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로 좌절된 국내 산업화 프로젝트

경매에 부쳐진 볼리비아의 리튬

2020-02-28     마엘 마리에트 l 기자

2019년 10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쿠데타로 퇴진했다. 사실상의 정부(쿠데타 등에 의해 비합법적으로 성립된 정부-역주)는 3월에 선거를 치르겠다고 약속했다. 볼리비아에 상당량이 매장된 리튬을 수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에서 직접 산업화하겠다는, 전 대통령의 가장 야심 찬 프로젝트는 이제 땅속으로 묻힌 듯하다. 

 

하나의 사실,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또 다른 사실, 대부분의 후진국에서는 다루지 못하는 최첨단 기술. 배터리 생산에 필수적인 알칼리 금속, 리튬 시장에서 언젠가 볼리비아가 주도권을 쥔 국가가 된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볼리비아 서부의 광대한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세계 최대의 ‘화이트 골드’ 광맥이 발견된 후, 볼리비아는 자국이 이미 잘 아는 방식으로, 다른 나라가 땅속에 묻힌 자원을 개발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2006년 집권해, 2019년 10월 쿠데타로 물러난(1)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서구의 다국적 기업들이 아닌 볼리비아에 이익이 되는 ‘리튬 직접 개발’이라는 새로운 시나리오를 생각했다. 

 

누구를 위한 풍요의 약속인가?

해가 저물고 있다.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이 우유니 소금사막을 휩쓴다. 2019년 여름인 지금, 우리는 리튬과 염화칼륨 생산을 위한 리피 산업단지 앞에 있다. 이곳에 이 나라의 미래가 달려있다. 볼리비아 최초의 리튬 개발 및 산업화 시설은, 국가의 지휘하에 볼리비아를 “리튬 부문의 사우디아라비아”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현재 아르헨티나에 망명 중인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전 부통령이 즐겨 쓰던 표현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리튬 개발이 가능한 소금사막은 몇 군데 없지만, 리튬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이다. 스마트폰 한 대에도 최소 2~3g의 리튬이 소요되고, 자동차 한 대에는 약 20kg이 필요하다. 현재 400만 대에 불과한 일명 ‘친환경’ 자동차가 2040년에는 2억 6,00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에 30만t이었던 세계 리튬 수요는, 향후 10년 동안 100만 톤에 달할 것이다. 가격 역시 3년 만에 4배가 올라, 2018년에는 1톤에 2만 달러까지 치솟았다(2019년에는 약간 하락했지만). 그때부터 ‘리피’라는 이 작은 구역은 전 세계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약 1만 제곱미터 규모의 우유니 소금사막 밑에, 약 2,100만 톤의 리튬이 매장돼 있다.(2) 풍요의 약속이다. 하지만 그 풍요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수백만의 인디언이 은 광산에서 죽어갔던 스페인 식민지배 시기부터, 금, 텅스텐, 주석 광산으로 외국 개발자들이 많은 돈을 벌어간 20세기까지, 볼리비아 땅속에 묻혀있던 그 어떤 자원도 현지 주민들에게는 이익을 주지 못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첫 번째 임기 초반에 “다시는 약탈을 허용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는 집권을 시작한 2006년부터 ‘100% 국내 채굴’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천연상태의 리튬을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부가가치가 높은 배터리로 현지에서 생산한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모랄레스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볼리비아는 후진국 중에서는 드물게 모든 산업공정 책임운영이 가능한 나라가 된다. 원자재 탐색 및 채굴(간수 처리), 기본 화합물 가공(탄산리튬뿐만 아니라, 리튬 추출 과정의 부산물이자 비료로 사용되고, 주로 브라질 시장으로 수출되는 염화칼륨까지), 중간재(리튬 및 전해질 음극)와 최종 소비재(리튬 이온 배터리) 제조까지 전 공정을 책임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연구자가 돼야 했다”

2008년, 정부는 국영기업 자시미엔토스 데 리티오 볼리비아노스(YLB)의 주도하에, 리튬은 물론 간수 속에 존재하는 포타슘, 붕소 등 기타 광물을 칭하는, 일명 ‘증발암(바닷물이나 염분이 많은 호수의 물이 증발해 마른 후 생긴 퇴적암을 총칭하는 용어-역주)’ 자원의 국가 산업화 계획을 추진했다. 초반부터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루이스 알베르토 에차수 에너지 하이테크부 차관은 2019년 여름 우리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정책의 목표는 국영기업들이 원자재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과 해외 특허에 의존하지 않도록 국내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프로젝트 진행 내용에 포함돼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볼리비아 역사상 가장 큰 투자금액인 10억 달러(약 9만 1,000유로)를 지출했다. 

하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재정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에차수 차관은 “기술적인 면에서, 우리는 0에서 시작해야 했다”라고 털어놓았다. 리피의 작업 책임자인 오스카 마마니도 이렇게 덧붙였다. “볼리비아에서는 단 2개 대학교에 증발암 자원에 대해 미미하게나마 연구를 하는 화학연구소가 있었을 뿐이다.”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 해외에 살고 있던 마마니는, 다른 여러 볼리비아 엔지니어처럼 프로젝트 때문에 볼리비아로 돌아왔다. “우리는 관련 과학 문헌을 면밀히 검토했고, 외부의 도움 없이 암중모색해야 했다. 우리는 모두 연구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리피에서 리튬은 ‘배터리 품질’의 탄산리튬으로 변환된다. 이 탄산리튬은, 리피에서 약 10㎞ 떨어진 라팔카에서, 음극재(2차 전지충전 시 양극에서 나오는 리튬 이온을 음극에서 받아들이는 소재, 흑연 등의 탄소 물질을 가장 많이 사용함-역주) 제조와 리튬 이온 배터리 제조에 사용된다. ‘소비재’를 생산하는 이 마지막 단계가 가장 어려운 단계다. 

“어려움의 크기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라틴 아메리카 유일의 배터리 공장이라는 사실 외에도, 직원 모두를 교육해야 하는 고충이 있었다!” 배터리 공장의 선구자인 이 공장의 마르셀로 곤잘레스 공장장이 말했다. 일본이나 유럽, 미국에서 제작된 필수 설비들을 확보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설비 사용에 필요한 능력을 개발하는 것도 필수였다. 브라질에서 돌아온 마르셀로 사이케 연구소장처럼, 인력들이 외국으로 나가 볼리비아에서는 찾을 수 없는 기술교육을 습득해야 한다. 정부의 장학금 제도를 이용해 연구자들이 리튬 분야와 같은 여러 전략 분야에서 기술적 발전을 일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볼리비아는 섬이 아니다. 볼리비아의 기술독립 계획이 성공하려면, 역설적이게도, 일부 기술 및 시장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는 초국가 기업들과의 관계를 위한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즉 주인 행세를 하지 않을 파트너를 가려내는 것이 중요한데, 대기업들은 그런 저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에차수 차관은 YLB의 협력사들이 갖춰야 할 다섯 가지 조건을 규정했다. 볼리비아 정부의 과반수 지분(51%)을 받아들일 것, 고부가가치상품 제조공정으로 이어지는 리튬 산업화를 보장할 것, 자금조달을 할 것, 해외시장 진출을 보장할 것, 볼리비아 인력 교육을 통한 기술 및 지식 이전을 보장할 것. 

 

제국주의의 사냥감이 될 것인가, 주권 수호의 도구가 돼줄 것인가

일본, 중국, 한국 그리고 프랑스 기업들이 관심을 보였지만, 때때로 상황이 복잡해지기도 했다. 볼로레 사의 경우가 그랬다. 프랑스 기업인 볼로레의 사장단을 맞이했던 경제학자 오스카 바르가스 빌라손은 이렇게 회상했다. “2008년에 뱅상 볼로레가 왔다. 에보 모랄레스를 만났고, 대통령을 파리로 초청해 자사의 전기자동차에 태워 센강을 둘러보게 했다. 볼로레의 프로젝트는 면밀히 검토됐지만, 그의 지나친 신(新)식민주의 성향과 거만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차수 차관도 비웃듯 말했다. “볼로레는 우리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관심 가졌던 건 오로지 우리의 원자재뿐이었다.” 이 프랑스 사업가는 결국, 민간 사업권 보장, 세제 조정, 환경규제 완화 등 자신에게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 아르헨티나로 돌아섰다. 많은 다국적 기업들도 자신들이 고수하는 경제 테두리를 벗어나길 거부했고, 에르빙 보르자 세고비아 라팔카 산업단지 대표는 그들의 행태를 이렇게 요약했다. “개발한다, 가소로운 세금을 낸다, 원자재와 부가가치를 가지고 가버린다.”

2019년 8월, 볼리비아 정부는, 중국 컨소시엄 신장 TBEA그룹-바오쳉과 코이파사 및 파스토스 그란데스 소금사막 개발에 대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협정에는 YLB의 지분 참여로 중국에 리튬 이온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미래 시장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2025년 중국의 모든 자동차가 전기 자동차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라고 바르가스 빌라손은 흥분하며 말했다. 배터리 시장 60%를 차지하는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탄산리튬 소비국이다. 

인도, 러시아와도 협상이 진행됐지만, 10년간 긴 협상을 이어온 독일 ACI 시스템스와의 2018년 말 계약 체결에 오랫동안 기대가 모였다. 해당 부문에서 최초의 합작회사 YLB-Acisa를 설립하며 협정이 체결됐다. 볼리비아 리튬이 유럽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리고 배터리를 생산하지 않던 (유럽에서 가장 큰) 독일 자동차 산업의 전략적 필요에도 부응할 수 있었다. 2019년 초, 에차수 차관은 “2023년 말 또는 2024년 초, 첫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독일로 보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었다. 

몇 달 후 차관을 만났을 때, 그의 흥분은 자취를 감췄다. “우리는 지금 독일 사람들과 싸우고 있다. 그들이 계약을 변경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익성이 없다면서 더 이상 이곳에서 배터리를 생산하려 하지 않는다.” 볼리비아에서 배터리를 생산하려면, 필요한 모든 생산요소를 수입해 와야 한다. 생산 라인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빈약한 현지 인프라를 고려할 때, 현지 배터리 생산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어려움이 볼리비아 내 생산 경쟁력을 약화한다. 바로, 바다에 접근할 수 없는 국가의 높은 운송비다. 모랄레스 대통령이 태평양에 대한 주권을 얻기 위해 국제 사법기관들을 상대로 싸움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다.(3)

언론에서는 오래전부터 볼리비아의 야심 찬 계획들을 실패라 규정하며 볼리비아가 그 계획들을 포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볼리비아는 그에 필요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비즈니스 세계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주제의 언론 보도에 항상 등장하는 인물, 후안 카를로스 술레타는 칠레 리튬협회 회원이다. 그는 우리를 만났을 때 자신을 “미국에서 경제 박사학위를 취득한 프리랜서 연구가”라고 소개했다. 그는 주식 분석가이자, 세계 2위 리튬 생산국인 칠레에서 리튬 개발에 관련된 다국적 기업을 위한 컨설턴트로 일하기도 한다. 또한, 그는 2019년 10월 모랄레스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가 일어났던 시기에 특히 활동이 활발했던 포토시(리피와 라팔카가 소재한 지역) 시민 위원회 위원이다. 그는 “미국만이 필요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4)라며, 볼리비아에서의 리튬 개발은 생각할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리튬 개발과 산업화를 매우 중요시했다. 리튬의 산업화야말로, 볼리비아의 주권 쟁취와 수호를 위한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에차수 차관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볼리비아에 대해 많은 압박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항상 그래왔다. 제국주의는 자원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필요할 때 자원을 손에 넣기 위해, 망설임 없이 다른 나라를 공격하고 침략한다.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우파가 다시 집권하게 된다면, 다국적 기업들에 유리한 환경이 될 것이 분명하다. 볼리비아에서 우파는 항상 민영화 시행을 주장해왔다.” 

헤아니네 아네스 임시 대통령의 정부 그리고 1월 선거를 통해 출범할, 쿠데타 선동자들이 구성한 정부가 그 길을 선택할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자명하다. 

 

 

글·마엘 마리에트 Maëlle Mariette  
기자

번역·김자연 jayoni.k@gmail.com
번역위원


(1) Renaud Lambert, ‘En Bolivie, un coup d’État trop facile 볼리비아에서는 너무 쉬운 쿠데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12월호. 
(2) 2019년 2월 미국 기업 SRK가 진행한 연구 ‘Modelage numérique hydrologique 수리학적 디지털 모델링’에 따른 내용임. 
(3) Cédric Gouverneur, ‘La Bolivie les yeux vers les flots 볼리비아의 바다에 대한 열망’,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5년 9월호, 한국어판 2015년 11월호. 
(4) ‘Zuleta: Bolivia no sabe explotar el litio ni consiguió patentes’, Pagina Siete, La Paz, 2019년 11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