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를 촉발한 벨라루스의 청년고용 보장제도
벨라루스는 유럽에서 드문 방식으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한다. 바로 정부가 대졸자의 첫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다. 구소련의 계획경제체제에서 비롯된 이 제도는, 여전히 국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나바폴라츠크의 몹시 더운 어느 날, 시청 앞 광장에는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광장에는 한 줌 그늘을 만들어줄 한 그루의 나무도 보이지 않았다. 인근에 위치한 ‘스쿨로드’ 5번지에서는 열린 창문 틈으로 음악 소리가 새어 나왔다. 바닥에는 파란색 돌멩이들로 높은음자리표 모양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 음악원에서 우리와 인터뷰를 한 크세니아 코사이아는, “레닌 동상이 없는 유일한 벨라루스 도시 나바폴라츠크에 온 것을 환영한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벨라루스 북부에 위치한 나바폴라츠크는 라트비아와 러시아에 인접한 옛 소련의 도시로, 1954년 석유화학 노동자 가족을 수용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지금은 굴지의 국영 정유기업 ‘나프탄’이 있으며, 10만 인구에 달하는 이 도시에서 코사이아는 피아노 교수로 재직하며 2년 동안 할당 근무를 맡게 됐다. 사실 코사이아는 “민스크에 있는 벨라루스 국립 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5년간의 학업을 마친 후 민스크(벨라루스의 수도)에서 계속 일하기를 원했지만 이곳으로 배정돼버렸다.”
코사이아를 그곳으로 ‘배정’한 것은 ‘라스프레델레니예’라는 제도다. 학업을 마친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배정해주는 의무취업할당제인 ‘라스프레델레니예’라는 단어에는 ‘배분’, ‘할당’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구소련 시절 제정돼 1991년 독립 후에도 부분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이 제도는 교육법 제83조에 의거해 “대졸 미취업 청년들의 사회보장 요구에 부응하는 한편 사회 경제 부문 전문 인력에 대한 수요를 충족”해주고 있다. 2018년 이 제도의 수혜를 입은 청년은 1만 9,300명이었으며, 대학에서 정규교육을 이수(통신교육 제외)한 졸업생 약 60%가 이 제도를 이용했다.(1)
이 제도의 원칙은 간단하다. 각 고등 교육기관에서는 졸업생들에게 일정한 수의 일자리를 무상으로 제공하되, 성적에 따라 인력을 배치한다.(2) 학생들은 졸업 후 2년 동안 대학 당국이 배정한 자리에 가서 일하는데, 그 장소는 벨라루스 전국 각지로 나뉜다. 전공에 무관하게 모든 직업군이 이 규정을 따른다.
이렇듯 일부 청년들에게 첫 취업을 보장하는 벨라루스는 임금 삭감이나 노동계약 유연화로 실업 문제를 해결하려는 유럽 내 다른 국가들의 자유주의적 해법과는 정반대의 노선을 택하고 있다. 26세 미만 사회초년생의 수습 기간을 2년으로 연장하려던 2006년 최초고용계약(CPE) 제도에 반대한 프랑스 청년들에게는 아마 벨라루스 모델의 몇몇 이점이 눈에 들어왔을지도 모르겠다.
벨라루스는 ‘과거의 영광과 레닌에 대한 애착이 강한 나라’라고만 알려져 있다. 이런 편견 섞인 이미지로 조롱을 살 때가 많다. 국제 금융기구로부터는 공공부문이 비대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소비에트 정권 시절의 일부 기득권층이 유지됨으로써 탄탄한 장기집권 기반이 마련됐고, 이에 1994년 집권한 알렉산더 루카첸코 대통령도 확고한 권력을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해나간다. 루카첸코 정부는 공산주의 가치를 그대로 계승하며 노동의 가치를 숭배하는 성향이라, 노동 인력을 방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부가 한창 일할 나이의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찾아주겠다는 발상은, 매우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사람이란 무릇 일을 해야 하는 존재”
이에 당국은 청년 취업할당제의 이점을 열심히 홍보한다. 이리나 스타로보이토바 교육부 차관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의무 취업 배정제는 무엇보다도 학생들에게 부여되는 특혜”라고 주장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대졸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보장해줄 의무를 다하는 것이고, 학생들은 ‘청년 전문인력’으로서의 지위를 얻어 임금 이외의 프리미엄을 얻는 셈”이라는 것이다. 인터뷰한 청년들 대부분도 이에 수긍했다. 물론 낙후지역으로 배정돼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떨어져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제도의 원칙 자체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코사이아도 “올여름 의무배정 기간이 끝났지만 내년에도 이곳에 남을 계획이다. 이제 이곳 생활에 익숙해졌다”라고 말했다. 코사이아에게도 결과적으로는 이 의무할당제가 득이 된 셈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도 하고 경력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청년들을 노동시장에 의무 배치하는 제도가 존속된다는 것은, 구소련시절의 계획경제체제 일부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다. 소비에트 공화국 중 러시아와의 유사성이 가장 강한 벨라루스는 구소련시절에도 이미 인적개발 수준이 높은 상태였다. 임금수준은 물론 기대수명도 높았고, 문맹률도 낮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공업발전 수준도 높았던 탓에 모스크바 중앙 정부에 대한 반발도 전혀 없었다. 1991년 주변국(발트 3국 및 우크라이나)의 분위기에 휩쓸려 갑작스럽게 독립한 벨라루스는 이후 과도기를 겪으면서 스타니슬라프 슈시케비치 임시정부가 들어서 최초로 대대적인 민영화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1994년, 처음으로 대선이 실시되면서 기존의 자유주의 정책이 전복됐다. 루카첸코 대통령은 행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고 경제 전반을 정부에서 통제하도록 했다. 지금도 전체 노동자의 50%가 공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국민총생산의 60%는 공공부문에서 창출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외국인 투자 유치에도 힘쓰고 있는데, 주로 서유럽 투자자를 유치함으로써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고자 한다. 지금은 벨라루스 산업 분야에 필수적인 석유를 낮은 가격으로 러시아에서 공급받는 탓에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다. 2015년 반복된 부패 혐의에도 루카첸코 대통령은 5번째 연임에 성공했고, 심지어 이웃 국가 우크라이나에서처럼 반체제 운동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이렇듯 규제의 틀이 잘 잡힌 자유주의 제도의 장점을 부각하고자, 정부가 내세우는 논거들도 여러 가지다. 먼저 벨라루스는 UN이 “상당히 높은 수준의 개발 국가”로 분류한 나라들 중 하나로, 2010년대에는 10%에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불평등이 심화하지도 않았다. 물론 빈곤한계선 미만에서 가난에 허덕이는 인구 비중이 아직 6%이긴 하나, 벨라루스보다 부강한 이웃 국가 폴란드(14.8%)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학생과 퇴직자를 제외한 노동 가능 인구 중 무직자의 비율은 5%에 불과하므로,(3) 벨라루스 전체 실업률도 가늠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벨라루스 정부는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을 허용하지 않는다. 2017년 8월 서부 지역 유제품 생산 기업 시찰 당시에도 대통령은 직원들에게 “사람이란 무릇 일을 해야 하는 존재”라고 역설하며,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자리에 인력을 배치하지 않는다면, 무기력한 성장을 거듭하는 범주가 생길 수 있다.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4)
지난 몇 년 동안, 청년 의무 취업 제도는 시장의 법칙에 적응하며 유연하게 적용돼왔다. 구소련시절에는 대규모 공공부문의 수요에만 부응했던 직무 배정도 이제는 민간부문으로까지 확대됐다. 기업은 그저 당국에 인력파견 신청만 하면 된다. 베샨코비치 시의 사상·문화·청년부 위원인 타티아나 보예도모바는 인구 약 6천 명의 이 지역에서 청년 인력 배정 업무를 책임진다. 이 부서에서는 매년 3월부터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의 고숙련 노동력 수요 상황을 집계하는데, 보예도모바에 의하면 “5월 정도에 모든 작업이 마무리된다.
이후 주도인 비테브스크로 결과를 보내고, 비테브스크 당국에선 다시 이를 민스크로 송부한다. 이곳에서도 물론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는 존재한다.” 보예도모바는 청년 의무취업 제도가 농촌 지역 및 소도시의 공동화 현상을 피할 수 있는 한 방편이라고 귀띔했다. 민스크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줄리아는 “배정 시기가 되면 지원 가능한 자리를 소개받는다. 또한, 본인이 원하는 일자리를 찾아 제안할 수도 있다”라고 설명한다.
6개월 이상 미취업 시 불이익
민스크 소재의 정보 서비스기업 알타벨의 영업 책임자 안나 코라초바도 민간기업으로의 제도확대를 긍정적으로 본다. 대체로 민간기업의 급여가 더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간기업은 급여 외에도 220루블(약 95유로) 상당을 주거보조금 조로 지불하고, 근무가 배정된 기간에는 해고도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기업은 왜 마음대로 자를 수도 없는 ‘청년 전문인력’의 고용을 수락한 것일까? 코라초바는 이 질문에 의아한 표정으로, “대졸 청년들의 수준이 높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민간기업이 청년취업 의무할당제를 따르게 된 데에는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입학 정원이 줄어든 탓도 있다(2013년 43만 명에서 2019년 26만 8,000명으로 감소). 정부 역시 대졸 취업 준비생들을 능력별로 배정하는 데 종종 어려움을 겪었고, 특히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 비율이 다른 전공(평균 88.4%)에 비해 낮은 인문학(80.7%), 물리학(76.8%) 분야에서는 해당 전공에 맞는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실상 전공과 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주기보다는, 노동 그 자체를 모든 시민의 의무이자 이 사회의 굳건한 기반으로 보고 있다. 벨라루스의 거리는 늘 깨끗한 상태로 관리가 되는데, 대도시의 인도나 시골길의 갓길 위에서도 노란색 운동복의 희한한 차림으로 가드레일을 칠하거나 공원 화단의 잡초를 뽑고 광장을 빗질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특별한 기념행사가 있을 때는 이런 모습이 더 자주 눈에 띈다. 베샨코비치 병원에 배정돼 20년째 질병 연구자로 근무하며 학교의 식음료 샘플을 수집 분석하는 리아 타라세비치도 병원 소속 노동자로서 동료들과 함께 도시 내 공원 정비 업무를 맡고 있다.
기업과 지자체는 매년 여러 차례 ‘수보트니크’, 즉 토요 자원봉사를 실시한다. 봄에도 대통령이 직접 밭을 가는 모습을 내비치며 ‘국가 행사의 날’을 조직하고 있는데, 이는 수확 철에 일손을 돕는 공산주의 청년들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2003년 민스크 국립도서관의 건축이나 2006년과 2008년 민스크 아레나 복합 문화운동 단지 조성 등 일부 토목공사 작업에도 이런 식으로 대중 인력을 동원해 공사가 진행됐고, 고위급 공무원도 공사에 함께 참여했다.(5)
노동권과 시민권이 혼재된 개념의 청년 의무취업 할당제나 토요 자원봉사 제도의 취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국민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 모두가 이에 의욕적이지는 않다. ‘일하는 국민을 만들겠다’라는 정부방침이 최근 들어 보다 강압적인 성격을 보임에 따라,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는 분노의 목소리도 표출되고 있다.
2017년 초, 수천 명이 거리로 나와 대통령령 반대 운동을 벌였는데, 2015년 채택된 이 대통령령에 의하면, 6개월 이상 취업 신고를 하지 않으면 약 460루블(225유로) 상당의 벌금이 부과된다. 정부는 결국 수정안을 내놓은 뒤 이 같은 법령의 목표가 조세회피 및 불법 노동시장(온라인 도박 사이트나 아파트 임대업 등)의 근절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국민들의 집회나 시위에 익숙지 않았던 정부는 결국 본래의 방침을 철회했다.
글·로익 라미레 Loïc Lamirez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번역위원
(1) ‘Education in the Republic of Belarus’, 벨라루스 공화국 국립통계위원회, Minsk, 2019.
(2) 벨라루스의 연간 학비는 일반적으로 800~1,200유로다.
(3) ‘Labour and employment in the Republic of Belarus’, 벨라루스 공화국 국립통계위원회, Minsk, 2018.
(4) ‘Working trip to Brest’, 2017년 8월 11일, http://president.gov.by
(5) Ronan Hervouet & Alexandre Kurilo, ‘Travailler “bénévolement” pour la collectivité: les subbotniki en Biélorussie postsoviétique’, <Genèses> 제78호, Paris,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