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학계를 비판하는 영국 마르크스주의자

2011-03-11     베르나르 카상

런던의 <뉴 레프트 리뷰>에서 편집장을 지냈고(1962~1982, 2000~2003),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역사와 사회학을 강의하는 페리 앤더슨은 가장 개방적인 영국 마르크스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유럽 대부분 국가들의 정치와 문화계에 정통한 인물이다. 18세기 영국 모험가처럼 유럽 여기저기를 다닌 덕이다. 앤더슨이 집필한 책(1)은 대단히 야심차다. 유럽연합의 현황과 전망을 중심으로 세 나라(프랑스·독일·이탈리아)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 키프로스섬과 터키로 대변되는 새로운 동방 문제를 다룬 책이다. 책의 거의 모든 텍스트는 1996~2009년 <뉴 레프트 리뷰>와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실린 내용이다.  

앤더슨은 전문가와 대학교수의 학술적이고 지루한 텍스트는 거의 인용하지 않았다. 영미권, 특히 미국의 대학세계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예를 들어 미국 학계가 ‘유럽 건설’이라는 주제를 정치학적으로 다루는 데 그친 것을 비판한다. 앤더슨은 정치학이 사회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해서 영양가 있는 설명을 내놓지 못하는 학문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영국 역사가 앨프리드 코반의 말을 인용했다. 코반은 “정치학은 정치 같은 민감한 주제를 피하고, 정치를 학문으로 다루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앤더슨은 영미권 대학의 연구가 대부분 영어로 되어 있지 않은 학문은 철저하게 외면하는 반면, 프랑스 연구가들은 진정한 상호교류를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영미권 대학교수들은 유럽연합을 이국적인 주제로만 다루는 반면, 프랑스 대학교수들은 정치와 사회 분야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05년 5월 29일에 일어난 유럽헌법 부결을 예로 들었다. 프랑스 대학교수들은 자신의 연구서가 활발한 공개토론을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 앤더슨의 주장이다.

물론 앤더슨은 지금의 유럽연합 정책에는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유럽연합이 신자유주의와 영미 모델을 무분별하게 추구하면서 스스로 몰락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앤더슨은 지금과는 달랐던 과거 유럽을 그리워한다. “유럽연합이라는 독특한 구성체를 만든 이들을 존경하는 마음은 변치 않았다. 역사상 이런 시도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의 위대했던 유럽연합이 지금의 유럽연합에도 계속 커다란 존재로 남아 있다.” 유럽연합을 창설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인 장 모네에 대해 앤더슨은 ‘천재적인 모험가’라고 평가한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가치인 진정성, 자유로운 생각, 지적 중용주의를 보여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글•베르나르 카상 Bernard Cassen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각주>
(1) 페리 앤더슨, <새로운 오래된 세계>(The New Old World), Verso, 런던-뉴욕, 2010. 이 책은 아직 프랑스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그의 최신 저서는 <포스트모던함의 기원(Les Origines de la postmodernit?)>(Les prairies ordinaires, Paris,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