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지바르, 사이언스 픽션의 작가 공동체

2020-02-28     잔지바르 l 작가 공동체

미래는 우리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를 상상하고 여기에 전파력을 더해야 한다. 갇힌 생각으로부터 상상력을 해방시키고, 이를 전파하기로 결심한 사이언스 픽션 작가 공동체가 있다. 아니, ‘사이언스 픽션 공동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 

 

판타지 작가 닐 게이먼은 그의 저서 『왜 우리 미래는 도서관, 독서, 상상력에 달려 있는가』(2014)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 주위를 둘러보라. 잠시 멈춰 서서, 당신이 있는 곳 주위를 둘러보라. 너무나 명백함에도 쉽게 잊어버리는 사실이 있다. 벽을 포함해, 당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상상력의 산물이다.” 이것이 바로 잔지바르가 탄생한 배경이다. 

“거대기업들에 미래전망 전략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다 하더라도, 내일이 어제오늘과 같기를 바라는 담화가 널리 퍼져있더라도(실상은 그렇지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개인적·공동체적 미래를 소유하고, 좌우하고, 실험하고, 원하는 대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잔지바르는 사이언스 픽션 작가의 공동체다. 우리의 글이 만남과 사유의 장소이자 미래를 해방시키는 장소가 되길 꿈꾼다.”(잔지바르 선언문)

우리는 공동체의 미래가 대비하기 어려운 교통사고와도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 사실에 굴복하지 않는다. 잔지바르는 작가들의 사교모임도, 문학운동도 아니다. 잔지바르는 땅 속 줄기가 뻗어 나가 상상들을 그물망처럼 이어주는 ‘리좀’ 식물이 되길 바란다. 소속 작가로는 스테판 보베르제, 알랭 다마시오, 카트린 뒤푸르, 마티아스 에슈네, 레오 앙리, 로랑 클로엣제, 실비 래네, 뤼방, 노르베르 메르자낭, 사브리나 칼보, 스튜어트 플뤼엔 칼보가 있다. 

 

잔지바르를 정의한다면?

로랑: 잔지바르는 내 본업에서 한발 물러서서 타인(성인, 청소년, 아동)과 공유할 도구를 만드는 수단이다. 이것은 사이언스 픽션을 대하는 태도다. 사이언스 픽션이란 개인의 세계만 다루는 공간이 아니다. 공동체와 연결돼야 한다. 내가 이곳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바로 공명(Resonance)과 모세관 현상(Capillarity)이다. 

레오: 잔지바르는 우리의 주된 활동 공간이다. 내가 이곳에서 찾으려는 것은, 어떤 업적도 아니다. 열쇠, 지성, 그리고 긴장이다. 잔지바르는 미래를 해방시킨다. 모든 여성과 남성이 사용할 수 있는 해방의 도구를 만드는 장소다. 

사브리나: 잔지바르는 모든 이들을 위한 곳이다. 정치권에서 싸우는 조무래기들까지 말이다. 잔지바르는 광란이며, 결합이다. 나는 이곳에서 동서남북이라는 놀이(아래 ‘프로토콜의 예’ 참조)를 찾았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법을 얻었다. 

카트린: 나는 잔지바르가 정치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브리나: 시학(詩學)은 결합과 유대의 행위니까, 결국 정치적인 것이다. 공동체적인 시적 행위도 중요하다. 내가 이곳에서 찾는 것은? 정신의 장소다. 잔지바르는 반(反)슈티르너(1), 반(反)유아론(실재하는 것은 자아뿐이라는 입장), 연대적 아나키즘이다. 

카트린: 잔지바르는 내 말과 글에 색을 입힌다. 언제 어디서든 말이다. 

 

잔지바르의 시작은?

카트린: 내 경우에는 2006년 낭트 유토피알 축제가 시초였다. 그날 밤, 알랭이 내게 물었다. “모든 여성, 남성과 함께 새로운 유토피스트들을 모으면 어떨까?” 모집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 작업장이 바로 잔지바르다.

레오: 크게 보면 2014년 겨울 유토피알 축제 한편에서 시작된 모임이 잔지바르의 전신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점심 식사 자리에서 멋진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다른 미래들을 설계하도록 노력하고,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구들을 만들어 공유하고, 함께 행동하자는 것이었다.

노르베르: 축제장 근처 술집에서의 일이 희미하게 기억난다. 레오는 일장 연설을 하고 있었고, 알랭은 화를 내고 있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날 저녁, 카트린이 유일하게 잔지바르 전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공동체 이름에 관한 질문이었나?

뤼방: 나는 이름이 정해진 시점에 공동체에 합류했다. 그러나 바로 뛰쳐나갈 뻔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여럿이 함께 글을 쓰면, 항상 자신의 단어를 고르게 된다. 공동의 단어를 고르는 일은 고난이었다. 작가의 일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단계를 넘어서니까, 모든 것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남기로 했다.

알랭: 나 같은 경우에는 카트린의 집에서 가졌던 술자리가 진짜 시작이었다. 언어를 통한 정치적 행동의 중요성에 관해 토론하는 자리였다. 일종의 해프닝을 유발하자는 거였다. 그 후 2017년에 생테티엔 비엔날레에서 노동의 미래라는 초사회적․정치적 주제를 다룰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플로리안 포숑이 우리의 스타일과 언어를 새롭게 사운드로 제작했다.(2)

 

잔지바르에 창작이란?

카트린: 서로 극명히 다른 세계를 강제로 붙여놨을 때 마찰이 일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생성된다(호빗 마을과 어둠의 군주, 목수와 신 등). 사이언스 픽션이 바로 내가 하는 일이다. 

레오: 나는 구조를 이용해 이미지를 찾는다. 이미지가 가장 우선적이다. 어떻게든 이미지를 찾아서 글로 옮기는 게 내 역할이다. 

사브리나: 나는 글이 서툴러서 이해하기 힘든 단어들에서부터 출발한다. 미지의 풍경에 도달하는 잠재성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단어들은 의미로부터 분리되는 순간, 무형의 지도처럼 펼쳐진다. 

노르베르: 반동, 모든 것은 반동한다. 마치 파도가 일었다가 금세 사그라들고, 자극을 주면 더 멀리 있는 것을 흔들어 놓는 현상과 같다. 

그러나 잔지바르는 창작이 아니라, 공동창작 도구인 ‘프로토콜(Protocool)’을 함께 창작하는 것이다.

레오: 나는 공동체 안에 확립된 신뢰와 ‘지속적인 교육’이 참 좋다. 잔지바르는 외부에 치중하지 않고, 우리의 일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스스로를 풍요롭게 만들도록 노력한다. 그래서 효율성도 얻고, 각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더 잘 알게 됐다. 장황한 이론들도 별로 필요 없어졌다. 나는 무엇이 가능한지 추측하는 게 좋다. 무언가의 시초가 되는 기분이다. 

 

프로토콜(Protocool)의 예

프로토콜1. 시공간에서 장소를 비우는 시도: 술집에 들어가서 음료를 주문한다. 그리고 10년 후에 이 술집은 어떨지, 다 같이 이곳을 다시 찾은 모습은 어떨지 상상해본다. 어떤 상상을 했는지 다른 사람들한테 말해준다. 그리고 50년, 100년, 500년 후의 모습도 상상해본다(분명 물에 잠기거나 모래에 파묻혀 있겠지만). 물론, 나갈 때 술값은 잊지 말자.

프로토콜2. 동서남북: 종이접기 여러 개로 ‘우아한 시체’(한 사람이 문장을 만들면, 다음 사람이 이어서 나머지를 완성하는 방식-위키백과) 놀이를 한다. 큰 소리로 하나씩 읽고, 작은 소리로 한꺼번에 읽는다. 모두 기록한 다음에 섞으면, 이제 준비가 된 것이다. 

프로토콜3. 점성술: 우주의 신호는 무엇인가? 20분이 주어진다. 제목은 ‘두려움의 잠재적 형태’다.

사브리나: 나는 이런 압박들이 참 좋다. 새로운 자유의 길을 발견하고, 오아시스를 샘솟게 만든다. 

노르베르: 우리는 공동의 장소들을 찾고 있다. 그곳을 찾으면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서다. 마치 익스트림 스포츠와 같다. 진즉에 깨달은 게 있는데, 우리는 거의 아무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TINA 선언(There Is No Alternative)’(3)에도 반대한다.

잔지바르 프로젝트가 홈페이지를 통해 모두에게 공개됐다.(4)

레오: 우리는 공동 창작법을 퍼뜨릴 시기가 다가오면 인터넷에 올린다. 우리는 홈페이지를 글쓰기 워크숍 장소로 사용한다. 이곳에는 만남이 있고, 만남을 통해 우리가 탐구하는 바를 실현한다. 전문가로서 말하지 말고 작가로 남고, 역할을 뒤바꾸고, 대중이 개입하도록 유도하고, 권위적 관계를 깨뜨리는 거다. 홈페이지 목록에도 결과물이라 할 만한 습작들이 몇 개 있다. ‘3월 1,000일’을 주제로 한 익명 소설들이 대표적인 예다. 

밤샘시위가 있던 2016년 3월에 ‘1000joursenmars.zanzibar.zone’라는 전체공개 페이지를 만들었다. 당신은 3월 421일이 어떨 것 같은가? 3월 632일은?(한 달이 30일이라는 관념을 버려라!)

레오: 내 생각에 잔지바르의 ‘진짜’ 시작은 ‘3월 1,000일’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스트라스부르그 해커모임(Hackstub), 잔지바르 메일링 리스트, 레퓌블리크 광장 사이에서 단 몇 시간 만에 일어났다.(5) 정말 열광적이고 멋진 순간이었다. 아이디어를 내고, 실현하고, 공유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등 모두가 연결된 순간이었다.

알랭: 잔지바르의 첫 번째 센세이션이었다. 사람들은 이 기본적인 대자보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고, 각자가 꿈꾸는 날들을 써 내려갔다. ‘3월 404일: 혁명을 찾을 수 없습니다(404 mars: revolution not found)’, 나는 이것이 매우 수평적이고, 영리하며, 익명인 동시에 공개적이고, 자립적인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발췌] 3월 555일: 이날이 맞는 것 같다. 아니면 556일인가? 3월 며칠인지 날짜를 제대로 세려고 노력하고 있다. 역사책에 나올법한 죄수들처럼 벽에 금도 긋고 있다. 게시판에도, 우리 머릿속에도, 드코(JC Decaux, 전 세계 옥외 광고 1위 회사)가 만든 광고판에도 여전히 매일 아침이 4월 1일로 시작된다. 매일이 (만우절인) 4월 1일이라니, 무슨 악질적인 슬랩스틱 코미디 같다. 나도 처음에는 빌 머레이, 실험실 쥐, 끝없는 하루에 관한 농담을 해댔다. 하지만 결국 지치고 말았다. <피가로> ‘1면’도 몇 달째 바뀌지 않고 그대로다. 날도 슬슬 추워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잔지바르 내부에서만 공유하지 않고, 글쓰기 워크숍부터 콘퍼런스까지, 강단부터 불법 점거지까지, 소도시 타르낙부터 노동조합사무소까지 잔지바르를 널리 알렸다.(6)

 

마지막으로, 왜 ‘잔지바르’인가?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들을 모두 적은 다음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을 지워나갔다. 그랬더니 딱 하나만 남았다. 로고는 106이란 밤색 숫자에 취소선을 찍- 그은 거다. 로고는 인류의 시체 위에 새긴 문신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로고는 없는 셈이다. 잔지바르 홈페이지(Zanzibar.zone)에 온 것을 환영한다! 

 

 

글·잔지바르
스테판 보베르제, 랭 다마시오, 카트린 뒤푸르, 마티아스 에슈네, 레오 앙리, 로랑 클로엣제, 실비 래네, 뤼방, 노르베르 메르자낭, 사브리나 칼보, 스튜어트 플뤼엔 칼보가 소속된 작가 공동체

번역·이보미 lee_bomi@hotmail.com
번역위원



(1) 막스 슈티르너(1806~1856)는 『유일자와 그의 소유』(1844)의 저자로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아버지로 불린다. 
(2) www.zanzibar.zone/2017/03/25/extravaillance-working-dead/
(3) TINA: ‘대안은 없다’는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 마가렛 대처(1979~1990)의 말로, 서양 자본주의 모델을 벗어나려는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의미를 강조한다. 
(4) http://zanzimooc.zanzibar.zone 청년을 대상으로 새로운 무크(MOOC, 온라인 대중 공개강좌)가 곧 개설된다. 잔지바르 연구소와 잔지바르 무크는 단행본 『짐승들처럼』과 사운드북 『2020AD』를 펴냈다. 
(5) 스트라스부르그의 헤커스페이스. www.shadok.strasbourg.eu/agenda/hackstub/
(6) 2016년 European Lab의 Labloids, 2017년 파리도서박람회에서 ‘Tous à Zanzibar’ 콘퍼런스, 파리정치대학에서 『Futurs pluriels 복수형 미래』 시리즈를 위한 ‘Désincarcérer le futur 미래를 해방시키다’ 콘퍼런스, 타르낙에서 ‘Décloisonner l’avenir 미래의 장벽을 허물다’ 주간, 2018년 Union syndicale Solidaires(연대노조연맹) 노조 사무소에서 ‘Tout le monde déteste le travail 모두가 노동을 싫어한다’ 합창 발표, Bluenove의 Bright Mirror 워크숍, 2019년 파리 Rond-Point 극장에서 ‘La périphérie vue par la science-fiction 사이언스 픽션으로 바라본 교외’ 퍼포먼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