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지금, 파격적인 프로그램!

2020-03-31     세르주 알리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끝나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까? 지난 30년 동안, 여러 차례의 위기를 통해 우리는 사회가 합리적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비상식적 희망, 냉정한 현실에 대한 자각, 그리고 불합리에 대한 반발심을 가지게 됐다. 우리는 사회정치적 역학관계가 억류되고, 나아가 전복됨으로써 그동안 가려졌던 난관과 위협의 민낯이 마침내 드러날 것이라고 예상했다.(1) 1997년에 일어난 주식시장 폭락현상은 공기업의 민영화를 촉발했고, 1997년과 2007~2008년에 찾아온 세계 경제위기는 순조롭게 보이던 세계화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정부는 재난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9.11 테러는 “왜 그들이 우리를 미워할까?”라는 식의 질문을 던지며, 미국의 오만한 태도에 대한 심각한 반성을 촉발했다. 그러나 이 역시 오래 가지 않았다. 아무리 사상이 온전하다고 해도, 사상의 힘만으로는 무서운 속도로 전진하는 지옥행 기차의 동력을 끄기에 충분하지 않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것이다. 시민으로서 우리는 정부가 재난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감당하라고 요구하며 의존적인 태도로 일관하면 곤란하다. 심지어 재난이라고 하는 방화광(放火狂)이 온갖 아양을 떨다가 어느 순간 남몰래 불을 지른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달아난다 해도 말이다.  특히 오늘날 우리처럼, 시민들 자신의 목숨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우리들 가운데 다수는 살아오면서 전쟁이나 군사 쿠테타, 통행금지령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올해 3월 말, 이미 30억 명의 사람들이 통행금지 상태에 처해있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극도로 견디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들은 한적한 지방 도시에 마련한 전원주택에 살면서 동네에 핀 동백꽃이나 관찰하는 작가가 아니다. 앞으로 몇 주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빚어진 이번 사태는 우리가 처음으로 경험한 전 지구적인 규모의 고난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 일은 좀처럼 잊히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어떤 형태로든 이 사태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유럽연합은 예산 사용을 일시적으로 중지하는 조치를 선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병원 의료진들의 희생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연금개혁 정책을 잠정적으로 연기했다. 미국 의회는 대다수 미국 시민들에게 수표를 지급하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10여 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자유주의자들은 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채무를 급격히 증가시키며 경제부양 정책을 펴고, 은행을 국유화하는 등, 자본주의 시장 체제를 부분적으로 통제하는데 동의했다. 

그러나 상황이 개선된 이후 취해진 긴축정책을 통해, 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이 위기의 순간 속에 놓쳤던 것들을 다시 붙잡았다. 그리고 그들이 붙잡은 것은 심지어는 더 ‘진화’한 측면도 있었다. 불안정성이 더 커진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은 더 많이, 그리고 더 오래 일해야 했다. 반면에 ‘투자자들’과 금융업자들의 세금은 더 줄어들었다. 이처럼 과거로 회귀하는 정세 속에서, 그리스의 공공의료 시스템은 이미 사라진 줄 알았던 질병이 찾아왔을 때, 재정 부족과 의약품 품귀 속에서 가장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최근까지의 여러 정황을 고려해보면, 시리아에 대한 외교정책은 ‘충격 전술’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염려가 든다. 영국 총리의 정책고문은 2001년에 미국 국제무역센터가 테러 공격을 받은 지 불과 한 시간도 안 된 시점에, 자신이 속한 부서의 고위공직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오늘은 우리가 앞으로 거쳐야 하는 모든 단계를 아주 부드럽게 진행시킬 아주 적합한 날입니다.” 

 

내 동선이 기록되고, 체온이 감지되는 세상

이 편지를 작성할 당시 그녀는 앞으로 이라크 전쟁 재발 방지와 테러 공격 예방이라는 미명 하에 시민들의 자유가 제한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영국과 미국이 초래한 수많은 결정들이 이후 얼마나 많은 분쟁을 초래할지 미처 헤아리지 못했을 것이다. 9.11 테러가 일어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충격 전술’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상상하기 위해 우리는 시인이나 예언자가 될 필요가 없다.

‘집에 있기’와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파생되는 우리의 사회성은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의 빨라진 디지털화 때문에 뒤집힐 위험이 있다. 보건 비상사태가 발생하면서 인터넷 없는 삶이 여전히 가능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은, 더 시급해지거나 무용지물이 될 확률이 높다.(2) 이미 모든 사람이 신분증을 소지하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다. 휴대전화는 곧 사회통제에 유용할 뿐 아니라 꼭 필요한 수단이 될 것이다. 동전과 지폐는 잠재적 오염의 원천이므로, 공중보건을 보장할 수단으로서의 신용카드는 개인의 구매 상황을 목록화하고 기록하고 문서화할 수 있다. 

우리가 법만 어기지 않는다면 자신의 동선을 남길 필요가 없는 자연권의 후퇴가, 미성숙한 청소년이 보이는 충격적 반응을 드러내지 않고도 우리의 마음과 삶에 자리했다. 이는 중국의 ‘사회적 신용’ 혹은 ‘감시 자본주의’와 다를 바 없다. 이미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에도 신분을 밝히지 않고 기차를 타는 것은 불가능했다. 인터넷뱅킹을 사용하려면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줘야 한다. 어딘가에서 분명히 당신의 움직임이 촬영되고 있다. 

보건 위기로 말미암아 새로운 단계로 넘어선 것이다. 파리에서는 드론이 접근 금지구역을 감시한다. 한국에서는 주민의 체온이 지역사회에 위험을 끼치면 열감지기가 이를 당국에 알린다. 폴란드 국민들은 휴대전화에 자가 격리 인증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거나, 경찰의 갑작스러운 방문을 감당해야 한다.(3) 재난 시에는 이런 감시 조치들이 과감하게 시행된다. 그러나 상황이 마무리돼도 이런 조치들은 계속될 것이다.  

경제적 대혼란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자유는 점점 더 축소되고 있다. 전염예방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개의 마트, 카페, 극장, 서점이 문을 닫았다. 이 중에는 배송서비스도, 온라인 판매도 어려운 분야도 있다. 이 위기가 지나가면 이들 중 몇몇이나 새로운 상황에서 다시 문을 열 수 있을까? 반대로 수십만 개의 배송기사 및 상품 처리 직원고용에 대비한 아마존이나, 15만 개의 ‘가맹점’에서 추가채용을 예고한 월마트 같은 대형 유통업체들은 아마 더 크게 웃을 것이다. 이들은 우리의 취향과 선택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는 디지털 자본주의와 비대면 사회의 도래에 저항하는 마지막 보루의 붕괴를 예고하는 리허설이 될 것이다.(4)

 

변화해야 한다, 바로 지금부터

적어도 다양한 발언과 행동, 정당과 국민과 국가가 미리 적힌 이 시나리오에 훼방을 놓지 않는 한, 예정된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정치는 내 알 바 아니다”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것이, 의료진이 구하고자 하는 환자와 희생을 결심해야 하는 환자를 분류해야 하는 정치적 선택임을 모두가 이해할 때까지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런 상황에 있다. 중유럽과 발칸반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이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수년간 이 나라의 의료진들은 덜 위험한 지역이나 수익성이 더 높은 일자리를 찾아 옮겨갔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자연법칙이 강요한 선택은 아니었다. 아마도 우리는 지금 이런 사실을 더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격리의 시간은 각자가 일상을 멈추고 삶을 되돌아볼 시간이기도 하다. 

사려 깊게 행동하자. 바로 지금부터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가 만들어온 사회 발전 모델에 이의를 제기하자”고 제안했지만, 현상황에서는 그런 논의가 더이상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바로 지금부터, 우리는 사회 발전 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자신의 안전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고로, ”자유롭고 조화로운 시장 경제”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전략적인 의존을 감내하려는 생각은 과감히 버리자. 마크롱 대통령은 ”파격적인 결정”을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는 그다지 과격한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진정 파격적인 결정이란, 국가주권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경쟁이라는 가치를 절대시하며 확립된 유럽 조약 및 자유무역 협정을 즉각 중지하는 것,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 폐기하는 것이다.

환자와 의료진, 배송 인력과 출납원의 생명이 수백만 개의 보건 마스크와 의약품에 달려 있다. 이런 물품을 곤경에 처한 국가들에 공급해야 할 책임을, 전 세계에 뻗어 있고 재고 없이 운영되는 공급망에 맡기는 것이 비용 낭비임을 이제는 모두가 안다. 삼림벌채, 생산시설의 해외이전, 폐기물 축적, 끊임없는 인구 이동으로 지구가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도, 모두 알고 있다. 파리는 매년 거주자의 17배가 넘는 3,800만 명의 관광객을 수용하고 있다.

보호주의, 생태학, 사회정의와 보건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이 영역들은 지금 당장 파격적인 프로그램을 추진해도 될 만큼, 강력한 반자본주의적 동맹의 핵심 요소를 이룬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미국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파리 8대학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92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합류한 뒤 2008년 이그나시오 라모네의 뒤를 이어 발행인 겸 편집인 자리에 올랐다. 신자유주의 문제, 특히 경제와 사회,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 신자유주의가 미치는 영향과 그 폐해를 집중 조명해 왔다.

번역·이근혁, 조민영
번역위원


(1) Serge Halimi, ‘Le naufrage des dogmes libéraux 한국어판 제목: 자유주의 교조의 침몰’,<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8년 10월호 / Frédéric Lordon, ‘Quand Wall Street est devenu socialist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8년 10월호
(2) Julien Brygo, ‘Peut-on encore vivre sans Internet ? 우리가 인터넷 없이 살 수 있을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9년 8월호. 
(3) Samuel Kahn, ‘Les Polonais en quarantaine doivent se prendre en selfie pour prouver qu’ils sont chez eux 폴란드인들은 자가격리 상태임을 입증하기 위해 자택에서 스스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 <Le Figaro>, 2020년 3월 24일.
(4) Craig Timberg, Drew Harwell, Laura Reiley, Abha Bhattarai, ‘The new coronavirus economy: A gigantic experiment reshaping how we work and live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 경제: 우리의 근무방식과 생활방식을 재형성하는 거대한 실험’, <The Washington Post>, 2020년 3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