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반대파업은 계속된다

2020-03-31     소피 베루 외

직군을 망라한 총파업이 오늘날에도 가능할까? 물론 2019~2020년 겨울의 연금개혁 반대 운동은 거대한 규모, 국영 철도청(SNCF)과 파리교통공사(RATP)의 긴 운영 중단기간, 여론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프랑스 파업의 역사를 새로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노란조끼’ 시위 이후 잠잠했던 것도 잠시, 노조는 연금개혁안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재개했다. 신자유주의 개혁안을 밀어붙이는 정부에 맞서려면 그보다 더 강력한 수준으로, 현재 상황에서는 비현실적으로 보일 만큼 더 높은 수준의 사회응집력이 필요하다. 경제활동을 멈춰버리는 것이 정부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히는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총파업’은 여전히 노동운동의 표상으로만 남아있을 뿐,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일인 듯하다. 

지난 25년간 총 3번(1995년, 2003년, 2010년)에 걸쳐 대규모 사회운동이 있었다. ‘끊임없는 시위의 연속’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이 세 운동은  연금개혁안을 저지하기 위해 일어났다. 1995년 11~12월에 일어난 시위행렬에는 국영철도청(SNCF)과 파리교통공사(RATP), 프랑스 전력공사(EDF), 우체국, 프랑스 텔레콤, 세무기관, 지역 공무원 등 수많은 기업과 행정기관이 파업으로 연대하며 동참했다. 민간 부문도 이에 뒤지지 않았다. 자동차산업(르노, 푸조, 포드)은 며칠간 업무를 중단했고, 항공산업(에어프랑스, 에어인터)과 전자기기산업(알카텔, 톰슨) 또한 제한된 방식으로나마 파업에 참여했다.

이어서 2003년 운동은 5개월로 더 길어졌고, 그 중 9일간 전국적으로 직군을 망라한 총파업이 있었다. 4번의 시위에 2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렸고, 공교육 부문에서는 6주 가까이 파업이 계속됐다. 공무원 연금제도를 부분적으로 민간부문과 같게 단일화하려는 정부의 연금개혁안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행정, 기술, 노동, 복지, 보건직에 종사하는 공교육 부문 직원들(이런 비교원직을 총망라해 ATOSS로 약칭)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려던 정부정책에 반발하는 이들이 가세했다. 

이 시기에 시위가 작은 마을 단위까지 전국적으로 폭넓게 일어났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직장인들은 몇 시간에서 며칠 단위로 초과노동 휴가를 쓰며 시위에 참여하는 등, 파업을 피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경제활동이 완전히 멈추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직군별 특별연금제도 문제를 유보하며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힘을 잃어가는 노조, 고립되는 조합원들

2010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해 시위기간은 6개월로 늘어났고 14번의 시위가 있었지만, 파업이 동반되는 경우는 마르세유의 교내식당을 제외하고는 큰 폭으로 줄었다. 국영철도청에서는 제한된 규모로 무기한 파업이 전개됐다. 몇 주 후, 노동조합인 노동총동맹(CGT)과 노동자의 힘(FO)은 정유산업을 노리기 시작했다. 1968년 68운동 당시 그랬던 것처럼, 원유 저장고를 점거해 생필품 공급을 차단하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노조 지도자들은 곧 전략의 한계를 인식했다.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정부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2003년부터, 무기한 파업의 전개와 ‘투쟁의 집중화’ 문제는 사회운동가들의 주요 화두였다. 정부가 소규모 단체의 점거행위에 대한 대응책을 강화했기에, 더욱 그랬다. 일례로 1995년 당시 활발하게 활동했던 운전기사들의 경우, 시위현장에 주정차하면 경찰이 운전면허를 즉시 박탈했다. 시위자들은 정유공장에서 무력으로 끌려났고, 정부는 2010년부터 이런 점거사태에 대비해 사전 재고를 비축해뒀다. 

정부의 이 같은 시위진압 방침은 시민들의 시위권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6년 노동법 개정 반대시위 당시 정부는 시위자들에게 상당한 압력을 행사했고, 특히 2018년에는 ‘노란조끼’ 시위자들을 탄압했다. 최근 겨울 시위에서도 긴장상태가 고조됐다. 질서유지를 명목으로, 필요 이상으로 강력한 최루탄과 최루가스를 사용했고, 시위자들을 에워싸 활동을 통제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 지도부는 소속 조합원들에게 다양한 직군에서 무기한 파업운동을 전개하라고 종용했다. 

하지만 노조가 민간부문에서 존재감이 미약해서, 임금 노동자들을 파업으로 끌어들일 결정적인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사람들이 사회운동에 관심을 보일 때, 이들의 행동력은 두 가지 요소에 좌우된다. 직원들 중에 조합원이 소속해 있는지와 노조가 존재하는지 하는 점이다. 2005년 37.6%의 사기업에 최소 1명의 노조 대표가 있었다면, 2017년에는 그 비율이 30.6%로 줄었다.(1) 노조가 있다고 해도, 매년 시행하는 의무적인 협상만을 담당하는 작은 단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조합원들은 주로 대기업에 있고, 열심히 활동하는 이들은 빠른 시일 내에 대표로서 단체의 의사결정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프랑스의 노조가입 노동자 11%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학습·통계진흥원(DARES)의 연구에 따르면, 이들 중 정기적으로 소속단체의 활동에 참여하는 비중은 1/3에도 미치지 못했다.(2) 또한 대부분의 경우, 노조 지도자들은 대표로 선출되거나 임명된 조합원 중에서도 소수의 핵심인원이었기 때문에, 동료들의 권리의식을 고취하거나 같이 의견을 나눌 시간이 거의 없었다. 

이런 상황은 2017년 마크롱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더 악화됐다. 노사 대표가 참여하는 기업운영 위원회, 직원 대표, 보건·안전·근무 조건 위원회(CHS-CT)를 없애고, 이 모두를 융합해 사회·경제 위원회(CSE)라는 단 하나의 의사결정기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노조 지도자들은 위원회의 구역과 작용방식을 새로 협상하느라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했고, 힘을 잃어갔다. 그만큼 선출된 조합원의 수도, 노동자들을 대변할 시간도 감소했다(대부분의 기업에서는 30~40%까지).

더 작은 기업에서는 ‘고립된’ 조합원 즉, 직장에서 혼자만 노조에 가입한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노동총연맹(CGT)의 조합원들 가운데 상업과 서비스 직군 종사자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특히 국지적인 투쟁은 벌여 왔지만 공동체의 부재로 장기적인 활동에 참여하기는 어려웠다. 이런 고립현상은 가까운 지역 노동단체가 활발히 활동한다면 타개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단체운영이 은퇴자 몇 명으로만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시대에 맞춰, 연대의 방식도 진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도가 빛을 보고 있다. 파리 교외 도시 말라코프에서는, 노동총연맹의 지점이 고립된 조합원들을 통합하기 위해 다중 기업 노동조합(Syndicat multientreprises)을 창립했다. 토론을 함께 하여 의사결정에 참여할 공간을 마련해 새로운 조합원을 영입하고, 넓게 퍼져있는 조합원들에게 힘이 돼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몇 년, 노동총연맹(CGT)과 솔리데르(Solidaires)는 사회적 투쟁이 미약한 직군을 움직이려 여러 시도를 해왔다. 가사도우미나 요양산업, 혹은 유통업계가 이에 해당되는데, 임금은 낮고 단속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직군에서 무기한 파업과 같은 사회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한편, 노동운동의 마지막 보루로 불리는 공업이나 공공부문에서 조차  하청업체를 쓰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노동자의 일자리는 노조가 없는 작은 아웃소싱 용역업체에 잠식당했다. 더 큰 규모의 기업인 경우, 임시직이나 계약직 비중을 크게 늘려 고용구조를 전환함으로써 노동단체의 분열을 꾀한다. 실제로 프랑스 전력공사(EDF)에서 이런 고용구조의 변화가 노동자의 단결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자동차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생산라인의 30~50%가 영구임시직으로 구성되어 있어 생산이 멈추지 않는다면, 파업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제 노조는 프랑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바퀴를 멈추게 할 힘이 없다. 파리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40개의 우량주식회사는 이미 국제화된 지 오래다. 따라서 프랑스 영토와 노사갈등지역 간의 직접적인 관계 또한 약해졌다. 르노는 생산라인을 스페인, 터키, 슬로베니아, 모로코 등지로 옮겼다. 그 결과, 프랑스에서 파업이 일어나도 주력상품이 받는 영향은 점점 미미해질 뿐이다. 마찬가지로 철강회사 락슈미 미탈은 프랑스에서 생산을 중단하고 생산주문을 유럽 혹은 타지역에 위치한 아르셀로 미탈 그룹 산하의 다른 공장으로 돌리느라 분주하다.

이 와중에도 교통업계는 아직 굳건하다. 정부가 항공기 조종사들의 요구사항에 한 발 양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8년 에어프랑스 조종사들이 장기파업이 어떤 것인지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 이후, 엘리트층은 이동시 중산층이나 서민층보다 파업의 피해가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투쟁에 제동을 거는 것은 주로 더 일반적인 요인들이다. 개인주의, 인사평가, 스트레스 조절, 근무환경 악화 등의 이유로 많은 노동자들이 파업의 효과를 의심한다. 일이 쌓이게 놔둔다거나, 동료에게 부담을 더욱 가중시킨다는 압박감은 특히 서비스직군(교육, 보건, 도우미 서비스)에서 더 강하게 작용한다.(3) 게다가 국영철도청과 파리교통공사의 관리직이 열차 운전법을 배워야 했던 경우처럼, 일부 관리직이 파업으로 생긴 공백을 직접 메우게 하거나, 임시직을 고용하는 등의 수법을 통해, 경영진은 우회적으로 파업의 권리를 부정하고 권리를 행사하는 직원을 배척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생계를 위해 파업을 하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의 취약한 가정 경제 사정이 ‘노란조끼’ 운동을 통해 드러났다. 저임금 노동자 뿐만 아니라, 노동계 각계각층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과도한 빚더미에 앉아있다는 공통된 문제를 안고 있다. 2018년 프랑스 은행에 따르면, 과다채무를 안고 있는 사람들 중 25.7%가 실업자, 28.6%가 경제활동을 하는 정규직 노동자였다.(4)

직장에 노조가 아예 없거나 혹은 있어도 존재감이 미미하다면, 이런 장애물을 극복할 수 없다. 파업을 결정하는 일은 노동자가 점점이 흩어진 개인단위로 존재할 때 훨씬 어려워진다. 게다가 노동자의 거주지와 직장의 소재지는 점점 멀어지는 추세다. 이는 공장폐쇄 반대와 같은 지역갈등에서 늘 발휘되던 지역적(행정구역, 농업, 상업 등) 단결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하지만 온라인 파업기금모음의 성공은 파업을 지지하는 오랜 전통의 명맥이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제 지리적 인접성에 기반한 공동체 연대정신은 시대에 맞춰 소셜미디어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5)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만나는 지점

이런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혹은 반대로 이런 조건 덕분에 이번 겨울의 연금개혁 반대파업은 전례없이 길어졌고, 과거 사회운동의 틀을 깨고 훨씬 큰 역량을 보여줬다. 시위행렬의 활기, 플래쉬몹, 여성시위, 예술공연, 개개인이 직접 만든 깃발과 포스터에 넘치는 창조성이 담겨있었다. 이 모든 것이 이번 시위에 처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1995년부터, 노조는 부대를 마음대로 동원하는 시골 군대같은 단체가 아니었다. 따라서 사회운동의 참여는 누군가의 명령보다 자신의 주체적인 결정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이번 운동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시위에 참여한 공동체들은 마치 뻗어나가는 모세혈관처럼 폭넓게 구성됐다. 같은 지역의 중고교나 여성인권단체의 참여 덕분에 시위행렬의 참여계층이 다양해졌다. 대개 노조운동가들은 이런 자주적 지역조직을 중심으로 활동할 것을 장려했지만, 이번 운동은 노동운동 차원에만 머물지 않았다. ‘노란조끼’ 운동이 사회 각계각층을 초월한 연대를 보여줬듯이, 이번 연금개혁 반대운동도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만나는 지점이 됐다.

물론 이런 참여정신이 이제는 전설에 가까운 ‘총파업’으로 귀결되진 않았다.(6) 그러나 저항하고자 하는 공동체가 노동계의 임금·계층간의 차이를 초월해 단결해 나갈 길을 닦았다. 의사와 변호사가 하수도 청소부, 시공무원과 함께 마크롱 대통령에 반대하는 뜻 아래 뭉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시위는 노동운동적 성격만큼 정치적, 이념적인 성격도 드러냈다. 그러나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지나친 정치화로 사회가 분열되는 것은 아니다. 2005년 유럽헌법 협약의 대국민투표를 둘러싸고 시민·노동·정치 단체 투사들이 대중매체와 권력의 장벽을 성공적으로 뛰어넘었을 때, 국민들은 정치적으로 크게 분열된 상태였다. 물론 연금개혁 문제 또한 그만큼 정치적 성격을 띠고, 또 그와는 별개로 노조도 대체안을 충분히 마련해놓았다. 

그러나 어떻게 효과적으로 정부, 혹은 경제를 압박할 것인지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글·소피 베루 Sophie Béroud
리옹 2 대학 사회학교수 겸 트리앙글(Triangle) 연구소 연구원
장-마리 페르노 Jean-Marie Pernot
사회경제 연구기관(IRES)과 현대사회사 센터의 객원연구원

번역·정나영 
번역위원


(1) 1999~2017년 조사 답변, direction de l’animation de la recherche, des études et des statistiques(DARES).
(2) Maria-Teresa Pignoni, ‘De l’Adhérent au REsponsable Syndical. Quelles évolutions dans l’engagement des salariés syndiqués ? 조합원에서 노조간부까지. 조합원의 활동 변화‘, <Dares Analyses>, n° 15, 파리, 2017년 3월.
(3) Danièle Linhart, 『La Comédie humaine du travail. De la déshumanisation taylorienne à la surhumanisation managériale 노동에 관한 인간 희극. 테일러주의의 비인간화부터 경영·관리의 초인간화까지』, Érès, 툴루즈, 2015.
(4) ‘Le surendettement des ménages 가계의 과다채무’, 연간보고서, Banque de France, 파리, 2019년 1월.
(5) Xavier Vigna, ‘Tenir une grève longue 파업 오래 버티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2월호. / Nicolas Delalande, 『La Lutte et l’Entraide. L’âge des solidarités ouvrières 투쟁과 상부상조, 노동자 연대의 시대』, Seuil, coll. <L’univers historique>, 파리, 2019.
(6) Xavier Vigna, ‘La grève générale introuvable. France, 1968~1995 프랑스 1968~1995년, 찾아볼 수 없는 총파업’, dans Anne Morelli et Daniel Zamora (sous la dir. de), 『Grève générale, rêve général. Espoir de transformation sociale 총파업, 모두의 꿈. 사회변화의 희망』, L’Harmattan, coll. <Logiques sociales>, 파리,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