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권 탄압, 미국 사회운동을 깨우다

2011-04-08     릭 판타지아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패배하면서, 오바마 정부는 세금 감면이 없는 공공지출 감소를 시작해야 했다. 수도 워싱턴과 달리 점점 가난해지고 있는 다른 주에서는 공화당 출신 주지사들이 한술 더 떠 재정 균형을 맞추겠다며 공무원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몇 시간 만에 위스콘신주 매디슨시는 미국 사회 저항의 진원지가 되었다. 4주 전부터 수백 명의 학생과 공공부문 노동자가 화려한 장식의 주 의사당 원형 돔을 떠들썩하게(그러나 평화적으로) 점거했다. 해리스버그(펜실베이니아주), 리치먼드(버지니아주), 보이시(아이다호주), 몽펠리에(버몬트주), 콜럼버스(오하이오주)에서도 의회 건물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동시에 LA, 샌프란시스코, 덴버, 시카고, 뉴욕과 보스턴 등 대도시에서는 수천 명이 거리로 나서 이를 지지했다. 시위대는 곳곳에서 ‘이집트인처럼 일어서라’는 구호를 외치며 공화당 출신 주지사인 스콧 워커가 발의한 법안의 철회를 요구했다. 이 법안은 공공노조를 무력화하려는 목적으로, 대다수가 공화주의자들로 구성된 의회에서 표결됐다. 공화당 출신의 다른 주지사들도 이와 비슷한 법률을 상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위스콘신의 투쟁’은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았다. 사회운동을 완전히 제압하려던 시점에 미국 사회운동은 다시 깨어난 것이다. <<원문 보기>>

한 주지사의 음모, 방송을 타다

이 갈등을 계기로 지난 75년간 무기력하게 ‘탈정치화’된 수많은 노동자가 집결했다. 이제 저항과 집단운동의 물결을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워커 주지사는 노동자보호법을 공격하면서 의도치 않게 이 법이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는 수백만 명의 선거권자(‘레이건주의 민주주의자’라고 부른다)가 지난 수십 년간 자신의 이익에 반해 투표했음을 깨닫도록 만들었다.
주지사는 문제의 법을 예산 적자를 감소시키기 위한 총체적 조처라고 소개했지만, 공공부문 노동자의 노조권을 박탈하기 위해 만든 법임이 명백하다. 아무도 이를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노조가 임금과 관련한 워커 주지사의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 단체교섭법 유지를 제안했을 때 주지사는 이를 거부했다. 그는 코크가의 형제로 위장한 한 언론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소리쳤다. 코크 형제인 데이비드 코크와 찰스 코크는 전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축에 드는 집안 출신의 백만장자로, 오래전부터 미국 내 노조운동을 없애기 위한 시도를 지원해왔다. 이들은 자신의 회사인 코크사를 통해 워커 후보 캠프에 가장 많은 후원을 했다. 텔레비전·라디오·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 퍼진 이들의 대화에서, 워커 주지사는 흡사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상기시킨다. 레이건은 임기 첫해 파업을 한 공항 관제사 1만2천 명을 해고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레이건 모델은 워커 주지사의 방법과 정치적 야심으로 부활했다. 그에게 협상과 타협은 절대 없다.
새로운 법은 노조의 조직 기반을 무너뜨리려는 것이다. 각 조직에서 매해 선거를 의무화하고, 노조원 임금에 대한 조합비 자동 공제를 금지하며, 노조원이 노조를 탈퇴하지 않고도 조합비 납부를 중단할 수 있게 하는 내용 등이다. 이 법안에는 임금협상에서 노조의 권한을 제한하고, 물가상승률을 넘어서는 임금 인상을 제한하는 법적 조처가 포함됐다. 그만큼 노조는 존재 이유를 상실하는 것이다.

공공노조 단체교섭권 폐지 노려

사회보장이 미약한 나라에서 단체협상은 노동조건을 어느 정도 향상시키는 유일한 수단이다. 민간 분야든 공공 분야든 어느 기업 또는 부처에서도 노조가 없으면 임금 정체와 사회보장의 악화가 나타난다. 노조가 없는 변변치 못한 노동자는 충분한 퇴직연금, 유효한 의료보험, 유급휴가나 그 밖에 경제적 선진국의 시민이면 누릴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회보장 혜택(1)을 실질적으로 받을 수 없게 된다.
워커 주지사를 비롯해 공화당 주지사 10여 명은 공공부문의 단체교섭을 금지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미국 사회에서 노조운동의 최후 보루이기 때문이다. 민간부문의 급여와 노동조건은 지난 수십 년간 악화됐다. 노조 가입률은 1950년대 33%에서 오늘날 7%로 떨어졌다. 이는 대기업의 악랄한 노조 탄압과 하청업체 확산, 탈산업화(노조가 결성된 기업에 대한 투자 회피로 더욱 악화된)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주주의 이익은 급속히 증가했다.
공공부문에서 고용자(임기가 제한된 시장과 주지사)가 당선되는 데는 공무원들의 지지가 큰 역할을 한다. 이런 배경 덕에 노조 협상은 원활했다. 따라서 단기적 적자를 피하기 위해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장기적으로 좋은 조건의 보장(의료보험과 충분한 퇴직연금)을 유지하는 협상이 이뤄지는 편이었다. 공공부문 피고용자의 36% 정도가 이를 통해 사회보장을 누리고 있다. 수백만 명의 교사, 지역 공무원, 운전기사, 병원, 대학 및 사법기관의 피고용자, 간수, 경찰 및 소방관은 적절하고 안정적인 생계유지 조건을 보장받는다. 따라서 노조에 대한 작금의 도발은 △사회적 기득권을 없애고 △민주당 선거 기반의 하나를 와해시키려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이것이 성공하면 미국 노동자들은 민간부문에 대한 견제세력을 남김없이 잃게 될 것이다.
이 사건이 있기 전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워커 주지사는 ‘티파티’(미국 내 수많은 지역선거에서 승리한 운동이다)(2)에 가까운 공화당 분파 지원 덕에 지난해 11월 주지사로 당선됐다. 그는 선거운동에서 주예산을 줄일 필요성을 언급했을 뿐 단체교섭 폐지 얘기는 입에 담지 않았다. 그러나 취임한 지 3개월이 지나자 부자의 세금 부담을 줄이면서 기업에 상당한 수준의 세금 감면 혜택을 주었다. 그러고 나서 위스콘신주 재정이 ‘위기 상태’라고 발표했다. 그는 재정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제안을 했는가? 최극빈자를 위한 세금 감면을 없애고, 공공부문 노동자의 의료보험과 미래 퇴직연금을 위한 개인 분담금을 올렸다(의료보험료는 5.8% 상승, 퇴직연금 보험료는 12% 상승). 그러나 이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는 나아가 단체교섭권을 폐지하려 했다. 그의 선거캠프를 지원한 경찰관과 소방관 노조를 제외한 전체 노조가 그 대상이다. 그가 자초한 재정 위기를 근거로 위스콘신주에서 30만 명이 고용된 공공부문과 관련 노조 해체를 정당화했다.

전국으로 번지는 저항의 불길

워커 주지사의 공격으로 일어난 저항이 범상치 않게 확대되자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나고 지난 몇 주간 주 전체를 뒤흔들었다. 특히 위스콘신주 민주당 상원의원 14명이 감행한 뜻밖의 행보 이후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이들은 의회 정족수를 미달시키려는 자신들에게 사법부가 투표를 강요할 수 없게 하려고 법안 투표 전에 위스콘신주를 떠났다. 이들은 자신의 거처를 감시하던 위스콘신주 경찰을 피해 일리노이주에 은신했다. 3주간의 의회 마비 사태가 지난 뒤 공화당 의원들은 법안을 2개로 분리했다. 예산 관련 조처와 노조권을 제한하는 조처로 나눈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의회에 상정돼 노조권과 관련된 부분 법안은 정족수 미달과 상관없이 표결됐다. 이런 술수는 주지사가 노린 진짜 목표가 무엇인지를 드러냈다. 노조를 와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워커 주지사가 분명 승리했지만, 공화당 의원들은 비싼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지난 3월 12일 표결이 끝난 다음날, 민주당 상원의원 14명은 매디슨시로 돌아왔다. 지역 공무원, 민간 노동자, 농민(50여 개 트랙터), 학생 등이 한데 어울린 15만여 명의 군중은 이들을 영웅으로 맞이했다. 그리고 총파업에 대한 공감이 확산됐다. 광신도적 트로츠키주의 조직이 아닌 소방관과 교사노조의 대표자들 사이에서 말이다. 주 지역 텔레비전에서는 이 소식이 연일 보도됐다. 보도 내용을 보면, 공무원들조차 최근 사건들에 대해 총파업이 합당한 대응이라고 여겼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많은 나라에서 총파업은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논하고, 나아가 실행하는 운동 방식 중 하나이지만, 지금까지 미국 TV에서는 입에 올리는 일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리콜’(무효화·취소) 절차를 요구하는 청원이 즉각 발의됐다. 이는 8명의 공화당 상원의원 선거를 취소하고 위스콘신 의회의 정치색을 변화시키기 위함이다. 주지사는 임기 1년이 지나야만 리콜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시민들은 이미 그의 취임 기념일을 붉은색으로 표시하며 벼르고 있다. 공화주의자들도 투표 전 위스콘신주를 잠시 이탈한 민주당 상원의원 일부에 대한 리콜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러나 여론은 분명 이 ‘탈주자’들에게 우호적이다. 설문조사를 보면 노조와 단체교섭 원칙에 대해 위스콘신 주민 60~70%가 찬성하고 있다. 뉴저지와 플로리다주에서 공화당 주지사들은 노조를 공격할 준비를 하다가 다시 유보하려 한다. 인디애나주의 경우 민주당 의원들은 유사 법안 투표를 막기 위해 위스콘신주 동료들을 모방해 일리노이로 피신했다. 비슷한 법안 내용이 미시간과 아이다호주에서 공화당 의원 주도로 발의됐다. 오하이오주에서는 관련 논쟁이 거세다. 투쟁이 미국 전역으로 확대됐다.

공화당의 레이건 향수, 역풍 맞다

정치권력이 노동자에게 비우호적이지만, 그렇다고 패배를 피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미국 기관들과 미국 문화에서 노조에 대한 증오가 깊이 각인돼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 어느 때보다 자본의 압력은 정치 시스템을 무겁게 짓누른다. 게다가 민주당 지지자, 미국 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AFL-CIO) 중 어느 누구도 이런 집단운동을 직접 지휘하지 않으며, 이를 지지할 방법을 모르고 있다. 어쨌든 이들은 다시 의지를 다져야 한다. 또 지난 수십 년간 그들을 잠식해온 위축감을 극복해야 한다. 어쨌든 위스콘신주의 투쟁은 이미 다른 지역으로 확산됐고, 이곳저곳에서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과제를 안고 사회투쟁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30년 전 레이건의 과감한 반노조 정책이 많은 미국인을 현혹하면서 긴 퇴행의 시대를 열었다. 오늘날 워커 주지사는 레이건을 표방하면서, 그같은 이데올로기 뒤에 숨겨진 실체가 무엇인지 온 미국에 드러냈다.

글 · 릭 판타지아 Rick Fantasia
저서로 킴 보스와 함께 저술한 <Hard work: Remaking the America Labor Movement> (Berkely·Th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2004) 등이 있다.

번역 · 박지현 sophile@gmail.com

<각주>
(1) 킴 보스(Kim Voss)와의 공저인 <길들여진 노조: 미국 내 기업의 압력과 노조의 저항>(Raison d’agir·Paris·2003) 참조.
(2) ‘서로 모른 체하는 미국 좌파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12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