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아메리카 우파, 위기에 봉착하다

2020-02-28     르노 랑베르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오랫동안 라틴 아메리카 보수 우파는 정권교체의 순환주기에 따라 우파의 집권을 기대했다. 결국, 좌파 집권기가 지나고 우파는 대선에서 승승장구했고, 자신들의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우파의 기대와 달랐다. 우파가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국민은 격렬히 저항하고 있다.

 

2016년 멕시코 경제전문지 <엑스판시온>은 “라틴 아메리카가 다시 우파의 손을 들어 줬다”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1) 당시 아르헨티나에서는 기업가 출신 마우리시오 마크리가, 페루에서는 대기업 회장 페드로 쿠친스키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리고 브라질에서는 미셰우 테메르가 노동당을 누르고 집권해, 우파 정부를 출범시켰다. 보수 우파 진영은 계속 세를 확장해 2017년 에콰도르에서는 라파엘 코레아 전 대통령의 좌파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거짓 공약을 내세운 레닌 모레노가, 2018년 칠레에서는 기업가 출신의 세바스티안 피녜라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에 따라, 한동안 라틴 아메리카 우파는 안심했다. 아르헨티나에서 마크리가 대선을 치르던 당시, 한 기자가 ‘지역경제를 계속해서 위협하는 인플레이션의 극복방안’을 묻자,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쳐다봤다. 아마도 자신이 더 돋보일 질문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대선 후보는 “인플레이션은 현 정부의 무능을 증명한다. 내가 당선되면, 인플레이션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2) 

그러나 마크리 집권 4년 후, 아르헨티나의 통화가치는 베네수엘라 다음으로 떨어졌다(2019년에는 50% 이상 폭락했다). 경제가 성장하기는커녕 국민은 더욱 빈곤해졌고, 부채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증가했다. 결국, 2019년 대통령 선거에서 마크리는 재선에 실패했다. 

에콰도르, 칠레, 콜롬비아, 볼리비아 등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3),(4),(5) 우파 대통령 취임 후 짧게는 몇 달, 혹은 몇 년 후 서민층, 중산층 할 것 없이 거세게 정부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국민의 분노를 달래지 못한 정부는 독재정권 이후 종식됐던 강압적인 방식으로 반정부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콜롬비아에서 2019년 11월 21일 시위가 일어나자, 두반 이케르 대통령은 보고타와 칼리에 야간통금을 발령했다. 에콰도르에서는 2019년 10월 3일에서 13일까지 경찰이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해 수십 명이 사망했다.(6) 

그리고 볼리비아에서는 2019년 11월 부정선거 의혹을 받은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하야 이후, 군대와 경찰이 주요 도시를 삼엄하게 경비 중이다. 칠레에서는 군인에 의한 사살과 고문, 강간 사건이 너무 빈번한 나머지, 피녜라 대통령을 상대로 반인륜범죄 조사가 시작됐다. 그나마 브라질에서 반정부시위가 잠잠한 것은, 극우파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권위주의 정책을 국민이 지지해서가 아니다. 정부가 군인에게 시위 발생 시 발포를 허용했기 때문이다.(7) 

 

‘부정부패’와 ‘불평등’이라는 두 괴물

이렇게 우파 정권이 무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칠레 피녜라 대통령은 반정부시위를 부추기는 외세가 있다고 주장했다(2019년 12월 26일). 누구를 의심하는지 짐작할 만하다. 2020년 1월 내무부는 광범위한 조사를 시행한 후 발표한 보고서에서, “러시아 정보원이 트위터를 이용해 칠레 정국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반러시아 성향의 <뉴욕 타임스>조차 이 보고서에 대해, “칠레가 제시한 분석 보고서로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어나는 시위에 러시아가 개입했다고 증명할 수 없다”라고 답변했다.(8) 

라틴 아메리카는 러시아의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라, 만조와 간조가 반복되는 바닷가를 닮았다. 2000년대 중반 중국 경제가 활황일 때, 당시 라틴 아메리카를 집권하고 있던 진보주의 정부는 밀려드는 유동자산 덕택에 호황을 누렸고, 사회적 갈등을 무마할 수 있었다. 당시 바닷물 수위는 모든 배를 띄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15년 뒤, 원자재 수요가 줄어들자 물이 빠져나가 해수면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우파의 권위주의 정책 때문에 물은 더욱 거세게 빠져나가 버렸다. 그러자 좌파 정권이 집권하던 풍요로운 시절부터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보이지 않았던 두 괴물의 정체가 드러났다. 바로 ‘부정부패’와 ‘불평등’이다. 시위대는 이 괴물들을 물리치려 했다. 

부정부패는 라틴 아메리카의 고질병 중 하나다. 2016년 브라질에서는 우파세력이 의회 쿠데타를 일으켰고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을 탄핵했다. 이 사건은 정계를 뒤흔들며 극우파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한몫했다. 그는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으나, 이미 여러 부정부패 사건에 연루돼 있다. 페루에서는 쿠친스키 전 대통령이 부정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2018년 사임했다.(9) 그는 현재 수감 중인데, 결국은 뇌물수수 혐의를 받았던 전임자들과 같은 처지가 된 것이다. 오얀타 유말라 전 대통령(2011~2016)은 구속됐으며, 알레한드로 톨레도 전 대통령(2001~2006)은 미국으로 도피했다. 알란 가르시아 전 대통령(2006~2011)은 뇌물수수 의혹으로 수사 압박을 받자 자살했다.

불평등 문제도 여전히 심각하다. 2014년 비정부기구 옥스팜(Oxfam)이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2000년 라틴 아메리카의 불평등지수는 최고점에 달했다가 2002년에서 2011년 사이 정부가 보건, 교육, 연금, 사회보장제도, 고용, 최저임금과 같은 분야에 공공자금을 투입하면서 진보적 정책을 펼친 덕분에 불평등이 그나마 해소됐다. 옥스팜은 이 성과에 대해, 정부의 노력으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보여준다고 결론을 내렸다.(10)

 

‘America First’에 라틴 아메리카는 없다

이 시기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런던의 랭커스터 하우스에서 칠레, 페루, 콜롬비아, 멕시코(우파가 집권 중이었던) 국가 정상이 1990년대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며 2012년에 출범시킨 태평양 동맹을 축하하기 위한 연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영국 기자 존 폴 라스본은, “라틴 아메리카에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골자로 하는 미국과의 합의를 휴짓조각처럼 여기는 나라도 있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라고 당당히 외치며 작은 정부를 옹호하는 나라도 있다”라며 감격스러워 했다.(11) 참석자들은 앞다퉈 개방경제, 관세 철폐, 금융기관 통합 등의 계획을 발표했고, 이를 지켜보던 라스본은 “기자로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자유주의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는 귀한 자리에 참석하게 돼 영광이며, 이런 자리를 통해 발전을 이룰 수 있다”라며 기뻐했다.

몇 년 후,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 정부 정책은 랭커스터에서 했던 약조를 기반으로 했다. 친자유주의자인 파울로 게데스 브라질 경제부 장관은 2018년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1970년대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본산 격인 시카고 대학에서 배웠던 자유무역 사상을 브라질에 전파할 기회로 삼고자 했다. 그리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칠레 전 대통령의 강압적인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을 칭송하며, “그것은 엄청난 변혁을 일으켰다. 신자유주의를 전파한 영국 대처 총리와 미국 레이건 대통령도 그를 따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12)

그런데, 이제 미국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이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다. 트럼프는 대선 당시 자유무역을 강력히 비판했으며, 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 덕분에 당선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 ‘America First’에서 ‘아메리카’는 아메리카 대륙이 아니라, 미국만을 뜻한다. 2019년 12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친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뒤통수를 쳤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자국의 통화가치를 엄청나게 평가절하하는 바람에, 미국 농민들이 타격을 입었다. 그래서 미국은, 이들 국가에서 수입 중인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관세부과를 즉각 재개하기로 했다”라고 통보한 것이다. 구명조끼를 기다리던 라틴 아메리카의 우파 정권에게, 미국이 돌을 던진 셈이다.

자유주의 지도층에게 우호적이었던 금융시장의 분위기도, 수익감소와 함께 돌변했다. 사실 2017년 아르헨티나 경제가 불황의 늪에 빠지려는 조짐이 보였을 때, 투자가들은 기업가 출신인 마크리 대통령 편에 서서 자본을 들여올 것을 섣부르게 기대했다. 그러나 금융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투자수익이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투자가에게 손실을 입힌다면, 대통령에게도 등을 돌리는 것이 금융시장이다. 미국 정치권과 금융시장의 지원이 없는, 라틴 아메리카의 신자유주의 외침은 공허했다. 

라틴 아메리카는 외채 위기와 인플레이션에 따른 ‘잃어버린 10년’으로 기억되는 1980년대에도 2.5%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이후 2014년부터 2020년까지 경제성장률은 겨우 0.5%에 머물러 1950년대 이후 최저성적을 기록했다.(13) 인구는 증가하는데 2014년부터 2019년 사이 1인당 국민소득은 4% 감소했다. 빈곤과 불평등은 심화하고 2000년대부터 등장한 중산층의 생활 수준도 하락하고 있다. 

 

우파의 위기, 좌파의 기회가 될까?

국민이 우파 정권을 비난하는 것은, 단지 경제지표 때문만은 아니다. 브라질 역사학자 발터 포마르는 “비록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국민은 좌파 진보주의 정권이 이뤄낸 사회적 진보를 경험했다. 이는 오늘날 우파에게 심각한 위기가 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중산층까지도 생활 수준이 떨어지는 오늘날, 우파는 동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포마르에 의하면, 1990년대까지는 보수주의 우파 정치인들이 신자유주의로 직격탄을 받지 않는 중산층에, “독재 체제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려면 신자유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라고 설득할 수 있었다. 즉 상대에게 메스를 들이대고, 자신들은 꿀단지를 챙기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변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모든 국민을 빈곤으로 내몰았고, 그 어떤 대가도 없다. 메스는 난도질만 하는 칼이 됐고, 꿀단지는 구멍 뚫린 항아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현재 우파의 위기가 좌파 정당에 유리하게 작용할까? 답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시위대는 ‘좌파든, 우파든 무능한 정치인은 모두 물러가라’라고 외치고 있다. 우파는 시대에 뒤떨어지며 경제부흥 효과도 없는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다 실패했다. 좌파는 부정부패 스캔들로 신뢰를 잃은 데다가, 변화를 일으키고자 했으나 진정한 개혁은 단행하지 못한 채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라틴 아메리카는 완전히 좌초됐다. 

거리 시위대를 보고 좌파 정당이 더욱 분발할까? 좌파는 현 상황 속에서 희망을 보는 듯하다. 쿠바 공산당 서기장 라울 카스트로는 라틴 아메리카 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환멸감에 대해, “현재 라틴 아메리카는 건초더미만 있는 평야와 같다. 작디작은 불씨 하나만 날라오면, 불길이 금세 번져 우리 모두의 국익을 위협할 것이다”라고 말했다.(14)

볼리비아와 브라질에서는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종교 극단주의, 반동주의, 반지성주의적 우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국민들에게 신자유주의 시장의 이점을 설파하는 것은 포기한 그들은, 이단아 색출에 집착하고 있다. 이들은 무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질서를 확립해 나라를 재정비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페루에서도 이와 같은 움직임이 일어나, 시위대의 무력진압을 법적으로 허용했다. 불평등과 부정부패만 양산하고 있는 사회체제가, 결국 이런 광신도의 손에 넘어가면 존속이 가능할까? 

 

 

글·르노 랑베르 Renaud La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정수임
번역위원


(1) Yussel González, ‘América latina: el péndulo regresa a la derecha 라틴 아메리카: 다시 우파의 손을 들어 주다’, <Expansión>, 멕시코, 2016년 9월 1일.
(2) 마크리 대선 후보는 “인플레이션은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라고 말했다. <YouTube>, 2017년 7월 16일.
(3) Franklin Ramírez Gallegos, ‘En Équateur, le néolibéralisme par surprise 라틴 아메리카에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8년 12월호. 
(4) Luis Sepúlveda, ‘Chili, l’oasis asséchée 칠레, 말라붙은 오아시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12월호, 한국어판 2020년 1월호.
(5) Renaud Lambert, ‘En Bolivie, un coup d’État trop facile 볼리비아, 너무 쉬웠던 쿠데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12월호.
(6) ‘¿Vuelve el protagonismo de los militares en América latina? 라틴 아메리카는 다시 군대가 장악할까?’, <RT>, 2019년 11월 19일.
(7) Michael Scott, Andres Schipani, ‘Brazil finance minister sticks doggedly to reform path’, <파이낸셜 타임스>, 2019년 11월 11일. 
(8) Lara Jakes, ‘Russis sows online fakes in South America’, <뉴욕 타임스>, 2020년 1월 21일. 
(9) 특히 브라질 대형 건설사 오데브레히트(Odebrecht)가 라틴 아메리카 정계인사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사업을 수주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Anne Vigna, ‘Les ramifications du scandale Odebrecht 대통령을 탄핵시킨 브라질 오데브레히트사의 부패 사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7년 9월호. 
(10) <Even it up>, Oxfam, 옥스퍼드, 2014년. 
(11) Bernard Cassen, ‘Dans l’ombre de Washington 미국의 그늘 아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0년 9월호.
(12) Michael Scott, Andres Schipani, ‘Brazil finance minister sticks doggedly to reform path’, art.cit.
(13) UN 라틴 아메리카 카리브 경제 위원회, 산티아고, 2019년 12월 12일.
(14) 쿠바 외무부 장관이 ‘우리의 미국, 제국주의, 그리고 가뭄’에서 인용했다. 쿠바 외무부(Minrex), 하바나, 2019년 12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