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O 문턱에서 어긋난 우크라이나의 평화 열망

2020-02-28     이고르 들라노에 l 모스크바 프랑스-러시아 연구소 부원장

2019년 12월 프랑스의 외교적인 노력으로 성사됐던 파리 정상회담은 돈바스 분쟁 해결의 희망을 되살렸을까? 정상회담으로 실제적인 단계적 긴장완화를 이뤘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적극적 행동주의가 평화의 길목에 놓여있는 주요 장애물들을 제거하지는 못했다.

 

일명 ‘노르망디 형식’이라 불리는 프랑스, 독일, 우크라이나, 러시아의 4개국 회담은 3년 전부터 개최되지 않았다. 그 사이 돈바스에서 친러시아파 반정부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 간의 분쟁은 정체됐다. 2019년 여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펼친 외교적인 노력과 더불어, 우크라이나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4자 정상회담이 재개됐다. 2019년 4월 21일,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에 맞서 젤렌스키는 73%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6월 예정보다 일찍 열린 총선에서 젤렌스키의 ‘인민의 일꾼’ 정당이 43%의 득표율로 의회(라다)에서 절대 과반을 차지하면서 대선에 이은 대격변이 일어났다. 절대 과반 승리는 1991년 다당제 시행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신임 대통령은 그를 애타게 기다리던 유권자들, 특히 돈바스 문제 해결을 기대하는 유권자들로부터 강한 권력을 위임받았다. 

 포로셴코 전 대통령은 분리주의 지역인 돈바스를 격리시켰지만, 젤렌스키는 다른 각도로 문제를 해결하려한다. 대선 운동 당시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언론에서 러시아어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1)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돈바스의 상황을 언급하면서 ‘러시아 침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2) 대선 후 그는 재빠르게 반군 지역을 우크라이나의 품 안으로 품으려는 의지를 표시했다. 2019년 9월부터, 젤렌스키 정부는 분리주의자들의 영토와 경제적․인도적 관계를 재개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에는 이전 정부에 의해 가로막혔던 은퇴연금 지급을 용이하게 하는 계획도 포함돼있다.(3)

 우크라이나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생긴 기회를 포착한 프랑스는, 6월 말 유럽평의회에 러시아를 복귀시키기 위해 움직였다. 러시아는 5년 전부터 유럽평의회 진출 권리가 정지된 상태다. 9월 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70명의 포로를 맞교환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민스크 협정 그룹인 우크라이나, 러시아, 유엔안전보장협력기구(OSCE)의 대표로 구성된 3자 접촉그룹은 분리 경계선의 3개 시범지역에서 중화기를 철수하기로 합의했다. 시범 지역은 페트로프스키, 스타니트시아 루한스카, 졸로토이(4)다. 이들 지역은 우연히 선정된 게 아니라, 산발적으로 교전이 계속 일어나던 곳이었다. 

 

파리 정상회담의 초라한 성과

이런 진전을 보고 프랑스는 노르망디 정상회담이 임박했다고 믿었다. 프랑스는 정상회담을 10월에 가지기를 원했다. 러시아는 신중한 태도로 11월을 언급했다. 결국 4개국의 정상들은 12월 9일 파리에서 회동했다. 그 사이에 두 개의 의미심장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10월 1일 우크라이나는 슈타인마이어 공식(전 독일 외무장관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의 이름을 본뜬)에 서명했다. 슈타인마이어 공식은 유엔안전보장협력기구(OSCE)의 감독하에 분리주의 지역에서 선거를 개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OSCE은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실시하는 돈바스의 특별지위 법안에 대한 투표도 감독한다. 신호를 받은 러시아는 노르망디 정상회담 참석을 확실히 하기 위해 2018년 11월 말 크림 해안에 나포된 군함 세 척을 우크라이나에 돌려줬다. 

 파리 정상회담은 분쟁 해결이 진척되리라는 희망을 줬으나, 그 성과는 초라했다. 군사적인 면에서 단계적 긴장 완화라는 진전은 있었다. 2015년 2월 12일 민스크 협정에서 규정했었던 분리 경계선 전체의 중화기의 철수는 이루지 못했지만, 4개국 정상은 2020년 3월까지 3개의 시범지역에서 중화기를 철수하기로 하는데 합의했다. 민스크 그룹은 지뢰제거 계획을 구상해야만 한다. 모든 포로의 맞교환이 고려됐으나 야심찬 이 목표는 2019년 12월 일부만 달성됐다. 모든 포로의 맞교환은 성사되지 못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00명의 포로만 교환했다. 또한 돈바스의 생활 조건을 향상시키고, 사람들 간의 연락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분리 경계선에 새로운 국경통행지점이 개소될 예정이다. 차기 노르망디 형식 정상회담은 4월 베를린에서 열릴 예정이다.(5)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당선됐다 해도 러시아 입장에서 돈바스 분쟁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 공은 민스크 협정을 이행해야만 하는 우크라이나 측에 있다. 푸틴 대통령이 파리에 가기로 결정했을 때, 그는 아마 두 가지의 우선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는 러시아 쪽으로 패를 내밀기 위해 노력 중인 마크롱 대통령을 속여 외교적·군사적 기구 일부와 척을 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목표는 그가 처음 만나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가스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하는 것이다. 알렉산드르 노바크 러시아 에너지부 장관과 가스프롬의 사장 알렉세이 밀러가 정상회담에 동행했다. 2019년 12월 말 만기가 도래하는 러시아 가스관에 관한 러시아-우크라이나의 10년 계약을 위해서였다. 

 논의는 결실을 맺은 듯 보인다. 12월 20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은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수송되는 러시아 가스관 계약 갱신 MOU를 발표했다. 문제는 계약기간이다. 이와 더불어 금액과 규모가 최종계약의 장애물이다. 우크라이나는 10년 계약을 원하는 반면 러시아는 1년을 원했다. 최종적으로는 5년이 될 것이다. 게다가 가스프롬은 스톡홀름 국제중재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12월 27일까지 우크라이나 가스회사인 나프토가스(Naftogaz)에 29억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그 대신 우크라이나는 결국 122억 달러에 달하는 배상금과 함께 가스프롬을 상대로 한 수송계약 준수(특히 우크라이나 영토를 거쳐 가는 러시아 가스의 최소 규모에 대한 조항)에 대한 소송을 포기했다. 파리 정상회담은 확실히 가스 분쟁을 원활히 해결하고, 새로운 가스 전쟁의 발발을 방지하는 데 성공했다. 우크라이나를 경유한 러시아 가스의 수송은 독일이 제안한 조건 중 하나였다. 발트해에 노르스트림2(Nord Stream2) 가스 공급관 건설을 완성하고, 러시아 가스를 유럽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다. 

 러시아는 민스크 협정에만 기대며, 루한시크와 도네츠크의 주민들에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받았다. 우크라이나는 자국민들이 수용하기 힘든 내용을 협정에 담기를 원하지 않았다. 여론조사를 보면, 우크라이나 국민들 대부분은 평화를 원하지만, 그 대가로 무엇이든 감수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10월 초 여론조사 응답자 중 56.2%는 돈바스의 특별 지위 특권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고, 59%는 모든 분리주의자 반군에 대한 사면에 반대했다.(6)

 10월 초 파리 정상회담 개최에 길을 열어줬던 슈타인마이어 공식에 우크라이나가 서명하자, 이를 러시아에 대한 항복처럼 여긴 수천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즉각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슈타인마이어 공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공식은 러시아에 매우 큰 양보를 한 것이라고 여겼고, 전임 대통령인 포로셴코는 이 공식을 ‘푸틴 공식’이라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는 돈바스와 러시아 영토 사이의 국경 통치권 회복에 관한 어떤 보장도 얻어내지 못했다. 젤렌스키는 파리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우크라이나 정부가 돈바스 지역선거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밝혔다.(7)

 

프랑스-독일-러시아 vs. 미국-영국-우크라이나

게다가 민스크 협정이행은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제재를 점진적이고 선별적으로 철회하는 방식으로 해야 하는 만큼, 우크라이나가 조건들을 충족시킬 이유가 별로 없다고 우크라이나인들은 생각한다. 따라서 러시아는 조항에 대한 새로운 반전 없이 협정에 명시된 순서에 따른 이행을 요구하며, 민스크 협정을 내세우는 유리한 입장이다. 12월 파리 방문 당시 푸틴 대통령은 프랑스와 독일이 이 협정의 가치를 상기시켜주기를 원했다. 프랑스와 독일이 중재자인 만큼, 러시아는 사실상 두 국가를 우크라이나의 대부들로 여겼다. 그리고 푸틴은 이 두 국가가 민스크 협정으로 체결한 의무를 우크라이나가 이행하도록 충분히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평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 대부들의 변덕에 대비하기 위해, 2019년 여름 내내 러시아에 좀 더 단호한 미국과 영국이 정상회담에 참여하도록 노력했다. 2019년 7월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간의 통화내용이 유출됐고, 트럼프의 라이벌인 민주당의 조셉 바이든에 대한 위험한 정보를 얻기 위해 미국 대통령이 협박을 시도했다는 의심이 퍼졌다. 우크라이나 사건은 일시적으로 미국에 대한 독이 되긴 했지만,(8) 그렇다고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의 새로운 계약(2017년 12월 이후 두 번째)을 막지도 못했고,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 3억 달러에 대한 예산안 투표도 막지 못했다. 

러시아의 형세 관망은 러시아가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인가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2014년부터 변하지 않고 있는 러시아의 목표는 우크라이나가 유럽-대서양 조약, 무엇보다 NATO 회원국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지금까지 러시아는 특별지위를 부여받은 분리주의 지역들이 우크라이나로 동화되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감시 권한을 줄 것이라고, 우크라이나가 NATO 회원국이 되는 시나리오를 막아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여전히 이런 노선을 추구하고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무척 희박하다. 2019년 봄, 푸틴은 (트란스니스트리아, 압하지야, 남오세티야, 몰도바와 조지아의 분리주의 지역과 같은) 구소련 지역의 다른 분쟁지역의 모델에 따라 돈바스 지역에 러시아 여권 발급을 결정했다. 2019년 말, 분리주의 지역의 거주민 20만 명은 러시아 여권을 발급 받거나 또는 여권 신청서를 제출했다.(9) 이런 정책은 돈바스를 우크라이나의 다른 지역과 한층 더 차별화하고,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가로막기에 충분한 불안정성을 조장한다.

이 단계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 같지만, NATO가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공식적으로 포기하는 것은 사실상 러시아에 해줄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보장일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품 안에 돈바스가 동화되도록 허용할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비동맹 지위를 선택한다거나 또는 돈바스를 포기한다거나 하는 다른 시나리오들은 더욱 헛된 망상처럼 보인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마크롱의 야심과는 달리 노르망디 정상회담은 분쟁관리를 위한 틀이 됐을 것이다. 

 

 

글·이고르 들라노에 Igor Delanoë
모스크바 프랑스-러시아 연구소 부원장

번역·김영란
번역위원


(1) Nikita Taranko Acosta, ‘L’ukrainisation à marche forcée 우크라이나어로 말하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5월호·한국어판 2019년 7월호.
(2) Arkady Moshes, ‘The Normandy Summit on Ukraine: no winners, no losers, to be continued’, <FIIA Comment>, n˚14, Finnish Institute for International Affairs, 헬싱키, 2019년 12월.
(3) ‘L’Ukraine compte rétablir le paiement des retraites des habitants du Donbass 우크라이나는 돈바스의 거주민에 대한 은퇴연금 지급을 고려 중’(러시아어), <Neazvissmaïa Gazeta>, 모스크바, 2019년 9월 25일
(4) ‘Disengagement: OSCE is monitoring how sides in eastern Ukraine deliver on agreement’, OSCE, 2016년 10월 19일, www.osce.org.
(5) ‘Sommet de Paris en format Normandie 노르망디 형식의 파리 정상회담’, 엘리제궁, 파리, 2019년 12월 9일, www.elysee.fr.
(6) ‘Sondage effectué auprès d’un échantillon représentatif de la population ukrainienne, hors Crimée et Donbass. 크림반도와 돈바스를 제외한 우크라이나 국민대표 표본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Fabrice Deprez, ‘Ukraine remains split over how to achieve peace in contested Donbas region’, <Public Radio International>, 2019년 11월 6일, www.pri.org.
(7) ‘Zelensky a exigé le contrôle de la frontière avant les élections dans le Donbass 젤렌스키는 돈바스 선거가 있기 전에 국경에 대한 감독을 요구했다’(러시아어), <Rossiya Segodnia>, 모스크바, 2019년 12월 10일
(8) Aaron Maté, ‘Et maintenant, l’Ukrainegate! 이제 우크라이나 게이트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11월호·한국어판 20년 1월호.
(9) ‘On connaît le nombre de détenteurs de la citoyenneté russe en LNR LNR지역의 러시아 시민권 소지자의 수’(러시아어), <Lenta>, 2019년 11월 13일, https://lenta.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