에 힘을 불어넣는 구원병 역할을 한다. 세계적인 정보통신기업 시스코(Cisco)의 ‘시티 프로토콜(City Protocol, 도시 발전의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를 논의하는 토론장-역주)’이나 록펠러 재단이 주도하는 ‘세계 100대 재난회복력 도시(100 Resilient Cities, 록펠러 재단 설립 100주년 기념 프로젝트로, 세계 100개 도시를 선정해 재난회복력이 있는 도시를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함-역주)’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듯, 민간부문은 ‘도시 외교’에 상당한 호감을 나타내고 있다.

도시 간 협의체는 재활용을 촉구해 ‘녹색 자본주의’를 전파할 뿐 아니라 ‘모범사례’를 확립해 도시에서 도시로 전파하는 역할을 주도한다. 도시 외교 활동의 목적으로, 각 시 정부 담당자들은 각종 회의와 박람회, 전시회에 참석하고 견학 학습으로 지식을 넓힌다. ‘남의 속에 있는 글도 배운다’라는 속담처럼, 서로 업적과 경험을 교환하는 과정을 거치면 각자 바로 적용가능한 ‘턴키 솔루션’을 얻을 수 있다. “관행을 상호 공유하고 적용하다 보면 일거양득의 효과를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동시에 이미 시도해본 것들이 다른 도시에서는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알 수 있다”라고 도시계획 전문가 알랭 부르딘과 조엘 이드트가 설명한다.(3) C40은 2012~2018년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구체적인 활동을 1만 4,000건 이상 전개했다고 자부했다. 창원, 도쿄, 뉴욕은 태양열을 반사해 건물에 흡수되는 열을 감소시키는 혁신적인 지붕 설계기술을 공유해 왔고, 바르셀로나, 싱가포르, 오클랜드, 바르샤바는 전기버스에 관한 지식을 교환했다. 특정 분야에서 최전선을 달리는 도시들(파리의 지하철, 코펜하겐의 자전거 시설)은 경험이 적은 다른 도시에 기술 지원을 제공했다.

 

매력적인 도시 브랜드를 얻기 위한 경쟁

최고의 아이디어를 기리기 위해 C40은 전 세계 도시를 대상으로 해마다 ‘C40 블룸버그 어워드(C40 Bloomberg Philanthropies Award)’를 수여해 공로를 치하한다. 2019년에는 콜롬비아 메데인시의 녹지 회랑(Green corridors), 서울의 태양광 패널, 샌프란시스코의 녹색 에너지 지원 프로그램, 광저우의 전기버스가 이 상을 받았다. C40 의장을 맡은 안 이달고 시장은 시상식에서 “이들 프로젝트는 전 세계 시장들과 도시 지도자들이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평가했다. 국제적인 위상을 강화하고자 하는 도시들에 이런 종류의 상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기회도 매우 다양하다. 각종 네트워크와 전문잡지, 다양한 정부가 우수사례를 선정해 상을 수여하고 있다. 일례로 유럽위원회는 ‘유럽 수도(녹색, 문화, 청소년 그리고 혁신)’라는 타이틀을 걸고 ‘액세스 시티 어워드(Access City Award)’를 고령자 또는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인 도시에 수여한다. 프랑스는 경제부 주도로 ‘프렌치 테크(French Tech)’ 상을 만들었다. 스타트업에 적합한 환경을 구축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할 가능성이 큰 ‘테크챔피언스(Tech Champions)’ 도시 앞으로 이 상을 수여한다.

이런 수상경력에 빛나는 도시의 사례는 찬양 일색 기사로 전문지에 소개된다. 어쩌면 세계적인 귀감이 될지도 모른다. 전 세계 다른 도시들은 해당 도시를 본보기로 삼고 모방하려(변형을 시도하는 경우가 더 많을 테지만) 할 것이 분명하다. 유행을 선도하는 도시로 거듭나는 것이다.(4) 포르투 알레그레의 참여형 예산, 싱가포르의 도시통행료 체계, 빌바오의 문화를 통한 경제 재생 전략, 함부르크의 홍수 위험관리 비결, 시애틀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모델, 런던의 국제 스포츠 행사 관리방식, 밴쿠버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바로 그런 경우다. 대도시라면 모두 모범사례로 선정되기를 원한다. 프랑스에 몇 안 되는 도시 외교 전문가 이브 빌타르가 지적하듯, 대도시 간의 경제전쟁은 ‘매력적인 도시 이미지를 구축하는 브랜드 경쟁’을 수반하기 때문이다.(5) 

C40과 같은 포럼에 참여하는 것은 도시 이미지를 개선하고 도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좋은 방법이며, 더 많은 투자자와 기업, 고급인력, 유학생뿐만 아니라 경제 이익을 창출하는 주요 행사를 유치하는 기본조건이다. 2011~2019년까지 시카고 시장을 지낸 람 이매뉴얼은 50~100개 도시가 세계의 지식, 문화, 경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기회를 지니고 같은 배를 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시에 경쟁력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두가 유치하고자 하려는) 일자리와 기업은 더 국제화됐을 뿐 아니라 이동이 더 쉬워졌기 때문이죠.”(6)

각 도시는 투자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최근 성행하는 컨설팅기업에 자문하기도 한다. 컨설팅기업은 표준화된 언어로 다양한 종류의 상이나 상표신청서를 작성하고 혁신도시 프로젝트 후원 자선재단에 제출할 방대한 분량의 보조금신청서 제출을 돕는다. 해외에서도 각종 매스컴이나 주요 행사에 활용하도록 눈길을 사로잡는 로고와 인상적인 슬로건(‘LyOn’, ‘So Toulouse’, ‘My Rodez’와 같이 영어로)을 고안해주기도 한다. 도시 간 경쟁은 여러 도시가 동시에 벤치마킹에 뛰어들게 만든다. 경쟁의 수준(국가, 대륙 또는 세계)과 관계없이 더 혁신적이고 더 현대적이며 연결성을 추구하는 일종의 ‘결승점 없는 무한 경주’를 방불케 한다.(7) 

그 결과, 엑상프로방스는 샌프란시스코의 사례를 응용해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화가 폴 세잔의 도시’로 유명한 엑상프로방스는 오늘날 ‘프렌치테크(French Tech)’를 내세워 기술 선진도시로 변화를 꾀하고 프로젝트 기획자나 기업가에게 매력적인 환경을 구축했다. (…) 시의 ‘투자유치 및 국제협력부’는 홍보 전단에 엑상프로방스를 “디지털 혁신과 국제화를 향한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세계를 잇는 지능형 국제도시며, 현대적이면서 세계적이고, 문화와 역동이 넘치는 세계에 개방된 도시”라고 소개한다. 

서로 경합을 벌이는 도시는 동맹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 로비 목적으로 도시 외교를 활용한다. 유럽 도시 네트워크(Eurocities)의 임무는 주요 도시의 관점이 정책 결정에 반영되도록 유럽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UCLG는 ‘도시 외교’를 위한 유럽 기금의 설립을 목표로 유럽연합은 물론 세계은행과 UN을 상대로 정책 로비를 벌인다고 자부한다. Iclei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에 압력을 가해 지구온난화 대책에서 시 정부가 더 중점적인 역할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C40은 2017년, G20 정상회의의 심의에 참여하는 장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어번20(Urban20)’ 협회를 창설했다.(8)

 

정치의 양극화로 이어지는 지역 격차

이런 과정에서 악순환의 고리가 생기기도 한다. 세계화가 부와 고부가가치 활동을 대도시로 집중시켜 경제, 정치, 문화에서 대도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천편일률적으로 부유층과 고학력 인구를 수용한 결과, 도시들의 모습도 획일화됐다. 뉴욕이나 베이징이나 서로 엇비슷한 고층 빌딩, 질서정연한 쇼핑몰, ‘창조 클러스터’가 들어서 있다. 이처럼 동일한 문제에 직면한 도시들은 서로 협력하기에 이른다. 공동의 이익을 지키려고 연합한 도시들은 이제 세계은행부터 유럽집행위원회에 이르는 의사결정 기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공공정책을 유리하게 활용하며, 시골과 작은 도시를 등한시하는 지역적으로 불평등한 개발모델을 부추긴다.

지역 간 격차는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그 격차가 전례 없이 커졌다. 한쪽에서는 친환경 건축물에서 생활하고 전기버스를 이용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인구가 감소해 폐허가 된 빈집들 사이에서, 저녁과 공휴일이면 버스가 끊어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서구 국가 대부분이 겪고 있는 이런 지역 간 격차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많이 증가했다. 프랑스에서는 2008~2016년 파리 수도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 증가했다. 하지만 그 밖의 지역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는 대도시 지역의 고용이 4.8% 증가했지만,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2.4% 감소했다. 이런 격차는 2008년 이후 영국에서만 일자리 창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런던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파리, 뉴욕, 런던, 암스테르담, 토론토에서 경제위기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쳤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지금, 고용시장은 원활히 작동하고 부동산 가격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투자의 흐름도 최고조에 달했다. 무엇보다 전례 없이 많은 부(富)가 고소득층에 집중돼 있다.(9)

그러나 인구밀도가 낮고 서민층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은 경기침체의 영향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산업과 저숙련 일자리가 사라지자 지역 인구는 감소하고, 부동산 가격은 하락해 지역 재정이 위기를 겪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주민 감소, 일자리 감소, 주택가격 하락. 이는 곧 지방정부의 수입 감소를 의미하며, 공공 서비스와 기반시설 유지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상황에 놓인 지역은 결국 대책 없이 빠져나가는 인구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세계화나 재화와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에 반대하는 소위 ‘포퓰리스트’ 정당들이 활개 치는 곳이 바로 이런 지역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소득증가율이 가장 저조하고, 인구가 계속 감소하며, 사망률이 날로 증가하는 도시에서 승리를 거뒀다. 프랑스와 영국에서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 RN) 같은 우익 정당이나 브렉시트는 부동산 가격 하락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지역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었다.(10) 반대로, 자유무역, 녹색자본주의, 개방과 혁신을 앞세워 ‘진보’를 자청하는 정당은 대도시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경향이 강하다. 2016년 미국에서는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100개 도시(대도시 포함) 중 88곳에서 승리했고 워싱턴DC에서는 득표율이 4%에 그친 트럼프를 크게 앞섰다.

헝가리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빅토르 오르반 총리를 맹비난한 생태학자가 2019년 10월부터 부다페스트 시장직에 올랐다. 체코에서도 2018년 11월, “향후 8년간 나무 백만 그루를 심고 난민을 방어하겠다”라고 밝힌 해적당 일원이 시장이 됐다. 안드레이 바비시 체코 총리는 유럽으로 집중되는 ‘정착 이민’을 폄하해온 인물이다. 25년 전에 보수 이슬람주의자 레젭 타입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지지 기반이었던 이스탄불조차 지난해에 세속주의와 사회민주 성향을 띤 야당의 손에 넘어갔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저스 소유의 <워싱턴 포스트>는 다음과 같은 기사로 감탄을 표했다. “세속화된 도시민, 기업, 청년, 여성, 소수민족이 힘을 합쳐 끌어낸 결과다. (…) 이스탄불은 터키인, 쿠르드인, 우즈베키스탄인, 세네갈인, 카타르인, 시리아인이 모여 사는 도시다. 무려 7세대에 걸쳐 이스탄불에 살아온 토박이들도 이주자, 외국인, 난민들과 한데 어우러져 살아간다. 똑같은 생활양식을 공유하지는 않아도 공간을 공유하는 무수한 시민들이 도시라는 공통의 공간을 공유하며 서로 연결돼 있다.”

 

“우리는 정부의 대리인이 아니다”

이 낙관적인 비전은 지난 10여 년 동안 널리 퍼졌다. 가디언(2016년 10월 31일)은 “뉴욕의 가치는 세계 주요 도시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모두 열망해야 할 낙천주의, 다양성, 끈기의 가치”라고 말한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은 대도시를 ‘포퓰리즘에 대한 해독제’로 보면서 찬사를 쏟아낸다. “전 세계 도시 대부분은 사람을 중심축으로 미래에 대한 긍정적이고 포용적이며 다원적인 비전을 구축하고 있다. 반면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공포를 뿌리고 국경을 폐쇄하고 벽을 쌓고 있다.” 

‘자본가들의 인터내셔널’로 불리는 다보스 포럼은 도시와 농촌 인구의 가치관과 우선순위가 날이 갈수록 큰 대립을 보이는 점을 주목하면서 “대도시들이 스스로 조직화하고 ‘도시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11) 오바마 전 대통령의 고문이었던 이보 다알더는 정부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주요 도시에 ‘미니 대사관’을 창설하자는 주장을 폈다. 상파울루, 런던, 토론토에서는 이미 이런 실험을 시행에 옮겨봤지만, ‘공금 낭비’라는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해 이보 다알더는 “민관협력이 해법이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어떤 도시들은 포퓰리즘에 반대하는 운동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동유럽에서는 지난해 12월에 프라하, 브라티슬라바, 바르샤바, 부다페스트의 시장들이 모여서 ‘자유도시 조약’을 체결했다. 그들은 “지난 세기 유럽을 두 번이나 전쟁으로 몰아넣은 것은 다름 아닌 외국인 혐오 민족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정부에 맞섰다. 4개 도시 시장은 도시들이 자원을 모으고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방법으로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했고, 그에 앞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우리는 주권과 정체성에 대한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에 집착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의 귀중한 자유, 인간의 존엄성, 민주주의, 지속가능성, 평등, 법치, 사회정의, 관용, 그리고 문화 다양성이라는 소중한 공동의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열린 사회’를 믿는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에게 가장 먼저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은 대도시였다. 2017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보스턴, 뉴욕, 워싱턴, 디트로이트, 그리고 시카고의 시장은 불법 이민 단속을 강화하는 법령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보스턴 시장은 보스턴 주민, 보스턴의 저력, 보스턴의 가치관에 대한 공격이라면서, ‘파괴적’이고 ‘미국의 가치에 어긋나는’ 법안을 질타했다. “우리의 도시와 우리의 가치는 선거결과에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연방정부의 대리인이 아닙니다.”(12) 몇 달 후,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 기후 협약 탈퇴 결정에도 몇몇 주요 도시는 협약을 계속 준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가 이런 분위기에 불을 지폈다. 2016년 6월 국민투표 다음 날, 런던의 독립을 요구하는 탄원서가 돌았고, 몇 주 사이에 18만 명이 동의 서명을 했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런던의 분리독립’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은 원치 않지만, “수도인 런던이 영국의 운명에서 분리되기를 원한다”라고 밝혔다. 브렉시트 결과가 나온 지 4일 만에 칸 시장은 안 이달고 파리 시장과 <파이낸셜 타임스>와 <르 파리지앵>에 공동성명을 냈다. “파리와 런던은 누구나 편안하게 느끼는 공간이다. 두 도시는 앞으로 더욱 긴밀하게 협력해 유럽과 전 세계 도시들이 더욱 강력한 동맹을 구축해나가는 노력에 앞장서기로 했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국가의 무기력과 로비 단체의 영향에 맞서는 대항마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함께 새로운 세기를 열어나갈 것이다.” 

이후 칸 시장은 관광객과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고자 ‘#LondonIsOpen(런던은 열려있다)’라는 해시태그를 중심으로 언론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칸 시장은 상공회의소, 런던시 공사, 수많은 싱크탱크와 다국적 기업의 지지를 등에 업고 공동시장과의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런던에 치외법권 보장과 런던에서만 유효한 취업비자 발급을 요구했다. 이런 요구는 결실을 보지 못했지만, 중앙정부의 결정에 강하게 반대의 뜻을 밝힌 칸 시장은 예상치 못한 국제적인 인지도를 획득했다. 그는 현재 각국 장관이나 국가 원수(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에 버금가는 명사로 거듭났다.(13)

 

‘백인 특권’보다 강력한 ‘수도권 특권’

좌파 언론은 이런 도시들의 저항을 열렬히 환영하는 분위기다. 프랑스 잡지 <르가르(Regards)>는 ‘권력을 잡은 도시들’(2020년 상반기 발간)이라는 기사에서, “미국 도시들의 대립은, 트럼프 대통령의 강압 정치에 저항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증표”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대도시가 다른 지역사회의 처지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지역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사회, 지리적 분열을 ‘(수도 없이 반복되는 말인) 가치관의 차이’가 불러온 갈등으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도시와 다른 지역을 가르는 경계선은 더 이상 세계화, 자유무역, 인재 유출, 값싼 이주노동력의 수혜지와 피해지역 사이에 있지 않다. 이제는 ‘개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공간’과 ‘전통에 집착하는 폐쇄적인 공간’이 경계선을 사이로 서로 양립하고 있다.

성공적인 정치분석가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고문이었던 벤저민 바버는 『만약 시장들이 세계를 지배한다면』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14) 의사결정권자들이 이 책을 극찬했고 바버에게는 인터뷰와 강연, 회의 참석 요청이 쇄도했다. 그는 도시 엘리트들이 시민을 인식하는 방식을 도식화해 풍자적으로 나타냈다. 대도시와 기타 도시를 나타내는 수식어로 ‘개방’, ‘창조’, ‘범세계주의’, ‘기동성’, ‘유동성’, ‘미래지향’, ‘혁신’, ‘세속주의’, ‘진보주의’, ‘현학적’, ‘상업성’ 같은 단어를 사용했고 ‘폐쇄적’, ‘관습’, ‘교구’, ‘안정’, ‘과거’, ‘반복적’, ‘종교적’, ‘보수주의’, ‘전통’, ‘단순함’, ‘자치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해 지방과 미국 중부지역을 묘사했다.

통념을 넘어서 연구를 시도하는 로런스 R. 제이컵스 정치학 교수는 자신이 일하는 도시 미네소타와 2008년과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을 선택한 20개 도시 중 트럼프가 승리한 도시를 조사해 분열의 원인을 분석해 왔다.(15) 그는 분열을 초래하는 요인 중 하나로 미니애폴리스와 미네소타주의 나머지 도시 간의 높은 임금 격차를 지적했다. 2017년 미니애폴리스에서는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점진인상하기로 했다. 이는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주택 붐’ 시기에, 저숙련 노동자가 쾌적한 주택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대도시에서 통상적으로 시행하는 조치다. 

반면 미네소타주 다른 도시의 최저임금은 대기업 10달러, 중소기업 8.15달러 수준에 멈춰있다. 그나마, 간신히 일자리를 구했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제이컵스 교수가 인터뷰한 주민들은, “사회적 배제에서 비롯한 차별을 경험했다”라고 토로했다. 일손이 당장 절실해 보이는 어떤 작은 마을의 주민은, 미니애폴리스 어딜 가든 크레인과 ‘시급 15달러부터’라고 적힌 구인광고판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제이컵스 교수는 그밖에도 도시 상류층에 호소하고자 미니애폴리스의 진보진영이 변형해 사용한 연설, 수사, 개념이 다른 주 주민들 눈에 어떻게 읽히는지를 강조해 설명했다. 그는 특히 사회과학 분야에서 널리 쓰이며 (녹지 보호를 주장하는 주민들의 시비로 경찰서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한 이후) 미니애폴리스 의원들과 지역 민주주의 운동가들이 흔히 오용하는 개념인 ‘백인의 특권’을 지적했다. 

저임금과 불안정한 생활로 실음하는 해당 지역 주민들은, 미니애폴리스 시민들보다 더 많은 특권을 누린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미네소타에서 가장 가난한 일부 도시의 경우 백인 인구가 높게는 95%를 상회하기도 한다. 그들은 소수인종과 구분하고 사무직 화이트칼라를 주로 지칭하는 ‘백인 특권’보다는 ‘수도권 특권’을 지적한다.(16)

대도시와 그 의사결정자들은 전 세계의 상대 도시들과 교류의 폭을 넓혀나가고 있지만, 자국 내 일부 다른 지역과는 단절돼 있다. 그들이 아무리 한결같이 혁신적이고, 개방적이며, 지속 가능하며, 창의적이고, 지적인 담론으로 눈을 가려도 그들에게 전에 없이 집중된 부를 감추기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도시가 ‘포퓰리즘 해독제’에 최적격이라 볼 수 있을까? 

 

 

글·브누아 브레빌 Benoît Brévil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Michele Acuto, ‘Give cities a seat at the top table’, <Nature>, 제537권, 제762호, 런던, 2016년 9월 28일.

(2) Ivo Daalder, ‘Why cities need their own foreign policy’, <Politico>, 2017년 6월 6일, www.politico.com.
(3) Alain Bourdin; Joël Idt, 『L’Urbanisme des modèles. Références, benchmarking et bonnes pratiques 도시계획 모델. 기준, 벤치마킹과 모범사례』, Éditions de l’Aube, Bibliothèque des territoires 총서, 라 투르데그, 2016.
(4) Vincent Béal, ‘Trendsetting cities: les modèles à l’heure des politiques urbaines néolibérales 트렌드 선도 도시: 신자유주의 도시정책 시대의 모델’, <Métropolitiques>, 2014년 6월 30일, www.metropolitiques.eu
(5) Yves Viltard, ‘Diplomatie des villes: collectivités territoriales et relations internationales 도시외교: 지방 당국과 국제관계’, <Politique étrangère>, 제3호, Paris, 2010년 가을.
(6) Ronald Brownstein, ‘The growing gap between town and country’, <The Atlantic>, 워싱턴DC, 2016년 9월 22일.
(7) Isabelle Bruno; Emmanuel Didier, ‘L’évaluation, arme de destruction 벤치마킹, 평가수단인가 파괴무기인가’, <르몽드디플로마티크>(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3년 5월호.
(8) Michele Acuto et Simon Curtis, ‘The foreign policy of cities’, <The RUSI Journal>, 제163권, 제6호, 런던, 2018년 12월.
(9) Roberto Stefan Foa; Jonathan Wilmot, ‘The West has a resentment epidemic’, <Foreign Policy>, 워싱턴DC, 2019년 9월 18일; Thomas B. Edsall, ‘Reaching out the voters the left behind’, <The New York Times>, 2017년 4월 13일.
(10) David Adler; Ben Ansell, ‘Housing and populism’, <West European Politics>, 제43권, 제2호, 애빙던온템스(영국), 2019년 6월.
(11) Robert Muggah; Misha Glenny, ‘Populism is poison. Plural cities are the antidote’, 세계경제포럼, 다보스, 2017년 1월 4일, www.weforum.org
(12) Nicolas Maisetti, ‘Le Retour des villes dissidentes’, 프랑스 환경변화·연대부 보고서, 파리, 2018년 10월.
(13) Nicolas Bosetti, ‘Londres peut-elle échapper au Brexit? La ville globale comme acteur autonome des relations internationales 런던이 브렉시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국제관계에서 독자적 행보를 펼치는 글로벌 도시’, <Revue internationale et stratégique>, 제112권, 제4호, 파리, 2018.
(14) Benjamin Barber, 『If Mayors Ruled the World: Dysfunctional Nations, Rising Cities』, Yale University Press, 뉴헤이븐, 2014.
(15) Lawrence R. Jacobs, ‘Minnesota’s urban-rural divide is no lie’, <Star Tribune>, 미니애폴리스, 2019년 7월 26일.
(16) Katherine J. Cramer, ‘For years, I’ve been watching anti-elite fury build in Wisconsin. Then came Trump’, <Vox>, 2016년 11월 16일, www.voxmedia.com.
 
 
 

유럽 우호친선의 역사

도시 외교의 탄생은 통상 제2차 세계대전 후 적국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이 맺은 ‘자매결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 5월에 프랑스 몽벨리아르와 독일 루트비히스부르크가 친선관계를 맺은 것이 자매결연의 시초다. 1963년 1월, 프랑스와 독일이 ‘엘리제 조약(Élysée Treaty)’을 체결하고 영구 화해를 다짐했을 때는 130건이 넘는 자매결연이 체결됐다.(1) 이후 다른 국가들도 이런 변화에 동참했다. 1951년에는 프랑스 트루아와 벨기에 투르네가 자매결연했고, 1956년 파리와 로마도 자매결연을 선언했다. 1951년에 창설된 유럽 지방자치제와 지역위원회(Council of European Municipalities and Regions, CEMR)는 자매결연을 ‘두 지방정부가 유럽의 관점에서 행동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며, 친선을 도모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했다.(2)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호를 강조하는 유럽의 이상은 도시 외교의 주요한 사명이다. 2015년 5월, 파리의회가 발표한 ‘국가 수도의 국제적 행동’ 선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오늘날 우리의 책임은 유럽과 파리 시민들 간의 친선을 바탕으로 유럽에 대한 인식과 우호적 감정을 높이고, 파리와 유럽 여러 도시 간의 교류와 협력 채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가는 것이다. 파리시는 로마, 암스테르담, 비엔나, 리스본과의 긴밀한 유대관계에 힘입어 브뤼셀에 본부를 둔 유럽위원회와의 대화를 강화해갈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정책에 반대하는 미국의 여러 지방정부가 항의하는 움직임은 결코 작금에 시작된 일이 아니다. 베트남 전쟁(1961~1975) 당시 여러 시의원이 모여 미국의 군사 작전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1978년 몬태나주 미줄라, 1983년 메릴랜드주 터코마 파크, 1986년 캘리포니아주 버클리로 대표되는 도시들이 반핵운동에 참여해 ‘비핵지대(Nuclear Free Zone, NFZ)’를 선언했고 핵 산업과 연관 있는 기업체들과는 공공계약을 체결하지 않기로 했다. 1980년대에는 100여 개 자치단체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대(對)남아공 정책을 비난하며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협력하는 기업들을 보이콧했다. 중남미 불법 이민자들을 연방기관의 구금·추방 위협에서 보호하고 거주를 허용하는 ‘이민자 보호 도시(Sanctuary City)’ 운동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도의나 가치관을 앞세우는 오늘날과 달리, 과거 도시들은 미국 연방정부의 외교정책에 반기를 드는 정치적 접근이 주를 이뤘던 것이다.

 

글·브누아 브레빌 Benoît Brévil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Santiago Betancur Ramirez, <Quel rôle pour les gouvernements locaux sur la scène internationale? L’action internationale des collectivités locales entre la France et l’Amérique latine 국제무대에서 지방정부의 역할은? 프랑스와 라틴 아메리카 지방정부의 활동>, 정치학 석사 논문, École nationale d’administration–Université Paris 1, 2018.
(2) Mathilde Collin, ‘Une relecture des origines politiques des jumelages et de leur inscription dans le champ des relations internationales 유럽 도시의 자매결연. 자매결연의 정치적 기원과 국제관계 분야에서의 함의 돌아보기’, <Relations internationales>, 제179권, 제3호, 파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