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의 ‘전쟁’ 선포 이후 바이러스는 퇴각할까?

2020-03-31     앙드레 그리말디 외

전문가들이 지적한 대로, 지난 30년 동안 프랑스 정부는 방만한 태도로 일관해 결국 병원은 인력과 재정 부족 사태에 빠졌고 위기 상황이 닥치자 완전 자가 격리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이제 다시는 이런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보건 정책을 전면 재정비해야 할 때다. 

 

 

지난 3월 16일 마크로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우리는 전쟁 중입니다”를 무려 7번이나 언급했다. 적은 바로 바이러스다. 물론 이 바이러스는 경증만 일으키고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감염율이 높고 아직 백신이 없기 때문에 노인 등 취약 계층은 사망 위험이 높을 수도 있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 때문에 정부의 발표도 혼선을 빚고 있다. 

몇 주 전만 해도 ‘고위험군’만을 보호하자고 안심시키더니, 이제는 모든 국민에게 즉각 자가격리 명령을 내린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가운데 치러진 지방선거 1차 투표 직전에는 정부지침이 더욱 오락가락했다. 음식점과 유흥업소 휴업을 지시한 에두아르 필립 총리는 시민들에게 다음날 투표는 하러 가야 한다고 독려했다. 

마크롱 정부는 ‘양다리’ 정책을 펼치려는 듯하다. 결국 투표율은 역대 최저 수준이었고, 파리 시장 선거에 집권당 후보로 출마한 전 보건부 장관 아녜스 뷔쟁은 이번 선거가 ‘가면무도회’ 같았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마크롱 대통령은 과학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먹이며 ‘무관심한’ 국민을 탓했다. 그러니 대통령의 연설은 과장되고 상투적인 것으로 보일 뿐이다. 

 

보건 분야를 파고든 시장 논리

무엇보다 바이러스 전쟁을 빌미로 정치 활동을 벌여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전면적인 방향 수정을 해야 한다. 바이러스는 20세기 후반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위험한 면모를 여실히 드러냈다. 산업경제부 장관 출신 마크롱 대통령 또한 신자유주의를 이념을 좇아서, 봉급자는 자영업자로, 공공서비스 사용자는 고객으로 변모시키려 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프랑스 청년들이 부자가 될 수 있다”라고 믿었으며, “고용주가 아니라 고객을 찾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1),(2) 

2004년 공공병원 재정 지원을 위해 포괄수가제를 도입한 이후, 이런 영업적 마인드를 바탕으로 하는 보건정책을 수립했다.(3) 이로 인해 공공병원과 민간 병원이 시장에서 경쟁하게 됐다. 이제 병원의 목표는 수요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라 ‘비용’을 줄이면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진료를 늘려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됐다. 

수지를 맞추려면 환자 수를 늘리고, 입원 기간과 병상 수를 줄이면서 (10년 만에 7만 개 감소), 급여를 동결하고, 직원이 과중 업무에 시달리더라도 충원하지 않으면서 임금 비용의 증가를 막아야 한다. 민간 병원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던 심박 조율기, 혈관 스텐트 삽입, 투석, 내시경, 외래 수술과 같은 표준화된 의료 활동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명목으로 공공병원을 마치 공장처럼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도시, 시골 할 것 없이 의료공백으로 인해 응급환자와 만성 질환자가 폭증할 수 있다는 부작용을 예상하지 않았다. 게다가 여러 차례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염병 창궐의 위험도 고려하지 않았다. 2008년부터 8년에 걸쳐 공공병원의 공적 예산을 80억 유로나 삭감하기로 했고 2020년에는 6억 유로를 감축하기로 했다. 결국, 2019년 가을 모세기관지염이 유행했을 때, 의료진은 파리에 병상과 인력이 부족해 아동 환자의 집에서 200km나 떨어진 병원까지 환자를 이송해야 했다. 재앙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이런 사태에도 공공보건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정치인들은 경각심을 가지지 못했다. 

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된 후에야 공공병원 연합의 목소리를 듣고, 병원예산 긴축, 포괄수가제, 공공병원 기업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효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보건 분야에 시장논리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처럼, ‘백의의 영웅들’을 치하했다. 하지만 이들은 수개월째 공공예산 증액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병원 근무자의 급여 인상을 결정할 리 만무하다. 프랑스 간호사의 급여는 OECD 32개국 중 28위인데, 보호 마스크마저 부족한 ‘백의의 영웅들’을 위해 제랄드 다르마냉 예산부 장관은 초과 근무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얼마나 관대한가! 

이런 태도를 보면 과연 코로나 사태로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안전보다 수익을 우선시하는 이들, 의약품 유효 성분의 수입 의존을 찬성하는 이들, 복제약과 필수 의료 기기를 생산하는 비영리 제약 회사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 마스크와 손소독제의 신속한 공급 능력이 없는 이들, 오랫동안 공공병원의 몰락을 방관했던 이들, 그리고 노란 조끼 시위에 굴복해 저소득 연금 생활자를 위한 사회보장기여금 인상 취소와 보험료 납입 면제를 결정하고 사회보장기금에서 25억 유로를 빼서 부족한 자금을 메우자고 하는 이들이 과연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4)

 

의료 비즈니스인가, 공공보건인가

이런 무책임한 결정을 재검토하고 환경 및 보건 정책에 관해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의료시스템은 사회계층과 지역 간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경제정책으로 인해 국민 건강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극빈층의 기대수명은 부유층보다 13년이나 짧다.(5) 바이러스는 누구나 감염될 수 있지만, 가난할수록 타격이 크다. 대통령이 약속했듯, ‘그날 이후’는 ‘그날 이전’과 완전히 달라야 한다. 물론 우리는 더 나은 ‘그날 이후’를 바라지만, 자유주의 경제, 권위주의적 정치를 따르는 악화 일로를 걸을 수도 있다. 

보건 정책은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 의료 비즈니스를 할 것인가, 진정한 공공 보건을 실현할 것인가? ‘그날 이후’의 공공병원은 고도의 기술력을 갖춰 과학 혁신을 도모하면서 의료와 사회적 지원 역할을 수행하는 구호 기능도 갖춰야 한다. 경제부에서 제시하는 숫자가 아니라 전문가와 환자 대표의 의견을 수렴해, 예산을 산정하고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 병원의 운영에 간병인과 환자도 참여해야 하며, 수익성에 집중하지 않고 최소 비용으로 환자에게 적정 치료를 제공함으로써 지역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또한 급성환자와 응급실의 입원대기 환자를 위해 전문 인력과 병상을 보충해 환자가 몇 시간 동안 들 것에 누워 있어야 하는 참담한 상황을 끝내야 한다. 병원 경영진은 외래진료를 늘리고 병상 수를 30% 줄이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웃국가 독일은 프랑스에 비해 병상 수가 1.5배, 심폐소생환자 전용 병상 수는 2배에 달한다.

병원 진료의 질을 보장하려면 의료진과 여러 관계자가 긴밀히 협업하고, 전문 인력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환자에게 1차 진료를 하는 일반의나 간호사, 전문의, 돌봄 및 재교육 센터, 노인 요양원의 간병인, 의료사회분야 종사자와 같은 전문 인력 간 구조적인 협력 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만성 질환을 앓고 있어서 자신의 질환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고,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 다른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환자 전문가’의 도움도 받아야 할 것이다. 진료의 질은 환자와 동료 피드백을 통해 평가해야 한다. 만약 미국처럼 ‘진료 질에 따른 차등 비용 적용’ 모델을 도입해 사람을 돌보지 않고 수익만을 따지려 한다면 결국 진료의 질은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의사와 간호사가 원한다면 급여제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자율 의료수가를 적용하는 개업의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 근접 진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일반의의 진료수당을 상향조정함으로써, 보험공단과 협약한 진료비만 청구할 수 있는 협약 의료수가제를 재검토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사회보장제 혜택을 누리려면 ‘고객 수’만을 기준으로, 임의로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경력 인증을 받은 숙련 간호사를 더 많이 배출하고 진급이나 보수에서 유리한 자격을 줘야 한다. 이 임상 간호사들은 의사와 함께 진료를 하기 때문에 일부 환자를 직접 돌보고 그들에게 맞는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보건, 사회심리학적 관점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국내총생산 대비 보건비 지출 비중은 세계 3위로 선두에 있다. 그러나 인구수 대비 보건비 지출 순위는 12위로 한참 뒤처진다.(6) OECD에 의하면 2018년 독일의 1인당 보건비 지출은 5,847달러였는데, 프랑스는 4,931달러에 불과했다. 이웃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프랑스는 질병 예방을 위한 보건비 지출이 적다. 게다가 무상의료를 제공하기 위한 포괄적 질병보험 제도를 실시하고 의료진 급여 체제를 현대화하는(민간 분야 제외)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회계층 간, 지역 간 의료혜택의 격차가 크다.

노조와 의료인 단체의 제안에 따라 OECD국가 수준에 맞춰 병원 근무자의 급요를 월 300유로 인상해야 한다. 일반의의 경우 진료행위 건별로 진료비(기본 진료비 25유로)를 청구하므로, 되도록 많은 환자를 진료하려고 한다. 따라서 병원에는 대기 환자가 넘쳐나는 불편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를 개선할 새로운 진료비 청구 제도가 필요하다.

또한 학회, 환자 연합, 교육자, 의사와 의료보조인 협회와 같은 모든 관계자가 국가보건최고위원회(HAS)와 사회보장 기관과 협업해 적절한 처방과 진료를 보장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 단지 질환과 치료에 그치지 말고, 질병 예방을 아우르는 인간중심 보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건강은 주거, 교육, 사회적 결속, 환경의 질과 같은 다양한 사회구성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생물의학을 넘어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국민보건을 살펴야 한다. 환자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듯 의료진도 단순한 서비스 제공자가 아니다. 이들은 민주적인 논의를 통해 질병 예방과 치료를 위한 보장 제도를 함께 만드는 당사자들이다. 

그러나 보건을 단지 민영화, 국영화의 논리로 접근하지 않고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공공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보장제도를 수립해야 한다. 1958년 치료, 연구, 교육 활동을 하는 대학병원 건립을 통해 생물의학 현대화를 도모했던 당시 품었던 의료개혁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7)

역사를 돌이켜보면 사회적,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보건제도 개혁을 대대적으로 단행했다. 프랑스도 프랑스 혁명,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알제리 독립 전쟁, 제5공화국 수립, 68혁명이 보건 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또 이런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지난 2월 27일 마크롱 대통령이 파리 피티에 살페트리에르 대학병원을 방문했을 때, 프랑수아 살라샤 신경과 의사는 “우리만 믿으세요. 증명해 보이겠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으니 기대할 수밖에 없다.  

 

글·앙드레 그리말디 André Grimaldi
피티에 살페트리에르 대학병원 명예교수.
프레데릭 피에루 Frédéric Pierru
국립 과학 연구소(CNRS) 산하 행정 정치 사회 연구소(CERAPS) 소속 사회학자.
*두 사람은 출간 예정인『응급의료』(Odile Jacob, Paris)의 공동저자다.

번역·정수임 
번역위원


(1) <레제코>, 2015년 1월 6일. 
(2) <롭스>, Paris, 2016년 1월 12일. 
(3) ‘병원기업 대 공공병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6년 9월, ‘병원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10월. 
(4) 1994년에 제정된 베이유법은 사회보장 보험료 납입 면제로 인한 손실을 완전 충당할 것을 명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9년부터 이 법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 
(5) Nathalie Blanpain, ‘생활수준별 기대수명’, <사회인구통계청 업부보고>, F1901호, 2018년 8월.
(6) ‘2019년 보건에 대한 CECD통계’, www.oecd.org 에서 참조가능하다.
(7) Pierre-André Juven, Frédéric Pierru, Fanny Vincent,『세기의 대소동, 공공병원 개혁에 관하여』, Rasions d’agir, Paris, 2019 (공공병원 의료진을 지원하며, 출판사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읽을 수 있다).

 

그림·황지현
화가 황지현은 스치는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순간들, 유동하는 기억,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람과 풍경 등 관계에서 느끼는 심리적 감응과 충돌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코로나19의 습격을 받은 우리의 삶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순간들을 보는 듯해, 이번 호에서 작가의 작품들을 선택했다. 그는 9회의 개인전과 60여 회의 기획 단체전을 거쳤으며,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으로 전시 및 창작활동을 진행해왔다. 그는 다수의 아트 콜라보레이션에 참여하기도 했다. (3~12면, 32~34면)
www.hwangjihy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