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위한 인도 원전, 그리고 4만의 저항

2011-04-08     프라풀 비드와이

인도 서부의 사히아드리 구릉지대 마을들에서는 프랑스 원전 회사 이름인 ‘아레바’(Areva)와 ‘유럽형 가압수로’(EPR)라는 말이 ‘방사능’, ‘플루토늄’, ‘방사성 폐기물’ 등의 단어만큼 친숙하게 들린다. 자이타푸르를 둘러싼 이 마을들은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뭄바이에서 남쪽으로 400km쯤 떨어진 이 지역은 세계 10대 ‘생물 다양성 핵심 분포 지역’(1)에 속한다. 아레바는 앞으로 이 지역에 1650MW급 원전 6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10대 생물 다양성 지역에 들어설 원전

아레바의 협력사인 인도원자력공사(NPCIL)는 자이타푸르에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원자력발전 단지를 건설할 야심이 있다. 인도 정부의 관리 아래 NPCIL은 주민 4만 명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킬 계획이다. 이들은 쌀, 수수, 렌즈콩, 각종 채소와 풀, 생선과 과일 등 이곳에서 나는 각종 자연 산물과 천연자원에 기대어 살아왔다. 그중에는 유명한 알폰소 망고도 포함돼 있다.
자이타푸르가 속한 마하라슈트라 주정부는 전력을 다해 이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프리트비라지 샤반 주정부 총리는 최근 인도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현재 인도 원자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지난 2월 27일 프로젝트 홍보를 위한 자리에 참가하기 위해 자이타푸르를 방문했다. 그러나 8천 명이 모인 이 자리에서 프로젝트 옹호 발언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자이타푸르에 땅이 있지만 오래전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주민 4만 명 “내 주검 위에 세워라”

이 지역의 원전 건설 반대운동은 평화적으로 진행돼왔다. 그러나 경찰은 운동가 22명을 전격 체포한 뒤 살인 기도를 비롯한 여러 가지 혐의를 뒤집어씌웠다. 경찰의 혐의 조작에도 자이타푸르 주민들은 하나가 되어 원전 반대를 외쳤다. 거리에 포스터가 나붙고 시위와 행진, 시민 불복종 운동이 전개됐다. 반대운동이 시작된 지 벌써 4년이 다 되어가지만 주민들의 저항 의지는 식을 줄 모른다. 미트가반 마을의 의사인 밀린드 데사이는 “내 주검 위에 원전을 건설하라.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내 땅과 주민, 아름다운 환경을 지킬 것”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도 지난 3월 3일 다른 11명의 활동가들과 함께 경찰에 체포됐다.
정부는 식민지 시대의 토지수용법에 근거해 원전 건설 부지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땅 소유자의 95%가 정부의 보상 제안을 거절했다. 정부 제안을 수용한 이들은 대부분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정부는 토지 매입 가격을 7배나 인상하며- ha당 250만 루피(약 4만 유로)- 이들을 회유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기자가 방문한 마을들에서 이 프로젝트에 찬성하는 주민은 단 한 명도 만날 수 없었다. 대부분 국익 차원에서조차 무의미한 프로젝트라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이 프로젝트가 자신의 필요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굳이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재앙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방사능 유출 가능성을 걱정한다. 이들은 수렌드라 가데카르 같은 인도의 재야 연구자들의 통계 자료를 인용한다. 자료에 따르면, 인도 서부의 라자스탄 원전과 동부의 자르클란드 우라늄 광산 주변에서 암 발병률과 선천성 기형 발생률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했다. 주민들은 수세기 동안 지역 안전을 위협하게 될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 저장에 대해서도 우려한다.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마을인 마드반에 사는 프라빈 가반카르는 말한다. “자식이나 손자가 비정상적으로 작은 머리를 달고, 다리 한쪽이 없는 상태로 태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삶과 신체적 건강을 지키려면 원전 반대만이 유일한 길이다.” 지난 몇 년간 이 지역 주민들은 원자력발전의 위험과 비용에 대한 정보들을 입수해왔다. 가반카르는 아레바의 EPR 원전 건설을 둘러싸고 핀란드가 어떤 문제에 봉착했는지 잘 알고 있다. 현재 핀란드에 건설 중인 올킬루오토 3호기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세계 최초로 짓는 유럽형 원전이다. 42개월 공사 지연, 90% 예산 초과 등의 문제로 아레바와 핀란드 발주사 사이에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올킬루오토 3호기는 ‘시장 원칙’에 의거해 건설되는 최초의 유럽형 원전으로, 건설비를 30억 유로로 고정했다. 그러나 현재는 추가 비용을 어느 쪽이 감당해야 할지 불분명하다.

안전성도 없고 경제성도 없다

가반카르가 분노에 차서 말한다. “아직 테스트를 거치지 않았고 검증되지도 않은 모델을 수입하겠다고 나서는 인도 정부가 한심할 따름이다. 핀란드, 영국, 미국, 심지어 프랑스에서조차 이미 3천 가지가 넘는 안전 문제가 제기됐다!” 원자력에너지부 산하기구로서 민간 원자력 시설의 안전을 담당하는 인도 원자력에너지규제위원회(AERB)의 위원장을 지낸 고팔라크리슈난 박사도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EPR는 규모 때문에 상당량의 중성자를 방출한다. 500~1천MW급 원전보다 훨씬 많은 양의 유독성 방사성 핵종(核種)을 만들어낸다. 요오드129가 대표적이다. 만약 유출 사고가 나면 연료 전체뿐 아니라 인간 신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할 것이다. EPR의 안전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다. 그러나 현재 인도의 어떤 기관도 EPR의 기술을 검증하고 안전을 보장할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AERB 역시 마찬가지다.”
인도는 지금까지 주로 미국과 캐나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원전 모델을 수입해왔다. 고팔라크리슈난은 EPR의 MW당 총전력 생산 비용이, 올칼루오토 3호기의 예상 건설 비용이 더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2억 루피에 달할 것으로 예측한다. 기존 인도 원전의 생산비는 8천만~9천만 루피, 화력발전은 5천만 루피에 불과하다. 고팔라크리슈난은 지적한다. “EPR가 생산하는 전력은 금값이나 다름없다. 하위 후속 산업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인도가 천연 우라늄과 중수(重水)를 사용하는 캐나다 원전 수입을 통해 이미 기술을 축적한 상태에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EPR로의 전환은 경솔하고 비이성적인 선택이다.” 친정부 성향의 인도 원자력에너지위원회(AEC) 위원장 출신 PK 리엔가르조차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농업 이어 어업도 파괴될 판

인도에서 가장 많은 토착 식물종이 이 지역에 집중된 것도 원전 건설 반대 목소리가 높은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 지역은 생물 다양성뿐 아니라 거기서 비롯되는 원예업과 어업을 위해서도 보존 가치가 높다. 서쪽 가트의 콘칸 연안에는 5천 종이 넘는 꽃나무와 포유류 139종, 조류 508종, 양서류 179종이 서식한다. 그중 325종은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2) 크리슈나와 고다바리 같은 큰 강도 이곳에서 시작된다. 이 지역 생태계는 세계적 차원에서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
이 지역에는 어선 500여 척이 있다. 무슬림 마을 나트의 어부인 암자드 보르케르는 말한다. “우리는 임시로 고용한 어부들에게 인도 다른 주의 최저임금보다 3~4배 많은 돈을 지급할 만큼 충분히 벌고 있다. 원전이 건설되면 지역 경제가 파괴될 것이다. 우리가 할 줄 아는 것은 고기잡이밖에 없다. 인도 최초의 원전이 건설됐던 타라푸르에서처럼 이곳의 어업도 파괴되고 말 것이다. 농부들과 함께 힘을 합쳐 원전 건설 반대운동을 벌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지역 어부들은 원전 주변의 특수시설 혹은 경비정 때문에 어업에 방해를 받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또한 원전에서 바다 쪽으로 매일 방류되는 물 520억ℓ 때문에 해수 온도가 5℃ 이상 상승하면 물고기 수명이 단축될 것이라고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이타푸르가 지진 발생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1967년 12월 11일 진도 6.3의 지진이 자이타푸르에서 약 100km 떨어진 콘야 마을을 덮쳐 177명이 숨지고 5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지난 20년간 자이타푸르에서 진도 5 이상의 지진이 세 번이나 발생했다. 1993년에는 진도 6.3의 지진으로 9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9년에는 자이타푸르의 한 다리가 지진으로 무너진 적도 있다. 원전 부지 선정 과정에서 이런 점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밝혔다.(3) NPCIL은 원전의 내진 설계 등에 관해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마하라슈트라 주정부는 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분열시키기 위해 종교까지 이용하고 있다. 정부는 힌두교도들의 원전 건설 반대운동에 동참해봐야 별 이득을 볼 것 없다는 식으로 이슬람 원로들을 설득해 찬성을 종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저명인사들의 이 지역 방문을 방해했다. 그중에는 전 인도 최고법원 판사, 전 해군 사령관, 인도 공산당 대표, 유명 사회과학자가 포함됐다. 지난 3월 초, 주민법정에서 열려던 공청회를 불허하고 법률 관계자를 포함한 운동가들의 공청회 참여를 막았다.

프랑스에서 어려운 걸 인도서 해결?

한 물리학자는 인도 당국과 기업이 원전 건설에 매달리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프랑스 내 상황으로 어려움에 처한 아레바는 자이타푸르 원전 건설에 사활을 걸었다. 아레바는 현재 엄청난 자금 투입을 기다리는 중이다. 자이타푸르 프로젝트가 좌초하면 아레바는 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이 때문에 주민들이 반대함에도 아레바가 인도 정부에 집요하게 로비를 하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26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인도 방문이 열흘도 안 남은 시점에서 인도 환경부 장관은 아레바 원전 건설을 허가한다고 발표했다. 인도 정부는 지난해 10월, 원전 사고에 관한 외국 업체들의 책임 범위를 제한하는 새 법을 도입했다. 법안 조율 과정에 아레바가 강한 압력을 행사했다. 사망자가 2만 명 이상 발생한 1984년 보팔 화학공장 폭발사고에 대한 기억은 아직까지 인도인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고, 희생자들의 보상 요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레바의 수익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원자력발전과 관련한 세계적 차원의 문제 해결이다. 만약 새롭게 부상하는 원자력 강국 중국과 인도가 전력 생산을 현재의 3~4배로 늘리겠다는 야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원전 건설 프로젝트들이 실패한다면 세계 원자력 산업의 쇠퇴를 더욱 앞당기게 될 것이다.

글 · 프라풀 비드와이 Praful Bidwai

번역 · 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생물다양성 핵심분포지역’(Biodiversity Hotspot)이라는 개념은 비정부기구인 세계보전협회(Conservation International)에 의해 창안됐다. 토착 식물이 최소 1500종 이상이고 본래 서식지의 70% 이상이 파괴된 지역을 선정한다.
(2) Norman Myers et al., ‘Biodiversity hotspots for conservation priorities’, <Nature>, 런던, 2000년 2월 24일.
(3) Greenpiece, <Jaitapur, India: EPR - a nuclear problem not an energy solution>, 2010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