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멕시코를 이끄는가?

2020-03-31     루이스 알베르토 레이가다 l 기자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지난 대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멕시코 대통령이 된 지 1년이 지났다. 새로운 멕시코 정부는 외교 분야에서 성과를 거뒀으나, 불확실한 경제정책 때문에 금융시장과 충돌하고 있으며, 미국의 위협을 꾸준히 받고 있다.

 

2018년 12월 1일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 암로) 신임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이날 영국 주간지 <더 이코노미스트>는 로페스 오브라도르를 ‘역대 최고 권력을 거머쥔 대통령’이라고 소개했다. 비록 그가 2006년, 2012년 대선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2018년 7월 1일 대선에서 53%의 득표율로 압승을 거뒀고, 소속정당인 국가재건운동(Morena)이 연방의회와 총 27개의 지방의회 중 19개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암로 정부는 헌법을 개정해 대규모 개혁을 단행할 수 있는 지지 기반을 확보했다. 하지만 <파이낸셜 타임스>의 ‘라틴 아메리카’ 담당 기자 존 폴 라스본은, 브라질의 극우 대통령 볼소나로는 적어도 경제부 장관직에 친자유주의 성향의 경제학자를 임명했지만, 멕시코 신임 대통령은 신자유주의에 철저히 적대적이어서 볼소나로보다 민주주의에 더 위협적이라고 경고했다.(2019년 11월 27일).

대중의 인기에 힘을 얻은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취임식 당일, “오늘은 단지 정부가 바뀌는 날이 아니라, 체제 자체가 바뀌는 날”이라고 선언했다. 신임 대통령은 독립(1821년), 개혁(1855~1863년), 혁명(1910~1917년)에 이어, 4차 개혁을 실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화려한 대통령 관저에 거주하지 않고 그곳을 문화공간으로 바꿨으며, 대통령에게 제공되는 보잉 전용기와 차량을 팔았다. 그리고 군인 대신 20명의 비무장 민간인을 경호원으로 임명하고, 전임자가 누리던 연금 등 특권을 포기했다. 나아가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는 고위 공직자들의 급여를 삭감하고, 대통령 자신의 연봉도 30%나 삭감했으며 항공기도 이코노미 클래스만 이용한다. 반면 최저임금은 16% 인상 시켜, 국민을 위한 ‘공화주의적 긴축정책’을 펼치고 있다.

암로 대통령은 유아원부터 대학까지 전 교육과정 지원, 수습생과 장애인 지원, 소작농 보조금 지급, 노령연금 인상, 소상공인을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 등과 같은 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그 결과 단 몇 개월 만에 사회복지 혜택을 누리는 수혜자가 1,500만 명이 됐고, 국가 보조금 수급 행정절차를 간소화해 공금횡령이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멕시코는 빈곤선 이하의 인구 비율이 43.6%(총 1억 2,600만 명)에 달하며, 경제활동인구 중 60%는 지하경제에 연루돼 있고, 15%는 미국에서 구직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 신정부의 정책을 환대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국민과 가까워지기 위해, 2000년에서 2005년까지 멕시코시티 시장을 역임했을 때처럼 매일 아침 7시에 기자회견을 마련하고 기자들과 질의 응답시간을 가짐으로써 언론과도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조찬회동’은 대통령의 성실하고, 친근하며 투명한 이미지를 제고해, 지지율 70%를 웃돌고 있다.(1)

암로 대통령은 집권 100일이 되던 날, 성과보고에서 취임사에서 했던 100가지 약속 중 무려 62가지를 이행했다고 평가했다. 참여 민주주의와 소환투표제 도입을 포함한 몇 가지 헌법개혁안은 아직 검토 중이지만, 3개 안은 이미 승인을 받았다. 이 중 2개 안은 재산의 불법취득을 막고 부정부패와 부정선거를 중대범죄로 규정하는 것으로, 논란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하지만 나머지 1개 안은 여러 헌병부대를 통합해 프랑스 헌병제도를 모방한 국가 방위군을 창설하는 것으로 찬반 의견이 맞섰다. 

길거리에 무장병력을 배치하지 않겠다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국가 방위군을 도입하려는 목적은 무장병력을 이용해 공공치안을 보장하는 것이다. 계속되는 폭력 사건에 지치고 경찰에 대한 불신이 쌓인 국민 대다수는 이 국가 방위군을 찬성했지만, 멕시코의 군사화를 비난하는 인권보호기관들은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국가 방위군 창설은 결국 UN 인권고등판무관의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암로 대통령은 마약밀거래를 근절하고자 범죄를 야기하는 사회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좌파적, 그러나 ‘반환경적’

또한, 신정부는 멕시코 남부와 동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인프라 구축 및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환경운동가들은 경악했지만, 정치인과 기업인, 국민들은 이 계획을 지지했다. 예를 들어 암로 대통령은 멕시코 경제 회복을 위해 유카탄반도 주요 관광지를 연결하는 1,500km 철도를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지난 정부가 방치해 놓은 지역을 위한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말했지만, 이 철도는 자연보호구역을 지나기 때문에 환경파괴에 대한 우려를 낳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암로 대통령은 강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 엔리케 페나 니에토(2012~2018년 집권) 전 대통령이 펼쳤던 기업 민영화 정책(2)을 완전히 뒤집었다. 그리고 멕시코 최대 국영 석유회사인 연방전력위원회(CFE)와 페멕스(Pemex)를 지원하기로 했다. 특히 2020년까지 에너지자립을 확보하고 페멕스를 국가 성장동력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미국에서 원유를 수입하는 처지가 돼버린 페멕스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회생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암로 대통령은 정부 차원에서 석유회사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 6월 자신의 고향 타바스코에 정유소를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일련의 새로운 계획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들도 발생하고 있다. 일례로 2018년 송유관을 뚫어 석유를 빼내는 도유 범죄에 따른 손실금액이 무려 30만 달러에 달하자, 정부는 2019년 1월 송유관을 며칠 동안 완전 폐쇄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전국적으로 연료 부족과 주유소 혼잡 사태가 발생했고,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지난 4월, 정부는 의약품 판매과정을 재정비해 보건 분야를 개선하기로 했다. 

의약품 판매수익 횡령액이 45만 달러나 됐고, 정부는 의약품 연구소와 공급업체를 단속했다. 그러자 몇 주 동안이나 의약품 부족 사태가 이어졌고, 비난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5월에는 복지연구소 소장이 정부 예산 삭감을 비난하면서 사임했다. 공공지출 감소 계획을 단행하면서 과다 지출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수천 명에 달하는 무자격 인력을 해고했다. 그러자 행정기관에서는 업무착오가 빈번해졌고, 반발심에 결국 업무가 중단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그러나 신임 대통령이 극복해야 하는 난관은 이런 문제들만이 아니다. 제도를 장악한다고 해서 권력도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멕시코는 미국의 산업 배후기지가 되기 위해 경제를 재편했고, 그 결과 흡사 미국의 경제 식민지 꼴이 됐다. 2017년도 멕시코의 대미무역의존도는 78%에 달했고, 멕시코는 이제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만만치 않은 미국의 경제 영향력

그래서 2019년 5월 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가 미국으로 넘어오는 중앙아메리카 이민자 행렬을 막지 않으면 관세를 높이겠다고 엄포를 놓자, 마르셀로 에브라드 멕시코 외교부 장관은 당장 워싱턴으로 가서 멕시코 남부 국경에 병력 6,000명을 배치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왔다. 물론,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를 잇는 지역을 위해 ‘종합개발 계획’도 병행하겠다고 했지만, 미국과의 약조는 멕시코 병력을 미국국경경비대(USBP)의 용병으로 전락시키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으며, 국가재건운동(MORENA)을 비롯한 좌파 정당은 이를 강력히 비난했다. 

하지만 이렇듯 멕시코를 성가시게 하는 미국도 사실 암로 대통령에게 그리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다. 암로의 대통령 당선 소식이 알려지자 이를 반기지 않은 <월스트리트저널>은 “앞으로 매일 금융시장은 환율과 페소화 가치를 이용해 멕시코 정부에 찬반투표를 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실 암로는 이미 금융시장의 영향력을 잘 알고 있었고, 대통령 선거전 때 대선 캠프에서 경제전문가로 활동했던 마누엘 우르주아 마시아스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계최대 자산운용회사 블랙록(BlackRock) 회장, 60여 개 투자기금 운영대표, 그리고 미 재무부 소속 공무원들을 만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좌파라기보다 중도좌파에 가깝다”라고 설득하면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자 했다.(3) 그리고 암로는 대통령 당선 당일 세무규정을 따르고 중앙은행의 자립성을 존중하며, 기업 및 금융기관과 한 모든 약속을 준수하는 것은 물론, 몰수나 토지수용 등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2018년 10월 29일 암로는 취임식도 치르기 전, 금융시장에 반기를 들었다. 그동안 비난해온 멕시코 국제공항 신설계획을 전격 취소한 것이다. 이 사업이 불필요하고 지출이 너무 많으며(130만 달러 이상), 환경파괴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신공항 건설사업은 1/3이나 진행된 상태였기에, 이 결정은 멕시코의 기업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결국, 암로는 정부 권력과 경제 권력을 엄연히 분립한다는 정책 기조를 전면에 드러낸 것이다.

 

신임 대통령과 금융시장의 대립

신공항 사업을 취소한 바로 다음 날, 멕시코 주가는 4.2%, 달러 대비 페소화 가치는 3.6% 폭락해 거의 2년 만에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다. 투자자들이 동요하자, 언론은 암로 대통령을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정말 멕시코 정부가 금융시장에 따라 좌지우지되길 바라는가? 누가 멕시코를 이끄는가? 바로 국민이 아닌가? 바로 민주주의 아닌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4) 하지만 이틀 사이에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 피치는 멕시코의 국채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강등시켰고 무디스는 신임 대통령의 완강한 행보가 부정적 신호를 보내고 있어, ‘중기적으로 투자심리는 위축될 것이며 경제성장은 둔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5)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 집권 1년이 지난 시점, 주요 경제지표들이 멕시코의 긴축정책과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자들이 대거 빠져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9년 2/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를 기록해 마이너스 성장을 겨우 면했고, 상반기 경제실적은 2009년 경제위기 이래 최악이었다. 2019년 1/4분기에 기업과 개인이 해외로 유출한 금액은 90억 달러에 달한다.(6) 

신용평가회사는 이런 경제위기의 원인을 정부와 ‘투자자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불확실한 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피치,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여러 차례 멕시코에 경고를 보내고 있고, 우르주아 마시아스 재정부 장관은 급기야 2019년 7월 대통령의 무능을 탓하며 사임했다. 그리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멕시코의 경제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라고 논평했다(2019년 7월 10일).

그러나 금융시장만큼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암로 대통령은 경제전문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경제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경제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나머지는 경제성과를 내기 위해 모두 희생할 수 있다고 여긴 결과, 경제의 가치가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7) 금융시장과 암로 간의 대립이 팽팽하다. 

‘누가 멕시코를 이끄는가?’, 2018년 멕시코 신임 대통령이 던졌던 이 질문의 답은 무엇이 될까?  

 

 

글·루이스 알베르토 레이가다 Luis Alberto Reygada
기자

번역·정수임
번역위원


(1) Leo Zuckermann, ‘La popularidad de AMLO y los resultados’, <Excelsior>, 멕시코, 2019년 10월 9일 
(2) John Mill Ackerman, ‘Le Mexique privatise son pétrole 석유를 민영화하는 멕시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3월. 
(3) Jean Yoon, Paritosh Bansal, ‘Mexican election favorite is “really not leftist”, adviser tells investors’, <Reuters>, 2018년 6월 6일.
(4) ‘¿Qién manda? ¿No es el peublo?’, el mensaje de AMLO a los mercados’, <El Financiero>, 멕시코, 2018년 10월 29일. 
(5) Jude Webber, ‘Mexico: Amlo’s “people power” rattles the markets’, <Financial Times>, 런던, 2018년 11월 25일.
(6) Julio Gutiérrez, ‘Los Mexicanos están sacando dinero del pais: Bank of America’, <La Jornada>, 멕시코, 2019년 8월 29일. 
(7) John Micklethwait, ‘La politica debe estar por encima de la economía: López Obrador’, <Bloomberg>, 2019년 8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