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칼리우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020-02-28     다니엘 파리클라벨 l 언론인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의 빈민가에서, 한 독학 영화감독이 상상력 넘치는 DIY 영화를 발명했다. 동네 이웃들과 아이들이 협력해 무일푼으로 제작했지만, 유머로 무장한 그의 영화는 사회정의에 대한 열망과 오락적 요소, 자유분방한 상상의 세계와 다큐멘터리적인 관찰력을 어우른다. 

 

2005년, 부모와 강제 이별을 하고 제물로 바쳐진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하지 아쉬라프 세무오게레레 감독의 영화 <필링 스트러글(Feeling Struggle: 힘겨운 마음)>이 최초의 우간다 영화 타이틀을 획득했다. 우간다에서 ‘영화관’이라고 해봤자, 의자 몇 개를 놓고, TV 화면에 비디오테이프를 틀어주는 게 고작이다. 이렇듯 열악한 환경에서도 ‘킨나-우간다(우간다 영화)’는 발전 중이다. 그러나 아직은 우간다에서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은 상류층에 한정돼있고, 우간다 인구의 약 절반은 빈곤선 이하의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간다 영화인들이 선호하는 ‘신사실주의(neoreailsm)’적 주제는 대중에게 인기가 없다. 대중은 영화를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형이 들려준 영화 이야기에서 시작된 꿈

수십 년 전, 우간다 수도인 캄팔라 도심 남쪽의 ‘와칼리가’ 마을 빈민가에 위치한 ‘영화관’에서, 미래의 쿵후장인 로버트 키지토는 척 노리스, 아놀드 슈왈제네거, 버드 스펜서, 로저 무어, 성룡, 이연걸, 이소룡의 액션에 심취했다. 대부분은 미국 또는 홍콩 영화였다. 키지토는 동생 아이작 고드프리 제프리(IGG) 나브와나에게, 자신이 본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IGG는 직접 영화를 본 적은 없었지만, 이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강렬한 소망을 품었다. 

2005년, 32세가 된 IGG는 우간다 내전(1981~1986) 동안 자신을 돌봐준 두 할머니 레이첼(Rachael)과 모니카(Monica)의 이름을 따, 라몬 필름 프로덕션(Ramon Film Production)을 설립했다. 그는 현지 음악가들의 음반 광고 영상을 만들며 영화 제작 요령을 익힌 후, 장편영화 제작에 돌입했다. 부유촌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그의 작품의 특징은 가벼운 주제와 분위기다. 예를 들어, 미개봉작이지만 IGG의 첫 작품 <내 학창 시절(My School Days)>에는 전동 자전거를 타는 뱀파이어가 등장한다. 우간다의 공식 언어는 영어와 스와힐리어이지만, IGG의 영화 속 배우들은 영어에, 우간다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고유어인 루간다어를 섞어 사용한다. 엘리트들이 IGG의 영화를 싫어하는 데에는 이런 점도 있을 것이다. 

매주 일요일, IGG는 형이 운영하는 쿵푸 클럽의 친구들과 촬영 허가도, 사전제작 시나리오도 없이 영화를 찍었다. 총파업이 우간다 전역을 마비시켰던 2009년, 그는 한 달 만에 약 150유로의 제작비로 <누가 캡틴 알렉스를 죽였는가?(Who Killed Captain Alex?)>를 완성했다. ‘우간다인에 의해, 우간다에서 제작된 최초의 액션 영화’였다. 호랑이파 폭력조직 소탕의 선두에 섰던 불굴의 캡틴 알렉스가 의문의 살해를 당하자, 캡틴 알렉스의 형제인 ‘우간다 소림사’ 출신의 브루스 유가 형제의 복수에 나선다. 

<누가 캡틴 알렉스를 죽였는가?(Who Killed Captain Alex?)>는 유혈이 낭자한 총격전과 ‘이소룡’풍 액션으로, 무능하고 부패한 경찰과 술집에서 술에 취해 싸움판이나 벌이는 군인들을 묘사했다. 무허가로 몰래 촬영한 이 영화 속에서, (가상의) 경찰서장은 “마을은 안전합니다. 우간다 사람들은 군대식 법을 좋아합니다”라고 보고하지만, 폭도들에 의해 와칼리가 경찰서에 방화사건이 발생하자, 주변 도로 곳곳에서는 실제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 영화는 우간다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영화는 물대포로 진압당하는 실제 시위대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 

 

마을을 촬영장으로, 이웃들을 배우로

IGG는 이디 아민 다다(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우간다 제3~4대 대통령.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종족주의를 내세운 독재자-역주)의 집권 시절(1971~1979)이나 내전 시절, 또는 현재 경험하고 있는 극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묘사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비록 제작 예산 없이, 고철과 파이프로 솜씨 좋게 총을 만들고, 끝을 뾰족하게 깎은 나무로 탄창 벨트를 제작하지만, 그의 영화는 관객들에게 억지웃음을 자아내는 서구의 무수한 ‘Z급 액션 영화(스토리나 촬영기법, CG 등이 여러모로 떨어지는 영화-역주)’와는 차원이 다르다. 라몬 필름 프로덕션이 스스로 붙인 별명, ‘와칼리우드(Wakaliwood, 우간다의 수도인 캄팔라에 있는 빈민가 ‘와칼리가(Wakaliga)’와 ‘할리우드’의 합성어-역주)’는 ‘엉터리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와칼리우드가 선사하는 웃음은 자연스럽다. 

영화 제작을 위해서는 배우들의 투자가 절대적이다. 배우들이 직접 대본을 짜고, 분장과 의상을 책임지며, 단체 식사를 준비하는 대신, DVD(1) 판매 수익의 일정 부분을 받아 간다. 영화가 개봉하면 배우들이 직접 집집마다 방문해 DVD를 판매하는데, 불법 복제된 이 DVD 판매로 부차적인 수입은 기대하기 어렵다. 배우들은 전국 곳곳의 다양한 부족(우간다에는 50여 개의 부족이 있다) 출신이지만, 대부분은 와칼리가 출신이다. “제 이웃들 모두가 배우입니다!”라고 IGG가 웃으며 말했다.(2)

“특별히 촬영장소를 찾으려고 노력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성장한 곳에서 찍다 보니 이웃들이 당연히 출연할 수밖에요.” 영화의 무대가 액션을 결정짓는다. 따라서 액션은 즉흥적인 성격이 강하다. 호기심 넘치는 시선이 집중된 촬영장은 관객들의 참여가 가능한 ‘거리의 극장’으로 변신한다. 맨 앞줄의 관객은 아동들이다. “이 아이들 모두 우리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서 자랐어요. 이제는 영화에 참여하기를 원해요. 이곳 사람들은 우리만큼 영화를 좋아합니다.” IGG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영화에서는 아동들뿐만 아니라 여성이 액션의 주요 배역을 맡는다. 촬영 스태프들은 IGG의 집 앞에서 매일 열리는 쿵후 수업을 듣는다. IGG와 그의 부인이자 조감독인 해리엇이 사는 작은 벽돌집은, 촬영 및 편집 스튜디오이자 ‘와카 스타즈(Waka Starz, 와칼리가의 아동들로 구성된 연기, 쿵푸, 음악 그룹-역주)’에 소속된 15명 아역배우의 숙소이기도 하다. “우간다 인구의 70%가 미성년자입니다.”(3) IGG가 설명을 이어갔다. “그렇다 보니 제 영화의 메시지 전달을 위해 와카 스타즈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청소년들은 나이 든 배우보다 또래의 젊은 배우에게 한층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맛을 더한 VJ의 탄생

집단 예술인 영화는 한 세기가 넘는 시간에 걸쳐 발명을 계속해 왔다. 와칼리우드는 VJ(Video Jockey, 비디오 자키)를 발명했다. VJ는 마이크를 들고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더빙을 하는 영화해설사다. “80~90년대 영화는 중국어나 영어로 상영됐어요. 그런데 우간다인은 두 언어 모두 알아듣지 못하죠! 자막도 없었고요. 그래서 제 동창인 VJ 키와가 실시간 더빙을 하자는 아이디어를 처음 냈습니다. 사람들이 영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를 제 영화에 바로 적용했죠. 그랬더니 유머가 한층 더해졌습니다. VJ는 대사를 더빙하는 데 그치지 않고, 추임새와 농담을 더해 영화를 훨씬 더 재밌게 만듭니다. 우간다 관객들은 이런 영화 상영 형태에 이제 익숙합니다. 해외 관객들도 VJ를 매우 좋아하더군요. VJ는 영화의 흥을 돋웁니다. 앞으로 전 세계에 VJ를 전파하고 싶습니다.” 

IGG의 영화를 전담하는 VJ 에미의 보이스오버가 삽입된 DVD는 풍자와 유머를 보장한다. 예를 들어, 과도하게 무장한 폭력조직원들이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타일 슬로모션으로 돌격할 때 VJ 에미의 해설이 더해진다. “마피아들은 슬로모션으로 걷고 있다. 그들의 뇌도 슬로모션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와칼리우드는 큰 성공을 거뒀지만 무수한 난관에 직면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폭력과 불행이 일상이 돼버린 빈민가에서의 삶이다. 촬영 스태프 중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보다 소소한 난관 중 하나는, 잦은 단전(斷電)이다. IGG가 손수 조립한 최초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단전(斷電)으로 망가지면서 그의 초창기 작품 열 편 정도가 삭제된 것이다(IGG는 로만 필름 프로덕션의 유일한 감독으로 현재까지 총 40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누가 캡틴 알렉스를 죽였는가?(Who Killed Captain Alex?)>는 다행히 CD 사본이 하나 남아있었다. 2011년, IGG는 엄청난 노력 끝에 이 영화의 예고편을 유튜브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90초짜리 이 영상은 불과 며칠 만에 백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인터넷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짧은 영상은 와칼리우드의 존재를 우간다의 빈민가 너머로 알렸다. 연인과의 이별 후 슬픔에 잠겨있던 미국인 영화 애호가 알란 호프마니스는, 이 영상을 보고 모든 것을 제쳐놓고 우간다로 향했다. 와칼리우드에 합류한 호프마니스는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해 영화 제작비 모금 온라인 캠페인을 벌였다. 애초 목표는 160달러였지만, 총 1만 3,000달러가 모금됐다. 이 돈은 카메라 구매, 촬영 소품인 고철 헬리콥터 제작, 그리고 스튜디오 직원과 직원 가족들의 병원비, 치과 치료비로 쓰였다. 

여세를 몰아 호프마니스는 2011~2015년 촬영된 화제작 <배드 블랙 (Bad Black)>에 배우로 데뷔했다. 덕분에 익살꾼 VJ 에미는 <누가 캡틴 알렉스를 죽였는가?(Who Killed Captain Alex?)>의 2013년 복원판 DVD에 다음과 같은 예고를 삽입할 수 있었다. “<캡틴 알렉스>를 재미있게 보셨다면, <배드 블랙>도 기대하세요! 백인들이 두들겨 맞는 걸 보게 될 겁니다.”

 

빈민가의 아이들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

와칼리우드 영화의 해외 홍보대사 역할을 맡고 있는 호프마니스는 IGG가 1970~1980년대의 전형적인 미국 액션 영화들을 모방하지 않고 비틀어 재탄생시키는 것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우간다에서는 저와는 많이 다른 방식으로 이런 미국 영화들을 받아들였습니다.” 미국 롱아일랜드 출신인 호프마니스의 설명이다.(4) “하지만 아놀드 슈왈제네거, 척 노리스, 성룡 같은 배우들 덕분에 우리는 하나로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우리와 같은 문화권 출신이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아프리카 아동들도 브루스 리를 꿈꿀 수 있습니다. 전 세계 모든 아동들처럼 말입니다.” 특히 레이건 대통령 시절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또는 그의 형이 들려주던 영화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IGG는 이런 영화들을 원작과는 정반대의 정치적 주제를 담아 재탄생시켰다. 

2016년 상영된 <배드 블랙(Bad Black)>(5)은 상처 입은 젊은 여성이 조직의 우두머리가 돼 복수를 하고, 미국인 의사가 8세 쿵푸 마스터의 가르침으로 우간다의 슈왈제네거로 변신하는 이야기다.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 이 영화는 거리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 미혼모들의 운명, 강제결혼, 가부장주의, 의료서비스의 부재, 젠트리피케이션, 빈부격차 등을 고발한다. <배드 블랙>은 가장 웃긴 장면까지도 잘 제어해서 웃음을 터트리게 하면서도 가슴을 졸이게 만든다. 서양 관객들의 눈에는, 온갖 장르가 뒤섞인 이 영화가 불편하게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IGG는 이렇게 말한다. “실제 우리의 삶은, 코미디와 액션과 비극의 혼합물이다.”

우간다 문화 당국은 이 영화의 ‘지나친’ 폭력성과 우간다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IGG의 영화를 비판하고 있다. IGG는 이런 비판에 대해 TV 속 폭력이 더 자극적이고 자신의 영화 속 빈민가보다 실제 빈민가의 모습이 훨씬 비참하다며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제가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제 영화는 누추한 집들이 모여 있는 캄팔라의 가난한 삶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특히 우간다 정부를 향해 부자들만 챙기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빈민가의 아이들을 보여줘야 합니다.”

‘제7의 예술’인 영화는 와칼리우드에서 유머와 비극, 사회정의와 오락적 요소, 극단적인 상상력과 다큐멘터리적인 관찰력이 조화를 이룬 대중적 기반을 되찾았다. 물론 IGG의 가내수공업형 영화가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영화에 맞서는 것은 무의미하다. 조르주 멜리에스 감독(프랑스의 초창기 영화 실험가-역주)이 조지 루카스 감독에 맞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적어도 독창성에 있어서는, 스타워즈의 요다도 디즈니 왕국보다 와칼리가의 반항아들을 인정해주지 않을까? 

 

 

글·다니엘 파리클라벨 Daniel Paris-Clavel 
대중문화 전문지 <쉐리비비(ChériBibi)>(www.cheribibi.net) 창간인

번역·김은희,이연주
번역위원


(1) 사실 DivX포맷으로 제작된 CD에 불과하다. 
(2) 2018년 10월 19일 브뤼셀 노바 영화관에서 <배드 블랙(Bad Black)> 상영 후 스카이프로 진행한 인터뷰. 
(3) 우간다 국민의 약 50%가 14세 미만이다(출처: 『CIA World Factbook』, www.cia.gov).
(4) 2018년 10월 19일 인터뷰.
(5) 2019년 12월 유튜브에 업로드된 <배드 블랙(Bad Black)>은 www.wakaliwood.com에서도 <누가 캡틴 알렉스를 죽였는가?(Who Killed Captain Alex?)>와 함께 더블 DVD/Blue-Ray로 판매되고 있다. 전 세계 팬들이 그들만의 독창적인 유머와 대사를 추가해 직접 만든 40여 개 언어로 된 자막도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