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슬러지는 터져나오고

2011-04-08     게르겔리 시몬

지난해 10월 헝가리의 한 공장에서 알루미늄 생산 때 나오는 독성 슬러지가 유출되면서 대재앙을 초래했다. 이제 서서히 사건의 배경이 밝혀지고 있다. 환경오염 유발 기업에 아무런 제약을 가하지 않는 동유럽 국가 고유의 법규가 외국 기업들에는 굴러 들어온 떡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10월 4일까지만 해도 헝가리 국민은 붉은 슬러지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몰랐다. 이날에는 어이카의 한 알루미늄 공장의 슬러지 저장소 댐이 붕괴됐다. 100만m³에 달하는 걸쭉한 진홍빛 액체에 마을 7곳이 잠겼고, 11명이 사망했으며, 수백 명의 부상자가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 산업재해는 인간적 비극 차원을 넘어 800ha의 동식물 서식지를 파괴했고, 다뉴브강의 여러 지류를 비롯한 인근 하천의 생명체를 완전히 몰살했다. 과연 예견할 수 없었던 재앙인가? 2003년부터 비정부기구(NGO)들은 헝가리 곳곳에 흩어져 있는 대형 저장소 4곳에 수십 년 동안 축적해온 슬러지 3천만t의 위험성을 정부와 사회에 끊임없이 경고했지만 허사였다. 헝가리에서는 산업폐기물이 해마다 600만~700만t 배출된다. 과거에 슬러지를 바다에 버리던 그리스와 일본 등 몇몇 국가는 이런 관행에 이미 종지부를 찍었다. 반면 프랑스는 2015년까지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치명적인 헝가리의 이번 사고는 경제개혁에 일부 원인이 있다. 수익성이 최고에 달하던 헝가리 알루미늄 공장들은 1990년부터 헐값으로 민간자본에 매각됐다. 1400만 유로로 가치가 추산되던 어이카 공장은 1997년 마자르알루미늄(MAL) 그룹에 3만5천 유로라는 턱없는 가격으로 팔렸다.

헝가리를 덮친 알루미늄 슬러지

인수업체는 그 대가로 공장을 현대화하고 안전성을 높이는 작업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계약상 의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정부가 취하기로 한 제재는 거의 억제 효과가 없었다. MAL 그룹은 인수 가격의 10%에 해당하는 3500유로의 벌금을 내기만 하면 됐다. 현장에서 채취한 물질을 분석해보니 폐기물 중화, 가성소다 처리, 저장소 안정화 작업 중 그 어느 것도 실시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재난 발생 뒤 헝가리 정부는 배출 물질의 무독성을 증명한답시고 맞지도 않은 모순된 수치와 설명을 내놓았다. 지난해 10월 5일 보건부 장관은 이 물질이 법정 독성 기준치를 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이 결론은 1987년 측정된 수치 pH 11.8에 근거했다.(1) 공장주인 졸탄 바코니는 폐기물의 독성을 극구 부인해 여론과 피해자들의 분노를 샀다. 해당 지역을 휩쓸고 간 슬러지는 폭우에 가성소다 성분이 희석됐음에도 평균 pH 13에 달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슬러지를 세정하고 여기에서 제거한 가성소다를 재활용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이 과정을 5~7회 반복해 더 이상 독성 물질로 분류되지 않는 건조한 슬러지를 얻어낸다.
유럽연합 규정은 슬러지의 구성성분 중 위험물질로 분류된 것이 하나라도 있어야 슬러지를 위험 폐기물로 간주한다. 반면 유럽 폐기물 목록에 따르면, 소다 같은 물질의 농도가 높은 슬러지는 위험 폐기물에 해당한다. 어이카 공장의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MAL 그룹은 위험물 저장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였다. 지난해 10월7일 헝가리 과학학술원은 슬러지가 중금속을 전혀 함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 근거는 2004년 자료였다.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10월 6일 콜론타르에서 채취한 표본을 분석해보니, 비소와 염소의 농도가 매우 높았다. 당초 보건부는 비소 농도가 4.3mg/kg이라고 발표했다. 실제 그린피스의 측정치는 130mg/kg이었고, 과학학술원은 처음에는 이를 부인하다 뒤늦게 인정했다. 비소 검출에 관한 해명은 없었다.

무분별한 민영화와 법적 공백

정부는 사고가 발생한 지 불과 9일 만에 어이카 공장을 재가동하기로 결정하고 통제에 돌입했다. 중금속을 함유한 물이 계속 저장소에서 흘러나와 이웃 만(灣)으로 유입됐고, 독성을 중화하기 위해 염소를 투입했으나 여전히 pH는 12를 기록했다. 언론과 그린피스가 또다시 이런 결과를 발표했는데도 공장 운영권은 2018년까지 연장됐다. 그러는 동안 당국은 사고의 중대성을 애써 축소하거나 국민에게 조용히 기도를 드릴 것을 당부하며 우왕좌왕했다.
많은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산업시설이 노후하고 독성 폐기물 및 독극물 저장소가 방치돼 있다. 다수의 외국 기업들은 환경보호에 관한 법적 허점을 이용해 오염 산업을 동유럽 국가들로 이전했다. 루마니아는 2000년 끔찍한 산업재해를 경험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자본이 소유한 바이아마레 금광의 침전물 저장 댐이 붕괴하면서 청산가리에 오염된 수백만m³의 물이 하천으로 유입된 이 사건은 당시 ‘제2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불리기까지 했다.

동유럽, 다국적기업의 독극물 창고

1990년대 이래 정부와 기업 어느 쪽도 슬러지를 처리하기 위해 제대로 조처를 취한 적이 없다. 현 체제의 무능함 때문인가, 아니면 정경유착이 문제인가? MAL 그룹 경영진이 헝가리의 양대 정당과 가깝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졌다. 그룹 대주주 중 한 사람은 페렌츠 주르차니 전 총리의 사업 파트너이기도 했다. 어이카의 알루미늄 생산업체들은 1997년 이래 큰 부를 축적했으면서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부주의로 발생한 피해 비용을 공공재정에 떠넘기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글 · 게르겔리 시몬 Gergely Simon
헝가리 환경단체 ‘클린 에어 액션 그룹’ 회원.

번역·최서연 qqndebien@naver.com 

<각주>
(1) pH(p=Potential, H=Hydrogen)는 수용액의 산성 혹은 알칼리성을 측정하는 단위다. 수치가 높을수록 알칼리성이 강하다. 배터리의 산성도는 pH 1이며 가성소다는 pH 14, 순수한 물은 pH 7이다.