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일본, 저력인가 한계인가
대지진 이후 도쿄에 사는 나 같은 사람도 무겁게 드리운 구름 같은 불안 속에 잠겨 있다. 불안 요인은 몇 개라도 들 수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수습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원전 사고일 것이다. 경제의 몰락과 사회의 황폐화도 불가피하지 않을까. 이미 그런 프로세스가 시작됐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파국이 임박했다. 그럼에도 도쿄만 보면 거리는 기묘할 정도로 평온하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이곳 도쿄에서 보면 지금까지 일반인들이 비교적 평정을 유지하고 질서를 지키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것 자체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평정이 계속되리란 보증은 없다. 또 다른 국민과 비교해 이를 일본인이라는 국민이 지닌 우수성인 듯 얘기하는 것, 즉 ‘국민 신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잘못이며 위험하다. 재난 지역인 도호쿠 지방에서는 애초 타격이 너무 커서 정신적 허탈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듯하다.
평정이 아닌 허탈과 무기력
피해자들이 그저 묵묵히 참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식량, 연료, 의약품, 의류, 정보 등을 간절히 요청하고 있다. 그런 상태가 지진 뒤 2주일 이상 지나서도 기본적으로 개선되지 못한 채 계속되고 있다. 그들의 울분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을 것이다.
재난 지역 중 다수가 도호쿠 지방의 어업 지대와 북간토의 농업 지대이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일본 사회 전체로 보면 주변화된 사람들이다. 공동체적인 상호부조의 유대가 남아 있지만 목청을 높여 자기주장을 하는 데는 익숙지 못한 사람들이다. 살아남은 사람들 다수가 고령자,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인 점도 평온하게 보이는 요인의 하나일 것이다. 원래 수동적으로 처신하도록 강요받아온 그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요구할 힘 자체를 박탈당했다.
곤경이 장기화되는 향후에도 지금처럼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예단할 수 없다.
재난 지역 상황과는 달리 도쿄처럼 직접적인 피해를 면한 도시에서 사람들이 평정을 유지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지진과 쓰나미 피해는 도쿄 사람들에게 직접 닥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쇠퇴 경향을 보이긴 했으나 일본은 여전히 풍요로운 나라고, 일반인들도 피해자에게 손을 내밀 정도의 여유는 있다. 도쿄가 이번 규모의 재난에 직격당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처럼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근거는 없지 않을까.
여유 있는 도시인들도 자신이 직접 그런 사태를 당한 처지라면 양상은 바뀔 것이다. 원전 사고가 수습되지 않고 수도권이 방사능 오염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슈퍼마켓에서 생수가 사라졌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거듭 “이재민들이 먼저 살 수 있도록 매점(사재기)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으나 별 효과가 없는 듯하다. 아직 서로 빼앗는 싸움 현장은 목격하지 못했으나 앞으로 사태 진행에 따라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즉, 목청을 높일 수 없을(목청을 높여봤자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피해 입은 이재민의 평정과, 아직 비교적 여유가 있고 재해를 남의 일로 여기는 도시인들의 평정이라는 차원이 다른 것을 묶어 ‘일본인’이라는 국민의 특징처럼 묘사하는 건 문제 있다.
목청 높일 수 없는, 높여봐야 안 들리는
도시인들이 평정을 유지하는 두 번째 이유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철두철미 기업체에(그리고 기업체를 통해 국가에) 포섭된 존재라는 점이다. 지진이 일어난 날 밤, 또는 계획정전으로 교통이 대혼란에 빠진 날에 많은 사람들이 불평 없이 평소의 몇 배가 되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출퇴근했다. 확실히 놀라운 일이다. 나는 이 사람들이 왜 지금 바로 도망가지 않는지 의아하게 생각했을 정도다.
그러나 생각해볼 것도 없이, 이런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은 도시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품이다. 공무원, 의사, 철도원, 신문기자 등에서부터 택배업자, 편의점(콘비니) 판매원에 이르기까지 그들 부품 중 어느 하나가 없어져도 일상생활은 졸지에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엄청난 어려움에도 그들이 출근해서 평소처럼 일해주고 있기에 내 생활도 유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런 사명감, 책임감 때문에 출근하는 것일까?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직업적 사명감이나 책임감보다는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아이덴티티 영역까지 깊숙이 침투한 기업체에 대한 귀속의식 같은 것이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회사는 그들에게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주는 조직일 뿐만 아니라, 보험과 연금 등 복지에서 정보 수집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생활의 유일한 기반이다. 어민들이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농민들이 논밭을 떠나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은 회사를 떠날 수 없다. 자동차나 휴대전화가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듯이 회사에 소속되는 것 말고 인생의 선택지를 생각해낼 수 없다. 따라서 이런 위기 때에도(또는 위기이면 위기일수록) 회사에 나가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사태를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까지 회사의 지시나 동료의 동향을 보고 판단하게 된다. 위기 속에서도 회사가 조업을 계속하는 한 출근하고, 회사가 피신하라고 명하면 서둘러 피신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자신의 생사를 건 판단까지 회사에 맡겨버린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평정(평온)은 사고 정지의 산물이 아닐까?
푸념도 불평도 없이 몇 시간 걸려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왜 무리하게 출근해요?”라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듯 “어쩔 수 없으니까”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이 정직한 답이다. 그들은 책임감이 강한 시민이라는 측면과 기업체에 속박당한 수인(囚人)이라는 측면이 있다. 이 양면을 보지 않고 전자만을 ‘일본인’의 특성으로 강조하는 것은 정확한 시선이라 할 수 없다.
엄격한 출퇴근, “기댈 건 회사밖에”
회사에 대한 귀속의식은 국가에 대한 귀속의식과 연결돼 있다. 어려운 결정은 회사나 나라에 맡기고, 당장 지금이 괜찮으면 좋은 것 아닌가. 그런 순응주의에 통째로 푹 빠져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큰 문제는 없었다, 앞으로도 틀림없이 그럴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격차사회(양극화) 문제로 시끄러웠다. 비정규직 문제는, 다수의 정규직들이 볼 때는 남의 일이다. 국가와 전력회사, 그리고 과학자들이 결탁해서 유지해온 원전 추진 정책에 관해서도 그들 다수는 수익자 의식을 갖고 있으며, 원전 반대 운동에도 관심이 없었다. 부담을 지방에만 떠넘기고, 불평하면 보조금을 주어 입 다물게 하는 방식을 암묵적으로 승인해왔다. 오키나와에 미군기지를 떠넘기고 자신들은 허구의 평화를 누리는 구도와 같다. 그들의 무관심과 생활 보수주의의 껍질은 고도 경제성장과 함께 거의 40년, 두 세대에 걸쳐 침투해왔다. 그것이 지금 근저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지만, 여간해서는 그 딱딱한 껍질을 깨부수지 못할 것이다.
이번 같은 엄청난 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생명과 생활을 지켜내기 위한 주장을 펼칠 수 없다면, 국가와 기업에는 안성맞춤의 ‘미풍’(美風)이 아니겠는가. 이런 ‘일본인의 미풍’을 과도하게 예찬하는 사람들의 저의를 의심해봐야 한다.
도쿄도(都)의 이시하라 신타로 지사는 지진 참사가 일어난 직후 이번 쓰나미가 “일본인의 욕심(我欲)을 씻어내려는 ‘하늘의 벌’(天罰)”이라고 말했다. 국가주의자인 그는 ‘일본인’이라는 하나로 묶어버리는 걸 좋아한다. 무서운 피해를 당해 고통받고 죽어가는 건 도호쿠 지방 사람들 특히 고령자와 어린이들이고, 욕심을 반성해야 할 권력자는 그 자신인데도 ‘일본인’으로 묶어 그 차이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이시하라 지사도 이재민도 모두 ‘일본인’이다. 그렇다면 일본인의 미풍이란 게 정말 존재할까?
미증유의 재난 속에서도 ‘일본인’이 발휘하는 도덕성이라는 언설의 이면에는 다른 국민이나 민족에 대한 편견과 멸시가 숨겨 있진 않을까? 인도네시아나 아이티 재해 때 얼마나 ‘야만성’이 발휘됐는지 누가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일본에 대해서는 앞서 얘기했듯이 아직 판단을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지진 이후 텔레비전에서는 공익광고라는 게 계속 방영되고 있다. 스포츠 선수나 록 가수가 등장해 “일본은 강한 나라다”, “힘내라, 일본” 등을 외쳐댄다. 이런 광고를 볼 때마다 나는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지진 피해를 당한 건 ‘일본인’만이 아니며, 열심히 애쓰고 있는 것도 ‘일본인’만은 아니다. 이런 포괄적 레토릭(Rhetoric·수사학)을 통해 국민적 단결을 고무하고 곤경을 극복하려 하겠지만, 그 단결을 위해 ‘국민의 적’이 필요하다는 건 당연한 이치다. 현재 사태가 전쟁 때문이라면 간단히 ‘적’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미국에서 9·11 사태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슬람’을 ‘적’으로 삼아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불법적 전쟁까지 감행했다.
이번 재난은 전쟁이 아니기 때문에 ‘적’을 만들어내기는 간단치 않다. 앞으로 곤경이 장기화하고 지배층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이 쌓여가면 필시 ‘적’을 만들어내려 할 것이다. 이에 반대하는 국민은 ‘비국민’이 될 것이다. 예나 제나 권력의 상투적 수단이다.
지진 피해가 비교적 단기간에 종식된다면 그다지 걱정할 게 없겠으나, 원전 사고와 그 파급효과로 꽤나 장기간에 걸쳐 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재건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증세, 경제 악화에 따른 임금삭감과 대량실업 등으로,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사회적 격차가 더욱 극대화되고 고착화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대중 불만의 배출구가 될 ‘적’을 찾아내 이용함으로써 권력을 손에 넣으려는 포퓰리스트가 나타날 것이다. 이때 ‘적’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은 존재가 재일조선인이다. 재일조선인은 단지 소수자일 뿐만 아니라 ‘북조선(북한) 배싱(때리기)’에 함께 포함될 대상이다. 또 ‘언제까지고 과거 식민지 지배를 문제 삼을 성가신 존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일본에서 이재민들을 예외로 하면 ‘조선적’의 재일조선인만큼 고독하고 불안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이시하라 망언과 간토 학살의 악몽
나는 마이너리티(소수자) 박해가 일어나지 않을까 긴장했다. 지금까지 그런 사례가 보고되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아직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 ‘외국인 절도단이 재난 지역에 들어갔다’는 따위의 근거 없는 선동이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로 대량 유포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불안한 것은 이시하라 신타로 같은 인물이 수도의 지사라는 사실이다. 1923년 9월 1일 간토 대지진 때 6천 명 이상의 조선인, 200명 이상의 중국인, 무정부주의자 등과 수십 명의 일본인이 학살당했다. 학살은 “조선인이 방화를 하고 있다”, “우물에 독을 집어넣고 있다”는 유언비어에서 시작됐고, 그것을 관헌이나 언론이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사건의 진상 조사나 사죄, 보상 등을 한 적이 없다.
이시하라 지사는 2000년 자위대원들에게 훈시하면서 이런 말도 했다. “오늘 도쿄를 보면 불법 입국한 많은 삼국인(三國人), 외국인들이 몹시 흉악한 범죄를 계속 저지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큰 재난이 닥치면 대규모 소요사건까지 일어날 것으로 생각한다.”
간토 대지진 때 조선인은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희생당했다. 일본인을 해친 일이 없다. 그런데도 이시하라 지사는 조선인 등 외국인을 경계하라고 자국민에게 호소했다. 인종 간, 민족 간의 적의를 선동하는 발언을 ‘지사’라는 고위 공직자가 내뱉는 것은 유엔 인종차별금지조약을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지만, 이시하라 지사는 발언을 철회하지 않았고 그 뒤에도 큰 득표로 지사에 재선됐다. 이런 인물을 지도층으로 받드는 사회, 이런 인물이 이렇다 할 비판도 받지 않는 사회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일지 상상해보기 바란다. 더욱이 이번 같은 ‘큰 재해’가 일어나고, 그것이 당분간 수습될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할 것이다 .
이시하라 지사와 같은 존재, 그를 지지하는 다수자(머저리티)의 존재는 후쿠시마 원자로에 뚫린 구멍처럼 우리에게 긴장과 불안을 안겨주고 있다.
언론에는 이번 재난을 패전에 비유하는 언설이 종종 등장한다.
기득권 파괴 없이 원전 폐기 없다
지진이 일어난 지 2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부터 간 나오토 정권을 비판하는 소리가 마침내 표출되었다. 그때까지 언론은 ‘일본인’의 단결을 우선하는 자기 검열을 한 걸까. 그러나 재난 지역에 대한 대응이 서툴러 2주일이 지나도록 구호물자가 당도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터져나오는 의문의 소리를 억누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이상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도쿄전력의 무책임과 정권의 무능이 상호 증폭 작용을 해서 피해를 수습 불가능한 수준으로 악화시키고 있다.
지진과 쓰나미는 천재(天災)이지만, 구호활동 지체와 원전 사고는 인재(人災)다. 이런 시각이 최근 대세가 돼가고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간 나오토 내각이 아니었다면, 자민당 정권이었다면 훨씬 잘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특히 원전에 대해서는 그러하다. 일본 원전정책은 자민당의 장기집권과 전력회사, 과학자, 그리고 지방 정치가들의 오랜 세월에 걸친 유착의 산물이다. 오랜 세월 썩어온 고름이 이번에 최악의 형태로 터져나온 것이다. 원전정책의 전면 폐지를 포함한 재검토는 정치가·기업, 관료·학자·지방유력자 등 암반처럼 단단한 기득권을 파괴하는 걸 의미한다. 그 당사자인 자민당 손으로 가능할 리 없다.
정권 교체를 실현한 민주당 또한 환경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원전을 에너지정책의 중심에 앉혔다. 또 베트남과 원전 플랜트 수출 협정을 체결한 것은 간 나오토 정권이 자랑하는 작은 성과의 하나였다. 그런 것들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 압박에 직면한 것이다. 민주당인들 그것을 해낼 수 있으리라 보지 않는다.
국민에겐 마침내 퇴출당한 자민당 정치로 다시 회귀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무능한 민주당을 계속 지지할 것인가라는 불모의 선택지만 남아 극도의 무력감이 만연한다. 오사카와 나고야에서 기성정당과의 결별을 상품으로 내세운 포퓰리스트 지사가 인기를 얻은 것은 이런 현상이 부른 결과다.
일본에서는 정당정치의 멜트다운과 동시에 원전도 멜트다운된 것이다. 누구도 이 상황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당 정권의 서툰 짓에 짜증 난 국민 사이에선 이미 ‘강력한 리더십’을 대망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 소리는 앞으로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순종성 떨쳐내야 파시즘 막는다
그런 상황에서 구호활동에 헌신하는 미군과 자위대의 이미지가 곧잘 소개되고 있다. 평화헌법 아래에서 오랜 기간 미군과 자위대는 일본 국민의 심리적 알레르기 대상이었으나, 그것을 일거에 불식시키려는 듯하다. 미국과 일본은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타개할 묘안이 없어 고민하던 차에 그 흐름을 바꾸려는 모양이다. 미군의 재난구호 작전에 ‘친구 작전’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그런 의도를 우스울 정도로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민주당은 후텐마 기지의 오키나와현 바깥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으면서도, 그것을 철회한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잃어버린 큰 점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지 않을까. 재난을 구실로 또다시 오키나와에 희생을 강요하려는 것이다.
오키나와 건은 지금의 일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일본의 정치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은 여전히 평온하다. 현재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작은 희망은 일반인들이 자율적 시민으로 각성하고 다양한 사회운동을 벌여 정치의 멜트다운에 대항해가는 것밖에 없는데, 그런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인 ‘일본인’들이 전세계로부터 찬사를 받는 순종성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자율적 시민의 힘으로 파시즘으로의 전락을 막고 일본 사회를 모든 구성원이 살기 좋은 곳으로 바꿔가는 게 가능할까? 그런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나는 낙관적이지 못하지만, 그것 말고는 희망이 없다.
글 · 서경식
재일조선인 2세. <소년의 눈물>로 1995년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받았고, <프리모 레비로의 여행>(한국판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으로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번역 · 한승동
<한겨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