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용 국가와 실제 국가의 간극이 큰 모로코
모로코는 어디로 가는가?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로코의 왕조차 답을 제시하지는 못하리라. 모로코의 현 국왕 모하메드 6세는 1999년에 작고한 선친 하산 2세의 왕위를 계승했다. 이런 그는 최근 자신의 왕위에 정당성을 부여한 모로코의 국가 모델이 한계를 보인다는 발언을 했다.(1) 2019년 7월, 국왕 즉위 기념일 하루 전날, 모하메드 6세는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이룩한 발전과 성과가 사회 전반에 충분한 파급효과를 내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더 명확하고 객관적인 정합성을 가지고 건설적인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2)
여기서 말하는 모로코의 ‘국가 모델’이란 공공이 주도해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고 급진적 자유시장 경제로 이행해가는, 사실상의 전제군주제다. 모하메드 6세 국왕은 카사블랑카-탕헤르 고속철도(LGV Tangier-Casablanca)나 탕헤르 메드(Tangier Med) 항구 경제산업지구, 카사블랑카의 모하메드 6세 극장이나 새로운 고속도로 등, 국제적으로도 매력이 충분한 대규모 사업을 펼쳐온 덕에 지난 20년 동안 언론(프랑스 언론 포함)의 비방에 시달리지 않고 국가를 통치해왔다.
프랑스나 모로코의 수도 중심지에서 보면, 모로코는 자동차와 항공 분야의 주요 생산국으로 발돋움해 글로벌 가치 사슬에 참여하고, (석유자원 없이도) 아프리카 경제의 정상을 향해 비상하는 한 마리 독수리를 방불케 한다.(3) 그러나 모로코 경제를 견인하는 대중 관광과 집약 농업을 빼면 이런 환상은 곧 사라지고 만다. 지난해 7월 모로코 왕실의 발언 이후, 낙수효과 옹호론은 불충분한 부의 분배라는 비판론에 자리를 내줬다. 감사원과 중앙은행, 경제사회환경위원회(CESE)도 최근 보고서에서 모로코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고 일제히 경고했다.
‘대외용’ 국가와 실제 국가의 간극
겉으로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듯하다. 2020년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5%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며, 소비자물가지수(+0.6%)도 안정적이고, 2019년 실업률은 9.2%(2018년 경우 9.8%)를 유지하고 있다.(4)(5) 10월 말 사드에딘 엘 오트마니 총리는 국제 대표단(독일, 스위스, 세계은행 등)과 함께한 자리에서 숫자로 장식된 다채로운 파이 도표를 배경으로 미소를 가득 머금고 포즈를 취했다. 그래프 위에는 ‘53’이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이는 다름 아닌 세계은행 ‘기업환경평가(Doing Business 2020)’에서 발표한 모로코의 국가 순위다. 국가별 기업경영 환경을 비교하는 이 보고서에서 모로코는 1년 전보다 7단계 상승했다.(6)
그러나 주어진 파이의 몫을 누릴 만큼 운이 좋은 이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모하메드 6세 치하의 모로코에 또 다른 지표를 대입하면 양상이 판이해진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사회 개발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여러 요소를 종합해 고안한 지표인 인간개발지수(HDI)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2019년 모로코는 인간개발지수에서 알제리(82위)와 튀니지(97위)보다 훨씬 뒤처진 121위를 기록해 ‘중위국’으로 분류됐다.(7) 반면 알제리와 튀니지는 ‘상위국’에 포진했다. 평소 자국의 장점을 칭송하며 이웃 국가들이 처한 갈등양상을 강조하는 모로코의 엘리트들에게는 아주 불편한 지표일 것이다.
121위라는 국가순위는 가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타이에브 아이세 씨는 “국민 10%가 완전한 빈곤상황에서 극빈에 시달린다”고 밝혔다. 국토개발 전문가인 그는 이슬람을 표방하는 정의개발당(PJD)이 장악한 현 정부의 국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라는 거다. 이들은 수입이 전혀 없다. 열악하기 그지없는 환경에서 말이다!” 소위 ‘대외용’이라 불리는 모로코와 그 실체 사이의 극단적인 격차는 절대 빈곤층은 물론, 중산층에도 어려움을 안겨준다.
모로코 북부에 가면 ‘대외용’ 국가가 무엇인지 명백히 드러난다. 카사블랑카 중심부에 있는 카사봐야저르(Casa-Voygeurs) 기차역은 라바트나 탕헤르의 못지않게 화려한 모습을 자랑한다. 하지만 해안을 따라 시속 314km로 달리는 고속열차(TGV) 안에서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화려한 광경은 온데간데없고 아스팔트 길과 양철, 콘크리트가 뒤섞인 주거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카사블랑카 근교 판자촌은 2003년 카사블랑카 테러사건를 자행한 테러리스트들의 은신처였다.
정부 당국은 이 판자촌 철거를 단행했고, 이 지역 주민들은 차츰 대단지 주거지로 거처를 옮겨갔다. 같은 자리에는 이제 하나같이 판박이인 최고 5층짜리 건물 수십 채가 빼곡히 들어서있다. 기반시설이나 교통도 갖추지 않고 졸속으로 지어진 이곳 주택단지는 프랑스가 1950~60년대에 택한 도시 근교 대책을 떠올리게 하는데, 오늘날 프랑스에는 근교지역 문제가 여전히 골칫거리로 남아있다. 결국, 모로코의 빈곤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 가난은 도심과 외국 방문객의 시야에서 떨어진 외곽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지난해에는 해변을 따라 뻗어난 탕헤르 산책로가 완공되면서 오래된 선술집과 취객, 각종 마약상이 일제히 자취를 감췄다. 이곳은 밤이 되면 메디나와 맞닿아있는 성벽에 불빛이 비치고 저 멀리 지브롤터만을 배경으로 독특한 경관을 뽐낸다. 그러나 이 지역 주민들의 걱정거리는 다른 곳에 있다. “모로코의 문제는 간단하다. 일거리는 없는데 골칫거리가 사방에 널려 있는 것이다. 행정서류 하나를 떼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귀찮은 벌레 취급을 받기에 십상이다.” 탕헤르 소재 공립중학교애서 교사로 일하는 사미라 씨(30세)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토로했다.
무상교육 중단, 의료인력 절대 부족
사미라 씨가 겪은 일련의 경험은 유엔개발계획의 인간개발지수를 구성하는 요소인 교육 분야에서 모로코가 얼마나 뒤처졌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4년 동안 프데크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프데크는 매우 보수적인 도시로, 많은 남성이 이슬람국가조직(IS)에 가담하러 떠나는 곳이다. 탕헤르로 전근하면 좀 나아질까 했다. 그런데 웬걸! 지옥 같은 나날이 이어졌다.” 18개월 동안 우울증 치료를 받은 이 젊은 여성은 간신히 회복 중이다. “이 지역이 가난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학생이 태블릿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교육여건은 형편없다.”
이날 사미라 씨는 프랑스어 수업을 준비 중이었는데, 학급 당 학생이 무려 49명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매달 520유로에 달하는 수업료를 내야 한다. “나는 외딴 마을에서 자랐지만, 공립학교에서 받은 교육 덕에 자라온 환경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육환경은 최악이다.”
여유가 있는 가정은 사립학교로 눈길을 돌리지만, 사립학교의 수준도 대중없이 들쑥날쑥한 형편이다. 모로코를 비롯한 각국 보고서는 이처럼 심각한 교육여건을 계속 지적한다. 프랑스의 <세브르 국제교육 평론(RIES)>은 “모로코의 교육제도가 발전하고 주어진 역할을 다 하려면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8)
엘 오트마니 총리는 2017년 12월 갓 총리직에 임명된 시점에 ‘무상 고등교육 중단’이라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모로코 경제사회환경위원회의 검토를 거치지 않은 결정이었다. 2007~2012년 산업부 장관을 역임한 후 마이크로 소프트 임원이 된 아흐메드 레다 샤미 경제사회환경위원회 이사장은 “우리는 사람들에게 세금으로 비용을 두 번 지급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엘 오트마니 총리는 해당 조치와 계획을 강조하며 사람들을 안심시키려 애썼다. “정부는 학급당 학생 수를 대폭 줄였다. 학급당 학생 수는 이제 약 40명이며, 학생이 49명에 이르는 학급은 드물다. 2004년 이후 전체 빈곤 인구가 절반으로 줄었다. 모로코는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공립중학교 교사인 사미라 씨는 모로코를 떠날 날만 고대하며 살아간다. 그녀는 ‘존엄을 되찾기 위해’, 2년 후 캐나다로 이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간개발지수 평가에서 고려하는 두 번째 지표는 건강이다. “모로코의 당면과제는 보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38세의 오트만 부말리프 씨가 개탄하며 말했다. 부말리프 씨는 튀니지와 이집트의 민중변혁 운동을 계기로 2011년에 일어난, ‘2월 20일’ 민중 저항운동 참여세대다. 그는 경제 및 사회 문제에 대해 정기적으로 단평(短評)을 내보내는 ‘민주주의 안파스(Anfass, 아랍어로 ‘숨결’을 뜻함)’라는 협회에서 의장직을 맡고 있다.
“문제는 바로 구조이다. 1차 의료기관, 즉 환자를 진찰하고 진단을 내리는 의사가 없다. 대학병원이 있는 지역에서는 환자가 6개월 전에 예약하거나 진료소에서 진찰을 받긴 하지만, 보건 체계가 혼란 그 자체이다. 자가 치료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걸프 국가들과 제휴하여 설립된 신규 의료시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시설을 잘 갖춘 소수의 ‘대외용’ 병원이 들어섰다. 그런데, 이 시설을 유지할 인력이 없다! 모로코는 거대한 의료 불모지이다. 모로코 의사학위를 인정하는 독일로 많은 의료진이 이주하면서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는 성장률
다소 과장된 거시경제 지표와 화려한 인프라, 그리고 턱없이 부족한 국가 기본 서비스 간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라바트 농업학교에 재직하다 최근 퇴직한 경제학자 나지브 아케스비 씨는 정치제도를 경제 문제와 연관해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도로 교통이 온통 미개발 상태인데도 고속도로 건설 사업을 택하는 정치 체제는 오래가기 어렵다. 통행료가 아주 비싼 페스-우즈다 고속도로(Fes-Oujda Expressway) 구간은 수용가능한 교통량의 10% 수준으로 운영되는 실정이다. 투자결정은 국민의 필요와는 무관하게 이뤄지고 있다.”
결국, 경제 불균형의 주된 원인은 자원의 부족이 아니다. 경제학자 아케스비 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모로코의 투자율(32%)은 좋은 수준이지만 이런 투자가 충분한 성장이나 충분한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한다. 이유가 뭘까? 불과 10년 전만 해도 1포인트 성장률은 3만 5,000개에 달하는 일자리를 창출해냈다. 그런데 이제는 1포인트 성장률이 일자리 1만 개도 창출하지 못하게 됐다. 대규모 사업은 한정된 기간에만 사람을 고용한다. 전체 투자의 70%를 차지하는 것은 공적자금이다. 이런 상황이 바로 ‘모로코식 개발 모델’의 첫 번째 실패 원인이다.”
지난 50년 동안, 정부가 택한 전략은 시장경제와 국가보조를 받는 민간부문에 사활을 거는 것이었다. 국가가 밑거름을 주면 민간부문이 주도적으로 성장해 시장의 주요 투자주체가 되리라 기대했다. 이 도박은 명백한 실패로 돌아갔다. 민간부문의 투자는 미미하고, 고용률도 전체 노동인구의 10%(1,200만 명 중 120만 명)에 불과하다. 주목할 만한 또 다른 현상은 ‘유령 노동자(Ghost Worker)’다. 전체 활동인구 1,200만 명 중 200만 명은 일은 하지만 수입이 없다. 이 범주에는 가족농장에서 일하는 농업노동자나 가내수공업에 종사하는 청년들이 포함돼 있다.
“6~7% 성장률은 전망으로 끝났다.” 샤미 이사장이 말했다. “이제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해야 한다. 모로코는 ‘하드웨어(인프라)’에 과도하게 투자를 했지만, 소프트웨어(부가가치라는 의미의 소프트웨어)는 방치했다.” 이 설명은 합당해 보이지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모두 부족한 남부지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카사블랑카와 탕헤르를 잇는 노선이 이미 있는데, 정부는 왜 무리하게 고속열차(TGV) 사업을 추진하느라 부채를 늘렸을까? 모로코의 주요 해변 휴양지이자 남쪽지역을 잇는 거점인 아가디르에 열차를 건설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모로코 남서부의 수스 지역 출신인 총리는 이 질문을 받자 곤란해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정부 수장을 맡기 전에 이미 결정이 내려져 있었다. 그러니 제 불찰은 아니다. 저는 고속열차 대신 아가디르에 열차를 건설하자고 했지만, 대다수 시민이 반대했다.” 한편 경제학자 아케스비 씨는 “고속열차는 이 나라의 재앙과 같다”라고 평가하면서 고속열차 운행 초기에 수익성을 높이려면 요금이 80~120유로로 형성돼야 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모로코 중산층에게는 터무니없이 비싼 요금이다.
따라서 정부는 인위적으로 가격을 내려야 했고, 현재 카사블랑카와 탕헤르 구간의 편도 요금은 25유로 미만이다. 아케스비 씨는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로코 국영철도(ONCF)가 차액을 부담하다가, 적자가 늘면 결국 그 부담이 납세자들에게로 되돌아간다. 표를 구입할 때 지급하지 않은 비용을 세금으로 내는 셈이다.”
20년의 경제발전, 누구를 위한 것?
“20년의 업적과 경제 발전”이라는 문구로 국왕의 업적을 칭송하는 대형 벽보가 관광 명소 마라케시의 중심인 제마 엘프나(Jemaa el-Fna) 광장에 내걸렸다.(9) 그러나 이곳으로부터 불과 300km도 안 떨어진 도시 아가디르만 가봐도 들쭉날쭉 이가 나간 보도블록이 즐비해, ‘발전’의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역력히 상기해준다. 습기가 깊게 배 누렇게 바랜 버스정류장 외벽은 사뭇 장엄한 마라케시 기차역과 뚜렷이 대비를 이루며 현 정권의 경제 정책에 의문을 품게 한다. 황폐한 건물이 연이어 늘어선 아가디르의 도심은 폐허나 다름없다. 이 도시에는 과거의 영광을 보여주는 궁궐 세 채가 남아있지만, 북부 지방을 선호하는 국왕이나 외국인들이 여기까지 발길을 돌리는 일은 없다시피 하다.”(10)
불공정한 정책의 희생양이 된 아가디르는 형벌 같은 저개발의 굴레를 좀체 벗어나지 못한다. “예전에 아가디르와 마라케시는 막상막하였다. 그런데 요즘 두 도시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이렇게 말하는 37세 광고업자는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 체인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지만 2012~2019년 사이에 매출액이 10만 유로에서 4만 유로로 뚝 떨어졌다고 했다. “마라케시는 전국 광고시장의 12%를 점유하지만, 아가디르가 차지하는 비중은 4%에 불과하다. 고객을 유치하는 것이 녹록하지가 않다.”
한편 퇴직 교사인 모하메드 자우에르 씨는 남부도로를 타고 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아가디르와 시디이프니 사이를 오가며 생활한다. “며칠 전 깊숙한 내지에 들어갔다가 그만 전갈에 쏘였다.” 그는 우리에게 휴대전화로 찍은 검정색 절지동물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곳에는 대학병원이 없고 의사의 진료예약은 기대할 수도 없어서, 진료소를 찾아갔다. 그런데 의료수단이 없어서 아무런 처치를 해줄 수 없다고 하지 뭔가! 결국, 24시간 동안 가만히 누워서 증상이 가시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칼(Akal, 베르베르어로 ‘대지’를 뜻함)이라는 연맹 회원으로 활동하며 남부지방의 베르베르족 공동체 인정을 얻어내기 위해 힘쓰고 있다.
11월 초, 모하메드 6세는 마라케시-아가디르 구간 철도연결 사업을 ‘진지하게 검토’하라고 지시했다.(11) 이처럼 모로코를 난항에 빠트리는 원인이 그저 의구심을 자아내는 왕실의 정치적 선택에만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원인은 구조적인 모순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부터 지속했고 군주제가 영속화한 자산소득(지대)과 다양한 형태의 독점이라는 경제구조에 내재한 문제가 바탕에 깔려있다. 아케스비 씨는 “시장경제에 대한 도박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자산소득, 즉 노동이나 부가가치가 발생하지 않는 소득은 경제활동을 저해한다. 운수업을 예로 보자. 사업을 하려면 인가, 즉 정치적 허가가 있어야 한다. 인가 여부는 사업의 실행가능성이 아니라 권력자(국왕)와의 우호적 관계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천연자원마저도 자산소득을 발생시킨다. 업계에서는 40%의 기업이 시장을 과점 또는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생수, 산림, 모래 채취, 광물자원, 은행과 연료까지… 오늘날 모로코에서 ‘인가 법칙‘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없다.
수도와 전기 공급을 위한 단식투쟁
모하메드 6세는 고수익 은행 부문을 포함한 광범위한 활동에 관여한다. 최근에는 자국경제에 대한 통제력과 대외 이미지를 동시에 지키고자 ‘새로운 발전 모델’의 아이디어를 홍보하고 있다.(12) 엘 오트마니 총리는 이 계획이 ‘철학적’ 차원의 의미를 내포한다고 설명했다. 그 밖에, 또 무엇을 담고 있을까? 2019년 12월 모하메드 6세는 올해 6월까지 완성할 보고서 준비 위원 35인을 임명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뚜렷하게 드러난 내용이 없다. 이 보고서가 법안으로 이어질까? “물론이죠”라고 총리가 답했다. 어느 부문에 투자가 이뤄질 예정인가? 아직 밝혀진 바는 없다. 샤미 이사장은 “공공 서비스에 대한 투자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제 조건은 자금조달 여력이다. 안보에 배정된 예산은 무려 770억 디르함(73억 2,000만 유로)에 달한다. 2020년 제정된 금융법 제1항, 즉 부채정비법(채무관리법)이 정하는 기준 965억 디르함(91억 7,000만 유로)을 다소 밑도는 액수다!(13) 게다가 2019년 5월에 열린 전국 세무총회는 모로코가 ‘불공정하고 비효율적인’ 조세 제도에 고착돼있다고 평가했다. 모로코 정부는 세제개혁을 끊임없이 거부해왔다.
부말리프 씨는 “정부 운영방식을 개혁하지 않고 새로운 발전만을 논하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지적하며 “우리는 새로운 사회협정, 의회 군주제로 나아가야 한다. 통치 문제는 곧 모로코 사람들의 삶에 직결된 문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왕실은 이런 지적에 도통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 경제, 사회라는 세 가지 난국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참여와 억압을 결합한 알제리식 해결 방식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언론인 하자르 라이수니가 ‘불법 낙태’와 ‘혼외 성관계’로 왕실 사면을 받기에 앞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던 사건이 국제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히라크 리프(Hirak Rif)’ 민중운동 활동가들에게 압력이 가중되면서 모로코 내부의 험악한 분위기를 부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14) 2017년 민중시위가 시작된 이래, 시위대 수백 명이 실형에 처해졌고, 그중 일부에게는 징역 20년이 선고되었다. 2019년 말 기준, 55명이 여전히 구금상태였다. 이 중 일부 사람들은 구금조건에 항의해 2월 초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왜 단식투쟁을 하냐고요?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수도와 전기, 기본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이죠!” ‘히라크’ 구금자 가족 지원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아미나 칼리드 씨가 탄식했다. “이 모든 상황이 하산 2세 국왕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모로코의 국가정책은 억압으로 다시금 회귀하는 중이다.” 이렇게 말하는 카리드 씨의 양친은 중도좌파 성향의 민중사회주의연합(USFP) 소속으로 활동했다. 2020년 2월 23일, 수천 명이 카사블랑카 거리에 나와 구매력 감소와 부정부패 심화,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행진을 벌였다. “모로코인들은 지금까지 너무 시달려서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저 기다릴 뿐이다. 레바논의 민중저항 운동이 모로코 사람들을 고무시키지 않을까?” 칼리드 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모로코인들은 오늘날의 모로코는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 정권 말기, 처가인 트라벨시 일가가 국가 전체를 좌지우지하던 시기의 튀니지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일까? 모하메드 6세의 행동은 의문을 자아낸다. 그는 지난 2019년 9월 부친과 절친한 사이였던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의 장례식에도, 10월 소치에서 열린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공개 발언과는 별개로, 2,000명이 넘는 왕실 내각에 둘러싸인 그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그의 조심스러운 행보는 다가올 거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것일까? 오마르 라디 기자는 날이 갈수록 불투명해지는 모로코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단언했다.
“국왕이 이 국가를 지탱하는 구심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현 체제가 무너지면 가진 것을 잃게 될 사람들이다.”
글·피에르 퓌쇼 Pierre Pucho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기자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Kader Abderrahim; Zakya Daoud, ‘Le Maroc change-t-il vraiment ? 모로코가 정말 바뀌고 있나?’, <르몽드 디프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0년 2월호.
(2) ‘Fête du Trône : discours intégral du roi Mohammed VI 국왕 즉위 기념일: 모하메드 6세 연설 전문’, <Atlas Info>, 2019년 7월 29일, https://atlasinfo.fr
(3) Jean-Pierre Séréni, ’모로코 경제, 잘하고 있지만 (훨씬) 더 노력해야한다’, <Orient XXI>, 2020년 2월24일, https://orientxxi.info
(4) <La Vie éco>, 카사블랑카, 2020년 1월 28일.
(5) <Agence Ecofin>, 제네바-야운데, 2020년 2월 22일.
(6) <Doing Business 기업환경평가>, 2019년 10월 24일, https://francais.doingbusiness.org
(7) 2019 인간개발보고서, UNDP, 2019년 12월, http://hdr.undp.org
(8) Rahma Bourqia, ‘Repenser et refonder l’école au Maroc : la Vision stratégique 2015-2030 모로코 교육기관 재검토 및 재설계: 2015~2030 전략적 비전’, 2016 년 4 월 71 일, <Revue internationale d’éducation de Sèvres> 제71호, 2016년 4월 71호.
(9) Juan Goytisolo, ‘Jemaa-el-Fna, patrimoine oral de l’humanité 인류 구전 유산, 제나 엘프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7년 6월호.
(10) Ignacio Cembrero, ‘Mohammed VI, l’absentéisme déconcertant du roi du Maroc 모로코 국왕 모하메드 6세의 예기치 않은 불참’, Orient XXI, 2017년 10월 23일.
(11) ‘Mohammed VI annonce le projet d’une ligne ferroviaire Marrakech-Agadir 모하메드 6세의 마라케시-아가디르 구간 철도연결 사업 계획발표’, 2019년 11 월 7일, www.bladi.net
(12) Pierre Daum, ‘Le Maroc pettrité par son roi 악덕사업가가 된 모로코 국왕의 부도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6년 10월호.
(13) Mohammed Benmoussa, ‘Lecture socio-politique et économique de la loi de finances 2020 사회, 정치, 경제로 풀이한 2020재정법률’, <Le Desk>, 2019년 10월 27일, https://ledesk.ma
(14) Aboubakr Jamaï, ‘Au Maroc, le Rif défie le roi 모로코에서 국왕에게 도전하는 리프 민중운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