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에게 씌워진 누명

2020-02-28     필립 스타브 외

2010년대 초부터 일련의 보고서들이 인간이 차지한 일자리의 1/3 혹은 많게는 절반이 사라지고,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며 불안감을 조성하는 예언들을 내놓고 있다. 이런 말들에 근거한다면 로봇은 노동자의 가장 막강한 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신기술 탓인가, 아니면 낮은 임금과 공장의 해외이전을 강요하는 경제 정책 탓인가?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0년에 쓴 논문에서, 미래에는 기계화 덕분에 “일일 3시간 교대근무 혹은 주 15시간 근무”가 가능해져, “잉여 에너지를 노동 외 활동에 쏟을 수 있을 것”(1)이라고 전망했다. 케인스가 이렇게 전망한 이후, ‘자동화’라는 이슈는 대중의 논의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 문제는 ‘노동시장의 디지털화’라는 꼬리표를 달고 화려하게 재등장했다.

일련의 기술들은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새로운 분야들을 빠른 속도로 열어나갈 것이다. 공장에서는 로봇들이 생산 분야에 남은 마지막 일자리들을 차지할 것이다. ‘사물인터넷(IoT)’ 네트워크 시스템이 생산공정 및 고객관리를 간소화하고, 인공지능이 서비스직 노동자들을 대체할 것이다. 지평선 저쪽에서는 실업자 군단이 출현하고, 그와 더불어 케인스가 이미 예상했듯 “노동력을 새롭게 활용할 방법보다 줄이는 방법을 더 빠른 속도로 찾아냄으로써 기술적 실업”이 발생할 것이다. 

그런데 실질적인 산업 정세를 상세히 검토해보면, 이런 자동화 기술의 성과는 뚜렷한 한계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로봇이 우리 사회의 종말을 야기할 것’이라는 가설의 공포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그 공포는 1차 증기기관 혁명, 2차 전기 혁명, 3차 정보 혁명에 이어, 많은 나라가 시행할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기업가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개인에게 맞춤화된 독특한 상품을 생산할 온라인 지능형 기계의 시대가 도래했다’라고 선전한다. 4차 산업혁명은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의장인 클라우스 슈밥에 의해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2) 독일은 2011년 하노버 산업기술박람회에서 이 개념을 적용한 ‘인더스트리 4.0’ 정책을 최초로 대중에 선보였다. 그러나 이 정책이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열었던 당당한 선언과 현실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있음이 드러났다.

이 정책을 실행한 동기는 독일산업의 경쟁력 때문이 아니라, 여러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탓이었다. 2008년에 금융위기가 터졌고, 금융시장의 신용추락과 맞물려 중앙은행이 ‘화폐 발행’ 통화정책(양적완화)을 실시하면서 새로운 투자처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런 필요성에 발맞춰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마케팅 전략은, 새로운 기술의 힘을 빌려 회사의 낡은 기계실을 ‘세계의 자본주의’라는 젊은 샘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초기에 세계경제포럼의 주도로 몸집을 키운 이 의제는, 특히 국가적 산업구조가 이 전략에 적합했던 독일에서 더 쉽게 현실화됐다. 

이후 일군의 컨설턴트들은 기업들에 전략적 자문을 해주거나,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고가의 홍보 행사를 벌이는 방식으로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용어들을 대중화하는 데 주력했다. 이는 전부 다국적 컨설팅전문회사 맥킨지 및 그 일당들의 천행만복을 위한 것이었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것 아니냐’며 개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떤 이들에겐 이것이 시급히 원했던 효율성을 거머쥔 것에 불과했다. 이런 점에서, ‘사회에 나쁜 것(실업)’은 ‘사업에 좋은 것(이윤)’의 동의어로 간주됐다. 

 

화려한 혁신, 초라한 성과

새로운 것은 또 다른 새로운 것을 불러오는 법이라, 컨설팅 분야에서는 이런 논의들이 격렬하게 가속화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인더스트리 4.0’이라는 마법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앞선 세 차례의 혁명(증기기관, 전기, 정보 혁명)을 들먹이다가는, 이들의 디지털 후계자(‘4차 산업혁명’)와 함께 도태될 판이었다. 2017년에 하노버 박람회 의장국이었던 일본은 ‘소사이어티 5.0’이라는 일본식 비전을 제시했다. 2년 뒤인 2019년에는, 일본의 이런 대담함이 무색할 정도로 컨설팅 회사 액센츄어(Accenture)가 ‘인더스트리 10.0’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4.0과 10.0이라는 버전 사이에 여섯 차례의 산업혁명이 누락된 것에는 다들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렇듯 자칭 혁명을 주장하고 나서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는 것은, 아마도 현실에 나타나는 증거들에 대한 공황 반응으로 보인다. 독일 엔지니어들이, 컨설턴트 군단이 기대하는 괄목할 만한 혁신에 못 미치는 초라한 성과를 낸 탓이다. 실상을 보면, ‘인더스트리 4.0’의 기본 노선에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단순히 지난 40여 년간 제조업 분야를 지배해온 합리화 추세를 연장한 것일 뿐이다. 이를테면 생산 자동화는 제품의 개인화에 비례해 일어난다. 이런 환상 속에서, 대량생산 비용으로 맞춤형 상품을 출시하려면, 제품을 완전 자동화방식(독일에서 사용하는 산업용어로 말하면 ‘배치 사이즈1[Batch Size 1]’)으로 생산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다. 

대부분의 독일 회사들은 이미 잘 돌아가고 있는 기존의 생산공정을 갈아엎는, 위험하고 값비싼 아이디어에 신중한 기색을 보였다. 많은 기업이 지출에 비례해 수입이 증가할 수 있을지 의심했다.(3) 문슈 화학-펌프(Munsch Chemie-Pumpen)의 사례가 그 증거다. 이 기업은 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위치한 펌프 제조업체(독일의 ‘히든 챔피언’ 중 하나로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로 한 가지 사업에 전 자원을 투자했고, ‘인더스트리얼 4.0’을 구현할 산업용 프로그램을 풀가동했다. 사물인터넷(기계들끼리 소통하는 커넥티드 머신), 영구적 데이터 플로, 협력업체 서비스의 전산 보조 시스템 덕분에 구매자의 요구에 유동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오늘날 이 공장 노동자들은 200개 이상의 색상으로 200만 개의 펌프모델을 생산할 수 있다. 문슈 화학-펌프는 다양한 고객들을 유치할 수 있었고, 특히 철강 및 화학 산업까지 고객층을 확대했다. 그럼에도 결론적으로 이 사업으로 더 큰 수익을 올리지는 못했다. 문슈 화학-펌프의 이사는 “고객들은 점점 더 정교한 맞춤형 제품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에 비용을 더 지불할 준비는 돼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비르트샤프보허(주간 경제)>, 2019년 1월 18일).

문슈의 사례는 ‘인더스트리 4.0’을 둘러싼 문제점을 극명히 드러낸다. 신기술에 열광하는 언론이 집중포화를 퍼붓는 바람에 현실적인 경제적 효용이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볼 수 없게 됐다.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 도입 자체를 선호하는 것이 아니다. 제조방식을 바꿨을 때의 기대비용과 이윤의 최적 비율을 따져본 후, 급격한 변화보다 기존 공정에 신기술을 도입해 시행착오 비율을 최소화하고자 한다.

기업의 지도자들은 ‘인더스트리 4.0’을 기업 전반에 적용할 일관된 정책으로 고려하기보다, 예측 정비(기계 등의 설비가 고장 나기 전에 여러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리 보수하는 것), 보조 시스템의 활용, 시각적 품질관리 등 적용하기 리한 조치들만 선별적으로 도입하고 싶어 한다. 성공한 프로젝트들도 있는 한편, 시험적으로 도입한 프로그램들을 접어야 할 만큼, 이윤이 발생하지 않은 사례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맞춤형 제품’이 제조기업의 사명인가?

가장 이슈가 됐던 사례는 ‘스피드 팩토리’다. 스피드 팩토리는 신발제조업체 아디다스가 ‘인더스트리 4.0’의 주력 사업으로 2017년에 문을 연 스마트 공장으로, 설립 당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독일 바이에른 주의 안스바흐와 미국 애틀랜타에 위치한 스피드 팩토리는 대대적인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 제품을 생산했다. 로봇은 손쉽게 구조변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도시에 따라 특수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제품을 제작해 지체 없이 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파리, 런던, 뉴욕 등 도시마다 각기 다른 모델). 아디다스는 이런 생산 시스템을 쇼케이스처럼 활용해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증인으로 삼았다. 2016년에 아디다스의 최고경영자는 “내가 아디다스에 입사한 1987년은 생산공장이 아시아로 옮겨간 직후였다. 이제 그런 시대가 막을 내리고, 공장은 현지로 귀환하고 있다”(4)라고 설명했다.

사실 본국으로 돌아온 생산량은 연간 약 50만 켤레로, 이는 아디다스 전 세계 생산량의 0.5%에 불과하다. 아디다스 그룹은 생산력 전체를 스피드 팩토리로 재배치할 생각은 없었다. 그 이유는 스피드 팩토리에서 생산한 신발 한 켤레의 가격이 250~350유로에 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형 시리즈들을 고도의 자동화 시스템으로 생산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든다. 이러한 제조방식은 일반 대중을 타깃으로 한 제품군이 아니라,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일부 고객들을 공략하는 틈새시장에서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스피드 팩토리는 생산공정의 미래를 구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트렌드를 신속하게 파악하거나 형성해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목적을 둔 마케팅 수단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지난해 11월 1일, 아디다스는 2020년 봄에 스피드 팩토리 두 곳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아시아로 공장을 옮겨 두 공급업체가 새로운 제조공정을 채택할 것이고 밝혔다.

비록 ‘배치 사이즈 1’의 일반적인 목적이 엔지니어의 달콤한 꿈(실현은 어렵겠지만)에 불과하다고 해도, ‘제조기업들은 맞춤형 제품을 공급해야 할 사명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필수적이라고 본다. 이 틈새시장은 이미 온라인 상거래의 거대기업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오늘날 분초를 다투며 다양한 제품을 집 앞으로 직접 배달한다. 알리바바의 회장직에서 물러난 마윈은 어떤 제품이든, 전 세계에 어디로든 72시간 안에 배달한다는 목표를 최근 공식화했다. ‘배치 사이즈 1’의 중국식 버전이 ‘스마트’ 공장의 복잡한 계획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이 현실로 드러날 수도 있다.

경제적 필요를 넘어 ‘역사적 필연’으로 제시되는 자동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1990년대에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시행한 세계화 정책과 관련이 깊다. 이런 맥락에서 문제의 원인을 로봇 탓으로 돌리면 경제의 굵직한 방향성을 문제 삼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케인스가 언급한, 다분히 과대평가된 ‘기술 실업’은 실존하는 자본주의의 황폐화로부터 시선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대신한다. 인간과 기계의 이론적 대체뿐 아니라 노동 형태의 변화 및 새로운 일자리의 등장을 다룬 연구들은, 로봇이 노동자들을 대신할 것이라는 언론의 부정적인 전망을 반박하며 고용증가의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있다.(5) 그러나 로봇의 등장에 따라 임금수준, 노동조건, 생산방법을 조정하는 정책적 문제들이 아직 남아 있음에도, 정책결정자들은 그런 결정을 회피하려 할 것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미국에서 관측해온 바처럼, 오늘날 정치 논쟁의 무대에서 디지털 자동화를 비방하는 것은 대개 과거에 금융 자본주의와 세계화를 옹호했던 인물들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자 빌 게이츠나, 세계은행의 전 수석 경제학자이자 미국 재무부 차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에 의하면 비정규직 노동자, 저임금 노동자 또는 실업자들이 익명의 기술적 명령의 희생자가 될 것이다. 

오늘날 ‘노동자의 동료’인 로봇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이 내린 결정이 유감스러운 성과를 냈다는 사실에서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이는 과연 누구인가? 

 

 

글·필립 스타브 Philipp Staab
사회학자, 『디지털 자본주의 Digitaler Kapitalismus』, Suhrkamp, Berlin, 2019.
플로리앙 뷔탈로 Florian Butollo
사회학자, 『마르크스와 로봇 Marx und die Roboter』(사빈 누스와 공저), Dietz, Berlin, 2019.

번역·조민영 sandbird@hanmail.net
번역위원


(1) John Maynard Keynes, ‘Perspectives économiques pour nos petits-enfants, 1930(아동을 위한 경제적 전망, 1930)’, 『La Pauvreté dans l’abondance 풍요 속의 빈곤』, Gallimard, coll. ‘Tel’, Paris, 2002.
(2) Klaus Schwab,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Dunod, Paris, 2017. 
(3) 이 기사는 현재 진행 중인 독일 산업에 디지털화가 끼친 영향에 관한 연구에 바탕을 두고 있다. 
(4) Think Act. COO Insights, Rolland Berger, 뮌헨, 2016에서 재인용.
(5)‘Katharina Dengler & Britta Matthes’, ‘Folgen der Digitalisierung für die Arbeitswelt 노동시장 디지털화의 결과’, <IAB Forschungsbericht(IAB 연구 보고서>, 뉘른베르크, 2015년 11월호 또는 Alexander Herzog-Stein, ‘Digitalisierung der Arbeitswelt?! 노동시장의 디지털화’, <Mitbestimmungs-Report>, n°24, Fondation Hans-Böckler, 뒤셀도르프, 2016년 9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