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가 피었는지 보러 갈까요?

장미 향기 속 등유 냄새의 정체

2020-02-28     줄마 라미레스 외

우리가 주고받는 꽃다발이 지나간 자리에 묘한 향기가 감돈다. 등유 냄새다. 덧없는 아름다움과 사랑의 상징인 장미 절화(折花, 가지채 꺾은 꽃)는 열대지역에서 저렴한 노동력으로 재배돼 부국으로 운송된다. 장미의 생애주기를 보면 천연제품을 최고로 치는 상업적 목적이 어떤 모순을 안고 환경을 파괴하는지 알 수 있다.

 

장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꽃가루를 옮겨 달라고 곤충을 꾀는 유혹의 식물일까? 코와 눈을 즐겁게 하는 존재, 인공의 공간인 도시 속에 놓인 한 조각의 자연? 무엇보다, 장미는 ‘선물용 상품’이다. 광고업계는 어머니날, 밸런타인데이 시즌이면 사랑과 존중의 상징으로 장미를 포장한다. 선물 받는 순간부터 향을 선사하지만, 시들면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장미. 장미의 식물조직과 수액에 농축된 화학물질을 고려하면, 장미가 향할 곳은 퇴비 더미가 아니라 쓰레기통이 맞기는 하다.

 

소각장으로 향하는 장미의 최후

장미의 생애는 쓰레기차로 소각장에 실려 가기 8년 전에 시작된다.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장미원에서 화훼육종학자들은 서로 종이 다른 장미의 꽃가루와 암술을 교차 수분해 저항성, 형태, 생산성 등 여러 요소를 적절히 배합한다. 생산성은 평방미터당 줄기 수로 측정하는데, 저고도 지대에서 재배돼 대형 마켓에 공급되는 꽃의 경우 가장 중요한 지표로서 최대 240대까지 나온다. 형태와 색상은 당시 화훼 트렌드에 크게 좌우되는데, 이 역시 패션계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화훼업계는 주기적으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한다. 가공용 토마토(1)의 맛을 평가하지 않듯, 장미 향도 품질평가 목록의 가장 마지막 항목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화훼육종업자인 마티아스 메이랑은 “품종 선별 시에 감성적 요소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했다. 육종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특허를 출원하고 새로운 품종을 시장에 출시한다.

재배업자는 장미 묘목 당 1달러(2)에 새 품종을 구입하고 매년 1주당 로열티 0.15달러를 지급한다(장미 1주에선 5년간 대략 100송이의 꽃이 핀다). 육종업자가 표본 식물을 꺾꽂이(무성생식)해 장미 수천 주를 키워 온실 하나를 가득 채우는 데 2주면 충분하다. 이 묘목을 기존 장미 나무뿌리에 이식해 적도의 기후에 쉽게 적응시키고 병충해에 내성을 키운다. 

장미는 고대부터 재배됐지만, 19세기에 이르러서야 교배기술이 발달해 꽃잎이 크고 줄기가 곧은 현대의 장미가 등장했다. 전쟁이 끝나고 장미재배업도 농업산업화·기계화·방제혁명의 시기를 맞았다. 겨울에도 온실재배를 통해, 유럽 기후에서 생존이 어려운 품종을 키워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0년대 오일 파동이 일어나면서 이런 재배 방식은 수익성이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다른 대륙에서 경쟁자들이 등장했다. 기업가들은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안데스산맥처럼 임금(2018년 기준 일당 15달러)과 지대가 저렴한 적도 기후 지역으로 관심을 돌렸다. 10여 년 후, 유럽 장미 업체는 판매시장과 지리적으로 더 가까운 케냐(일당 3~4달러)와 에티오피아(일당 1달러) 산간지대에 투자했다. 

이들 국가는 재배의 3대 요소인 기후와 물, 노동력을 갖췄다. 적도에 가깝고 고도도 적당한 이곳 장미는, 햇빛을 최대한 받으면서 서리나 무더위 없이 연간 고른 기후에서 성장할 수 있다. 일조량을 최대화하고 기후에 맞도록 35°C 이하의 온실에서 재배된다. 장미재배업자들은 처음에 상당히 비옥한 토지에서 장미를 키웠지만, 단일경작이 주로 뿌리를 통해 감염되는 병해에 취약하기 때문에 2000년대부터는 땅이 아니라 생육 배지나 인공토에서 재배한다.

장미는 물을 많이 먹는데, 꽃 한 송이를 피우려면 물 7~13L가 필요하다. 장미 수백만 주가 그 지역, 더 나아가 전국적인 단위로 수자원을 소비하는 셈이다. 게다가 재배업자들은 종종 호수나 지하수를 무상으로 끌어와 쓴다. 그래서 콜롬비아 중부 보고타 사바나 지대, 케냐와 에티오피아 호수(3) 근처 거주민들은 물 부족, 건강과 생태계를 위협하는 수원오염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현지 활동가들과 국제지원단체는 기업을 압박해 재배 방식을 바꾸게 했다. 주요 기업은 빗물을 받아 쓰고 하수를 재사용해 물 소비량을 절반으로 줄였다. 이제 장미는 배지에서 재배되고 비료와 방충제를 섞은 물을 점적 관수(튜브 끝에서 물방울을 똑똑 떨어지게 하여 원하는 부위에만 소량의 물을 공급하는 방식-역주)한다.

 

여성에게 특히 치명적인 ‘꽃의 여왕’

이런 환경에서 장미는 연간 꽃을 피운다. 그렇지만 밸런타인데이 등 축제일에 급증하는 수요를 맞추려면, 엄격한 재배계획을 세워야 한다. 장미재배업자들은 특수한 절화 작업으로 개화일을 통제한다. 콜롬비아에서 고도와 일조량을 감안해 계산된 절화 작업일은, 장미 포장 상자 발송 95일 전이다. 이 작업은 정확함을 요하기에 대부분, 상대적으로 섬세하다고 여겨지는 여성들이 담당한다. 1990년대부터 장미 생산주기가 빨라지면서 콜롬비아 여성 노동자들은 여기저기 건초염에 시달리고 있다. 

“동료들 2명 중 1명은 손목터널증후군에 시달리면서도, 노조 운동가로 오해받을까 봐 불평도 못 한다”라고 한 노동자가 털어놓았다. 콜롬비아 전국화훼노동자연합의 이네스 마로캥은 “대기업은 끊임없이 경영이 어렵고 노조가 파산을 조장한다면서, 노동자들의 입을 막는다”라고 지적했다.

장미는 손이 많이 간다. 절화 장미에는 꽃잎이나 잎에 얼룩이 없어야 한다. 장미는 콜롬비아 장미수출업체의 이름(4)에서 알 수 있듯 ‘여왕’이자 ‘영광’과 ‘엘리트’의 피조물이어야 한다. 장미에 이상이 생기지 않도록 살충제, 살진균제, 살균제를 뿌린다. 농장주들은 사용량을 정확히 밝히지 않지만, 리에주대학 농학과 박사 카울라 투미는 “장미에서 식용으로 허용되는 수준보다 최소 100배, 최대 1,000배에 달하는 화학물질이 검출됐다”(5)라고 지적했다. 

보고타 사바나 지대의 여성 노동자들은 유산 및 기형아 출산, 발암 가능성을 우려한다. 울트라플로레스 노조는 장미농장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과 노동자의 건강 간 유관성을 밝힌 몇 개 연구가 있지만, 본격적인 연구는 진행된 적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6) 보고타환경연구소의 토마스 엔리케 레온시카르드는 “일종의 영지가 된 농장에서 노동자들의 건강을 독립적으로 추적 연구하기는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대형장미농원 운영자들은 노동환경이 열악한 시대는 끝났으며, 재배법을 개선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들은 화학물질에 노출돼 있다. “임신과 출산, 모유 수유, 음식 준비 등을 하는 여성에게 화학물질은 한층 치명적이니까요.” 콜롬비아 여성 노동자 데이지가 말했다. 그녀의 남편은 이 일을 그만뒀으며, 데이지에게도 “건강과 돈을 바꾸지 말라”고 이직을 권했다. 그러나, 데이지는 장미재배에 대한 남다른 애정 때문에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장미 줄기가 성장하는 내내 온실 훈증소독 작업이 계속된다. 훈증소독 후에는 훈증제가 모두 가라앉을 때까지 온실 출입이 금지된다. 출입금지는 훈증제의 종류와 농장에 따라 몇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며칠이 될 수도 있다. 밸런타인데이를 2주 앞두고 가난한 지방에서 원정 온 노동자들과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을 태운 버스가 농장으로 향한다. 

이 기간에는 노동시간이 10~16시간 급증한다. 절화 작업은 시간당 350송이를 잘라 싣는 반복적인 노동이다. 장미를 거두면 발화하거나 시들지 않도록 곧바로 4°C 저온 창고로 옮겨 보관한다. 저온 창고에서는 다른 팀이 잎사귀와 가시를 제거하고, 꽃을 분류하고 다듬는다. 그리고 살진균제를 뿌리고 마트 판매용 꽃다발을 만들어 포장한다. 꽃잎이 적거나, 가지가 구부러졌거나, 꽃잎에 얼룩이 있거나, 색감이 떨어져서 수출용으로 부적절하다고 분류된 꽃은 폐기되거나 내수용으로 저가에 판매된다. 

장미 수확은 계속됐고, 냉동 트럭은 공항으로 운송을 시작했다. 공항과의 인접성도 장미재배지역 선정의 기준 중 하나다. 도로 운송은 도난이나 환각성 물질 밀반출을 막고자 철저한 감시하에 이뤄지고, 서구 화훼육종학자들에게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은 화물이 있는지 조사원들이 암암리에 파견돼 감독한다. 고객사의 창고까지 저온유통 체계를 유지하려면 운송비가 급격히 증가한다. 콜롬비아나 에콰도르에서 수확한 장미는 대부분 미국 시장으로 흘러가고(1kg당 0.85달러), 케냐나 에티오피아산 장미는 유럽으로 건너간다. 케냐산 장미의 탄소 발자국 중 90%는 운송과정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 온실을 밝히고 온도를 높여 장미를 재배한다면 그보다 6배 큰 탄소발자국을 남길 것이다.(7)

 

식량 주권을 팔아 수출용 꽃을 재배

장미는 수확된 지 이틀 후면 세계 최대 화훼경매장인 네덜란드 알스메이나 북미 최대 화훼거래소인 마이애미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도매업자들과 슈퍼마켓 운영자들에게 경매에 부쳐진 후 다시 트럭에 실려 대도시 물류센터로 운송된다. 수확 후 5일째에는 꽃집에서 손님을 기다린다. 

수출된 장미는 달러로 거래되는데, 농원 출하 시 한 송이에 20~30센트, 소매상에서 80센트에 거래되고 소비자에게 1.5달러에 판매된다. 밸런타인데이가 가까워지면 이 가격은 2~3배 뛴다. 대규모 농원은 미국이나 유럽계 대기업 소속이다. 콜롬비아와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서 미국 화훼업자들은 꽃 재배를 중단해야 했지만, 미국 농업계는 로비를 벌여 콜롬비아로 대두, 밀, 옥수수, 기름을 무관세 수출하게 됐다.(8) 콜롬비아 환경단체 칵투스의 리카르도 사무디오는 “비극이다. 비옥한 토지에서 국내 식량용 곡물 대신 수출용 꽃을 재배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으로 저들은 우리의 식량 주권을 파괴할 권리를 산 것”이라며 개탄했다.

장미는 축제 며칠 전에 꽃집에 도착하고, 장미의 아름다움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광고가 급증한다. 여기서 새로운 눈속임이 시작된다. “꽃다발이 물통에 담겨 있으니 손에 물기가 마를 일이 없다”라고 프랑스의 한 플로리스트가 털어놓았다. 과일이나 채소와 달리, 꽃에는 산지 명시 규정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장미 대부분이 적도권 국가에서 수입됐다는 사실을 아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9) 

플로리스트들은 장미재배에 화학물질이 얼마나 많이 쓰였는지는 대략 알지만, 그것이 그들의 건강을 얼마나 위협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투미 박사는 벨기에 플로리스트들의 손에서 독성물질 100여 개, 소변에서 70여 개를 검출했고 그중에는 유럽에서 사용이 금지된 물질도 있었다고 밝혔다. 우리가 (더 이상) 꽃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화훼업자들은 보건 기준과 논의에서 한발 벗어나 있고, 친환경 추세의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업계에서 ‘녹색’ 라벨을 마련하긴 했지만, 자체적인 인증체제거나 민간기관이 담당한다고 해도 업계 영향권 안에 있는 곳이다. “노동자들은 업계의 변화에서 배제돼 있다”라고 사무디오는 지적했다.

장미 소비국의 일부 절화 재배업자들은 생산지상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토착 품종이나 전통품종을 제철에 맞춰 소규모 재배함으로써, 화학제품 사용을 최소화한다. 인근 주민들에게 판매하고 때로는 꽃꽂이 방법을 직접 알려주기도 한다. 아직 비주류에 속하는 이런 방식은 자본을 적게 소비하는 대신, 꼼꼼한 손길과 기술을 요한다. 이 방식은 프랑스 생산자-소비자 간 지역소비운동(Amap)과 일맥상통한다. 그들이 옆집 채소장사의 가판 옆에서 절화를 파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이 파는 장미는 제철에만 살 수 있다. 이 장미는 시중의 장미보다 작지만, 한층 깊은 향을 내며, 시들면 소각장이 아닌 밭으로 돌아가 퇴비가 된다. 

 

 

글·줄마 라미레스 Zulma Ramirez 
    조프루아 발라동 Geoffroy Valadon

두 사람은 지역 정보 공유사이트 운영 단체인 ‘라로타티브’의 회원으로 일하고 있다.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번역위원



(1) Jean-Baptiste Malet, ‘Le capitalisme raconté par le ketchup토마토 통조림에 얽힌 자본주의의 역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7년 6월호.
(2) 2020년 2월 기준 0.92유로.
(3) Christelle Gérand, ‘La rose assèche les lacs d’Éthiopie 에티오피아 호수 사막화의 주범, 장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4월호·한국어판 8월호.
(4) Queens Flowers, Splendor Flowers, Elite Flowers.
(5) Khaoula Toumi, ‘Exposition des travailleurs aux résidus de pesticides sur les fleurs coupées et sur les produits horticoles 절화와 원예품의 잔여 화학물질에 노출된 화훼업 노동자들’, 리에주대학교, 2018.
(6) Mauricio Restrepo et al., ‘Prevalence of adverse reproductive outcomes in a population occupationally exposed to pesticides in Colombia’, <Scandinavian Journal of Work, Environment and Health>, Helsinki, vol. 16, n° 4, 1990년 8월; Marcela Varona et al., ‘Alteraciones citogenéticas en trabajadoras con riesgo ocupacional de exposición a plaguicidas en cultivos de flores en Bogotá 보고타 화웨업 노동자들의 살충제 노출로 인한 세포유전학적 변화’, <Biomédica>, vol. 23, n° 2, Bogotá, 2003.
(7) Adrian Williams, ‘Comparative study of cut roses for the British market produced in Kenya and the Netherlands’, Cranfield University, 2007.
(8) Damian Paletta, ‘In rose beds, money blooms’, <The Washington Post>, 2018년 2월 10일.
(9) 프랑스에서 유통되는 절화의 99%는 수입된다. ‘Bilan annuel-Commerce extérieur français des produits de l’horticulture 연간보고-프랑스 화훼품 수출입 현황’, FranceAgriMer, Paris,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