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대책없는 코로나19 사태

2020-03-31     마르마르 카비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이란어판 편집인

2020년 3월 12일 목요일, 이란은 58년 만에 처음으로 국제통화기금(IMF)에 50억 달러(약 6조원)의 긴급자금을 요청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긴급자금의 요청이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이날, 세예드 아바스 무사비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트위터에서 “코로나19를 물리치기 위해 이란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이고 불법적인 모든 제재를 철회해야만 한다”는 편지를 UN 사무총장에게 보냈다고 발표했다. 

 

세계 5위 코로나19 피해국

이란은 2020년 3월 26일 기준으로, 총 2만 9,406명의 누적 확진자와 총 2,234명의 사망자를 기록했다. 이로써 중국과 이탈리아, 스페인과 독일에 이어 코로나19 팬더믹에 다섯 번째로 큰 피해를 입은 국가가 됐다. 이란의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검사를 통해 진단받은 환자들의 수치로, 전체 환자 수는 알 수 없다. 지난 2월 19일 이란에서 첫 확진자가 발표됐지만, 정확한 감염경로는 파악되지 않았다. 중국의 중동 교민들을 송환한 마한항공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중국을 다녀온 상인 탓이라는 이들도 있다. 쿰의 코란학교에 재학 중인 중국인 학생들에게 원인을 돌리기도 한다. 

일별 공식통계에 의하면, 코로나19 사망률은 증가추세다. 지난 3월 8일부터 10일 동안, 확진자 대비 사망률은 2.5%에서 6.5%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란 국회의원 중 일부는 공식통계의 축소 의혹을 제기했다. 

 

호의를 가장하고 나타난 적들

지난 3월 13일 경제학자 티에리 코빌은 프랑스 일간지 <라크루아>에서 “석유와 가스 수출을 막으면서 한 국가의 재정 40%를 박탈할 경우, 의료체계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언급 없이, 스위스를 통해 인도적 원조를 제안했다. 그는 “이란 측은 요청만 하면 된다”라고 공언했다. 지난 3월 4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미국이 코로나19와 싸우는 이란을 정말로 돕고 싶다면, 의료용품 수입금지를 포함한 경제제재를 철회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또 “지난 2년간 가장 악랄하게 이란을 괴롭혔던 이들이 이제는 호의를 가장하고 나타났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3월 2일과 16일에 프랑스, 독일, 영국은 이란에 의료용품 전달이라는 상징적 원조를 보냈다. 그러나 실질적인 원조는 중국에서 왔다. 중국은 현장에 전문가팀을 파견했고, 중국 기부자들은 연대의 의미로 구호품들을 보냈다. 3월 1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란이 코로나19를 이겨낼 수 있도록, 중국은 힘이 닿는 한 원조를 계속하겠다고 약속했다.

 

환자를 치료하던 중 생명을 잃어   

이란의 의료 종사자들은 코로나19에 맞서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그들은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으며, 의료용품 결핍을 겪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환자들을 치료하던 중 생명을 잃었다. 국민들은 그들에게 찬사를 보냈고, SNS에 수백 개의 감사 메시지를 올렸다. 

며칠 전부터 병원에서 찍힌 것으로 보이는 동영상들이 인터넷에 확산됐다. 얼굴에 마스크를 쓴 수술복 차림의 이란 의료진은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이란 전통음악 혹은 대중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이 동영상들에는 ‘#도전의댄스’, ‘#우린코로나를이길거야’와 같은 해시태그가 붙었다.

 

군병력을 동원해 이동 통제

테헤란에서 이란 국민들이 정부지침을 항상 따르는 것은 아니다. 테헤란의 코로나19 퇴치 책임자 잘리는 이 현상을 개탄하며 지난 3월 14일 토요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부가 코로나19가 전파될 수 있다고 경고했음에도, 오늘 테헤란에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내가 현장에서 목격한 사실이다.” 

지난 3월 12일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코로나19에 맞서 싸우기 위해 군병력을 배치해 도시들과 국가 전역에서 사람들의 이동을 통제했고, 이후 강력한 조치들이 취해졌다. 이슬람혁명수비대 참모총장인 모하마드 호세인 바게리 장군은 국가 차원의 결정에 따라 “전국의 모든 상점과 거리, 도로를 비우는” 조치를 감시하기 위한 시행령이 내려졌다고 TV 방송을 통해 알렸다. 도시를 비우는 조치에서 이슬람혁명 수비대와 군병력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작년 11월 휘발유 가격 인상에 반발한 시위대와의 충돌 이후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바이러스는 가난한 이들을 집중공격한다.”

이동제한, 전염병, 직업 활동 중지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이미 고통 속에 있던 이란 국민들의 삶을 심각하게 압박하고 있다. 수천여 개의 상가, 공장, 기업들이 더 이상 가동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수입 없이 힘겹게 살고 있다. 정부의 지원대책으로 건설 노동자들, 계절 노동자들, 일용직 근무자들, 노점상들, 택시운전기사들, 식당 직원들은 1~2백만 토만(약 66~132유로)을 연이율 4%로 대출받을 수 있다. 이 대책으로 약 3백만 가구가 혜택을 받을 것이다. 비정기적인 수입조차 없는 가구들은 한 달에 1인당 20만 토만(약 13유로)을, 5인 이상 가구는 60만 토만(약 40유로)을 지원받게 된다. 더불어 3월 16일 빈민구호기관의 보니아드 모자차판은 테헤란 남부지역의 노점상 4천 명에게 1백만 토만(약 66유로)을 지급하겠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정책들은 감염병으로 인한 재난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이란 경제는 미국의 ‘최대한의 압박’ 정책뿐만 아니라 국내 부패 때문에 이미 불안한 상태였다. 반면, 거부들과 대기업은 세금감면 혜택으로 인해 생기를 띠고 있다. 바이러스는 부자와 빈자를 구분할 수 있을까? 그렇다. 모든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 훨씬 가혹하다.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위생수칙과 이동제한 조치를 준수한다는 것은, 당장 생계가 급급한 이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많은 이들이 외출 없이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배송서비스를 이용한다. 이들을 위해 생필품을 배송하는 수천 명에 달하는 배송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일을 해야 한다. 매일 사재기 경제사범들이 체포된다. 이란 경찰청장은 3월 14일 하루 만에 이란 전역에서 1,600만 개 이상의 위생용품(장갑, 살균제, 마스크 등)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답변을 기다리며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이란의 의료체계가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대한의 압박’ 정책으로 제재를 강화하는 미국과 이란 국내의 투기 및 부패로 이미 수천 명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실업 상태에서 수입 없이 간신히 삶을 버티고 있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은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악화될 것이다. 코로나19의 확산만큼이나 경제제재는 국민을 압박한다. 현 상황에서 특히 위생용품에 대한 경제봉쇄는 거의 범죄 수준에 해당한다. 

이란의 긴급자금 요청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긍정적 답변이 가능할까? 미국의 동의 없이 국제통화기금은 이란을 도울 수 있을까? 전 세계가 팬데믹의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국제기구들과 다른 국가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전례 없는 전염병 위기 상황에서 누가 미국에 도전할 수 있을까? 국제통화기금의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코로나19 위기는 이란에서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글·마르마르 카비르 Marmar Kabir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이란어판 편집인 

번역·권정아
번역위원

 

그림·황지현
화가 황지현은 스치는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순간들, 유동하는 기억,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람과 풍경 등 관계에서 느끼는 심리적 감응과 충돌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코로나19의 습격을 받은 우리의 삶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순간들을 보는 듯해, 이번 호에서 작가의 작품들을 선택했다. 그는 9회의 개인전과 60여 회의 기획 단체전을 거쳤으며,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으로 전시 및 창작활동을 진행해왔다. 그는 다수의 아트 콜라보레이션에 참여하기도 했다. (3~12면, 32~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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