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극우로 향하는 중도주의

2020-02-28     피에르 랭베르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많은 이들이 최면에 걸린 것처럼 “극단주의들이 뭉치고 있고, 급진 좌파는 파시즘의 온상이다”라고 되뇌고 있다. 영국 기자 클로드 아스콜리비치는 “유대인에 대한 증오로 사회주의를 해친 끔찍한 인물, 코빈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라고 선언했지만, 자신의 망언을 뒷받침할만한 사실은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Slate.fr, 2019년 12월 14일). 프랑스 논설 기자인 모리스 샤프랑은 “장 뤽 멜랑숑은 반유대주의에 대한 붉은 선을 넘었다. 며칠 전 멜랑숑은 마린 르펜에게 찬사를 늘어놓았다”라고 비난했지만, 샤프랑 역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샬랑주(Challenges)>, 2019년 12월 15일). 장 자크 부르댕은 독일 상황을 분석하면서 “급진 좌파와 포퓰리스트 우파가 하는 말은 서로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독일에서 이민에 반대하는 극좌파의 등장을 목격했고, 이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됐다!”라고 규탄했는데, 파리 언론에서도 이 잘못된 소식이 돌았다(<RMC>, 2018년 9월 4일).

 

검역선(Cordon sanitaire: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검역·차단선을 지칭하며, 이데올로기적으로 절대적인 강력한 국가에 맞서기 위한 완충 국가들의 결합을 의미한다. 프랑스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새로 독립한 동유럽 국가들이 방어동맹을 결성해 서유럽으로 공산주의가 확산하는 것을 막는 차단막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클레망소 총리는 이 동맹을 ‘검역선’이라고 불렀다-역주)의 목표는 경제 질서와 단절된 모든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줄이는 것이며, 여기에서 핵심적 요소인 ‘좌파를 극우파와 동일시하는 일’은 평론가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1) 

그러니 다음번에 평론가들이 허둥대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NBC뉴스 채널>의 수석 논설위원 척 토드가 2020년 미대선 좌파 후보인 버니 샌더스의 지지자들을 “디지털 나치 부대에 빗대야 할지 의문”이라고 한 일이 그랬고(<MSNBC>, 2020년 2월 10일 자 7면 기사), 사회학자 피에르 로장발롱이 ‘프랑스 국민연합당’(마린 르펜이 당수로 있는 극우성향의 국민전선(FN)의 신명칭-역주)이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당(장 뤽 멜랑숑이 당수로 있는 극좌성향의 정당-역주)’과 유사하다고 주장하며 두 정당 지지자들 사이에는 “공통된 감정과 열정이 있으며, 언어와 증오도 비슷하다”라고 단언했던 일이 그랬다(<France 5>, 2020년 1월 19일). 

‘중도주의자들’의 언행 중 놀라운 것은 이런 거짓된 발언이 전부가 아니다. 그들은 좌파는 물론, 중도파까지 동요시키는 수상쩍은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녹색-녹색대안(The Greens-The Green Alternative)당’은 지난 1월에 국민당(OVP)과 연정을 구성했다. 제바스티안 크루츠가 당수로 있는 국민당은 극보수주의 정당으로 작년 5월까지 극우 정당과 연정을 맺었다. 

이들의 공약은 ‘기후와 국경 보호’ 및 세금 인하다. 환경을 중시하는 녹색-녹색대안당이 ‘반이민자’ 정책을 내세웠지만, 프랑스의 작가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이번에는 이 정당을 ‘제3제국(The Third Reich: 히틀러가 집권하던 나치 독일-역주)’에 빗대지 않았다(과거에 레비는 프랑스의 좌파 정치인 프랑수아 루팡(François Ruffin) 의원을, 반유대주의 책자를 쓴 루시앙 르바텟과 비시 정권에서 유대인 문제 전문위원이었던 자비에 발라에 비유한 적이 있다-역주). 프랑스의 녹색당 당수, 야닉 자도는 “오스트리아의 두 정당은 행동력이 있고 책임질 용기가 있네요”라고 평가했다(<프랑스 앵테르>, 2020년 1월 17일).

독일 튀링겐주에서는 좌파에 대한 중도우파 정당들의 ‘공통된 증오’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지난 2월 5일, 좌파당(Die Linke) 후보(당시 튀링겐주 총리)가 튀링겐주 총리 선거에서 크게 앞서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독일 1당인 기독교민주연합(CDU)과 자유민주당(FDP) 위원들이 극우성향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손을 잡고 자유민주당 소속 후보를 당선시켰다. 튀링겐주는 1930년대에 나치가 보수파와 연합해서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을 불러왔던 지역으로, 이런 일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기독교민주연합이 ‘너무 물렁하다’라며, 앞으로 ‘독일을 위한 대안’과 손을 잡으려 한다. 이스라엘과 헝가리, 폴란드, 브라질, 미국에서도 전통적인 우파들이 이미 갈색을 띠고 있다(히틀러 시대의 갈색 상의에서 유래함-역주). 하지만 우리는 다른 곳을 바라보며 함께 외쳐보자. 

“극단주의자들이 뭉치고 있다.”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이연주
번역위원


(1) Serge Halimi, ‘Le cordon sanitaire 방역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