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O에 냉소적인 마크롱의 전략은?
에마뉘엘 마크롱은 12월 3일, 4일 개최됐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전날, ‘NATO는 뇌사상태’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유럽과 프랑스의 NATO 지지세력은 경악했다. 마크롱이 이런 의향을 표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의향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2017년 5월 14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전임 대통령들이 해왔던 외교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여러 제스처를 취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재임 당시 러시아와 프랑스의 관계는 냉전기였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5월 29일 베르사유 궁전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초대했다. 프랑스는 ‘모든 이들과 대화하는’(1) 중재국임을 자처하며 2017년 7월 14일 대혁명 기념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초청했다. 그리고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9년 5월 프랑스-중국 수교 5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파리로 초청했다.
이런 주도적인 외교 이외에도, 골-미테랑주의(2)(군사적, 외교적 독립을 기반으로 한 외교정책 원칙-역주)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마크롱의 대외정책은 어떤 결과를 얻었을까? 아랍 국가들과는 대체로 이전의 외교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군비 산업의 거대고객인 페르시아만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팔레스타인 문제에는 신중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시리아 체제와는 화해 없이 IS와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2012년 폐쇄했던 시리아 다마스의 프랑스 대사관은, 마크롱 취임 후에도 재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기 운영에 있어 프랑스는 독자성을 유지하려 했다. 그 결과 프랑스는 이란 핵협정을 유지시키기 위해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파리기후협약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다자주의를 지지하고, G5사헬(3)을 모이게 만들며, UN의 위임을 받아 파예 알 사라즈 리비아 대통령과 칼리파 하프타르 리비아 국민군 최고사령관 사이의 중재를 시도했다.
긍정적인 점은, 마크롱 정부의 일부 외교활동이 러시아와 유럽의 관계에 새로운 희망을 줬다는 것이다. 2018년 5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와 프랑스 대통령은 아스타나 조약국들(터키, 러시아, 이란)과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 반대하는 아랍의 권력자들 사이에 가교를 놓았다. 일부 서구 동맹국들의 지지를 받으며, 시리아 전쟁의 해결책을 찾기 위함이었다. 또한, 2018년 8월 프랑스는 유럽의 새로운 보안대책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10년 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작성했던 조약의 제안에 대한 응답이자,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롯한 분쟁들(나고르노-카라바흐, 남오세티아, 압하지아, 트란스니스트리아)의 해결을 위해서다.
재결합에 실패한 프랑스와 독일
그러나 현재는 미국이 부드럽게 나오고 있는 시기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힘을 과시하기를 원한다. 자신이 돋보이지 않는 다국적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트럼프는 이란 문제나 기후협약 문제에 대해 프랑스의 의견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미국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이 14개조 평화원칙을 만들어놓고, 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국제연맹과 다국적 질서를 보이콧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2017년 9월 26일 소르본 대학 연설에서 마크롱이 밝혔던 EU의 재활성화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부채가 지나치게 높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들과 추가적으로 경제를 통합하는 것을 북유럽 국가들이 주저하고 있다. 기회주의적인 국가들(아일랜드, 발트 3국, 폴란드, 네덜란드)에 있어서 유럽은 지원금도 받을 수 있고, 이점이 아주 많은 시장이다. 그들은 유럽통합이 넓어지는 데 별 욕심을 보이지 않는다.
여하튼 미국이라는 ‘우산’에 대한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자국의 국방을 지키고, 대외정책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과 콘라드 아데나워 독일 외무부 장관이 엘리제궁에서 조약을 체결한 지 56년 만에 아헨에서 프랑스와 독일은 우정 협력 동반자 조약(아헨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프랑스-독일 커플은 재결합하지 못했다. 영국의 브렉시트 기한 연장, 군비 수출, 러시아로 향하는 ‘Nord Stream 2’ 발트해 가스 공급관 문제에서 두 국가는 엇갈렸다. 최근 <이코노미스트>에서 마크롱과 했던 인터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다. 그는 NATO를 ‘뇌사상태’라고 평가했고, 국내총생산의 3%로 예산 적자를 제한하고 있는 유럽의 규정은 ‘다른 세기에서나 통할 규정’이라고 말했다.(4) 이런 마크롱의 발언에 메르켈 총리는 유난히 단호하게 반응했다.
독일, 중국, 영국, 러시아, EU 등의 표면상의 만장일치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주도한 이란 핵협정 해결책은 실패했다. 미국 법의 치외법권적 지위(5)와 이란과의 교역에 가해지는 미국의 제재 등에 맞서 EU는 무역거래지원수단(Instex)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나, 최소한의 물물 교환밖에 보장하지 못했다. 토탈 그룹은 대규모 가스 매장지 ‘사우스 파르스2’ 를 중국에 매각해야 했고, 르노 그룹은 푸조 그룹처럼 이란 시장을 포기해야 했다.
프랑스 역시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프랑스는 본래 협정에 없는 내용인, 미사일 개발 제한에 대한 추가 협상을 이란이 수용하기를 원했다. 이란은 EU의 이런 갑작스러운 요구를 미국,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측에 대한 동조로 받아들였다. 급기야 유럽은 미국의 제재로 황폐해진 이란에 경제적 보상 없이, 핵에 대한 양보만을 요구했다.
프랑스 외교의 또 다른 과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이다. 프랑스와 독일이 성공적으로 주도한 2015년 2월 12일 2차 민스크 협정은 곤경에 빠졌다. 미국과 영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프랑스와 독일은 크림반도를 장악하고 돈바스 전쟁을 지원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 철회를 수용했다. 협정의 이행은 불확실한 상태다. 결국 대러시아 제재를 유지하려는 우크라이나에 다시 힘을 실어줬다. 2013~2017년 프랑스는 수출의 1/3이 감소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반면, 폴란드와 독일을 제외한 교역 상대국들은 러시아 시장 점유율이 증가했다. 그중에서도 미국이 가장 많이 증가했다.(6)
미국의 INF 폐기, 프랑스에 기회 될까
미국은 1987년 체결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폐기함으로써,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주도했던 외교의 이점을 없애버렸다. 미테랑은 1983년 소련의 SS20 미사일에 맞선 미국의 퍼싱 유도탄 개발을 지지했고, 모든 중거리 미사일 제거를 위한 미국-러시아 조약체결을 용이하게 했으며, 덕분에 프랑스는 논쟁 없이 핵에 대한 억제력을 얻었다. 프랑스는 조약위반을 러시아 탓으로 돌리는 미국을 옹호했다. NATO의 전략에 동조한 프랑스는 러시아가 제안한 감독 방문을 거절하며 유럽의 핵무기 경쟁 진출에 공헌했다.
마크롱의 의향을 보여주는 발표들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외무부와 국방부를 비롯한 정책기관들은 계속해서 신보수주의 또는 서구 중심적인 분석들, 즉 가치론적 원칙에 기반한 미국의 분석을 가장 중요시한다. 프랑스 대통령은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수확은 거의 없다. 미국 대통령은 국제 질서나 관습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시리아에서 대승을 거둔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최소한의 양보도 할 생각이 없다. 동맹국인 독일은 내부 분쟁으로 마비돼, 예기치 않은 부재 상태다. 근동에서 프랑스의 존재는 거의 완벽하게 소멸됐고, 페르시아만 국가들에 대한 의존성은 높아졌다.
프랑스 대통령은 이런 실망스러운 결과를 고려해, 초기에 정했던 외교기조로 되돌아갈 것을 공언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 내에서 프랑스를 위한 기회의 문이 열렸다. 독일은 신중을 기하고 있고, 브렉시트로 경직된 영국은 집안 살림에 바쁘고, 이탈리아는 마테오 살비니의 사임과 함께 변화를 겪고 있다. 마크롱은 2019년 9월 18일부터 로마를 방문했다.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셈이라는 것을 자각하면서 유럽은 새로운 안보 옵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제 불황은, 미국과의 외교 정상화의 꿈을 포기하고 유럽, 특히 프랑스와 친해지려는 욕망을 부추긴다. 특히 2019년 5월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2년 전부터 잠잠했던 프랑스의 외교 기조를 일깨웠다. 우크라이나 새 대통령인 그는, 돈바스 문제를 해결하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정상화하길 원한다.
이제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 행정부의 관성을 가늠하고 있다. 2019년 8월 말, 대사들을 대상으로 했던 연설에서 마크롱은 ‘심층 국가’가 러시아에의 개방을 반대하며, 주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크롱은 국내관할사항에서 반격했다. 대화를 신속히 추진해 깊이 있게 이끌어가는 과정은 흥미진진했다. 4월, 장 피에르 슈벤느망 특사는 푸틴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는 올레크 센초프 우크라이나 언론인 석방, 러시아의 유럽평의회 복귀, 안보 관련 대화 재개 등 실행되기 시작한 로드맵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6월 르 아브르에서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가 만났다. 8월 중순에는 푸틴이 브레강송에 방문했고, 9월 중순에는 양국 외무부와 국방부 장관 회담이 성사됐다.
프랑스 대통령에게 남아있는 과제들
이런 상황에서 마크롱이 원했던 유럽의 새로운 신뢰와 보안 구조를 건설하는 데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해결이 우선순위로 떠올랐다. 현재까지 프랑스는 우크라이나 입장에 동조하며 조심스럽게 의문을 표하고 있다. 타협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난하는 우크라이나, 유럽, 미국의 극단주의자들의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더욱 건설적인 새로운 토론의 장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포로들을 석방하고, 민감한 지역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스타인마이어 공식’(7)을 받아들여서 ‘노르망디 형식’(8)의 정상회담이 가능했다.
2019년 10월 시리아에서 미국이 철수하고 터키가 쿠르드족을 공격하자, 프랑스 대통령은 동맹국인 미국이 프랑스의 안위에는 무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유럽의 능력과 전략의 자율성이 필요함을 깨닫게 됐다. 2019년 9월 뉴욕의 유엔총회에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트럼프와의 만남을 거절했지만, 프랑스 대통령은 대화를 재가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코노미스트>지와의 마크로 인터뷰는 유럽이 정치적, 안보적, 기술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일종의 경고이자, 뇌사상태의 NATO에 ‘정신 차리라’는 호소처럼 비쳤다. 무엇보다 그는 위험을 감수했다. 고립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유럽에서 프랑스가 지도적인 역할을 되찾고 유럽연합의 비전을 격상시키기를 희망했다.
이를 위해 마크롱은 솜씨 좋게 유리한 상황을 이용했다. 기조는 정해졌고, 현실주의적인 유럽 정신이 섞인 골-미테랑주의가 기조임이 확인됐다. 그러나 진짜 시련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미국은 관세에 대해 꿈쩍 않고 있다. NATO는 만장일치로 미국에 동조하며, 유럽에서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협상하자는 푸틴의 제안을 거절했다. 게다가 프랑스 대통령의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의 견해는 프랑스, 미국 그리고 다른 곳에서 ‘이해관계 국가들’ 간의 공조를 거쳐야 하는데, (<이코노미스트>지와의 인터뷰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보여주듯이) 유럽은 주저하고 있고, NATO 내 서구 국가들 간의 연대라는 제약을 받고 있다. 유럽과 프랑스가 소외될 위험이 있는 만큼, 마크롱은 외교적인 성과를 얻기 위해 더욱 싸워야만 할 것이다.
(1) 2019년 10월 31일 옹플뢰르에서 지나가던 행인이 마크롱이 극우 주간지 <발뢰르 악튀엘(Valeurs actuelles)>과 인터뷰 한 것을 비난하자 마크롱이 답변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