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에 대한 홀대, 전염병 불러

2020-03-31     캉탱 라벨리 |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원

경제 위기와 전염병은, 선별적으로 몰아닥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주식시장이 연일 폭락하던 3월 중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적용할 수 있는 항바이러스제 렘데시비르의 임상시험 계획이 발표됐다. 그러자 해당 제약사 길라드 사이언스의 주가가 20% 상승했다. 실험 백신 INO-4800을 발표한 이노비오 파마수티컬스사와, 보호용 마스크 제조업체 알파프로테크의 주가는 각각 200%, 232% 급등했다. 분자진단 기술을 적용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 진단키트를 개발한 코덱스사의 주식은 무려 1,370% 이상 치솟았다.

의사와 간호사들도 보호용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는 혼란한 이 시기가, 누군가에게는 부를 쌓아올리는 기회가 되고 있다. 반면, 전염병이 발생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수많은 사람이 진단검사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바이러스 진단검사는 한국과 미국을 필두로 독일과 호주,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인 논쟁거리가 됐다. 그러나, 제롬 살로몬 프랑스 보건국장은 대대적인 진단검사는 ‘외출금지령’ 해제 이후에 실시한다고 밝혔다. 

어째서 프랑스는 진단검사 문제를 교묘히 피하기 급급한 것일까?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대책은 방역’이라는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이 전쟁의 진짜 상대는 ‘우리를 둘러싼 경제와 사회의 질서’다. 전염병 사태의 중심에 있는 제약산업계가 사회적 공론화를 꺼리는 현 상황은, 프랑스의 보건·연구·생산 부문이 정책적 위기를 겪고 있다는 증거다.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게 둬야 하는가?

최근 몇 주 사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팬데믹’ 상황에 이르자, 그동안 보건의료분야의 경제적 수익성을 따지며 지속해서 의료인력과 환자에 대한 예산삭감을 정당화해온 프랑스 사회모델의 결함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중환자실과 응급실이 포화상태다. 그리고 몇 달 동안 비상대응협동조합(Collectif Inter-urgence)이 분투하며 더 많은 지원을 호소하는 가운데, (사망자 속출로 갈수록 명단이 짧아지는) 중증환자와 일반 감염자 사이에서 의료진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들은 늘어난다.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 지역에서는 이미 ‘대체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게 내버려 둬야 하는가’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3월 22일을 기준으로, 그랑테스트 지방에서만 누적 사망자가 271명에 달했다. 반면, 라인강을 사이에 둔 인근 도시 독일 바덴 뷔르템베르크 주의 경우, 전염병이 더 일찍 돌았고 주민 수가 그랑테스트의 2배에 달하는데도 사망자 수는 23명에 그쳤다. 대체, 원인이 무엇일까?

이 의문을 해소할 실마리는 프랑스 보건의료체계에서 제약산업이 띠는 정치적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제약업체는 바이러스를 추적하고 백신을 개발하며 치료제를 생산한다. 현재 프랑스에 의료물자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지만 DNA 양을 증폭시켜 바이러스를 식별하는 ‘중합효소 연쇄반응(PCR)’ 기술적용 진단키트의 제조법은 사뭇 단순하다. 이에, 애보트(Abbott), 퀴아젠(Quiagen), 퀘스트 다이어그노스틱스(Quest Diagnostics), 서모피셔(Thermo Fischer), 로슈(Roche), 비오메리으(BioMérieux) 등 다수의 기업이 우후죽순으로 이 거대시장에 뛰어들었다.  진단키트 기술에는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프랑스에서는 진단키트가 개당 112유로에 판매되고 있지만(이 중 환자 부담은 54유로), 기술원가는 약 12유로에 불과하다. 그러나 제조사에 기술 플랫폼을 과도하게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애보트나 로슈와 같은 거대 제약업체 간의 관행은, 시장독점이라는 맥락에서 무역 금지관세 대상이 될 수 있다.(1)

 

진단, 치료, 예방…모든 게 부족하다

경제적 제약을 고려한다 해도, 지난 3월 20일 프랑스의 인구 백만 명당 검사인원이 이란이나 오스트리아의 절반 수준에 그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 날까지 프랑스의 누적검사 수는 4만 건 미만이다. 한국 31만 6,644건, 독일 16만 7,000건, 러시아 14만 3,619건, 호주 11만 3,615건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 수치다.(2) 

한국의 경우, 차에 탑승한 채 검진을 받는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 선별진료소’와 의료진이 환자와 분리된 가운데 고무장갑을 통해 손을 넣어 검체를 채취하는 ‘1인 감염 안전진료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확진자 추적 관찰을 통한 철저한 사후관리로, 감염자를 비감염자들로부터 격리하는 방법으로 바이러스 전파사슬을 차단해나가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봉쇄조치 범위는 프랑스에 비해 지극히 제한적이며, 확진 환자의 사망률도 낮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질병 발원지인 중국과 지리적으로 근접한 여건임에도 사망자 수는 프랑스보다 훨씬 적다는 사실이다.

한편 프랑스는 진단검사 외에도 바이러스 진단에 필수적인 분자진단 시약이 부족해 코로나19 퇴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로서는 해당 검사 시약을 어디에서 확보하고, 어떻게 쓰이며, 원가가 얼마인지에 관한 정보가 온전히 공개되지 않았다. 수십억 인구의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시약이라면 관련 산업기밀과 무역기밀, 특허를 완전히 해제해 원재료의 출처와 제조방식을 낱낱이 공개해야 하지 않을까? 대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진단검사 다음으로 중요한 두 번째 무기는, 코로나 19 치료제다. 중국 정부는 일본의 후지필름 그룹에서 개발한 독감(인플루엔자) 치료제 아비간(Avigan)의 활성성분 ‘파비피라비르(Favipiravir)’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서 회복하는 시간을 단축하는 ‘고무적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치료제 후보는 사노피(Sanofi)와 리제네론(Regeneron)사가 공동으로 개발한 치료약제 ‘케즈바라(Kezvara)’로, 류머티즘성 관절염 발병기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인터루킨-6(IL-6) 수용체 항체가 코로나19 중증환자의 폐에서 관찰되는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기존 약제를 긴급히 코로나19 치료제로 활용해야 하는 현 상황은, 부족한 질병 예방능력과 더불어, 산업정책을 기회주의적 욕망이 채우고 있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어떤 이들은 질병 대유행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필요할 때마다 연구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과학, 의학, 생태학이라는 일반적 시각에 기초해 우리는 예측불허의 조건에서도 결과를 예상하고 연구방향을 정립할 수 있다. 다만, 단기적 이윤 창출의 관점에서는 이런 연구를 추진할 수 없다. 시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세계 인구의 17%를 차지하는 소수의 국가에서 전체 의약품 85%를 소비하고 있고, 가장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키는 전염병보다 우울증과 비만 치료약에 관한 연구가 더 활발히 진행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흔히 위기가 불어닥치면 현실의 모순과 간극이 여러 부조리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바이러스에 맞서는 세 번째 무기, 백신은 이런 부조리를 잘 드러낸다. 일례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인 독일 바이오기업 큐어백(CureVac)으로부터 백신 독점권을 사들이겠다고 제안했다. ‘오직 미국만을 위한’ 백신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었다. 이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단호히 거부 의사를 밝혔고, 유럽연합도 황급히 해당 기업에 최대 8,000만 유로의 재정지원을 하기로 했다. 선거를 의식한 조급한 외교 조치는 이처럼 제약산업의 현실을 잘 반영한다. 

연구를 이끄는 힘은 금전적 유인책과 특허에 있지만, 그동안 대형 제약회사들은 (세균성, 바이러스성을 망라한) 감염 질환 연구에 필수적인 의학분야에 대한 투자를 축소해왔다. 게다가 연구 진행속도도 현 상황에 대처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최초로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모데나 테라퓨틱스(Moderna Therapeutics) 사가 백신을 상용화하기까지는 수개월이 더 걸릴 것이다. 하지만 해당 기업의 주가는 백신개발 착수 발표 직후 여지없이 상승했다.

 

메르스와 사스에서 전화위복 삼은 한국

공공지원도 민간부문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는 열쇠가 되지 못하는 현실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개발한 연구 프로젝트에, ‘예산삭감’이라는 결정이 돌연 단두대처럼 떨어져 연구가 중단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3월 4일,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유전정보가 리보핵산으로 이뤄진 ‘RNA 바이러스’ 복제를 연구하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브뤼노 카나르 연구원은 기고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전염병 재창궐을 예견하지 못한 유럽 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SARS-COV)에 대한 정치적 관심은 2006년 사태 이후 수그러들었다. 그동안 유럽은 납세자의 비위를 맞추느라 여러 유망한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그러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긴급히 연구진을 투입해 다음 날까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압박한다. 이미 5년 전, 우리는 벨기에와 네덜란드 연구진들과 공동으로 유럽위원회에 두 차례에 걸쳐 ‘바이러스 창궐에 대비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향서를 전달한 바 있다.”(3)

카나르 씨는 기초과학이 ‘전염병에 대처하는 최선의 보험’이라고 강조했지만,(4) 바이러스학과 세균학 중에서도 일부 분야(응용약학이나 기초 미생물학)가 홀대받는 문제는 간과했다. 국립과학연구센터에 ‘긴급자금’ 3백만 유로가 배정되긴 했지만, 여러 해에 걸친 투자감소와 불과 몇 년 전에 대유행했던 전염병을 생각하면 이런 대처는 참으로 미미하고 안일해 보인다.

한국은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과 2003년 중국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30여 개국에서 감염자 8,096명, 사망자 774명 기록)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공중보건정책 방향을 재정립한 덕에 이번 코로나19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정부라는 존재는, 강력하고 반복적인 트라우마를 겪어야만 기억을 아로새기는 모양이다. 물론, 기억상실증에 빠져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정부가 더 많지만 말이다.  

 

글·캉탱 라벨리 Quentin Ravelli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 CNRS) 연구원, 『세균 전략』(Le Seuil, 파리, 2015)의 저자.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Observatoire de la Transparence dans les Politiques du Médicament, 의약품 정책의 투명성 전망' 보도자료, 2020년 3월 18일.
(2) Esteban Ortiz-Espina; Joe Hasell, 'How many tests for Covid-19 are being performed around the world ? 전 세계 코로나 19 검사 건수 현황', Our world in data , 2020년 3월 20일, https://ourworldindata.org
(3) Bruno canard, ‘Coronavirus : la science ne marche pas dans l’urgence ! 코로나바이러스: 과학은 비상시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Université ouverte 웹사이트, 2020년 3월 4일, https://universiteouverte.org
(4) Bruno Canard, ‘La science fondamentale est notre meilleure assurance contre les épidémies 기초과학은 전염병에 대처하는 최선의 보험’, <CNRS Le Journal>, 2020년 3월 13일.

 

그림·황지현
화가 황지현은 스치는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순간들, 유동하는 기억,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람과 풍경 등 관계에서 느끼는 심리적 감응과 충돌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코로나19의 습격을 받은 우리의 삶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순간들을 보는 듯해, 이번 호에서 작가의 작품들을 선택했다. 그는 9회의 개인전과 60여 회의 기획 단체전을 거쳤으며,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으로 전시 및 창작활동을 진행해왔다. 그는 다수의 아트 콜라보레이션에 참여하기도 했다. (3~12면, 32~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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