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종말이 오기까지, 또 외면만 할 것인가?

예견됐던 의료시스템의 악화

2020-03-31     피에르 랭베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마술은 관객이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채지 못하도록 시선을 유도한다. 코로나19 사태의 중심에서 마술은 그래프의 형태로 나타난다. 전 세계로 방송된 이 그래프에는 두 개의 등선이 불룩 솟아있다. 가로축은 시간, 세로축은 감염자 수를 나타낸다. 첫 번째 곡선은 가파르게 솟아있는데,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유행병이 낳을 결과를 보여준다. 이는 병원 수용력을 뜻하는 가로선을 뚫고 올라간다. 두 번째 곡선은 격리조치로 질병확산을 막았을 때의 상황을 보여준다. 거북이 등처럼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운명의 선’ 아래를 지나간다. 

이 미국발 그래프는 한국, 이탈리아, 아일랜드를 거쳐 프랑스까지 응급상황임을 알린다. 전염속도를 늦춰서 의료시스템의 포화를 막자는 것이다. 기자들은 대중의 시선을 두 곡선으로 유도해, 정작 중요한 요소를 감춘다. 그래프 중심에 눈에 잘 띄지 않는 가로선이 있는데, 이는 중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상 수를 의미한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이 ‘임계선’은 정치적 선택의 결과다. 

곡선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긴축정책이 수십 년째 의료부문 예산을 축소시켜 환자 수용력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프랑스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1980년 11개였으나, 현재 6개에 불과하다. 지난 9월, 마크롱의 측근인 보건부 장관은 ‘병상 관리자’에게 이 귀한 자원을 분배하는 역할을 맡겼다. 미국의 경우 1970년 7.9개에서 2016년 2.8개로 줄었다.(1)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이탈리아의 경우 인구 10만 명당 중환자 전용 병상 수가 1980년에 922개였는데, 30년 만에 275개로 줄었다. 

 

‘비용을 줄이자’는 모토가 전국에 확산됐다. 병원은 자동차 공장처럼 적기 생산방식으로 운영됐다. 그 결과, 3월 6일 SIARTI(이탈리아 마취·무통·인공소생술·중환자치료 협회)는 이탈리아 응급의학과 전문의 업무를 ‘대재앙급 의학’에 비견하며, “자원부족으로 중환자 치료에 연령을 제한해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경고했다.(2) 프랑스 북동부 그랑테스트 지역에서는 ‘전쟁급 의학’이 유행어가 됐다.

이처럼 의료시스템의 예견된 악화는 질병 자체의 위험성 못지않게 코로나바이러스 위기의 원인으로 꼽힌다.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게 내버려둬야 하나? 같은 정보가 빙빙 돌아 증폭되는 이른바 ‘반향실 효과(Echo chamber)’만 내는 주류 언론들은 선택에 대한 비평을 미루고, 독자와 청중으로 하여금 현기증 나는 철학적 토론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도덕적 딜레마 이면의 정치적 문제를 감추기 어렵다. 코로나19로 인해, 예상보다 훨씬 비정상적인 경제구조가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항공사들이 운수권 유지를 위해 빈 항공기를 운항하는 동안, 한 전문가는 자유주의적 관료주의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근본적 연구를 어떻게 저지했는지 설명했다.(3) 

미국 스탠퍼드대 지구시스템학과 마샬 버크 교수는 일상에서 벗어나야 고장난 부분을 고칠 수 있다는 역설을 지적했다. “코로나19로 중국 대기오염이 감소해, 코로나19 사망자의 20배에 해당하는 생명을 구했다. 이는 우리 경제시스템이 얼마나 건강에 유해한지를 보여준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없다고 해도 말이다.”(4) 이런 부조리한 상황의 하이라이트는 공장 해외이전에 따른 약품 부족도, 초기 보건정책을 이유로 이탈리아를 응징하려는 금융시장의 고집도 아니다. 

하이라이트는 바로 병원 문 뒤편에 있다. 2000년대 중반에 도입된 T2A(질병별 정액에 의한 행위별 수가제)에 의하면, 병원재정은 의료행위 수에 비례한다. 상점처럼 의료행위별로 비용이 청구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도입된 이 같은 의료상품화가 현재의 위기상황에 적용된다면 위중한 감염자를 받는 병원들의 숨통을 조일 것이다. 상태가 위중한 코로나19 감염자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인공호흡기인데, 이는 비용은 많이 들고 수익성이 낮다. 

평소 상상하기 힘든 가혹한 격리조치를 하게 만든 바이러스는 한때 사회적 공간이란 장벽을 허무는 듯했다. 월스트리트 은행가와 중국인 노동자가 같은 이름의 위협에 놓이지 않았는가. 그러나 돈은 이들을 곧 구분해놓았다. 한쪽에서는 저택에 격리돼 수영장에 발을 담그고 원격업무를 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간호사, 계산원, 운송원 등 일상에서 눈에 띄지 않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에 비해 운이 좋은 이들이 피하는 리스크를, 그들은 피할 수 없어서다. 협소한 아파트에 격리된 회사원들은 아이들의 소동 속에서 원격업무를 수행한다. 노숙자들은 머무를 집이 있기만 바란다.

보수적 역사학자 장 들뤼모는 14~17세기 ‘페스트 시대의 집단행동 유형론’에서 불변의 요소를 발견했다. “유행병이 출현하면, 우선 사람들은 이 위험을 외면한다.”(5) 독일작가 하인리히 하이네는 1832년 파리에 콜레라가 창궐했다고 공식 발표됐을 때의 상황을, “파리 시민들은 여느 때보다 더 활기차게 거리를 활보하며 따스한 햇살과 쾌청한 날씨를 즐겼다”라고 묘사했다.(6) 이후 부자들은 시골로 도망쳤고, 정부는 파리를 봉쇄했다. 들뤼모의 설명에 의하면, “익숙했던 주변환경이 갑자기 사라졌다. 질병의 존재가 야기한 불안정 이상으로, 일상의 구성요소가 파괴된 것도 충격적이었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우한, 로마, 마드리드, 파리에 격리된 이들도 똑같은 상황을 겪고 있다. 

 

예측 불가능을 무시하는 부조리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페스트는 최후의 심판을 알리는 계시로 여겨졌다. 복수의 신이 노해서 세상을 종말에 이르게 하려고 벌을 내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자비를 애걸했고, 이웃 중에서 죄인을 찾았다. 라퐁텐 우화인 ‘페스트에 걸린 동물들’에서 당나귀를 향해 고함을 질렀듯, 사람들은 유태인과 여자를 당나귀 취급했다. 21세기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럽을 덮쳤다. 세속화된,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래 환경, 정치, 금융, 인구, 이민 문제에서 ‘통제를 상실했다’는 감정 때문에 다방면으로 타격 입은 사회를 덮친 것이다. 

불타는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이미지와 종말에 관한 담론이 뒤섞인 ‘세계 종말’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공권력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부는 의료시스템을 망치려는 집념으로 상황을 악화시킨 장본인인 동시에, 유행병에 대한 해결책을 도모할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까지 가야 하나? 2월 한 달 동안 중국 후베이성 주민 5,600만 명이 몇 주간 격리되고, 공장이 강제로 중단되고,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이 도시를 날아다니며 확성기로 경고하는 모습은 유럽인들로 하여금 조롱을 하고, 공산당의 철권통치를 경계하게 만들었다. 

프랑스 주간지 <렉스프레스>는 “중국의 사례는 코로나 사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우리 민주주의 사회에 적용할 수 없는 극단적인 격리조치를 단행했기 때문에 전염을 늦출 수 있었다”고 3월 5일 보도했다. 그러나 ‘우리’의 고결한 가치가 통하지 않는 바이러스에 대항하려면, 경제적 자유주의는 잠시 제쳐두고 중앙집권적 결정을 최우선시할 각오가 필요하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이 유행병은 퇴치될 수 있다. 다만 정부의 장치 전체가 관여하는 포괄적이고 조율된 종합적 접근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포괄적, 조율, 정부... 시장과는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며칠 만에 사회주의 세계를 해석하는 틀이 완전히 바뀌었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주권, 국경, 공공지출 등 반세기 전부터 ‘국가 포퓰리즘’ 또는 북한과 연관 짓던 개념들이 갑자기 시장논리와 예산축소에서 해결책을 찾던 세상에 해결책으로 등장했다. 

공포에 자극받은 전위적 비평가들은 그동안 무시하려 애썼던 부분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번 위기가 우리로 하여금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의존도, 자유무역, 항공 등 세계화를 전면적으로 재고하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나?” 언론인 니콜라 드모랑은 3월 9일 <프랑스 앵테르> 라디오방송에서 다니엘 코헨 등 열렬한 보호무역주의 비판자들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졌다.(7) 

시장논리가 지성을 뿌리 깊게 재구성해 놓았기 때문에 오직 치명적인 세계적 유행병만이 정부로 하여금 의사들이 말하는 자명한 이치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 수 있었다. “그렇다, 언제든 병상을 제공할 수 있는 의료구조를 도입해야 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당연한 이치를 깨닫게 해줬다. 우리는 소방관이 불을 끄는 순간만을 위해 세금을 내는 게 아니다.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대기하는 시간도 포함돼 있다. 사이렌이 울리기 전까지 소방차만 닦고 있더라도 말이다.” 의사인 안드레 그리말디, 안느 제르베 하센노프, 올리비에 미유롱은 말했다.(8)

화재, 질병, 천재지변, 경제위기 등 예고 없이 발생하는 상황을 예견하려면? 자본주의가 영속화되고 1929년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살아남은 것은 대중의 요구를 체제에 통합시켰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능한 것을 계획화하려면,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의 합리성과 단절해야 하며,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들은 무시하고, 기업들을 중시하지 않는 방정식을 기반으로 미래 모델을 세워야 한다. 투자전문가이자 통계학자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2008년 경제위기가 발발하기 몇 달 전에 단기적 예측을 다룬 책을 발간했다. “전문가들의 문제는 자신들이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9) 

그에 의하면, 예견 불가능한 사건들, 즉 ‘블랙 스완’이 증가하는 세상에서 예측 불가능한 것을 무시하는 태도는 부조리의 일환이다. 2020년 3월 말, 봉쇄된 도시의 정적을 창문 너머로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부가 병원 침상뿐 아니라, 이제는 몇몇 국제적 보험·재보험 회사들이 독점해버린 경제계획 수단마저 포기하려는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을 것이다.(10) 세계적 유행병이 초래한 휴지상태가 이 흐름을 뒤바꿀 수 있을까? 잠재성과 우연을 공적 업무에 끼워 넣고, 비용편익 분석보다 더 멀리 내다보고, 친환경 정책을 수립하면, 현대사회에 필수불가결한 서비스 대부분이 공유화될까? 

평상시라면 기대하기 힘든 변화다. 오스트리아 출신 역사학자인 발터 샤이델 스탠퍼드대 교수는 평범한 정책으로 체제, 경로, 집단생활 및 평등에 관한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본다.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평준화는 예외 없이 가장 강력한 충격으로 인해 발생했다. 네 가지 종류의 격렬한 분출이 불평등의 벽을 허물어왔다. 요컨대, 대중을 동원한 전쟁, 혁명, 국가의 붕괴 그리고 치명적 대유행병이 그것이다.”(11)

우리도 그곳에 있을까? 한편 경제시스템은 그 자신의 비합리성이 초래한, 잦아지는 충격들을 흡수하는 놀라운 능력을 역사를 통해 보여주었다. 그래서 가장 심각한 혼란들은 대개 그 현상의 책임자들에게 이득이 되고, 이들은 충격에 의존해서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넓힌다. 나오미 클라인이 2008년 금융위기 직전에 거론했던, 이 ‘재앙의 자본주의’는 위기의 완충역할을 하는 사회보장제도와 천연자원의 고갈을 내심 반긴다. 낙관론이 만연한 가운데 캐나다 출신 저널리스트는 “우리가 위기에 대응할 때 항상 퇴보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위기 속에서 빠르게 성장한다”고 썼다. 

 

폭풍이 지나면, 또 답습하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같은 맥락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2020년 3월 12일 다음과 같은 의지를 표명했을 것이다. “우리 세계가 수십 년째 따르는 발전모델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그 결점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리고 우리 민주주의의 취약함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이번 세계적 유행병은 소득, 경력, 직업을 불문한 무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리 복지국가가 비용이나 책무가 아닌 소중한 재산이며, 운명이 우리를 강타할 때 반드시 필요한 자산임을 보여줬다. 이 세계적 유행병은 시장의 법칙에서 제외시켜야 하는 재화와 서비스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음식, 우리의 안전, 우리의 삶의 틀을 관리할 능력을 다른 이에게 양도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러므로 통제권을 되찾아야 한다.” 

사흘 후, 그는 연금개혁과 실업수당 개혁을 연기했다. 그리고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해고제한을 단행했다. 모든 예산제약을 포기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노동개혁을 중단하고 공적 자유를 제한하면서 기업을 지원하는 비용을, 의료시스템의 근간인 사회보험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이런 방편들은 근본적으로 이전 정책들과 다르지 않다. 막대한 공적자금을 민간부문으로 돌리는 것은 2008년 정부의 은행 구제정책을 연상시킨다. 노동자와 공공서비스의 재정긴축이란 형태를 띤 계산법이다. 침상이 부족하다고 하면, 은행들을 재정지원하라고 한다.

따라서, 이 국가지도자의 ‘공현(epiphany)’은 리먼 브라더스 파산 직후 2008년 9월에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이 했던 연설을 상기시킨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대경실색한 당원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세계화에 대한 생각 일부는 금융자본주의의 종말과 함께 끝났다. 금융자본주의 논리는 경제전반을 지배하고 이를 변질시키는데 일조했다. (...) 시장이 항상 옳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다.”(12) 그러나 폭풍이 지나가면, 아마도 그 터무니없는 생각을 답습할 것이다.  

 

글·르노 랑베르Renaud Lambert
피에르 랭베르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이보미 lee_bomi@hotmail.com
번역위원


(1) 출처: OCDE
(2) ‘Raccomandazioni di etica clinica per l’ammissione a trattamenti intensivi e per la loro sospensione’, <Siaarti>, 로마, 2020년 3월 6일
(3) Bruno Canard, ‘J’ai pensé que vous avions momentanément perdu la partie’, 2020년 3월 5일 선언, Academia 사이트(https://academia.hypotheses.org) 참조.
(4) Twitter, 2020년 3월 9일.
(5) Jean Delumeau, 『La Peur en Occident, XIVe-XVIIIe siècle』, <Fayard>, 파리, 1978년.
(6) Heinrich(Henri) Heine, 『De la France』, collection Tel, <Gallimard>, 파리, 1994년.
(7) <New York Times>, 2020년 3월 9일.
(8) <르몽드>, 2020년 3월 11일.
(9) Nassim Nicholas Taleb, 『The Black Swan. The Impact of the Highly Improbable』, <Random House>, 뉴욕, 2007년.
(10) Razmig Keucheyan, 『La Nature est un champ de bataille. Essai d’écologie politique』, <La Découverte>, 파리, 2014년.
(11) Walter Scheidel, 『The Great Leveler. Violence and the History of Inequality from the Stone Age to the 21st Centur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7년.
(12) 툴롱에서 한 연설, 2008년 9월 25일.

 

 

그림·황지현
화가 황지현은 스치는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순간들, 유동하는 기억,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람과 풍경 등 관계에서 느끼는 심리적 감응과 충돌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코로나19의 습격을 받은 우리의 삶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순간들을 보는 듯해, 이번 호에서 작가의 작품들을 선택했다. 그는 9회의 개인전과 60여 회의 기획 단체전을 거쳤으며,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으로 전시 및 창작활동을 진행해왔다. 그는 다수의 아트 콜라보레이션에 참여하기도 했다. (3~12면, 32~34면)
www.hwangjihy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